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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65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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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65화

제165화. 대혼란(4)

 

 

 

물을 건너 어두운 석조건물 안으로 들어선 시천세는 촛불을 켜고 앉아 있는 하오문주와 마주했다.

“천하제일인을 뵙습니다.”

하오문주 장익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시천세는 하오문주의 인사를 무시하며 탁자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를 기다린 것이냐?”

하오문주는 시천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아닙니다. 조금 전에 비로소 천주께서 당도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오문주는 시천세를 보거나 만난 적은 없었으나, 눈앞에 앉아 있는 자가 바로 그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오문의 본거지가 이렇게나 허술해서야 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느냐?”

“미천한 소인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방문한 것이겠지요.”

시천세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하오문주의 헤아림이 마음에 든 것이다.

“술을 내오너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천주께서 미천한 소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오시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준비시켰습니다.”

입가에 그려진 호선이 더욱 짙어졌다.

“하면 내가 원하는 것도 알고 있겠구나?”

시천세가 하오문주를 찾아온 이유는 오직 하나, 백리혈의 행방 때문이었다.

그는 비강이 하루나 이틀 안에 하오문주를 찾아갈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가자 그 확신이 조금씩 흔들렸다.

분명 비강이 하오문주를 찾아갈 것이긴 하나, 어쩌면 그것은 가까운 날이 아니라 조금 먼 훗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마도 백리혈의 행방이겠지요.”

하오문주의 대답에 시천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하오문의 여인 둘이 커다란 상을 들여왔다.

상 위에는 정갈하게 차린 요리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들은 시천세 앞에 놓여 있는 탁자 위에 요리들을 늘어놓았다.

시천세가 술잔을 내밀자 여인들에게서 술병을 건네받은 문주는 조심스럽게 술잔에 술을 채웠다. 

술잔을 비운 시천세가 말문을 열었다.

“너에게 살아날 기회를 주마. 백리혈은 어디에 있느냐?”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는 대답이 문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언제까지 알아낼 수 있느냐?”

“확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끌끌끌끌…… 크하하하하…….

우렁우렁한 웃음소리가 허름하고 어두운 석조 건물 안을 뒤흔들었다.

“그렇단 말이지?”

시천세는 다시 한번 물었다.

“죄송합니다, 천주.”

턱.

문주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그의 목은 시천세의 손아귀에 빨려 들어가듯 잡혀 버렸다.

그러나 문주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것 같았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주의 몸은 경련을 일으켰다.

문주를 인질로 잡아 연비강을 불러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벌인다면 강호인들의 비웃음을 살 것이다.

시천세는 쥐고 있던 문주의 목을 한쪽으로 던져 버렸다.

철퍼덕…….

늘어진 문주의 몸이 날아가 석벽에 처박혔다.

“황옥.”

“부르셨습니까? 주공.”

언제부터 와있었는지, 몸이 퉁퉁한 황옥이 시천세의 발아래 부복했다.

“석장과 동주(洞主)는 어디에 있느냐?”

“남선에서 주공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르는 자들은 살려놓고, 저항하는 자들은 전부 죽이라 전하라.”

“존명.”

“조표라는 놈은 어디에 있느냐?”

“여전히 호남의 장사 지부를 맡고 있습니다.” 

“그자를 불러들여 하오문을 이어 받으라 전하라.”

“존명.”

“또한 백리혈 연비강의 행방을 최우선으로 알아보라 이르라.”

“존명.”

막힘없이 명령을 하달한 시천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크아악!

아악!

어둡고 침침한 석조 건물을 나서는 그의 귓가로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시천세가 건너는 강물 위로 피를 흘리는 시신들이 떠내려갔다.

강을 건너 돌계단을 오르자 눈앞에 나이 든 창기들과 사내들의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어둡고 칙칙한 흑산도를 나선 시천세는 서패의 본산으로 신형을 날렸다.

시천세가 떠나가고 난후 흑산도는 조용한 정적 속에 빠져 들어갔다.

푸드득…….

그리고 흑산도가 자리 잡고 있는 형양의 어느 건물 안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비둘기가 날아가는 방향은 동쪽이었다.

 

서패와 비강에 관한 소문은 강호 무림 전체로 퍼져 나갔다.

사천에서 시작된 소문은 호남과 호북, 하북을 거쳐 북쪽과 동쪽으로는 산서와 요녕까지, 남쪽으로는 광동까지 이르렀다.

백리혈이 살아 있었다.

서패를 홀로 함락시킨 백리혈은 신후 당백요를 추격하고 있는 중이었다.

백리혈이 서패를 공격한 이유는 벗인 북궁도의 죽음에 대한 복수 때문이었다.

협객과 마왕.

어이없게도 그 둘은 세상에 둘도 없는 벗이었다고 한다.

협객의 죽음에 마왕이 분노해 무신이 주인으로 있는 서패의 본산으로 쳐들어가 무수히 많은 무인들을 죽이고 불까지 질렀다.

또한 서패의 주인이자 무신인 신후는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호사가들이나 강호 무림의 무인들은 각자의 추측을 쏟아 내며 그 일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무가나 무문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달랐다.

그들도 매일같이 회의를 열었다.

네 조각으로 나뉘었던 강호 무림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 대 혼란기에 접어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격변하는 무림의 대혼란 속에서 어떻게 가문과 무문을 보전할 것인가.

대혼란의 발단은 북림을 함락하고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른 시천세였으나, 지금 혼란을 가중시키는 자는 다름 아닌 마왕이라 불리는 연비강이었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소문이 무림을 강타했다.

