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62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62화
제162화. 대혼란(1)
아아악! 크아악……!
거대한 주먹에 휩쓸린 마을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감히…… 이 미천한 것들이…….”
시신들 위에 마을 사람들의 찢어지고 터진 시신들이 더해졌다.
으으으…….
“살려…… 살려 주십시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시천세는 운이 좋아 간신히 목숨을 구한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꽈직, 꽈직.
바닥에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는 마을 사람들의 머리를 지르밟으며 걸어간 그의 눈에 당백요의 모습이 들어왔다.
팔 하나가 없는 당백요의 시신.
“사, 살려, 제발.”
시천세는 홀로 살아남은 젊은 사내의 목줄을 한 손으로 잡아 일으켰다.
커억, 컥…… 컥!
사내는 곧 숨이라도 넘어갈 것처럼 괴로워했다.
“저 시신의 팔 하나는 어디에 있느냐?”
사내의 눈동자가 하얗게 까뒤집어졌다.
풀썩.
시천세가 손의 힘을 풀자 사내는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커억, 컥!
여전히 괴로운 신음을 발하던 사내는 본능적인 생존 본능을 발휘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원래부터…… 원래부터 저 시신의 왼팔은 없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너희들이 잘라 간 것이 아니더냐?”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산속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 고기를 먹거나 팔지는 않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사내의 대답을 들은 시천세는 바닥에 누워 있는 당백요에게 다가갔다.
핏물로 젖어 버린 헐렁한 소매를 젖혀 확인한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녀의 병기를 수습했다.
헝겊으로 꽁꽁 동여맨 부위로 볼 때 이곳에서 당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자였느냐?”
“저, 젊은 사내였습니다. 두 자루의 검을 차고 있었는데, 한 자루는 땅에 내려놓고 싸웠습니다.”
역시, 자신의 짐작대로 백요를 죽인 자는 연비강이 확실했다.
또한 두 자루의 검이 아니라, 둘 중 하나는 도였을 것이다.
“그자는 새벽 일찍 찾아와 잠을 자고 아침밥까지 얻어먹었습니다.”
‘영악한 놈. 자신은 편히 쉬면서 몸과 마음까지 지친 백요를 기다렸구나.’
시천세는 일의 전모를 정확하게 추측했다.
당백요는 몸이 온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북궁도를 포함한 고수들과 혈투를 치렀다.
왼팔은 아마도 그때 잘려 나갔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뒤이어 들이닥친 연비강까지 막아 내기에는 힘에 부쳤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백요와 은각의 고수들을 홀로 전멸시킨 연비강은 이미 무신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 분명했다.
“그놈은 어디로 갔느냐?”
“그것은…… 소인도 모르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이 마을에서 큰길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눈이 밝은 고수들이 아니라면 연비강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천세는 비강이 움직인 방향을 짐작했다.
북쪽으로 갔다면 자신과 만났어야 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남쪽으로 이동했다는 뜻이었다.
“살아 도망친 자는 없느냐?”
“싸움 중에…… 젊은 무인분들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젊은 무인들이라면 백요와 저들의 제자들이 분명했다.
“다시 묻어라.”
시천세의 명령에 사내는 파 냈던 시신들을 다시 땅속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와 확인할 것이다.”
시신을 묻고 있는 사내에게 경고한 시천세는 남쪽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연비강이 사라진 방향만 제대로 짚어 낸다면 따라잡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시진 넘게 경공으로 달렸지만, 연비강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독하게 운이 좋은 놈이야.”
분명히 연비강 그놈은 호남의 흑산도로 이동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짐작이 틀린 것 같았다.
아니면 길이 엇갈렸거나.
* * *
목장에서 좋은 말 두 마리와 수레를 구한 비강은 수레에 궤짝 두 개를 실었다.
저 궤짝은 젊은 제자들이 놓고 간 것이었다.
이 보물들은 십만대산의 든든한 재산이 될 것이다.
