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6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61화
제161화. 무신으로 죽다
고요한 눈과 고요한 눈이 서로를 응시했다.
두 사람의 눈은 무척 닮아 있었다.
‘집이 그립구나.’
당백요는 자신의 집을 떠나온 것을 후회했다.
자신이 죽든 백리혈을 죽이든 그곳에서 결판을 냈어야 했다.
꿋꿋하게 서패를 지키며 사부의 뒤를 이어야 했다.
“내가…… 서패의 주인이다.”
그녀의 그 말에 고수들은 가슴을 폈다.
이제야 주인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적들과의 싸움에서 후퇴를 몰랐던 용맹한 무신의 모습이다.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쐐애액―!
당백요가 말을 끝내자마자 그녀의 허리에 꽂혀 있던 검신이 비강을 향해 날았다.
그리고 그녀는 똑같은 모양의 검을 뽑아 들었다.
콰쾅!
쏘아진 검은 하늘로 튕겨 날아가고, 비강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백요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쾅!
비강과 당백요의 신형이 스쳐 지나가고 검과 검이 부딪쳤다.
크음.
울렁거리는 속을 다잡으며 신형을 되돌린 당백요의 시선 속으로 비강을 향해 쇄도하는 수하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천멸후!”
콰콰콰콰…… 쾅!
사납게 울부짖는 용들의 아가리와 맞서는 그들의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커억! 끄으으으!
찢어지고 갈라지는 수하들은 죽음까지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병기를 쥐고 있는 팔이 떨어져 날아가고 몸은 갈라져도 그들의 눈만은 생생하게 빛을 발했다.
당백요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저들은 항상 저러했다.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잠시나마 의심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무신이 다 무엇이더냐?
사부의 후계자가 다 무엇이더냐?
저들과 함께한 지난날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바닥에 꽂혀 있던 검은 또다시 비강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검신은 분신을 만들어 비강과 맞서고 있는 수하들을 피해 날아올랐다.
한 자루의 검이 하늘 위로 치솟고, 당백요는 비강의 허리를 파고들었다.
스각―!
반월형의 휘황한 기운은 고수들의 가슴과 팔을 자르며 그대로 하늘 위로 치솟았다.
콰쾅!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검을 쳐 낸 비강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또 다른 검을 후려쳤다.
쿠웅!
공간이 파열을 하며 빛을 뿌렸다.
당백요의 검과 맞섰던 비강의 신형은 하늘로 튕겨져 훨훨 날았다.
크흡.
튕겨 날아간 비강을 쫓으려던 당백요는 목까지 차오르는 핏덩이를 눌러 삼키며 날아올랐다.
그 잠시 잠깐 사이에 공중에서 비강의 신형이 뒤집혔다.
“피해!”
컥!
하늘로 날아오르던 당백요는 기어이 피를 토해 내고, 그녀의 머리 위로 휘황한 빛줄기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나하나마다 강력한 기운들은 얼마 전 당백요가 남은각의 고수들에게 사용했던 그것에 비견될 정도였다.
콰콰콰…… 콰쾅!
비처럼 쏟아져 내린 빛줄기들은 고수들의 머리와 몸을 가르고 땅을 뒤집었다.
끄으으으…….
머리가 터져 나간 고수들은 바닥에 널브러졌지만, 몸이 찢어지고 어깨가 갈라진 고수들은 당당하게 버텨 섰다.
그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내가 시간을 벌어 줄 터이니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도망쳐라. 어서.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린 휘황한 기운들을 쳐 낸 당백요는 여문탁에게 전음을 보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언젠가 자신의 제자가 또 다른 무신이 되기를 바란다.
언제가 자신의 제자가 또다시 서패의 주인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아니, 강호의 주인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싸움에 끼어들지 못한 여문탁이 망설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당백요의 검이 비강을 압사시키듯 거대한 빛 무리로 화했다.
천수벽하(天手闢哧).
강호무림에서 그 어느 누구도 받아 내지 못한 무공이었다.
이 무공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오직 사형과 세 명의 벗뿐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몸이 온전하지 못해 완전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태에서 무공을 펼친다면 뒤가 없었다.
내공을 몸이 받쳐 주지 못해 파탄에 이를 것이다.
비강은 하늘을 뒤덮으며 내려오는 빛 무리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쩌저적……!
거대한 빛 무리를 이룬 검과 창날 같은 빛으로 화한 검이 부딪쳤다.
