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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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60화
제160화. 다시 태어난다면(2)
어둠 속을 달리던 당백요가 갑자기 발을 멈췄다.
“왜 그러세요? 사부님.”
옆에서 달리던 여문탁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너는 저 소리를 듣지 못하였느냐?”
분명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이름을 부르는 외침이 들렸었다.
“예?”
“너는 아직 멀었구나.”
여문탁은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패주님, 저기…….”
“알고 있다.”
그들이 달리고 있는 앞쪽에 환한 불빛이 보였다.
아마도 길을 가던 행인들이 불을 피워 놓고 노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끼니조차 때우지 못하고 달려온 길이었다.
환한 불빛이 비치는 곳으로 달려가던 당백요는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소리보다 음식냄새가 더 신경을 자극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롭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배를 채울 여유가 없었다.
당백요는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숲을 지나쳐 달렸다.
마음 같아서는 속도를 더 내고 싶었으나 그렇게 한다면 수하들이 따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그렇게 세 시진이나 더 달렸다.
벌써 새벽이 찾아오고 있는지 동쪽 하늘에 어스름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잠시 쉬었다가 가지지요. 우리들은 괜찮으나 젊은 제자들이 걱정입니다.”
어화의 말에 당백요는 큰길을 벗어나 뾰족한 바위들이 늘어선 험한 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침 몸을 숨길 만한 적당한 곳을 찾았기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당백요와 고수들은 바위를 타고 넘어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 * *
“이곳에서는 불을 피워도 눈에 띄지 않을 것입니다.”
어화의 말대로 바위들로 둘러싸인 이곳은 잠시 몸을 숨기기에는 적당한 장소였다.
아니, 약간의 운만 따라 준다면 백리혈의 추격까지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마른 나뭇가지라도 구해 오겠습니다.”
“그럴 것 없다. 잠시 쉬며 건포로 배를 채우면 될 것이니.”
어화는 아무 말 없이 물러나 행낭에서 건포를 꺼냈다.
당백요를 따라 움직이던 은각의 고수들도 각기 행낭에서 건포를 꺼냈다.
“십 년이다. 십 년 후에 나는 너희들에게 강호를 선물할 것이다.”
당백요는 축 처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속마음을 약간이나마 내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의도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고수들은 조용히 건포만 씹을 뿐 당백요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이에 당백요는 불끈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차라리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패잔병들만 모여 있는 것 같은 이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막 화를 내려던 그녀는 문득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놈인가?’
아무리 백리혈의 무공이 두려움을 안겨 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섰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이목까지 숨길 정도는 아니었다.
당백요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녀는 기감을 퍼뜨려 인근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은 십 장, 이십 장, 삼십 장, 사십 장, 오십 장…… 점점 더 멀리 퍼져 나갔다.
‘내가 너무 예민했었나.’
근방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당백요는 적잖이 마음을 놓았다.
끄으음…….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갑자기 가슴을 움켜잡으며 괴로워했다.
건포로 배를 채우던 고수들이 그녀의 모습에 놀라 몰려들었다.
“괘……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
아무래도 몸 상태가 짐작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았다.
“패주, 아무리 악착같은 놈이라 해도 지금까지 우리를 추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하십시오.”
어화는 어떻게든 당백요를 진정시키려 했다.
지금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인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편히 쉴 곳을 찾는다면 주인은 점차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그렇구나…….”
당백요의 입에서 원망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너희들은 지금 나를 무시하고 있구나.”
“아닙니다. 절대로 그런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패주님을 옆에서 모실 것입니다.”
크게 당황한 어화였으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
그러나 당백요는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누군가를 피해 도망을 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가문을 증오해 도망쳤을 때였고 두 번째가 바로 지금, 연비강 때문이었다.
절대 다시는 도망치지 않으리라는 오래전의 다짐이 부질없어진 것이다.
“나를 믿지 못한다면 지금 당장 떠나도 좋다.”
결국 그녀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 튀어나왔다.
장내에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지금까지 그녀만을 좇았던 고수들은 고개를 외면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내뱉은 당백요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무리 마음이 상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쏟아 낸 말은 아무리 무신이라 해도 주워 담지 못한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했는지 어화는 평소보다 더욱 낮게 허리를 굽혔다.
“제가 불민하고 능력이 모자라 패주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아니다.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 그만 되었다.”
당백요도 이쯤에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은각의 고수들과는 달리 젊은 제자들은 지치고 피곤한 나머지 바위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사실 그들이 패주를 경외하고는 있었지만, 충성심은 절대적이지 않았다.
그들이 따르는 상대는 패주보다 사부들이었다.
“한 시진 동안 쉬도록 하라.”
당백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젊은 제자들은 바닥에 몸을 뉘었다.
명령을 내린 당백요도 바위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연비강이 정말 사부의 제자일까? 그렇다면 내게 그놈은 사제가 되는 것인가? 그놈은 내가 사저인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 사부도 말해 주지 않았을 것이고.’
사부는 원래 그런 분이라 사형과 네 사제들에 관해 말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한여름 밤의 이른 새벽을 풀벌레들이 가장 먼저 맞이하고 있었다.
당백요는 저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 * *
“백요, 오늘은 조금 늦었어.”
앳된 청년 도운패는 연무장으로 들어오는 당백요에게 가장 먼저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일어났냐?”
“어제 마신 술이 조금 과했던 모양이네.”
