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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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54화
제154화. 벗의 죽음을 전해 듣다(1)
“나는 네 사부에게 너를 살려 주기로 약속했다.”
억눌린 목소리가 당백요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북궁도는 당백요를 비웃었다.
“애초부터 약속을 지킬 마음도 없었잖아.”
“그렇지 않다. 나는 네 사부와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도운패가 원한 것은 북궁도가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 돌아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당신도 죽어.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럽게.”
북궁도의 시선은 덜렁거리고 있는 당백요의 왼팔에 가 멈췄다.
크크크크…….
“이이익…… 감히.”
차갑게 가라앉았던 당백요의 눈빛에 광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사부의 후계자가 되어야 할 존체가 회복하지 못할 흠결을 가지게 되었다.
이 흠결은 수백, 수천의 목숨으로도 원래의 상태로 바뀌지 않는다.
더욱이 사형과 남궁악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팔 하나가 있고 없음은 엄청나게 큰 불리함으로 다가왔다.
스걱!
기어이 당백요의 검에 의해 북궁도의 목이 베어 떨어졌다.
그녀는 땅바닥에 굴러떨어진 북궁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
피와 상처로 얼룩져 있었지만 분명 북궁도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부릅뜬 눈은 당백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도운패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것이 아니었는데…….’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처음부터 사형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도운패와 함께 사형에게 맞서야 했다.
당백요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북궁도의 손에서 도를 빼냈다.
은운곡 무덤 앞에 꽂혀 있어야 할 도운패의 도가 그의 제자 손에 들려 있었다.
사형이 사제의 죽음까지 이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사형이 운패의 죽음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남선의 칼날은 사형에게 향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머리가 있는 자라면 진정한 원수는 이 당백요가 아닌 시천세라 확신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부님.”
“패주.”
여문탁과 수하들이 당백요의 등 뒤로 다가와 섰다.
“어서 치료를 해야 합니다, 패주.”
어화의 걱정에 당백요는 덜렁거리고 있는 자신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스악.
당백요는 도운패의 도로 마지막 남은 살점까지 잘라 버렸다.
“내가 큰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가슴속에 묻어라. 절대 다른 자들이 알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존명.”
“저들을 묻어 주어라.”
당백요의 명령에 의해 수하들은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
머리와 몸, 팔다리가 분리된 시신들이 많았으나 원래 있었던 제자리로 돌아갔다.
한때는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라 그들의 일부분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름 모를 야산에 북궁도와 동료들의 무덤이 생겨났다.
무덤을 다 만든 고수들은 한참이나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패주 당백요와 제자 여문탁은 이미 돌아가고 없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어화의 말에 동료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먼저가. 나는 무덤에 술이나 뿌려 주고 돌아갈 테니.”
고개를 끄덕인 어화는 몸을 돌렸다.
그녀도 남아 술을 뿌려 주고 싶었으나 패주의 부상을 돌봐야 했다.
* * *
남쪽을 향해 달려가던 비강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붉게 물든 노을 같은 것이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제법 아름답고 신기한 광경이기는 했으나 이상하게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니,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을 넘어 불안하기까지 했다.
붉게 물든 노을은 언제 나타났냐는 듯 바로 사라졌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던 비강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했다.
상인들과 그들을 호위하고 있는 산적들.
비강도 자주 보았던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산적 중에 한 사람은 특히 비강과도 인연이 있었다.
비강은 상인 무리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저쪽에서도 비강의 얼굴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수염이 텁수룩한 사내 하나가 급하게 뛰어왔다.
“독고…… 대협?”
크하하하…….
사내 육선풍은 비강 앞에 멈춰 서더니 갑자기 크게 웃었다.
“오랜만이오, 육 두령.”
“정말 독고 대협이 맞군요. 저는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육선풍도 비강이 남궁악의 손에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육 두령은 여전하구려.”
“독고 대협만 하겠습니까. 정말로 반갑습니다. 한데 또 어디로 향하는 길이십니까?”
“남쪽이오. 그곳에 볼일이 있소.”
“그러시군요. 그럼 돌아오는 길에 저희 산채에 들러 주십시오. 술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
“그럽시다.”
육선풍과 헤어진 비강은 남쪽을 향해 달렸다.
경공을 사용해 달려가던 비강은 저녁때가 되자 낯이 익은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가구 수가 십여 채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 앞에 있는 객잔이었는데, 큰길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객잔은 요리가 그리 맛있는 곳도 아니었고 큰길과 거리도 제법 있어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비강이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강무화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저 아이 곁에 죽음이 다가와 있네요.’
