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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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67화
제167화. 중천함락(2)
물을 차며 날아오른 그들은 언덕에 내려서더니, 남선을 향해 일제히 달려 나갔다.
크아악!
크악!
밀려드는 어선들을 향해 화살을 쏘아대던 자들이 고수들의 칼날 아래 쓰러졌다.
앞장선 동주의 손에는 장창이 들려 있었다.
“적이다! 적의 침입이다!”
새벽을 흔들어 깨우는 외침에 남선의 무인들이 달려 나왔다.
퍽!
동주의 손에 들려 있던 장창이 남선 무인의 가슴을 꿰뚫었다.
비명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남선의 어둠을 뒤흔들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총관 표충도 그 소리를 들었다.
남들보다 식견이 뛰어난 그가 지금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선주가 없는 이 남선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총관 표충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안에 계십니까?”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총관은 소매로 얼른 눈물을 닦았다.
“들어오시오.”
총관 표충의 허락이 떨어지자 삼십대 중반쯤 되는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내는 표충이 발굴한 인재로 뛰어난 안목은 물론 무공까지 갖추고 있었다.
“잠시 몸을 피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총관.”
“손 공. 지금 이 상황에서 어디로 몸을 피한단 말이오. 되었소이다. 나는 이곳에서 당당하게 죽음을 받을 것이오.”
“남선의 해는 오늘 질 것이나 내일 틀림없이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총관은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남선은 오늘로 끝이 날 것이다.
“손 공. 남선을 부탁하오. 살릴 수 있는 자들은 되도록 많이 살려 주시오.”
“분부를 받듭니다.”
손 씨 성의 사내가 밖으로 나간 후 총관은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는 서랍에 보관해 두었던 극약을 꺼내 펼쳤다.
하얗고 고운 가루가 불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인생이 아니었나.”
이류 무인으로 강호를 떠돌다가 도신 도운패의 눈에 들어 남선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후로 능력을 인정받아 총관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미련 없이 극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크으으…… 크윽.
곧 타는 듯한 고통이 목구멍에서부터 밀려 올라왔다.
목을 타고 내려간 극약은 가슴을 태우고 속을 태웠다.
와르르르…….
총관은 탁자 위에 쌓여 있는 서류를 끌어안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크아아아…….
마룻바닥에 쓰러진 총관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다 곧 그 몸부림은 잠잠해졌다.
***
퍽!
목을 파고드는 검날을 비껴낸 동주의 창이 순찰단주의 가슴을 꿰뚫었다.
끄으으으…….
순찰단주는 북궁도와 형제처럼 친했었다.
“나도…… 이제 너를 따라가게 되었구나.”
순찰단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허리에서 단검을 뽑아 마지막 힘을 다해 동주의 가슴에 단검을 날렸다.
깡!
창대로 날아오는 단검을 쳐 낸 동주의 창날이 순찰단주의 목을 뚫고 나왔다.
풀썩.
순찰단주가 쓰러지자 동주는 밀물처럼 밀려드는 남선의 무인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크아악!
끄아악!
창날이 스치는 곳마다 피가 튀고 무인들이 쓰러졌다.
그럴수록 무저갱처럼 검은 눈동자가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남선을 지켜라!”
“적을 죽여라!”
남선에 협객들이 많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는지, 남선의 무인들은 동료들의 죽음에도 끝없이 달려들었다.
크크크크…….
동주의 입에서 흥에 겨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지금 끊임없이 피를 갈구하고 있었다.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 적진 한가운데로 파고든 동주의 창날이 휘어지며 휘황한 빛들이 쏟아져 나왔다.
크아아아……!
빛에 휩쓸린 무인들은 가슴이 갈라지고 머리는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크하하하하……!
동주는 미친 듯 웃어젖혔다.
그런 그를 지켜보고 있는 석장은 뭔가 몹시 못마땅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
저놈은 피에 미친 살귀였다.
석장 자신도 잔인한 성정의 소유자였지만 동주는 그것을 훨씬 더 상회했다.
“그만하시오! 남선이 항복하겠소!”
손 공이라 불리는 자가 뛰어나와 항복을 외쳤지만 동주의 창은 멈추지 않았다.