그것은 바로 북궁도에 의해 신후 당백요의 왼팔이 잘렸다는 것이다.

무의 신으로 추앙받아 신후라는 별호로 불리던 당백요였다.

무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존재는 무신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강호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남협의 무공이 그 정도로 대단했던가?”

“도신 도운패의 제자라는 소문이 마냥 헛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팔이 잘린 신후는 행방불명이 된 것이 아니라 마왕에게 이미 죽었을지도……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

 

수레를 몰아가던 비강은 문득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험한 산길에도 북궁도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이 마을이 적당하겠구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레를 끌고 가 하오문주를 만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안심할 수 있는 장소에 수레를 맡겨 놓고, 흑산도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비강이 말을 몰아 들어가고 있는 곳은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인 아주 부유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지난날 이 마을에서 북궁도와 함께 도적들로 위장하고 있는 무림맹의 세력을 쓸어버렸었다.

말을 몰아 어둑어둑한 길을 들어선 비강은 어느 부유해 보이는 가문의 문 앞에 멈춰 섰다.

텅! 텅! 텅!

“누구요?”

삐……걱.

비강이 문을 두드리자 젊은 하인이 문을 열고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이 집 주인과 잘 아는 사이요. 지나가는 길에 잠시 인사나 하려고 들렀소.”

어둑한 탓인지 젊은 하인은 비강을 알아보지 못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주인어른께 누가 방문했다고 전해 드릴까요?”

“연모가 찾아왔다고 전해 주시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하인이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비강은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미처 하인이 돌아오기도 전에 대문이 활짝 열렸다.

“들어오세요.”

대문을 활짝 열어젖힌 사람은 바로 이 집의 여식인 송은반이었다.

그녀는 수레에 앉아 있는 비강을 향해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비강도 수레에서 내려 마주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나인 줄 아셨습니까?”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어서 들어오세요.”

은반의 재촉에 비강은 말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곧 가주 내외도 나와 비강을 맞이했다.

송 가주는 다시 가문을 찾아온 비강으로 인해 크게 놀랐다.

‘마왕이라 불리는 사람이 어찌하여 다시 내 가문에 찾아왔단 말이냐? 소문을 들으니 이번에 서패라는 큰 세력과 싸움을 벌여 수많은 무인들을 죽였다고 하던데.’

그는 마을 사람들과 가문을 괴롭히던 도적떼들을 처리해 준 것은 고마우나, 더 이상 저 강호인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기에는 자신과 가문에 베푼 은혜가 너무나 컸다.

“잠시 방안에서 여독을 풀고 계십시오. 식사와 차를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비강도 가주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호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 놓고 수레를 맡길 만한 곳이 없었다.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되고 말았군.’

궤짝을 방으로 옮긴 비강이 잠시 쉬려고 하는데 문밖에서 송은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십시오.”

허락을 받은 송은반이 방으로 들어와 비강과 마주 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리저리 떠돌며 지냈습니다.”

“그러셨군요.”

비강이 떠난 후 송은반은 강호의 소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강호의 일을 잘 아는 마을 사람을 따로 자주 불러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어느 날 백리혈이 동천의 주인에게 패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강호의 일에 관심을 끊었다.

“식사가 준비되었답니다.”

그때 밖에서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은반은 비강과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채 방을 나섰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상 위에는 요리들이 푸짐하게 놓여 있었다.

“저희들도 아직 저녁 식사 전이었습니다. 어서 앉으십시오.”

“고맙습니다.”

가주 내외와 송은반, 비강, 이렇게 네 사람이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실은 부탁할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비강의 말에 식사를 이어 가던 가주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강은 해야 할 말을 마쳤다. 

“제가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짧으면 삼일, 길면 열흘 안에 돌아올 것이니 그때까지 방안의 궤짝을 맡아주십시오. 그리고 되도록 제가 이곳에 왔었다는 말이 가문이나 마을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소문이 밖으로 퍼져 나간다면 가주님께서 여러 가지 불편한 일을 겪으실 것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한데 언제 떠나실 작정이신지요?”

“식사가 끝나고 바로 떠날 것입니다.”

가주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이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떠날 것이라는 말에 적잖이 안심이 된 모양이었다.

식사를 끝낸 비강은 방으로 돌아와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무복과 건포가 들어 있는 행낭을 챙긴 뒤 담을 넘으려는데 송은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조심 하세요, 연 대협.”

비강은 송은반의 걱정을 뒤로하고 담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후욱…….

하얀 연기가 손아귀 사이에서 피어올랐다.

부스스…….

손을 펴자 재가 되어 버린 검은 가루가 탁자 위로 흘러내렸다.

남궁악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전서에는 하오문이 의문의 인물들에게 끝장이 났다고만 적혀 있었다.

의문의 인물들은 분명 사형의 수하들일 것이다.

서쪽으로 들어간 두궁천에게서 연락은 도착하지 않았으나, 이미 당백요에 대해서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면 당백요가 심상치 않은 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다면 이미 당백요는 죽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누가 될 것인가?

이제 강호에 남은 무신은 사형과 자신밖에 없다.

강호는 자신의 짐작보다 훨씬 더 빠르게 격변하고 있었다.

‘사형은 지금 서패에 있을지도 몰라. 아니, 백리혈을 추격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분명한 것은 그가 중천을 비웠다는 것이다.

‘내가 사형을 이길 수 있을까?’

조금 더 긴 시간이 주어졌다면 자신했을 것이나 지금은 장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남아 있는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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