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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5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2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56화

제156화. 벗을 위하여(1)

 

 

 

그들은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다가가면 물러났고 물러나면 다가왔다.

비강은 저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저들은 시천세가 이곳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너는 절대로 우리의 눈을 벗어날 수 없어.”

종예는 자신만만하게 비강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녀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비강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남궁악과의 싸움 이후로 크게 변해 있었다.

“너희들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내가 찾아갈밖에.”

적들이 다가오지 않으니 한꺼번에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 처리해야 했다.

휘이이…….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강의 신형은 홀연히 사라졌다.

“위험!”

종예의 입에서 위험을 알리는 외침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때 이미 비강은 적들 중 하나의 목을 베어 가고 있었다.

깡!

비강의 검과 적의 검이 불꽃을 튀기며 부딪쳤다.

검은 어둠처럼 느껴졌던 적의 무공은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비강의 검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비강은 밀려나는 적을 따라잡았다.

밀려나는 적의 검이 비강의 목을 파고들었다.

적의 검이 비강의 잔영을 꿰뚫을 때, 비강의 검은 적의 뒷목을 베고 있었다.

서걱.

툭, 풀썩.

목이 떨어진 적은 여전한 눈으로 비강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어떠한 고통이나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감정이 없어.’

“뭐냐? 이자들은.”

종예는 이번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놀란 눈으로 비강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종예는 멀리 서 있던 비강의 모습이 순식간에 확대되는 것을 보았다.

헙!

놀랄 겨를도 없었다.

쾅!

검과 대부가 맞부딪쳤다.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대부를 휘두른 종예의 신형이 튕기듯 뒤로 날아갔다.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에…….’

종예는 대부를 쥐고 있는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대부를 쥐고 있는 손이 격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동료의 죽음에도 조금의 동요를 보이지 않던 자들이 종예가 공격을 당하자마자 일제히 몰려들었다.

적들은 병기마다 희뿌연 기운들이 휘돌고 있었다.

스아아아악…….

휘황한 빛줄기는 반원을 그리며 적들을 휩쓸었다.

하늘과 땅에서 짓쳐 들던 적들은 병기를 들어 휘황한 빛줄기에 맞섰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공간이 일렁였다가 터져 나갔다.

비강을 향해 몰려들었던 적들도 튕겨 날아갔다.

“맞서지 마!”

멀찍이 거리를 벌린 종예가 소리쳐 막았지만 비강은 적들을 연이어 베어 내고 있었다.

일렁이는 기의 파동 속에서도 공기를 타고 흐르는 병기의 움직임이 보였다.

검과 도가 목과 허리를 스쳐 지나고, 비강의 검은 적의 목을 쳐 냈다.

스걱, 스걱.

튕겨 날아갔던 적들이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팔다리가 떨어지고 머리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팔이 떨어진 적 하나가 얼굴을 찌푸리다가 땅에 떨어진 자신의 팔을 주워 들었다.

아니, 손에 쥐어진 병기를 집었다.

스걱.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병기를 들던 적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섯 명의 적을 순식간에 베어 버린 비강은 썰물처럼 빠지는 자들을 둘러보았다.

물러서는 자 중에는 가슴이 베이거나 대퇴부가 베여 작지 않은 부상을 당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자들의 움직임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목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움직일 것 같은 자들이었다.

‘저것들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거지?’

 

* * *

 

마동의 마인들을 후퇴시킨 종예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어떻게 그런 움직임을 보일 수가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종예는 비강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것은 마치 시천세나 다른 무신들을 대하는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종예는 고심의 고심을 거듭했다.

그녀가 받은 명령은 단순했다.

백리혈이 나타나면 바로 마인 중에 발 빠른 자를 뽑아 중천에 보고를 올리고 시천세가 도착할 때까지 추격하는 것이었다.

주공 시천세는 자신과 마동의 마인들이라면 그 일을 충분히 해낼 것이라 했다.