“손 공! 어찌 항복을 말하는 것이오?”
누군가 격한 목소리로 꾸짖자 손 공도 목소리를 높였다.
“총관의 유지를 받들고 있소! 총관께서는 그만 항복하라고 하셨소!”
“나는 절대로 저자들에게 무릎을 꿇지 않겠, 크악!”
남선의 항복을 거부하는 자의 목을 베어 낸 동주는 적진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갔다.
쾅!
이어 손 공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창날이 석장의 검과 부딪쳤다.
“이놈!”
석장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창을 쳐내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붉고 검은 눈의 동주는 석장을 향해 사이한 웃음을 짓다가 신형을 돌렸다.
아직 남아 있는 적들은 많았다.
“미친 새끼.”
“남선 총관대리 손학이 중천에 항복합니다.”
총관으로부터 손 공이라 불렸던 사내가 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가져 다댔다.
그가 무릎을 꿇자 뒤에 도열해 있던 칠팔십여 명의 인물들도 머리를 조아렸다.
항복을 받은 석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학이라는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저 사내는 원래 중천의 총관이 진즉부터 이곳에 심어 둔 자였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임기응변이 뛰어난 자라 하더니 훌륭하게 이번 일을 완수했다.
만약 저자가 없었다면 남선은 항복이 아니라 멸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남선의 무인들은 외골수에 협객들이었다.
“남선의 항복을 받아들이겠소.”
“선처에 감사드립니다.”
남선의 항복을 받아들인 석장은 손학을 임시 총관으로 임명했다.
“당분간 그대가 남선의 모든 일을 도맡아 다스리시오. 주공께서 이곳의 책임자를 지정해 주실 것이오.”
“분부 받듭니다.”
“또한 전사자들은 후하게 장례를 치러 주어야 할 것이오. 그들은 남선에 충성을 다한 자들이었소. 전사자들의 가족에게는 일체의 죄를 묻지 않겠소.”
“감사합니다.”
그렇게 남선의 일을 일단락 지은 석장은 따로 동주를 불렀다.
“나 좀 보자.”
텅 비어 버린 전각으로 동주를 불러들인 석장은 그를 크게 꾸짖었다.
“네놈의 자비 없는 창에 아군이 될지도 모를 수많은 무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적과 아군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눈을 가진 놈이 과연 진정한 아군이라 할 수 있겠느냐?”
동주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는 것 같더니 곧 그의 입에서 음침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크크…….
“나는 당신이 겁나지 않소. 내가 머리를 숙이는 분은 오직 천주님뿐이오. 그러니 내 앞에서 그런 말은 하지 마시오.”
“뭐라?”
“다음에 천주님께 당신과의 생사투를 허락받겠소. 그때 생사를 가려봅시다.”
“이…… 새끼가…….”
얇디얇은 석장의 검이 뽑혀져 나와 단번에 동주의 목을 갈랐다.
쾅!
콰직!
석장의 검을 받아 낸 동주의 몸이 문을 부수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마당에 내려선 동주가 비릿하게 웃었다.
“이거, 방금 나를 죽이려고 한 거 맞지?”
부서진 문을 통해 석장이 걸어 나왔다.
“나와 생사투를 벌이고 싶다고 했느냐? 좋다. 주공의 허락은 내가 받아오마.”
“그때를 손꼽아 기다리지.”
***
수레에 오른 비강은 말을 몰기 위해 고삐를 잡았다.
가주는 후련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수레가 문을 막 나설 때 뒤따라오던 송은반이 갑자기 수레 앞으로 뛰어왔다.
“연 대협.”
“이게 무슨 짓이냐?”
가주 내외가 크게 놀라 끌어내려 했으나 송은반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비강이 고삐를 내리며 입을 열었다.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 보십시오.”
송은반은 반짝이는 두 눈으로 비강의 눈을 쳐다보았다.
“연 대협, 저도 데려가주세요.”
“은반아!”
가주가 크게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는 비강만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하오, 송 소저. 소저는 강호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오.”
“저도 강호인이 되고 싶어요.”
