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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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63화
제163화. 대혼란(2)
남궁악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영파가 들어와 보고를 올렸다.
“방금 서패에서 또 다른 정보가 올라왔습니다. 신후께서 서은각의 고수들과 함께 북쪽으로 향하셨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신후께서는 왼팔을 잃으셨다는 미확인 정보까지 들어 있습니다.”
굳은 얼굴로 남궁악이 손을 내밀자 영파는 얼른 전서를 바쳐 올렸다.
전서를 확인한 남궁악의 얼굴은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한심한…….”
남궁악은 일의 전모를 소상히 꿰뚫었다.
당백요가 한 팔을 잃은 큰 부상을 당했다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도운패와의 싸움에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을 것이고, 북궁도와 남은각의 고수들과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기다가 악운이 겹쳐 한 팔까지 잃은 부상을 당했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이미 정상이 아닐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연비강이 쳐들어왔다면 잠시 몸을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잘못된 선택이었다.
백요는 서패를 끝까지 지켜야 했다.
비록 부상을 당해 몸과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고는 하지만 은각의 고수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연비강을 막아 냈을 것이다.
더군다나 눈이 뒤집혀 본거지까지 쳐들어온 연비강 그놈이 추격을 늦출 리 없었다.
그놈이라면 분명히 끝까지 당백요을 추격하고 있을 것이다.
남궁악은 비강의 무공이 무신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이지.’
남궁악은 당백요가 이동한 방향을 유추해 보았다.
서패의 무인들을 두고 도망을 치다시피 했으니, 낯이 두껍지 않은 그녀는 당분간 서패에 머물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쪽은 죽은 도운패의 세력이 있으니 그곳으로 갈 리도 없었다.
동쪽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백리혈이 살아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자신을 의심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오직 한군데밖에 없었다.
북쪽의 중천.
“두궁천에게 전해 서패에서 중천으로 이르는 길을 전부 살펴보라 하라.”
“존명.”
명령을 받아 든 영파가 황급히 밖으로 뛰듯 서둘러 나갔다.
방 안에 홀로 남은 남궁악은 얼굴을 펴지 못했다.
아직까지 당백요가 죽어서는 안 되었다.
그녀가 살아 있어야 사형을 견제하기 쉬워진다.
도운패는 황소고집이라 한 번 정한 것은 바꾸지 않을 것이고, 자신과 같은 편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당백요는 달랐다.
그녀라면 적당한 시기에 사형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다.
만약 당백요가 죽었다면 사형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바보 같은 놈.”
남궁악은 연비강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놈은 사형과 싸우다가 죽어야 하지만, 왠지 다음에 만난다면 자신이 먼저 손을 쓸 것 같았다.
* * *
서패의 혼란은 무림맹에도 전해졌다.
정보를 전해 받은 제갈곤은 머리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자신의 확신과는 다르게 북궁도와 남은각의 고수들은 서패에 쳐들어갔다.
그들의 죽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백리혈이 살아 있어 복수를 위해 북궁도와 똑같은 짓을 벌였다고 한다.
제갈곤은 바로 지시를 내리고는 맹주와 부맹주를 찾아갔다.
연무장에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던 그들은 황급히 뛰어오는 제갈곤을 발견하고는 손을 멈췄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군사.”
“큰일이 일어났소이다. 맹주.”
어떠한 일에도 큰일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는 군사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군사의 입에서 큰일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만들었단 말인가.
맹주 오진권과 부맹주 남궁휘는 땀을 닦아 내며 연무장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말씀하십시오, 군사.”
“백리혈이 살아 있었소이다.”
오진권과 남궁휘의 눈동자가 놀라 커졌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동시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놀라운 소식이로군요.”
“더 놀랄 만한 일이 있소. 백리혈이 북궁도와 똑같은 짓을 벌였다고 하오.”
“그럼…… 서패에 쳐들어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이다.”
하하…… 하하하…….
오진권과 남궁휘의 입에서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진즉에 미친놈인 줄 알고 있었건만…….”
“그런데 상황이 두 분의 짐작과는 다르오. 서패 무인들이 수백이나 죽었고, 당백요의 전각은 불에 탔으며, 당백요는 행방이 묘연하다는 정보가 올라왔소이다.”
“뭐요? 전각이 불에 탔단 말이오?”
오진권은 당백요의 행방보다 전각이 불에 탔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곳은 예전 전진파의 문주께서 기거하시던 곳으로, 전진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곳이 불에 탔으니 전진의 제자인 오진권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그는 황급하게 말을 돌렸다.
“당백요의 행방이 묘연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방금 전에 서패로 사람을 보내 확실한 것을 알아보라 했으니,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이외다.”
“하오문을 찾아가 보셨습니까?”
“이 소식도 하오문에서 나온 것이외다. 더 이상 자세한 것들이 올라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들도 여기까지밖에 모르는 것 같소.”
“서패에 누구를 보내셨습니까?”
“사람을 보내 특별히 개방의 백안걸개에게 부탁을 했소이다. 그분이라면 세세한 것까지 전부 알아내 돌아올 것이외다.”
“잘하셨습니다.”
위중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해 백안걸개에게 부탁을 한 것을 보면 확실히 제갈곤은 뛰어난 군사였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요. 서패의 무인들이 죽고 불에 탔는데도 불구하고 당백요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서쪽의 인심을 크게 잃을 것이외다.”
“그럼, 우리가 그곳을 차지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씀이시로군요.”
“무리외다. 아직까지 당백요가 살아 있고 시천세가 있으니, 우리 무림맹이 함부로 나서는 일을 없어야 하오.”
오진권도 식견이 낮지 않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쥐 죽은 듯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만 하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타타탁…….