하지만 직접 맞닥뜨린 백리혈 연비강은 짐작보다 훨씬 더 대단한 자였다.

“성도로 간다.”

종예는 고심 끝에 마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백리혈 연비강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임무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백리혈이 향할 곳을 짐작해 그곳에서 주공 시천세를 기다려야 한다.

주공이라면 백리혈 연비강이 신후 당백요를 찾아갈 것이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다만 백리혈이 사라지기 전에 주공이 도착하기를 바라야 했다.

 

* * *

 

비강은 성도를 향해 달렸다.

기별을 받은 시천세가 이곳을 향할 것은 불 보듯 뻔하지만, 복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촉산잔도’라는 말답게 성도로 들어가는 길은 험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린 끝에 성도의 입구에 도착한 비강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며칠 밤을 잠도 자지 않고 움직인 탓에 몸이 많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쏴아아아…….

새하얀 깃발이 걸려 있는 깨끗하고 커다란 규모의 객잔은 폭포수가 떨어지는 절벽과 절벽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일 보는 점소이들도 여느 객잔과는 다르게 절도가 있었다.

객잔 안으로 들어가 보니 수십 명의 손님들이 식사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대부분 상인들과 유람객들이었다.

“빨리 되는 것으로 아무거나 내오고 홀로 묵을 깨끗한 방 하나 준비해 주시오.”

비강은 여느 때처럼 주문과 함께 철전 몇 푼을 찔러 주었다.

“홀로 묵으실 방은 객실료가 은자 한 냥이나 됩니다. 괜찮으신지요?”

“여기 있네. 거스름돈은 내일 아침 식사를 끝내고 받겠소.”

비강은 전낭에서 은자 두 냥을 꺼내 건넸다.

밥값과 방값이었다.

“술은 필요 없으신지요?”

“술은 되었소.”

수고비를 챙긴 점소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주문을 전달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매운 두부요리와 함께 밥이 나왔다.

밥을 먹고 나니 점소이가 뒤채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객잔답게 방도 아주 정갈했다.

더욱이 방 안으로 들어와 절벽으로 난 문을 열자, 바로 눈앞에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가 보였다.

“아주 좋은 방이로군.”

비강의 감탄을 듣고 있던 점소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한번 묵어가셨던 손님들은 또다시 찾아와 묵기를 희망할 정도로 경치가 빼어납지요. 손님께서 저녁때 찾아오셨다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묵는 방조차 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맙소.”

눈치로 보아 점소이는 더 많은 수고비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철전 몇 푼을 더 찔러 준 비강은 목욕물을 준비시켰다.

점소이가 준비해 놓은 나무 욕통에 몸을 씻고 나니 온몸이 노곤해진다.

비강은 그대로 침상에 몸을 뉘었다.

 

* * *

 

얼마나 잠을 잤을까.

방 밖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의 웅장한 소리에도 잠을 깨지 않던 비강이 문득 눈을 떴다.

방 안에 어둠이 짙은 것을 보면 깊은 밤이었다.

“안 됩니다, 손님들. 이미 방이 꽉 찼습니다.”

“알고 있기는 하네만 이곳을 지나가는데 폭포의 절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내가 방값으로 은자 두 냥을 내놓지.”

점소이와 젊은 목소리가 방 끝 복도에서 들려왔다.

“안 됩니다. 우리 객잔의 사정도 좀 봐주십시오.”

“참으로 아쉽군. 참으로 아쉬워.”

점소이의 사정에 젊은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잠을 깬 비강은 다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행랑에서 깨끗한 무복을 꺼내 걸치고 별채를 나온 비강은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에는 조금 전 점소이와 실랑이를 벌였던 자들처럼 보이는 젊은 손님들이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비강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술이라도 내올까요? 손님.”

주문을 받고 방을 안내했던 점소이가 다가와 물었다.

비강은 별로 술 생각이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점소이가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소채와 함께 술을 내왔다.