뒤를 이어 풍천양과 남궁악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아직 스무 살을 채우지 못한 당백요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사형 시천세를 바라보았다.
사형은 언제나 가장 먼저 일어났고, 가장 늦게 잠이 들었다.
“백요, 오늘은 나와 한판 진하게 어울려 볼까? 내가 철지부심해서 만들어 낸 무공이 있거든.”시천세에게 머물렀던 당백요의 시선은 도운패로 옮겨 갔다.
“운패가 많이 컸네.”
“아, 요즘 고기와 밥을 많이 먹고 있거든.”
당백요는 진한 미소를 만들어 내며 연무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덤벼.”
“이번 비무에 네가 패하면 뽀뽀 한 번 해 주는 거다.”
“뒈지고 싶어 환장했구나.”
더 이상 참지 못한 당백요는 도운패를 향해 쌍검을 날렸다.
도운패도 이에 맞서며 저녁노을과 같은 붉은 도광을 뿌려 댔다.
그렇게 두 사람이 비무를 하는 가운데 풍천양과 남궁악은 각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무공 연마에 몰두했다.
한참 동안 어울려 싸우던 당백요와 도운패는 거의 동시에 물러나 숨을 가다듬었다.
“오늘은 이쯤해 둘까?”
“뚱땡이가 겁은 많아 가지고…….”
하하하하…….
도운패의 입에서 흘러나온 맑은 웃음은 싱그러운 새벽 공기를 더욱 청명하게 만들었다.
“사부님께 올릴 조반을 준비해야 하니 먼저 일어나마.”
언제 눈을 떴는지 정좌를 하고 있던 시천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도 같이 가요, 사형.”
당백요가 거들고 나섰으나 시천세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사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애써 섭섭한 감정을 숨긴 당백요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도 저도 사형과 함께 준비할게요.”
“그러려무나.”
말없이 사형 시천세의 등을 응시하던 당백요는 세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사부님의 찬거리를 위해 사냥이나 한번 나갔다가 오는 게 어때?”
“좋지. 그럼 누가 더 많은 사냥감을 잡는지 내기 한번 할까?”
“좋아. 술 내기로 하자.”
세 사람의 호응에 당백요도 기뻐하며 내렸던 쌍검을 들어 올렸다.
“남궁악, 이번에는 네가 덤벼.”
“아이쿠! 나는 너와 얼굴만 마주해도 가슴이 벌렁거릴 지경이라 정중히 사양할게.”
“이 새끼가…….”
당백요가 성질을 내며 달려들자 남궁악은 화들짝 놀라 줄행랑을 놓았다.
하하하하……!
그런 그의 모습에 풍천양과 도운패는 크게 웃었다.
“에이, 능글맞은 새끼.”
* * *
“에이, 능글맞은 새끼.”
무심코 내뱉은 말에 놀란 당백요가 화들짝 깨어났다.
어둠은 그대로였고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도 여전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달콤한 꿈이었다.
그러나 당백요는 꿈속에서 마주했던 행복했던 지난날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고작 하루를 달렸다고 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다니…….’
그녀는 다시 한번 기감을 퍼뜨려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나가자, 바위 절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어화가 일어났다.
“한 시진이 지났습니다, 패주님.”
“출발하자.”
당백요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고수들은 제자들을 깨웠다.
바위 절벽들이 빼곡하게 치솟아 있는 곳에서 나온 당백요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지금까지 연비강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른 곳을 찾고 있거나 추격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첫 번째로 보이는 마을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하자꾸나.”
“예.”
어화도 연비강의 추격이 사라졌음을 알아차렸는지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여문탁과 어화가 양옆으로 서자 당백요는 북쪽을 향해 신형을 움직였다.
그 뒤를 고수와 제자들이 따라 신형을 날렸다.
채 반 시진을 달리지도 않았는데 멀리 피어오르는 연기들이 보였다.
아침밥을 하기 위해 집집마다 불을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당백요의 발이 빨라지고 그에 맞춰 고수들도 속도를 높였다.
초가집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당백요의 경공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그녀의 발은 완전하게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
“패주, 어찌하여 움직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오른편에 있는 어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당백요는 말없이 마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가볍게 떨렸고 입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이윽고 마을 입구에 있는 첫 번째 집이 눈앞으로 다가왔을 때 당백요를 제외한 고수들은 전부 놀랐다.
그들의 시선은 첫 번째 집 평상위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젊은 사내에게 집중되었다.
“백리혈…… 연비강.”
누군가의 입에서 비강의 별호와 이름이 흘러나왔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던 비강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새벽에는 잘 쉬었나?”
비강은 하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렇게 물었다.
역시, 연비강은 그곳에 있었다.
“어떻게 내가 이곳으로 향할 줄 알고 있었느냐?”
“이 길이 북쪽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니었나?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던데.”
비강의 시선은 잘려 없어진 당백요의 헐렁한 소매를 향했다.
순간 비어 버린 소매가 움찔 흔들렸다.
크크크…….
짓궂은 웃음을 보인 비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쩔렁.
평상 위에 은자 두 냥이 떨어졌다.
첫 번째 집에서 걸어 나온 비강은 고수들을 둘러보다가 당백요와 눈을 맞췄다.
“또 도망칠 건가?”
비강의 도발에 응당 화를 내야 할 당백요였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대신해 어화가 노여움을 드러냈다.
“백리혈,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이구나.”
노기를 드러내는 어화를 향해 투명하고 맑은 눈이 언뜻 머물렀다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