신마 연비강 132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32화
제132화. 동쪽의 악(惡)(2)
“남쪽과 서쪽, 북쪽은 어떻게 되었느냐?”
“예. 그쪽에서도 강호인들이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마라.”
“당연한 소리.”
약추완의 명령을 그런 식으로 받는 자들은 그들밖에 없었다.
바로 황곡에서 나온 고수들이었다.
키가 작고 몸이 퉁퉁한 황곡의 고수 황옥은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나타난다더니.”
약추완과 우동문은 황옥이 바라보는 곳으로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높은 언덕 위에 비강이 오연하게 서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놈이 바로 연비강이라는 놈이로군.”
비강은 잠시 황옥이라는 사내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약추완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이다, 약추완.”
비록 거리가 멀었지만 비강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약추완의 귀로 전달되었다.
약추완은 이를 갈며 비강을 노려보았다.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연비강.”
“그럴지도 모르지. 약 단주가 네게 무슨 말을 하지 않던가?”
“무슨 말을 말하는 것이냐? 연비강.”
“회운창 악규의 죽음.”
비강의 입가에 하얀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너무나 섬뜩하여 여유를 보이고 있던 황옥과 우화봉마저도 흠칫 놀랐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내가 죽였어. 그놈이 먼저 나를 공격했거든.”
설마…….
한때는 저놈을 의심했었다.
하지만 북림의 조원으로 있으면서 악가에 그런 짓까지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라 여겼었다.
그래서 여태까지 그 일을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벌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저놈은 진정한 마왕이었다.
이번에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한다.
이번에 반드시 저놈을 죽여 복수를 해야 한다.
“이놈! 네놈의 사지를 찢고 뼈를 추릴 것이다!”
약추완의 입에서 불같은 노성이 터져 나왔다.
크크크…… 크하하하……!
조용히 비강과 약추완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옥은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듯 배를 잡고 웃어 댔다.
“한심한 줄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황옥, 그만해. 저놈은 백산 오라버니와 우리 동료들까지 죽였어.”
우화봉의 일침에 배를 잡고 웃어 대던 황옥도 안색이 변해 신색을 바로 했다.
“이제 보니 내가 한심한 놈이었어. 연비강, 이번에는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거의 일만에 달하는 강호인과 나의 동료들이 사방에서 너를 포위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네 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느끼고 있어.”
강호 전체가 적이 되었으니 일만이라는 숫자는 오히려 적다 할 수 있었다.
어느 누가 자신을 마동의 마왕이라 했는지 참으로 분에 넘치는 소문을 만들어 냈다.
비강은 약추완의 왼편에 서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우동문에게 눈길을 주었다.
우동문은 당장이라도 비강을 찢어 죽일 듯 무서운 눈으로 살기를 풀풀 흘리고 있었다.
비강의 시선은 우동문에게서 강호인들로 옮겨 갔다.
그들에게서는 오직 적개심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는 마왕이로군.’
입가에 머물던 자조적인 미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섬뜩한 하얀 미소가 자리 잡았다.
“오라!”
산을 뒤흔드는 그 울림은 피를 부르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와아―!
마치 최면이라도 걸린 듯, 강호인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언덕을 향해 달려갔다.
“멈춰!”
황옥의 외침도 강호인들의 흥분한 함성 소리에 묻혀 버렸다.
“젠장!”
비강의 좌우에는 거목들과 바위들이 즐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거목들의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콰드드드…… 쿠쿵! 쿵!
밑동이 잘려 나간 거목들이 언덕을 오르는 강호인들의 머리를 덮치고 뒤이어 바위들이 굴러떨어졌다.
크아아악……!
거목과 바위에 짓이겨진 강호인들의 구슬픈 비명 소리는 인근의 산천을 뒤흔들었다.
‘없어?’
아주 잠깐 강호인들에게 시선을 빼앗겼던 황옥은 언덕 위에 있던 비강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휘잉…….
황옥의 시선은 언덕에서 바람이 이는 하늘로 옮겨졌다.
영롱한 보석이 빛을 뿌리듯 수많은 광채가 하늘에서 땅으로 쏟아졌다.