수레를 끌고 큰길로 나온 비강은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흑산도로 가 하오문주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흑산도에도 서패와 마찬가지로 중천의 고수들이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부상을 치료하고 충분히 몸을 추스른 다음에 그곳으로 가야 했다.
* * *
수레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가던 비강은 어둠이 찾아들 때쯤 작은 마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의원이 어느 집이오?”
“저기, 저 집이오.”
바삐 걸어가는 사내를 잡아 길을 물은 비강은 사내가 가리키는 집으로 수레를 몰았다.
마을에서도 제법 번듯한 기와집에 도착한 비강은 검과 도를 수레에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곧 문이 열리며 염소수염의 젊은 사내가 안에서 빠끔 고개를 내밀었다.
“뉘시오? 어디서 오셨소?”
“지나가던 강호인이오. 강호에서 부상을 당해 치료를 할까 해서 찾아왔소.”
붉은 검상이 있는 비강의 얼굴을 살핀 사내는 치료비부터 입에 올렸다.
“어떤 부상을 당했는지는 모르나 최소한 은자 닷 냥은 있어야겠소. 부상이 심하면 열 냥까지 내야 하오.”
“여기 있소.”
비강은 바로 전낭에서 은자를 꺼내 앞에 내놓았다.
“들어오시오. 말은 저기 마구간에 끌어다 넣고.”
의원이 시키는 대로 말을 마구간에 끌어다 넣은 비강은 열어 놓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를 어떻게 다치셨소?”
방 안에 앉아 있던 의원의 물음에 비강은 겉옷을 열어젖혔다.
목 어름을 시작으로 복부까지 거미줄 같은 붉은 검상이 가득했고, 피까지 흐르고 있어 마치 피로 목욕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특히 옆구리의 상처는 살이 깊게 갈라진 상태였다.
컥!
젊은 의원은 놀라 마지않았다.
아무리 강호인 중에 괴인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태연히 돌아다닌단 말인가.
“어, 어서 이쪽으로 누우십시오.”
갑자기 말투가 공손해진 의원은 한쪽에 놓여 있는 침상을 가리켰다.
비강이 침상에 가 눕자 젊은 의원은 몸까지 떨며 주춤주춤 다가왔다.
사실 그가 이 마을에 의원을 연 것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다.
약초를 제법 잘 아는 탓에 다른 큰 마을의 의원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며 지내다가 욕심이 생겨 아는 사람이 없는 작은 마을로 들어와 의원을 연 것이다.
의원이 몸을 떨며 두려워하자 누워 있던 비강이 넌지시 물었다.
“혹시 이곳에 금창약 같은 것은 없소?”
“있기는 있습니다만…….”
“그럼, 바늘과 실을 내오시오. 내가 직접 꿰매겠소.”
“예?”
의원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서 내오시오.”
“아…… 예.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너무 당황한 의원은 방 안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을 다 열어 바늘과 실을 찾았다.
침상에 누워 있는 비강은 그런 의원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 * *
성도와 사흘 거리까지 숨어 들어온 남선의 적룡조는 뜻밖의 소문을 전해 들었다.
“내 얘기 좀 들어 보게. 방금 전에 전해 들은 얘기인데, 서패가 박살이 났다는구먼.”
지체 높은 세가의 문인들과 호위 무사들로 위장해 객잔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적룡조의 귀가 번쩍 뜨였다.
놀라기는 적룡조뿐만이 아니었다.
객잔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손님들이 전부 놀라 이야기를 꺼낸 장사치를 쳐다보았다.
이에 우쭐해진 장사치는 다른 장사치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서패의 무인들 수백 명이 죽고 다쳤으며 신후까지 행방불명이 됐다고 하더라고. 범인은 오직 한 사람이었는데, 자네들은 내 말에 놀라지 말게. 바로 범인이 누구냐면…… 백리혈이라는 거야. 백리혈. 그 백리혈이…….”
“이보쇼!”
이야기를 이어 나가던 장사치는 다른 손님이 소리를 치며 말을 끊자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러는 거요?”
