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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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58화
제158화. 벗을 위하여(3)
바위산 정상에 선 당백요는 계단을 따라 올라오고 있는 비강을 내려다보았다.
가히 만부부당의 용맹함이었다.
강호가 넓다는 말을 오늘에서야 느끼게 되었다.
과연 저만한 자를 누가 키워 냈단 말인가.
머릿속의 의문은 해답을 찾아 움직였다.
저만한 자를 키워 낼 만한 자가 사부 말고 강호에 누가 있을까?
‘사부였던 건가?’
당백요는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그녀의 허리에는 두 자루의 검이 걸려 있었다.
쉬아악!
휘황한 기운이 절벽 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순간 절벽 아래에 있던 비강의 눈과 당백요의 눈이 마주쳤다.
비강은 새하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콰쾅!
아무리 몸과 내공이 온전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저 연비강은 자신의 공격을 쳐 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위쪽에 있는 서패의 무인들까지 베며 올라오고 있었다.
‘사부였어.’
당백요는 연비강을 키워 낸 자가 사부라 확신했다.
“이제 물러나셔야 합니다.”
어화의 재촉이 있었지만 당백요는 쉽게 걸음을 떼어 내지 못했다.
자신이 이곳을 버린다면 이곳에 남아 끝까지 싸운 서패의 무인들이 또다시 받아들이기는 할까?
힘들 것이다.
당백요의 가슴속은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다.
지금이라도 은각의 고수들과 함께 저 연비강을 치고 싶었다.
아니, 몸만 온전하다면 홀로 연비강을 쳐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없었다.
힘을 잃은 서패를 복구하는 데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복구도 완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사형이나 남궁악이 기다려 줄까?
어림도 없었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사부의 후계자도 될 수 있었다.
그녀는 문득 북궁도가 죽어 가며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어차피 당신도 죽어,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럽게.’
북궁도는 아마도 저 연비강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남겼을 것이다.
남선의 남협은 죽었어도 끝까지 자신의 발목을 문 채 놓아 주지 않고 있었다.
당백요는 절벽 끝에서 발을 떼어 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자신의 전각이었다.
* * *
종예는 먼 곳에서 서패를 지켜보고 있었다.
먼 곳에서도 서패의 본거지가 어렴풋이 보이고 상황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녀는 서패의 주인 당백요와 연비강이 부딪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비강이 당백요의 손에 죽는다면 더 이상 손을 쓸 필요도 없었고 당백요가 쓰러진다면 그때 연비강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천하의 무신과 싸워 몸을 온전하게 보존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주공 시천세가 이곳에 도착하려면 아직 이틀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주공이 도착하기 전에 기회가 온다면 기필코 놈을 죽인다.
‘그나저나 대단한 자야. 어찌 홀로 서패를 감당할 생각을 다 했을까.’
예전부터 백리혈은 무모하고 저돌적이라는 소문은 여러 번 들었고, 직접 보기도 했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테지만…… 참으로 아까운 놈이야.”
* * *
무인들이 흘린 피는 계단을 적시고 아래로 그 아래로 흘러내렸다.
절벽과 계단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들 정도였다.
스악.
검광이 스치는 곳에 살이 베이고 피가 튀었다.
비강은 붉게 물든 계단을 구르는 적의 몸을 밟으며 위로 또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공격을 하는 무인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일부는 도망치듯 물러나고 일부는 병기를 쥔 채 어쩔 줄 몰라 했으며 또 일부는 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스걱. 스걱.
두 명의 무인을 베어 낸 비강이 전각 앞에 도착했다.
이제 한 번만 더 돌아 올라가면 당백요의 거처가 나오리라.
비강은 전각 앞에 서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서패의 무인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자신의 검을 들어 보았다.
검은 물론이고 소매와 무복까지 온통 검붉은색이었다.