가주 내외가 펄쩍 뛰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안 된다, 절대 안 돼. 강호 무림이 얼마나 흉악한지 알고나 있는 것이냐?”
“네. 알고 있어요.”
흔들림 없는 송은반을 바라보던 비강은 수레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송은반은 비강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송은반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비강은 그녀가 땅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얼른 안아 가주내외에게 인계했다.
“고……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수레에 오른 비강은 말을 몰아 대문을 나섰다.
이제 이 집을 다시 찾아올 일이 있을까.
이제 저 송은반이라는 여인을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아무도 모른다.
비강이 떠나가고 반 시진 후에 송은반이 깨어났다.
“은반아, 어찌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냐?”
“아이고, 이것아. 어쩌려고 그런 짓을 했어.”
가주내외는 그녀를 걱정하며 꾸짖었다.
다음 날 모두가 잠든 새벽, 송은반은 가문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빨리 중천을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다.
스으으으…….
바람이 흐르듯 남궁악의 신형은 성벽을 타고 넘어갔다.
그리고 한 줄기 바람이 되어 그대로 산으로 올랐다.
정상에 도착한 그의 눈앞에 시천세의 거처가 나타났다.
“누구냐?”
전각 앞에 번초를 서고 있던 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남궁악을 향해 병기를 뽑아 든 순간이었다.
털썩. 털썩.
번초를 서던 자들의 목과 함께 몸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내가 동천의 남궁악이다……!”
우르릉! 우릉!
남궁악의 외침은 천둥이 되어 중천의 새벽을 뒤흔들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전각이 눈을 뜨며 이곳저곳에 불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셨습니까?”
불이 켜지고 쏟아져 나오는 무인들을 내려다보던 남궁악이 몸을 돌렸다.
산 정상 저편에는 일백 명이 넘는 무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클클클…….
“숨겨 놓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었나? 아니, 사형이라면 당연하겠지.”
눈에 익은 자들보다 처음 보는 자들이 더 많았다.
그렇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 몰래 무인들을 키워 냈다는 뜻이다.
남궁악이 웃으며 그들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얗던 귀밑머리가 까맣게 변하고, 검은 머리카락은 윤기를 더해 나풀거렸다.
눈가의 주름도 팽팽하게 펴졌으며 얼굴빛도 옅은 붉은색을 더해 갔다.
무신은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들으며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 남궁악은 그것들에 더해 다른 시간을 걷고 있었다.
고수들을 향해 걷던 걸음이 멈춰졌다. 굳을 대로 굳어 버린 저들을 향해 남궁악이 물었다.
“사형은 어디에 있느냐?”
이미 시천세가 이곳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남궁악이었다.
어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어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다 그들 중에 하나가 억지로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이곳에…… 없습니다. 무슨 일로 방문하신 겁니까?”
스악…….
허리로부터 뿜어 나온 빛줄기가 대답한 자의 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턱…… 떼구르르,
머리가 굴러떨어지고 몸이 쓰러졌다.
클클클…….
“건방지구나. 나는 이곳의 주인이 되기 위해 찾아왔노라.”
은각의 고수들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남궁악의 존재감이 은각의 고수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오너라!”
남궁악의 몸에서 살기가 줄기줄기 흘러 퍼져 나갔다. 살기를 맞이한 수풀과 나무들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건 은각의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러난다.”
은각의 고수들은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한바탕 혈전을 각오하고 있었던 남궁악으로서는 적잖이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적이다!”
그 대신 다른 자들이 산 정상으로 몰려 올라왔다.
콰콰콰쾅……!
허리에서 뽑혀 나온 검은 산 한쪽을 비스듬히 베고 검집으로 되돌아갔다.
정상을 향해 들어오던 자들의 몸이 갈라지고 목이 떨어졌다.
일검에 갈라진 무인들은 깊숙하고 길게 패인 구덩이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멈춰라!”
죽어 나자빠진 무인들의 뒤를 이어 약추완이 정상에 올라왔다.
약추완은 한층 젊어진 남궁악을 대하자마자 두려움에 질렸다.
자신이 모시는 시천세조차 이보다 못할 것이다.
“중천의…… 약추완이 동천의 주인께 인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