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6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68화
제168화. 중천함락(3)
깊숙이 허리를 숙이는 약추완을 내려다보며 남궁악이 웃었다,
클클클…….
“너는 어찌하겠느냐? 내게 항복하겠느냐?”
“……죄송……합니다.”
변화무쌍하기로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는 약추완이 항복을 거부했다.
이에 남궁악도 그답지 않게 놀란 척을 했다.
크하하하하…….
남궁악의 웃음소리가 산울림이 되어 먼 곳까지 퍼져 나갔다.
허리를 숙이고 있는 약추완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공포에 질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았다.
부천주라는 무거운 직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을 올라야 했다.
하지만 산을 오르면서도 마음속으로 무수한 고민을 했었다.
천주가 없는 상황에서 무신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무신은 중천에 적대적이었으며 시천세보다 오히려 더 강한 자로 보였다.
그럼에도 약추완은 남궁악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었다.
시천세가 이 세상에 없다면 당장이라도 항복을 하겠지만, 아직 그는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
나중에 그가 중천을 되찾을 때를 대비해야 했다.
크크크크…….
“좋을 대로 해.”
남궁악은 약추완을 죽이지 않았다.
이미 그의 속내를 훤하게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추완, 네가 이 중천을 맡아서 다스리도록 하라. 나는 이곳에서 사형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약추완이 내려가자 남궁악은 시천세가 앉았었던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사형, 기다리겠소.”
본산에서 세상이 뒤바뀔만한 놀라운 일이 벌어졌음에도 순찰단의 집무실은 조용하기만 했다.
집무실 안은 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그 연기 속에 단주 약철빙과 공손황이 앉아 있었다.
낄낄…….
“화무십일홍이라고 하더니…….”
연기를 뿜어 대는 약철빙이 즐거워했다.
“우리도 나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찰단의 조원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나가서 뭐 하게. 나가봤자 무슨 뾰족한 수라도 생겨?”
약철빙의 자조에 공손황도 쓰게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부천주 약추완의 명령이 하달된 것으로 보아 위쪽의 상황은 이미 끝이 났다고 봐야 했다.
이십여 구의 시신들이 아래쪽으로 운반되었지만 더 이상 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풍 림주가 계실 때는 목숨을 걸고 북림을 수호하려는 자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자들이 거의 없어. 중천에 충성심이 없다는 거지. 나 또한 마찬가지야. 이 중천에는 조금도 충성하고 싶지 않아.”
“차라리 마음 맞는 이들끼리 따로 나가 조직을 하나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은운곡에 자리 잡고 있는 벽사군은 지금 꽤 대단한 세력을 키워 냈다고 합니다.”
“이곳을 빠져나갈 적당한 명분과 적당한 장소만 있다면 가능은 하겠지.”
“장소는 있습니다. 다만 부천주의 허락을 받을 명분이 부족합니다.”
낄낄낄낄…….
“어쩌면 이번 일이 기회가 될 수 있겠지. 예를 든다면 동천을 반대해 이곳을 탈출했다는…… 뭐 그런 명분이면 통하지 않을까?”
“아주 좋은 명분입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약철빙은 구석에 쌓아 놓은 술병들 중에 하나를 집어 들었다.
벌컥벌컥…….
그 자리에서 단번에 술 반병을 비운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잘 해 보십시오.”
“맡겨 둬.”
술병을 들고 밖으로 나온 약철빙은 곧장 부천주의 전각으로 올라갔다.
곳곳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무인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흥! 등신 같은 것들.”
부천주의 전각에 도착한 그녀는 허락도 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찰단주께서 오셨습니다.”
전각을 지키던 무인들이 급히 그녀의 방문을 알렸으나, 약철빙은 이미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노한 얼굴의 약추완이 다짜고짜 화를 내며 물었다.
“이번에도 용하게 목숨을 부지하셨네요.”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냐?”
약추완은 지금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중천을 도맡아 관리하던 벽 총관은 동천의 주인이 도착하자마자 주요 인사들을 이끌고 도망쳤다.
천주를 찾아갔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되었으나, 자신에게 말도 하지 않고 아무도 몰래 빠져나갔다.
“부천주께 부탁이 있어요.”
“나가!”
약추완이 고함을 질렀지만 약철빙은 태연하게 술을 마셨다.
“저는 동천의 주인에게까지 명령을 받을 수 없어요. 성을 나가 따로 밖에 나만의 세력을 만들고 싶어요.”
분노로 일그러졌던 약추완의 안색이 금세 펴졌다.
어쩌면 이것은 좋은 기회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시 천주가 돌아왔을 때 동천에 저항하기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더냐?”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리자 약철빙의 안색도 한층 밝아졌다.
“점찍어 둔 장소는 아직 없어요.”
“그렇다면 일단 네가 무인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보아라. 자금은 충분히 지원해 주마.”
“그렇게 하죠.”
약철빙은 약추완이 혹시라도 딴소리를 할까 봐 얼른 방에서 나왔다.
방을 나서는 그녀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드디어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퍼석!
약철빙은 들고 있던 술병을 구석에 던졌다.
그녀에게 이제 술은 필요 없었다.
***
“사제가 먼저 움직였구나.”
중천에서 날아온 전서를 받아 읽은 시천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사제가 움직이리란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짐작보다 훨씬 빨랐다.
‘어쩌면 백요의 죽음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지. 내게 이빨을 드러낸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는 판단도 했을 테고.’