“너희들이 죽어 가는데 어찌하여 이곳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서패의 무인 중 비강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돌아 위쪽으로 올라가려던 비강은 문득 몸을 돌려 무인들 속에 서 있는 인물을 쳐다보았다.
화려한 비단 무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서패에서 높은 직위에 있는 자 같았다.
“당신은 누구지?”
비강과 눈을 마주친 자는 몸을 움찔하더니 무인들을 헤치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이곳의 총관인 공의라 하오, 백리혈.”
그는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지만, 비굴해 보이지는 않았다.
“서패의 무인들이 죽어 가는데도 당신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는 것인가?”
“나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싶을 뿐이오.”
“말을 잘하는군. 보통 배신자들이 그런 말로 위선을 떨지.”
총관을 비웃은 비강은 그대로 계단을 밟아 위로 올라갔다.
더 이상 비강을 향해 달려드는 무인들은 없었다.
정상을 밟은 비강은 당백요의 전각으로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
뭔가 찜찜한 느낌이 가슴속을 파고들어 왔다.
‘설마…….’
아무리 당백요의 거처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었다.
스각.
콰직, 터텅,!
검에 의해 문이 베어 넘어갔다.
비강은 당백요의 방으로 보이는 안쪽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설마 무신이라는 존귀한 자가 도망을 칠까?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쾅!
비강이 다른 문을 열어젖히자 방 한쪽 구석에 시녀로 보이는 여인들이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어디에 있소?”
“조…… 조…… 조금…… 전에 나가셨어요.”
쾅! 쾅! 쾅!……!
비강은 눈앞에 보이는 문들을 차례로 열어젖혔다.
그리고 마지막 문을 열어젖힌 곳에서 산 아래로 이어진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흐흐…… 크하하하하…….
비강은 광소를 토해 냈다.
어찌 이런 자가 자신의 벗을 죽였단 말인가.
한참 동안 웃어 젖힌 비강은 다시 안으로 돌아와 시녀들을 찾았다.
“불씨를 가져오시오.”
비강의 말에 시녀들을 황급히 밖으로 달려 나갔다.
홀로 방 안에 서 있던 비강은 벽에 걸려 있는 도 한 자루를 발견하고 손을 뻗었다.
스앙.
도를 뽑자마자 붉은 도신이 눈을 어지럽게 했다.
이 도는 도신 도운패의 애병이었다.
비강도 이 도가 도운패의 애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허리에 도를 찔러 넣은 비강의 눈에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서신 하나가 들어왔다.
마치 보라고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비강은 서신을 들어 펼쳤다.
[이 원한은 잊지 않겠다. 연비강.
오늘은 내 몸이 온전치 못하여 너를 피했으나 다음에 또 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비록 사형의 부탁으로 도운패와 맞섰으나 우리의 승부는 정당했다.
또한 북궁도와의 승부도 정당했다.
다음에 또 보자꾸나.]
북! 북……!
비강은 서신을 찢어발겼다.
시천세의 입김으로 시작된 싸움이란 것은 이미 짐작했었다.
지금까지 평화롭게 지내던 두 사람이 갑자기 싸움을 벌일 이유는 그것 말곤 없었다.
하지만 시천세의 힘에 굴복해 도운패를 죽이고 북궁도를 죽인 자는 바로 당백요였다.
거기다가 그녀는 황곡의 고수들까지 전부 죽였다.
‘다음에……? 그럴 수는 없지.’
밖으로 나오자 시녀 하나가 불씨를 가져오는 것이 보였다.
비강은 그녀에게서 불씨를 받아 당백요의 방 안으로 던져 넣었다.
가는 연기가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하더니 곧 짙은 연기가 자욱해졌다.
그리고 연기 속에서 붉은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도야, 당백요가 도망을 쳤다. 그 무신이라 불린 당백요가…….’
가장 친했던 벗은 이 세상에 없다.
이제 이 세상에는 가장 친했던 벗을 죽인 원수만이 남았다.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던 비강은 뒤쪽으로 이어진 길을 찾아 달렸다.
