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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6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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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66화

제166화. 중천함락(1)

 

 

 

푸르스름한 이른 새벽의 거리는 한산함을 넘어 음침하기까지 했다.

화장을 한 나이 든 창기들과 골목에 앉아 술을 마시던 사내들이 전부 사라진 거리는 조용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음습한 골목 안으로 들어가던 비강은 문득 바닥의 검은 흔적을 발로 비볐다.

핏자국이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으나 은은한 혈향이 아직까지 골목을 감돌고 있었다.

“그만 나와.”

골목길을 감싸고 있는 미세한 기척이 비강의 신경을 자극했다.

평소라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할 자들의 기척이 더욱 은밀해졌다.

비강은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십시오.”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젊은 사내가 나와 넙죽 허리를 숙였다.

“늙은이는 어디에 있소?”

비강은 전에 흑산도를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분명 북궁도와 자신을 맞이한 자는 눈앞의 젊은 사내가 아니라 늙은 노인이었다.

“다른 일을 맡아보고 계십니다.”

“거짓말이 서툴군.”

계단을 내려가는 비강의 등 뒤로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주께서는 지금 출타중이십니다. 며칠만 이곳에서 기다리시면 만나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 내가 너무 늦은 건가?”

문득 하오문주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문주가 이미 죽은 것이냐?”

비강의 눈이 투명해지며 은은한 살기가 깔렸다.

젊은 사내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 아닙니다. 문주께서는 아직 살아…….”

“누가 죽였느냐?”

젊은 사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역시 죽었구나.”

문주의 죽음을 확인한 비강은 몸을 돌렸다.

하오문주가 죽었다면 더 이상 이곳에 남은 볼일이 없다.

골목길로 나온 비강은 주변을 살폈다.

아직까지도 미세한 기척이 느껴진다.

스으으…… 

순간 골목길 한가운데 서 있던 비강의 신형이 사라졌다.

비강의 신형이 사라지자마자 미세한 기척들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어릴 때 어머니가 자신을 주동이라 부른 것 같았다.

밑으로 어린 동생들 네 명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버지는 죽었거나 어머니와 자신들을 버렸을 것이다.

어머니는 매일 밖에 나가 힘든 일을 하시며 자신과 동생들을 먹여 살렸다.

어느 날 무섭게 생긴 사내 하나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 사내는 어머니에게 은자를 건넸다.

그 후로 자신은 무섭게 생긴 사내에게 끌려갔다.

밖이 보이지 않는 수레에 타고 있었기에 어디로 향하는지도 몰랐다.

수레가 멈춘 곳은 사방이 바위 절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었다.

그 마을 안에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자신이 마을에 도착하고 난후에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마을로 들어왔다.

마을에는 또 다른 사내들과 여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권각술과 숨 쉬는 법, 빨리 움직이는 법. 글을 가르쳤다.

매일 매일이 힘든 나날이었지만 먹을 것이 풍족해 아주 좋았다.

마을에 들어온 지 이 년이 지났을 때, 우리들은 각자 사용할 병기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병기에 맞는 무공 비급이 지급되었고 가르침을 받았다.

일 년이 지나고 우리를 가르치던 사내와 여인들은 더 이상 우리들을 가르치지 않고 감시만 했다.

그렇게 이 년이 흐르자 지급받던 식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감시자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너희들의 무공으로 식량을 빼앗아 먹어라.’

그때부터 나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다른 자들을 죽여야 했다.

수백 명에 달하던 동료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무공만큼은 비약적으로 강해졌다.

감시자들은 마을에서 가장 강한 자를 동주(洞主)라 불렀다.

동주는 오히려 감시자들보다 무공이 강했다.

나는 마을에서 가장 강한 자는 아니지만,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가 되었다.

 

빛과 같은 속도로 신형을 날리는 주동의 머리 위로 비강이 떨어져 내렸다.

주동은 몸을 비틀며 머리 위로 검을 쳐올렸다.

순간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던 비강의 신형도 검을 피해 순식간에 좌측으로 이동했다.

빡!

콰당! 쾅!