술 한 잔을 채워 비운 비강은 미동도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젊은 손님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패의 당백요를 상대할 계획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

저들이 길을 열어 준다면 당백요를 죽이고 나올 것이고, 저들이 길을 막는다면 강제로 길을 열 것이다.

일백이든 일천이든, 얼마나 죽을지는 관심 밖이었다.

힘이 모자라 자신이 당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비강이 미동도 않고 술병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힐끗힐끗 훔쳐보던 점소이가 다가왔다.

“적적하시다면 제가 말벗이라도 해 드릴까요?”

응?

비강은 고개를 들어 젊은 점소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바쁜 일이 없다면 그래 주겠소?”

헤헤…….

“이제 저도 문을 닫고 들어가 잠을 자야 할 시간입니다. 손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야 저도 들어갈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군. 술잔 하나를 더 가져와 앉으시오.”

점소이는 좋아라 하며 주방에서 자신의 술잔을 가져왔다.

먼저 비강이 점소이의 잔에 술을 채우고 점소이도 비강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곳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었소?”

술잔을 비운 비강이 물었다.

“이 객잔이 사 년 전에 지어졌으니, 사 년이 되었습지요.”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좋은 객잔인 것 같소.”

헤헤…….

“그래서 시인 묵객들이나 유명한 강호인들도 자주 찾아옵니다.”

“유명한 강호인들이라…….”

“서패의 유명한 고수분들은 물론이고, 남선의 고수분들도 찾아온 적이 있을 정도입죠.”

“서패의 주인도 찾아왔었소?”

젊은 점소이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곧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일러 주었다.

“사 년 전에 객잔이 들어서고 얼마 후에 남선의 남협도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갔었습니다.”

하하…….

북궁도의 이야기가 점소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비강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뭔가 울컥하는 것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 남협은 어디에서 묵었소?”

“바로 손님이 묵고 있는 방입지요.”

“고맙소.”

“예?”

점소이는 비강이 왜 고맙다는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비강은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술 한 병 더 내오시오.”

이윽고 술병을 다 비운 비강이 술을 더 요구하자 점소이의 눈이 흔들렸다.

“아…… 아니…… 예…… 가져다드리겠습니다.”

 

* * *

 

스스로 식견이 높음을 자랑하던 천목자였다.

지금은 중천과 삼패가 강성하지만, 결국 강호의 주인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천목자는 그때를 위해 조용히 일을 진행해 나갔다.

그러나 북궁도의 죽음은 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세상일은 돌발 변수의 연속이라 것을 알고 있지만, 북궁도의 죽음은 변수가 아닌 그의 헤아림을 벗어난 일이었다.

천목자는 북궁도가 후일을 도모할 것이라 확신했었다.

그런데 그는 거의 자살이라도 하려는 듯 그대로 자신의 목숨을 당백요 앞에 내던졌다.

천목자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자는 맹주 오진권이었다.

그도 북궁도를 잘 알고 있었고 무공도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 고수에 황곡에서 나온 고수 사십육 명이 더해졌다.

“북궁도와 함께 금지의 고수 사십육 명이 당백요와 싸움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죽임을 당한 쪽은 북궁도와 금지의 고수들입니다.”

무신의 무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오진권이었다.

그 강함은 맞서 싸울 의지마저 꺾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진권은 그런 무신을 넘을 자신이 있었다.

그 자신감이 오늘은 반으로 줄어 버렸다.

오진권의 무거운 목소리를 들은 천목자도 착잡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만한 전력이 무림맹과 싸움을 벌인다면 우리 무림맹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을 것 같소?”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군사.”

오진권의 대답을 들은 제갈곤의 안색은 더욱 무거워졌다.

실로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이십여 년 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제갈제가조차도 황곡에서 나온 고수 열 명을 감당하지 못했었다.

다른 오대세가보다 무에 대한 전력은 뒤떨어진다지만,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갈곤은 세가의 가인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던 고수들을 떠올리고는 진저리를 쳤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때 사랑하는 이들이 대부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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