사실 시천세는 중천을 비울 때마다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남궁악의 야망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다른 사제들보다 그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그놈들도 눈치가 있다면 사제와 맞부딪치지는 않겠지.”
“예. 은각에 머물고 있던 놈들과 마인들이 총관과 합류해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시천세는 적잖이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 무림을 다스리려면 손과 발이 되어야 할 자들이 많이 필요했다.
아무리 무의 경지가 신에 다다랐다지만 넓고 넓은 강호를 홀로 다스릴 순 없었다.
“남선에서 전서가 왔는데 계획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죽었나?”
“죽은 자만 육백이 넘는다고 합니다.”
“애석하군.”
협객 밑으로 협객들이 모여든다.
사제들 중에 운패가 측은지심이 가장 많았다.
그렇기에 남선에 협객들이 몰려 있는 것은 당연했다.
협객을 얻으려면 은자가 아닌 마음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번 마음을 정한 협객들은 쉽사리 배신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을 얻기 힘들었다.
때문에 남선의 무인들이 많은 죽은 것은 당연했다.
종예는 조심스럽게 보고를 이어 갔다.
“혈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약 삼십여 명의 남선 무인들이 그곳을 탈출했다고 합니다.”
“겁을 집어먹고 도망을 친 건가?”
“그건 아닙니다. 남선의 노 고수들이 제자들을 탈출시킨 모양입니다. 진즉부터 이런 상황에 대비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삭초제근(削草除根).”
“예. 동주가 추격에 나섰습니다.”
보고를 끝마친 종예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기다렸다.
거의 반 시진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시천세가 말문을 열었다.
“중천을 되찾아야 하겠지?”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준비시키겠습니다.”
“아니야.”
시천세가 고개를 젓자 종예는 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공은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다른 자들은 모르겠지만 그는 곁에서 오랫동안 모셔왔기에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연비강은?”
“종적을 놓쳤다고 합니다. 연비강이 남쪽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보면 남선 어디엔가 새로운 은신처를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끌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도 있어. 특히…….”
특히 사부가 제자로 받아들여 키웠을 정도이니, 다른 자들보다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연비강은 아주 용의주도할 뿐 아니라 뛰어난 결단력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풍림화산(風林火山).
바람처럼 빠르고 숲처럼 고요하며 불처럼 맹렬하고 산처럼 무겁다.
연비강은 싸움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본능적으로 아는 놈이었다.
그러나 이제 남궁악이 먼저 움직였으니 강호는 곧 자신의 손안에 들어올 것이다.
“나는 한 번의 싸움으로 강호를 평정하고자 한다.”
사부는 강호를 평정하고 나서도 직접 다스리지를 않았다.
강호를 강호인들에게 돌려주었으니 평화가 얼마나 오래 유지 될 것인가.
십 년이 지나기도 전에 욕심 많은 자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세력을 만들어 피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주공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
“천둥과 번개가 치고 사방에서 빛이 번쩍였다?”
“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사내는 백안의 강호인에게 전에 보고 들은 것들을 말했다.
쇠 지팡이를 짚고 있는 강호인은 크고 작은 무덤을 응시하다가 다시 물었다.
“팔이 없는 여인이 검 두 자루를 지니고 있었다고 했었는가?”
“예.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악마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였다?”
“그렇……습니다.”
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기 있다.”
눈물을 흘리는 사내 앞에 은자 한 냥을 던져 준 백안의 강호인은 적막하기 그지없는 마을을 떠났다.
은자 한 냥을 받은 사내는 그것을 품속의 전낭에 집어넣었다.
살이 떨릴 정도로 두려운 나날이었다.
사내는 마을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을을 떠날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을 몰살한 그 사내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었다.
혹여 마을을 떠났다가, 그가 돌아와 자신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알고 추격해 온다면 어찌한단 말인가.
세상이 넓다지만 그 악마는 반드시 자신을 찾아낼 것만 같았다.
후우…….
사내는 한숨을 푹 쉬더니 무덤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자들이 과연 사람일까?”
강호인들은 일검에 땅을 가르고 일보에 강을 건너뛰는 자들이란 이야기를 허풍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내가 목격한 강호인들은 전부 이야기속의 그런 자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시신이 되어 무덤 속에 묻혀 버린 강호인들의 재물을 탐냈지만 사내는 그러지 못했다.
왠지 꺼림칙해 조금 먼 곳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나중에 나타난 악마는 몰려 있는 마을 사람들을 한꺼번에 몰살했다.
그때 사내도 마을 사람들과 섞여 있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에휴…….
또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는 사내 앞에 삼십 대 중반의 강호인이 나타났다.
강호인의 손에는 한 자루의 큰 대도가 들려 있었다.
“말 좀 물을까?”
“예…… 예, 말씀만 하십시오.”
겁을 집어먹은 사내가 얼른 몸을 수그리며 대답했다.
“이 무덤에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까?”
강호인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사내 앞에 은자 두 냥을 던졌다.
이제 조금 안심이 된 사내는 얼른 은자를 품속에 챙기고 자신이 목격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마을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습니다. 지금 마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힘없는 늙은이들과 아이들밖에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몰살한 자는 그 후에 다시 찾아왔는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에 눈알이 하얀 강호인이 찾아와 이번 일에 대해 물었을 뿐입니다.”
“눈알이 하얀 사내라…….”
대도를 손에 쥔 사내가 피식 웃었다.
그자는 틀림없이 무림맹의 백안걸개일 것이다.
‘나보다 더 빨리 이곳을 찾아냈군. 어디 보자…… 그래. 이번에 아예 죽여 없애는 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