오진권과 남궁휘는 급하게 뛰어오고 있는 발소리가 들리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큰일이 또 터졌는지 모르지만, 마안자 국원이 창백한 얼굴로 뛰어오고 있었다.
“맹주와 부맹주를 뵙습니다. 군사, 하오문에서 사람을 보내 서신을 전해 주고 돌아갔습니다.”
“수고했소.”
제갈곤은 급하게 서신을 받아 펼쳤다.
맹주와 부맹주가 앞에 앉아 있는데 군사가 먼저 서신을 펼쳐 읽다니.
오진권은 그런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허어…….
서신을 다 읽은 군사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남궁휘가 궁금해하자 제갈곤은 두 손으로 서신을 바쳐 올렸다.
“보시오.”
오진권과 남궁휘의 시선은 펼쳐진 서신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은 풍랑이라도 만난 듯 크게 흔들렸다.
“천하의 신후가 한 팔을 잃은 상태였다니…….”
“아직 확인하지 못한 정보라고 했소이다. 이번에 백안걸개께서 서쪽에 가시면 그것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갈곤은 서신의 내용을 믿고 있었다.
그것만이 서패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진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당백요는 부상으로 인해 잠시 서패를 비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 아직까지 의문이 남아 있소이다. 서패에는 서은각이 있소. 그들이라면 연비강을 막아 낼 수 있었을 것이오.”
그때까지 별말이 없던 남궁휘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백리혈이 무신에 견줄 만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남궁휘의 말에 제갈곤이 웃었고 오진권도 미소를 보였다.
“설마 그자가 천마의 제자라도 된단 말이오? 천마가 숨겨 놓은 제자라고 한다면 의심을 해 볼 만도 하겠지만, 제자들은 시천세를 비롯해 사천존밖에 없지 않소이까.”
제갈곤은 자신이 대꾸를 하고도 그 말이 우스웠는지 한참이나 더 웃었다.
웃음을 그친 제갈곤의 안색은 자못 진중해졌다.
“천하를 호령하던 당백요가 백리혈이 무서워 도망을 쳤을 리는 없겠으나, 만약 부상이 심각한 상태라면 서은각의 고수들이 먼저 피신을 시켰을 수도 있소이다. 만약 그들이 피신을 했다면 동서남북 네 방향 중에 동쪽과 남쪽은 제외해야 하오.”
“남궁악이 백리혈을 살려 보내고도 숨겼으니 그를 의심해 동쪽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고, 남쪽은 원수가 된 사이니 당연히 그곳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로군요.”
오진권은 제꺽 제갈곤의 말을 알아들었다.
“과연 맹주의 식견은 군사인 나를 놀라게 할 만하오. 정확하게 보셨소이다. 지금 당백요가 향할 곳은 두 곳밖에 없소. 하나는 서쪽 깊숙이 숨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북쪽으로 향하는 것이오. 따로 사람을 보내 백안걸개께 이 사실까지 전하겠소이다.”
제갈곤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남궁휘가 급한 말로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당백요의 죽음에도 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사.”
다시 제갈곤과 오진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무리 부상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당백요는 무신이외다. 거기다가 서은각의 고수들까지 함께하고 있을 것이니 백리혈이 그 계집을 죽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오. 하나 만약에 천운이 따라 당백요가 죽었다면 강호는 대혼란을 겪을 것이오.”
“도운패가 죽었을 때도 그리 큰 혼란은 없었습니다, 군사.”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입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이외다. 지금 남선은 대혼란을 겪고 있을 것이오. 당백요가 죽고 나면 강호에는 두 명의 무신밖에 남아 있지 않소. 그다음 차례가 남궁악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그자가 가만히 앉아 찾아오는 죽음을 기다리겠소이까?”
* * *
젊은 의원은 비강이 침상에 누운 후로 집밖을 나가지 못했다.
때가 되면 식사를 준비해야 했고 수시로 상처를 살펴 헝겊을 갈아 줘야 했다.
젊은 의원은 병을 치료하는 의원이 아니라 거의 몸종 같았다.
‘미치겠네. 촌것들에게 사기를 쳐 은자나 벌어 보려고 했더니만.’
어리석은 자들은 작은 병도 깊은 병이라고 하면 은자를 가져다 바치기 마련이었다.
큰 마을에는 의원이 여러 곳이 있어 거짓말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작은 마을은 의원이 없거나 대부분 한 곳밖에 없었다.
젊은 의원이 이 촌구석까지 들어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동안 소소하게 은자를 챙기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살벌한 강호인이 찾아왔다.
전에도 강호인들이 찾아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작은 부상을 치료하거나 금창약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젊은 강호인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특히 태연하게 스스로 살을 꿰매는 그 모습은 두려움을 넘어 살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살을 잘 꿰매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살이 찢어져 새로 바늘을 꽂아야 했다.
그럼에도 젊은 강호인은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방 안에 은자를 전부 숨겨 놓았으니 도망칠 수도 없고.’
젊은 의원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밥은 멀었소?”
방 안에서 강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젊은 의원은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다 됐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런 빌어먹을.’
본능적으로 대답을 한 의원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밥상에 밥과 탕을 차려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강호인은 침상에 일어나 앉아 있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온 지 며칠이나 지났소?”
비강이 수저를 들며 물었다.
“오늘로서 사흘째입니다.”
“그럼 내일은 떠나야겠군. 말먹이나 잘 먹여 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젊은 의원은 환한 미소까지 지으며 대답했다.
이 인간이 이곳을 나간다니 어디 가서 기쁨의 환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소.”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의원이라면 응당 환자를 돌봐야 하는 것인데요.”
“그럼 다음에 일이 생기면 또 찾아오리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