순식간에 대기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빨려 들었다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콰콰…… 쾅!
터져 나간 기운의 파편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는 고수들의 몸을 뚫고 그 뒤에 서 있는 제자의 몸까지 뚫어 버렸다.
끄아아아악!
젊은 제자의 비명 소리에 얼른 정신을 차린 여문탁은 황급히 전음을 보냈다.
-어서 나를 따라와!
여문탁이 먼저 신형을 돌리자 경악과 두려움으로 지켜보고 있던 제자들도 주춤주춤 전장을 떠나갔다.
제자들이 떠나는 가운데 당백요와 고수들은 끊임없이 비강에게 달려들었다.
비강의 온몸은 방금 당백요의 무공으로 인해 걸레 쪼가리처럼 갈라진 상태였다.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피를 흘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거기다가 어화가 날려 보낸 기운이 허리를 깊게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콰쾅!
당백요의 검을 쳐 낸 비강은 발바닥으로 땅을 밀었다.
비강의 신형이 뒤로 밀리며 뒤에서 달려드는 고수들을 지나쳐 갔다.
투툭.
두 고수의 뒷목이 갈라지더니 천천히 땅바닥에 굴러떨어졌다.
다리 잘린 또 다른 고수의 가슴을 갈라 버린 비강의 눈앞에 당백요가 들이닥쳤다.
그녀의 한쪽 눈은 길게 베여 피가 흐르고 있었고, 입 주변 또한 토해 낸 피로 붉었다.
까깡! 깡……!
비강의 목을 베던 당백요의 검이 튕겨 나갔고, 당백요의 허리를 파고들던 비강의 검이 막혔다.
끄으으…….
그러나 당백요의 신형은 점점 더 뒤로 밀리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몸과 내공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아직도 움직이게 하는 이유는 제자의 목숨이었다.
이제 살아 있는 고수들은 일곱 명밖에 되지 않았다.
아니, 방금 또 하나가 쓰러졌으니 여섯밖에 남지 않았다.
비강은 허리를 파고드는 검을 비껴 내 막으며 신형을 반 바퀴 돌렸다.
스걱―!
적의 뒷목을 쳐 낸 비강의 신형이 분열했다.
잔상을 베어 낸 당백요의 신형도 분열했으나, 그녀의 허리는 길게 갈라져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뒤를 잡은 비강이 검으로 베어 낸 것이다.
당백요의 신형을 따라잡는 비강의 목을 어화의 검이 파고들었다.
어화의 검은 비강의 목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콰쾅!
하나, 어느새 비스듬히 목을 베어 오는 비강의 검을 쳐 낸 어화의 신형이 뒤로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또 다른 고수의 가슴을 꿰뚫어 낸 비강의 신형이 사라졌다.
스악―!
그 자리를 당백요의 검이 파고들어 공간을 찢어 놓았다.
스악―!
또다시 당백요의 몸이 갈라졌다.
특히 이번에는 그녀의 팔이 깊게 베어져 검조차 휘두르지 못할 것 같았다.
당백요의 팔을 베어 낸 비강의 몸이 땅바닥에 낮게 깔렸다.
좌측에서 쇄도한 고수의 양다리를 베어 낸 비강은 오른쪽으로 치솟아 오르며 또 다른 고수의 목을 쳐 냈다.
고수의 목을 쳐 내자마자 어화가 하늘에서 거꾸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비강도 하늘로 검을 들어 올렸다.
후웅!
검에서 빠져나온 막강한 기운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어화를 집어삼켰다.
아아아악!
이미 온몸에 큰 부상을 당한 어화는 비강의 검을 막아 내지 못했다.
그녀의 입에서 고통에 겨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고, 걸레가 된 몸은 공중을 날아 다시 땅바닥에 처박혔다.
“어화야!”
따깡!
어화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던 당백요의 검이 비강의 검에 의해 튕겨 저 멀리 날아갔다.
스악―
당백요의 다리가 베어지고, 그녀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제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서 있는 고수들은 없었다.
몇 명은 아직 숨이 붙어 있어 신음 소리를 흘리고 있지만, 그들 또한 생이 끝날 것이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당백요는 당당한 눈으로 비강을 올려다보았다.
“결국 그 녀석의 말대로 너의 손에 죽게 되는구나. 어서 죽여라.”
비강은 말없이 그녀를 응시하다가 멀리 날아가 버린 검과 땅바닥 한쪽에 굴러다니고 있는 검을 주워 들었다.