“당신, 허풍이 너무 심한 것 아니오? 서패 고수들 수백 명이 죽었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후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그 범인이 이미 죽은 백리혈이라니…… 도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가 퍼뜨리고 다니는 거요?”
손님의 핀잔에 우쭐해서 이야기를 풀어놓던 장사치도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전해 들은 이야기라…….”
“행여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서패의 무인들이 들었다가는 경을 칠 거요.”
나무람 섞인 사내의 말에 객잔 안은 조용해졌다.
그때, 문이 열리며 젊은 무인들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객잔의 묘한 침묵에 멈칫하다가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러고는 곧 술을 주문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그렇대도 그러네. 내 육촌이 서패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육촌이 이번에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백리혈에게 죽은 자만해도 삼백 명을 넘겼고 부상당한 자들은 훨씬 더 많다는 거야. 거기다가 신후께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직도 모른다네. 신후께서 기거하시던 전각이 불에 타 완전히 전소가 되었다는 것을 보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네.”
“아무리 백리혈이 마왕이라 하지만, 너무 무모했던 게 아닙니까? 나중에 후한을 어찌 감당하려고…….”
“후한까지 생각했다면 그런 짓을 저질렀겠는가. 그자는 남선의 북궁도와 친분이 깊었다고 했으니 분명 복수를 위해 그런 것이겠지.”
작은 목소리로 나눈 대화였지만 객잔 안의 사람들 대부분은 그쪽으로 귀를 열어 놓고 있었다.
장사치가 하는 이야기는 믿을 것이 못 되었지만 저들은 강호인이자 무인이었다.
객잔 안은 더욱 조용해졌고 식사를 하던 이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함이었다.
객잔을 나서는 이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적룡조도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 * *
그들은 사람들이 없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이제 어쩌면 좋지?”
의논이라고는 하지만 조원들 모두 막막해하고 있었다.
복수를 하려고 서패를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대상은 이미 박살이 나고 행방불명이 되어 버렸다.
“신후가 어디에 갔을까?”
“죽었을지도 몰라.”
“그게 말이 돼?”
부조장 지선방은 조용한 목소리로 지난날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에 북림이 함락되고 신창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어.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지. 우리 남선의 도신께서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도 믿지 않았어. 그때도 사실이었어. 이번에는 서패가 환란에 휩싸였고 신후는 행방이 묘연해. 신후의 거처가 불에 탔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그곳에 없거나 죽었다는 뜻이겠지.”
“…….”
“상대는 조장의 가장 친한 벗이자 백리혈이라 불리는 연비강이었어. 죽었다는 연비강이 조장의 장담대로 정말 살아 있었지. 그리고 그 연비강은 조장의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고. 둘 중에 하나가 죽지 않는 이상 이번 혈난은 끝나지 않을 거야.”
“그럼, 부조장은 연 대협이 복수를 위해 끝까지 신후를 찾을 거란 말이야?”
“그래. 그 사람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거야. 춘일, 너의 생각은 어때?”
생각이 깊은 춘일도 지선방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내 생각도 같아. 내가 보고 느낀 연 대협이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야.”
“그렇다면 답은 정해졌군. 우리는 지금부터 연 대협을 찾아 나선다. 그곳에 신후가 있을 테니까.”
의논을 끝낸 적룡조는 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을 빠져나온 그들은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몰랐다.
“연 대협을 찾아가려면 하오문도들부터 찾아봐야겠어.”
* * *
서패에서 일어난 대사건은 의도치 않게 남궁악의 심기를 건드려 놓았다.
그는 연비강이 힘을 길러 중천을 괴롭혀 주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갑자기 서패에서 터진 사건은 곤혹스럽기까지 했다.
“바보 같은 놈. 복수를 하려면 참고 기다리는 법도 알아야지.”
남궁악은 아직 당백요의 죽음을 전해 듣지 못했다.
당백요의 거처가 전소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아는 그녀는 쉽사리 죽을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를 죽일 수 있는 자는 같은 무신들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