공중에서 방향을 바꾼 비강은 주동의 머리를 발로 후려차고 땅바닥에 내려섰다.

주동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히며 뽀얀 먼지를 일으켰다.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는 주동은 벌떡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검을 휘둘렀다.

스악!

주동은 눈앞으로 다가오는 비강의 신형을 정확하게 갈랐다고 생각했으나, 또다시 머리에 강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퍽!

쿠당! 쿵!

주동은 또다시 땅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이자는 강하다.

감시자들의 무공도 대단했지만 두려움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자는 두려움까지 느낄 정도로 정말 강했다.

연달아 두 번이나 머리를 맞은 주동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앞이 어질어질하여 몸을 일으키기조차 힘들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붉은 핏물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비강은 잠시 멈칫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 사내는 참으로 잘생겼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은 하나밖에 없는 벗이었던 북궁도와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었다.

“말은 할 줄 아나?”

비강의 질문에 몸을 휘청거리던 주동은 또다시 신형을 날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마음을 따라가지 못했다.

빠각! 철퍽!

달아나려던 방향으로 고꾸라진 주동은 곧 다리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하오문주를 죽였느냐? 너희들이냐?”

주동은 무심한 눈으로 비강을 응시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같은 곳에서 나왔구나.”

북궁도가 묻혀 있는 곳에서 만났던 자들도 이자와 흡사했다. 

막 주동의 목을 베어 버리려던 비강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검을 내렸다.

“이름도 없는 것인가?”

비강의 물음에 무심했던 주동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이에 비강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시천세가 이곳에 왔었느냐?”

살짝 흔들렸던 눈빛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비강은 공기를 타고 들어오는 미세한 기운을 등 뒤로 느꼈다.

스아, 아아,

한순간에 수십으로 불어난 검날이 비강의 목과 등을 수십 조각으로 갈라놓았다.

그리고 이내 조각낸 비강이 잔상임을 알아차린 사내는 어느새 가슴을 파고드는 검을 막아내기 위해 기막을 펼쳤다.

뿌연 기운이 방패처럼 사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쾅!

그러나 검을 막아 낸 사내는 충격을 이겨 내지는 못했는지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사내, 황옥이 밀려나자마자 우화봉이 비강을 치고 들어왔다.

콰쾅!

비강의 검과 맞부딪친 우화봉은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충격과 함께 튕겨나갔다.

황옥과 우화봉은 놀라마지 않았다.

혹시 이곳에 백리혈이 나타나도 함부로 맞서지 말라는 명령을 천주에게서 받았다.

그러나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을 앞에 두고 도망만 칠 수는 없었다.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인 것을 축하한다.”

황옥이 검을 겨누며 입을 열었다.

그의 곁에는 우화봉도 함께하고 있었다.

비강은 말없이 그들을 응시했다.

적으로 만난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의지가 굳센 자들이었다.

저들의 눈빛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시천세는 복도 많구나.”

“제기랄!”

비강의 입에서 시천세라는 이름이 흘러나오자 황옥과 우화봉은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비강을 죽여 백산과 동료들의 원수를 갚고 싶었다.

하지만 시천세의 명령 또한 지엄했다.

그들이 할 일은 다름이 아닌 비강을 발견하면 바로 서패에 연락을 취하고, 추격을 하거나 발을 묶어 두는 것이었다.

서패는 중천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 며칠만 묶어 둔다면 천주가 당도할 것이다.

“다음에…… 다음에 또 보자.”

황옥이 먼저 물러나자 우화봉도 뒤를 이었다.

비강은 아득하게 멀어져 가는 황옥과 우화봉을 응시하다가 신형을 돌려 다리가 부러진 사내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그 사내도 자리에서 사라지고 난 후였다.

 

주동은 다리가 부러진 채로 도망치고 있었으나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 또한 동료들에게 도움 같은 것은 바라지 않았다.

저들은 동료의 목숨보다 받은 명령을 더 우선시했고, 그건 주동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을 참아가며 도망치던 주동은 곧 체념을 하고서 검을 들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어느새 그의 눈앞에 비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만 물으마. 시천세는 어디에 있느냐?”