쌍검은 당백요의 애병이었다.
비강은 무심한 눈으로 당백요의 양쪽 가슴에 검을 꽂아 넣었다.
끄으으으…….
“잔인…… 하구나…… 너 같은 놈이 나의 사제라니…….”
검에 꽂힌 채 땅바닥에 모로 쓰러진 당백요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비강을 노려보았다.
“패주…….”
어디선가 당백요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강이 그쪽을 보니 온몸이 걸레 쪼가리처럼 갈라진 한 중년 여인이 힘겹게 당백요를 향해 기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풀썩 고개를 떨어뜨렸다.
“다음에도…… 패주님을…… 모시…… 겠…….”
당백요도 그 여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지금까지 곁에서 정성을 다한 어화가 먼저 죽었다.
“나는 당신의 사제가 아니야.”
눈물을 흘리던 당백요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제이든 아니든 이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도 다음 생에 너희들을 또 만나고 싶구나. 그때는 내가 너희들을 평생 모시며 살았으면 좋겠구나.”
숨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그녀는 모든 미련을 버렸다.
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 하얀 세상이 나타났다.
그 세상에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의 가느다란 검은 선이었다.
그 선은 점점 더 길어지고 어두워졌다.
당백요는 저 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부의 무공.
죽음을 앞에 두고 무공의 깨달음이 그녀에게 다가온 것이다.
* * *
한편 비강은 죽어 가던 당백요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자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가슴 깊이 꽂혀 있던 검이 밀려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비강은 바로 자신의 검을 뽑아 그녀의 가슴 중앙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러자 점점 강해져 가던 빛은 힘을 잃었다.
그리고 당백요의 코에서 흘러나오던 기나긴 숨소리도 그쳤다.
그녀의 숨이 끊어지자, 그때까지 간간이 흘러나오던 고수들의 신음 소리도 멈췄다.
하아.
비강은 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후회 같은 감정은 없었다.
벗이 죽었으니 복수는 당연했다.
그러나 당백요를 위해 죽어 간 고수들을 보고 있노라니 애잔함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방 안에 숨어 마을 입구 앞쪽에서 벌어진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비강이 햇볕이 잘 드는 산자락으로 시신들을 끌어 옮겼다.
콰쾅! 쾅……!
검에서 빠져나온 용 한 마리는 땅을 헤집어 놓으며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구덩이를 만들었다.
비강은 시신들을 한꺼번에 큰 구덩이 속으로 집어넣었다.
* * *
연비강이 서쪽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은 시천세는 지체 없이 움직였다.
행낭을 꾸릴 겨를조차 없이 남서쪽으로 내달리던 그는 중경을 넘어서다가 문득 발을 멈췄다.
코끝을 스치는 피 냄새는 분명 얼마 전에 이 근방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시천세는 피 냄새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관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그는 마을이 눈앞에 보이는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저기 패인 웅덩이와 길게 이어진 깊은 고랑, 그리고 아직 마르지 않은 피는 주변의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내놔! 내 거야!”
“무슨 소리? 내가 먼저 발견했는데 왜 네놈 거가 되는 거냐?”
“어서 내놔!”
“그 여자 품속은 내가 뒤질 거니까 건드리지 마.”
“저 여편네가 별 지랄을 다 하네.”
시천세는 수십여 명의 사람이 시신을 두고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무덤이 파헤쳐 있고, 그 뒤의 커다란 무덤도 파헤쳐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시신이 품고 있던 전낭과 함께 묻혔던 병기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질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시천세의 눈에 두 자루의 검을 놓고 싸우는 동네 장정들의 모습이 빨려 들듯 들어왔다.
“백요…….”
저 쌍검의 주인을 시천세가 모를 리 없었다.
“네가…… 죽었구나, 네가 죽었어.”
시천세의 입에서 서글픔이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마 당백요가 연비강에게 패해 죽을 줄은 몰랐다.
도운패와의 혈전 탓에 몸이 정상일 리 없음은 충분히 짐작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무신이었다.
거기다가 뒤에 자리 잡고 있는 큰 봉분으로 볼 때 수하들까지 함께하고 있었지 않은가.
시천세는 시신을 두고 싸우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양손에 뿌연 기운이 일렁이고, 양손이 마을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들려 올라갔다.
양손을 휘감아 돌고 있던 기운은 순식간에 거대한 주먹으로 화했다.
시천세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죽어라, 이 벌레 같은 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