콰콰콰콰쾅―!
시리도록 밝은 광채가 강호인의 머리를 자르고, 어깨를 자르고, 땅과 숲의 나무들을 뒤집어 놓았다.
스으으…….
어느새 비강은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진 바위 위에 내려서 있었다.
수많은 강호인의 피로 얼룩진 바위는 온통 붉은색이었다.
“마왕을 죽여라!”
“죽어!”
언덕 아래에 있던 강호인들이 비강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피핑! 쉭……!
따당! 따다다당……!
그들의 손을 떠난 암기와 작은 병기들이 비강의 검과 철봉에 맞아 튕겨 나갔다.
후우웅!
암기와 병기들을 튕겨 냈던 비강의 검이 진동을 일으켰다.
다섯 마리의 용이 검에서 튀어나와 앞을 막고 있는 강호인들을 찢어발겼다.
콰콰콰콰…… 쾅!
용들은 강호인들을 찢으며 황옥과 우화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황옥과 우화봉의 검이 수많은 분신을 만들어 내 용들의 전신을 갈랐다.
콰콰쾅!
주르르륵…….
충격을 이기지 못한 황옥과 우화봉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이런 강함이라니…….’
용들을 전부 막아 내지 못했다.
무복은 여기저기 찢겨 나갔고 살갗은 그물과 같은 형상으로 베여 피가 흘렀다.
‘새로운 무신이 나타났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어.’
백산 형이 패해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연비강이라는 자의 무공을 믿지 않았다.
그저 그놈은 약간의 운이 따랐고, 백산 형은 운이 없었을 뿐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 이놈은 위험하다.
황옥은 아려 오는 손에 힘을 주며 검을 뿌렸다.
매섭게 쏘아진 검기가 비강의 전신을 조각조각 잘라 버렸다.
조각조각 잘려진 비강의 전신이 바람에 쓸려 흩어졌다.
촤르르…….
위험을 직감한 황옥과 우화봉이 신형을 분산하며 수십으로 늘어났다가 하나로 합쳐졌다.
핏! 핏!
하지만 어느새 황옥과 우화봉의 어깨에서는 피가 튀고 있었다.
‘……반드시 이긴다.’
황옥은 지금 모종의 결심을 하고 있었다.
팔이나 다리 하나를 희생하더라도 기필코 연비강을 이곳에서 죽일 것이다.
아니, 목숨을 바쳐서라도 놈을 죽일 것이다.
찰나의 순간, 황옥과 우화봉의 시선이 뒤엉켰다가 떨어졌다.
우화봉도 황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스아아…….
황옥과 우화봉의 신형이 좌우로 나뉘어 분열을 시작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창 한 자루가 비강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쾅!
“우리가 왔다!”
갑작스레 들려온 동료의 목소리에 황옥과 우화봉은 반색을 했다.
“빨리 와, 이 자식들아!”
동료들과 함께라면 틀림없이 놈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 *
까깡! 까까까깡……!
황옥과 우화봉, 그리고 다섯 명의 동료들이 치고 빠지며 비강의 전신 요혈을 파고들었다.
하늘과 전후좌우는 그들과 비강이 만들어 낸 검광으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스으으―!
잠시 검과 철봉으로 방어만 하던 비강의 신형이 사방으로 분열했다.
동시에 검과 철봉 끝은 기이한 파장을 그리고 있었다.
퍼퍽!
황옥과 우화봉은 비강의 검과 철봉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동료들의 가슴과 목에서 피가 튀었다.
“부항! 전욱!”
뿐만이 아니었다.
콰콰콰…… 쾅!
거대한 용 한 마리가 황옥과 우화봉을 덮쳐 가고 있었다.
황옥과 우화봉은 혼신을 다해 아가리를 벌리며 덮쳐 오는 용을 피해 냈다.
크아악! 아아악……!
하지만 성난 용은 황옥과 우화봉을 휩쓰는 데에 멈추지 않고,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강호인들까지 찢어 놓았다.
산골짜기에 기다린 고랑이 생겨나고, 그 사이로 검은 바람 한 줄기가 빠져나갔다.