주동은 대답 대신 비강의 가슴을 향해 검을 날렸다.

그러나 멀쩡한 상태에서도 당해 내지 못한 비강의 무공이었다.

깡!

가슴을 파고들던 검신은 비강의 검에 부딪쳐 허공으로 날아갔다.

주동의 검을 튕겨 내고 목을 파고들던 비강의 검이 한 치 앞에서 멈췄다.

시리도록 투명한 비강의 눈과 주동의 회색빛의 눈동자가 마주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아무런 감정조차 드러내지 않는 주동은 무척이나 이상했다.

“말을 잊었느냐?”

“아……니다.”

주동의 입에서 어눌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천세는 어디에 있느냐?”

“모……른다.”

“이곳에 있기는 있었군.”

하오문주를 죽인 자는 시천세가 분명했다.

비강은 망설였다.

사내를 당장 죽이는 것이 나중을 위해 이로울 것이나, 어딘가 모르게 북궁도와 닮은 얼굴의 사내를 베어버리기에는 가슴이 애달았다.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결국 사내를 살려 주기로 결정한 비강은 곧장 몸을 돌렸다.

비강이 떠나가고 난후에도 사내, 주동은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어찌하여 저자는 자신을 죽이지 않았을까.

그때 흩어졌던 동료들과 황옥, 우화봉이 사내 옆으로 모여들었다.

“괜찮으냐?”

황옥의 물음에 주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동료들에게 짐이 될 것이니 이곳에 남아 치료를 하라. 치료가 끝나면 본산으로 복귀하도록 하고.”

황옥과 우화봉은 주동을 그곳에 남겨 두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분명 백리혈을 추격할 것이다.

홀로 남은 주동은 나무를 베어 다리를 묶을 부목을 만들었다.

무복을 찢어 다리를 다 묶고 난 다음 그는 비강이 사라졌던 방향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내 이름은…… 동…… 주동이었어.”

 

강을 건널 채비가 끝이 났다.

키가 크고 몸이 호리호리한 사내가 강 너머로 보이는 남선을 응시했다.

이제 이 밤이 지나 새벽이 되면 저 찬란했던 남선도 끝장이 날 것이다.

석장은 자신의 뒤에 도열해 있는 무인들을 돌아보았다.

동주와 오십여 명의 무인들.

이들이라면 남선을 함락시키고도 남았다.

“동주, 너에게 모든 일을 맡기겠다. 이미 남선 안에는 아군이 들어가 있으니 적아를 구별해야 할 것이다.”

동주는 이십오륙 세 정도 되는 젊은 사내로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었으며 외양이 자못 사내다웠다.

하지만 그의 눈은 무저갱을 대하듯 깊고 어두웠다.

“맡겨 주시오.”

천주를 제외한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는 것만으로도 그는 수치스러웠다.

저것들이 뭔데 감히 자신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강호 무림은 적자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터라 들었다.

언젠가 자신은 강호의 모든 강자들을 땅 위에 눕히고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다가오자 눈을 감고 있던 동주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신호로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고수들이 강 위에 묶여 있는 배 위로 일제히 올랐다.

어디서 잡혀 왔는지 모를 어부가 돛을 올리고 삿대를 잡았다.

배는 강을 가로질러 남선을 향해 다가갔다.

쏴아아…….

남선을 이십여 장 정도 남겨 놓았을 무렵 육지에서부터 화살들이 비처럼 날아올랐다.

따다다당……!

땅! 따다다당……!

비처럼 쏟아져 내린 화살들은 고수들의 병기에 튕겨나가기도 했고, 뱃전에 고슴도치처럼 박혀 들어가기도 했다.

화르르르…….

불화살에 의해 활짝 펼쳐졌던 돛들이 타올랐다.

“과연 남선의 방비는 대단하구나.”

석장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배 위에 타고 있었던 것이 여느 고수들이라면 뭍에 닿기도 전에 몰살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배 위에 있는 고수들은 흔하디흔한 여느 고수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포구를 십여 장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 배 위에 앉아 있던 고수들이 일제히 신형을 뽑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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