* * *
멀리서도 연기와 불길이 보였다.
서패에 연기와 불길이 보인다는 것은 당백요와 백리혈의 싸움에서 백리혈이 승리했다는 뜻이었다.
종예는 놀라 마지않았다.
설마 백리혈이 무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줄이야.
그러나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둘이 싸움을 했다면 분명 멀리서도 그 휘황한 광채와 굉음이 보이고 들렸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지?’
고심도 잠시. 저런 일은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종예는 마인들을 이끌고 서패를 향해 움직였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싸움이 시작된 돌다리가 나왔다.
돌다리 입구 양편에는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시신 두 구가 보였다.
종예는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다리 중간을 넘어가자 그곳에서부터 붉은 피가 흥건한 시신들이 즐비하게 나타났다.
워낙 많은 피가 흐른 탓인지 흐르는 피는 작은 개울을 이룰 정도였다.
그 역한 피비린내에 어지간한 종예조차 인상을 찡그렸다.
끄으윽…… 끄으윽…….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 중에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간간이 신음을 흘렸다.
계단은 피와 시신들로 인해 걸음조차 옮기지 못할 정도였다.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종예 앞에 살아남은 서패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종예를 향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다만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었다.
“나는 중천에서 보내온 구원군이다. 그러니 경계하지 마라.”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종예 앞에 또 다른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대체로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한 인물이 눈에 띄었다.
바로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비단 무복을 입고 있는 중년 사내였다.
“당신은…….”
“저는 서패의 총관으로 있는 공의입니다.”
“그렇군. 나는 중천에서 구원을 온 종예라고 한다.”
이곳의 상황을 어떻게 알고 벌써 구원군이 도착했단 말인가.
하지만 총관 공의는 묻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종 여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후는 어찌하고 계시지?”
“소인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
종예는 다시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결국 정상에 다다른 그녀는 불타고 있는 전각과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는 시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리혈은 어디에 있지?”
종예는 시녀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워 물었다.
시녀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사라, 졌어요. 사라, 졌어요.”
시녀가 불타고 있는 전각 뒤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럼, 신후는? 신후는 전각 안에 있나?”
“아니요…… 그분은 백리혈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빠져나가셨어요.”
종예는 눈을 부릅뜬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럴 리 없었다.
무신이 도망을 칠 리 없었다.
종예는 예전의 당백요를 알고 있었다.
언제나 냉정했으며 싸움에서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물러선 상대는 오직 사형인 시천세밖에 없었다.
“왜…… 왜?…… 왜!”
종예가 소리를 지르자 시녀는 놀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컥!
거기다가 피까지 토해 냈다.
종예는 자신도 모르게 살기까지 발산했던 모양이었다.
“이, 이런…… 어서 말해 봐. 신후가 왜 도망을 쳤지?”
“그분은…… 그분은…… 몸이 온전하지 못하셨어요…… 그분은 왼팔이 잘리셔서 몸조리를 하고 계셨어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짐작되었다.
붉게 물들었던 종예의 안색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팔 하나를 잃은 것이 아니라 전부를 잃으셨군.”
안타깝기는 하지만 지금은 이 상황을 이용해야 했다.
타오르는 전각을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던 종예는 무심결에 뒤에 늘어선 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의원을 찾아 부상당한 자들을 돌봐 주도록 하라.”
그러나 곧 그녀는 자신이 명령을 잘못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자들은 싸움만 할 줄 알지 뭔가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일 줄은 모른다.
저자들은 남을 죽이는 살귀일 뿐, 사람을 살리는 자들이 아니었다.
종예는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시녀들을 돌아보았다.
“총관을 데려와.”
종예의 명령에 시녀들은 황급히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총관 공의가 종예 앞으로 불려왔다.
종예는 기이한 눈으로 총관을 바라보았다.
이자, 이런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침착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공의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