“마인을 척살하라!”
“마왕을 죽여라!”
비강이 전장을 빠져나가자마자 산골짜기를 가득 메우며 강호인들이 몰려들었다.
그 선두에서 달려오고 있는 자들은 황옥과 우화봉의 동료들이었다.
“황옥! 우화봉!”
“부항! 전욱!”
황급히 달려온 그들은 바닥에 뒹굴고 있는 동료들을 안아 일으켰다.
하지만 이미 부항과 전욱은 숨이 끊어졌고 황옥과 우화봉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
간신히 숨이 붙어 있기는 했으나 성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의원!”
“약추완! 의원을 불러라! 아니…… 아니. 우리가 의원을 찾아가겠다.”
황옥과 우화봉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은 그들이 산 아래로 날 듯 달려 내려갔다.
신경을 거스르던 황곡의 고수들이 사라지자, 약추완은 수하들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 하고 있느냐! 마인 연비강을 추격하라!”
* * *
후우…… 후…….
산길을 달리는 비강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황곡의 고수는 여느 강호인들과 판이하게 달랐다.
조금 더 그곳에서 시간을 끌었다가는 몸성히 빠져나오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나를 동쪽으로 몰고 있어.’
의도된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비강이 향하고 있는 곳은 남쪽이 아니라 동쪽이었다.
사련의 고수들은 일부러 동쪽을 틔워 놓아 그쪽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약추완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방향은 동쪽이었다.
‘두궁천이 애타게 나를 찾고 있는 모양이야.’
그자가 자신을 찾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인 두광생의 복수.
비강은 잠시 망설였다.
적들이 다시 포위망을 형성하려면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지금이라면 어렵지 않게 적들을 뚫고 남쪽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남쪽으로 방향을 돌린 비강은 십여 걸음 걷다 말고 발을 멈췄다.
스으으…….
바람에 실려 오고 있는 음습하고 사이한 기운들은 바로 남쪽에서부터 몰려들고 있었다.
“절대로 남쪽에 보내지 않겠다는 뜻인가.”
하나둘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무인들은 여느 강호인과는 분위기부터 사뭇 달랐다.
깊고 어두운 눈엔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발걸음은 허공을 밟듯 가벼웠다. 필시 대단한 고수들일 터.
비강은 단번에 이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자들은 사련의 정예들이었다.
숲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자들이 일백 명을 넘더니 이백, 삼백, 사백, 오백까지 늘어났다.
“주인께서 너를 보고 싶어 하신다.”
수염이 허연 나이 든 사내가 깊고 어두운 눈으로 비강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직접 오라고 해.”
“겁이 나느냐?”
하하…….
어이없어하는 비강의 웃음에 사내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비강을 응시하고 있던 사내가 뒤로 물러섰다.
“어차피 너는 주인과 만나야 한다.”
“그렇게 될 것 같군.”
벌써부터 귓속으로 들려오기 시작하는 추격자들의 외침 소리는 비강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등 뒤는 추격자들로 인해 막혀 있고, 남쪽은 사련의 고수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지금 비강이 빠져나갈 수 있는 방향은 오직 동쪽밖에 없었다.
하지만 순순히 저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기는 싫었다.
스으…… 쐐애액!
검집에서 쉬고 있던 검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빛살과 같은 빠르기로 날아갔다.
나이 든 사내의 눈에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스아악―!
한 줄기 빛이 나이 든 사내의 허리에서 뿜어져 나와, 검이 날아들고 있는 공간을 사선으로 갈랐다.
스륵.
그러나 백파는 이미 빛줄기 속을 파고들어 가 사내의 목을 한 바퀴 감아 돌고 있는 중이었다.
비강이 되돌아온 검을 잡아챘을 때, 사내의 목은 혈선이 그어지며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툭…… 털썩!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오고, 사내의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우…… 웅.
나이 든 사내의 목을 잘라 낸 비강은 바로 용아포를 발현했다.
“죽여!”
“쳐!”
콰콰콰쾅……!
사련 고수들의 외침 소리는 분노한 용의 울음소리에 묻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