강무화의 말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이의 상태가 몹시 이상했었다.
아이는 이 객잔의 점소이로 나이가 채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주 어린 아이였다.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는 이 객잔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머니는 아이에게 다정하지 못했다.
“어서 오십시오.”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비강을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비강은 아이가 입고 있는 추레한 옷과 피멍이 든 얼굴을 응시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은 휑한 것이 손님이라고는 비강밖에 없었다.
“무엇을 준비해 드릴까요?”
비강이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가 물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셨느냐?”
객잔 안에는 아이 외에 아무도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모셔 올 것입니다.”
아이의 얼굴은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비강은 전낭에서 은자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것을 네게 주마.”
아이는 은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조용히 맞은편에 가 앉았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느냐?”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집에 계세요.”
“객잔 일은 돕지 않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객잔이 어려워 밖에 나가 일을 하고 계셨어요. 그러다가 며칠 전에 크게 다쳐 집에 돌아오셨어요.”
비강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어렵게 다음 질문을 이었다.
“너의 어머니가 친모이시더냐?”
아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얼굴이 지나치게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이의 어머니는 친모가 아니었다.
“가져가라.”
“예? 고, 고맙습니다.”
아이에게 은자 한 냥은 지나치게 큰돈이었다.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가장 빨리 하는 요리를 준비해 주고.”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이는 곧장 객잔 밖으로 뛰어나갔다.
비강은 객잔 안에 홀로 앉아 아이와 어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이는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비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비강의 귓가에 여인의 악다구니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비강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 * *
“죽어! 죽어! 이 새끼야!”
몸집이 육중하고 얼굴이 험상궂은 여인이 통나무 같은 다리로 아이를 짓이겨 밟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흘린 피로 가득했고 입에서는 고통스런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엉엉엉…….
“살려 주세요, 어머니. 제발, 살려 주세요…….”
“내가 왜 네 어머니야, 이 거지 같은 새끼야! 죽어, 이 새끼야! 죽어! 어머니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이 쌍놈의 새끼야!”
퍽, 퍽, 퍽…….
꺼억…… 꺼억…….
발에 짓밟히고 있는 아이의 입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여인은 좀체 발길질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를 발로 짓이기던 여인은 아이의 품에서 은자 하나가 흘러나오자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이게 뭐야?”
은자를 얼른 주워 든 여인은 가는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나 몰래 은자를 빼돌리고 있었네!”
퍽, 퍽…… 퍽…….
발로 아이를 다시 한번 짓이긴 여인은 품속에 은자를 집어넣으려 잠시 눈을 돌렸다.
스으으…….
바로 그때 쓰러진 아이 눈앞으로 작은 단검 하나가 날아와 떨어졌다.
얼굴에 핏물이 가득한 아이는 눈앞에 떨어져 있는 단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는 무슨 결심을 했는지 단검을 잡아 품속에 숨겼다.
은자를 품속에 집어넣은 여인은 다시 아이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퍽! 퍽! 퍽!
아이는 신음 소리만 간간이 낼 뿐이었다.
대충 분풀이가 끝났는지 여인은 아이를 남겨 두고 객잔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여인이 몸을 돌려 걸어가자 아이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서 일어선 아이의 손에는 날이 시퍼런 단검이 쥐여 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여인의 등을 좇은 아이는 어머니라고 부르던 여인의 등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퍽!
아아악!
보검이라 불릴 정도로 날이 예리하기 그지없는 단검이었다.
아이의 힘이 비록 미약하기 그지없다고는 하지만, 단검은 여인의 등에 깊숙이 박혔다.
“이…… 이…… 이…… 개…… 새…… 끼…….”
여인은 몸을 돌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이를 노려보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 찢어 죽일 새끼…….”
바닥에 주저앉은 여인은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를 향해 기어갔다.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은 아이를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이는 부들부들 떨며 뒤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퍽! 꾸엑!
바닥을 기고 있는 여인의 몸 위에 모습을 드러낸 비강은 발로 여인의 목을 밟았다.
목뼈가 으스러졌는지 여인은 잠시 몸을 꿈틀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비강은 여인의 등에서 단검을 뽑아냈다.
그리고 품까지 뒤져 전낭까지 찾아냈다.
전낭 안에는 은자가 열 냥 정도 들어 있었다.
철렁!
전낭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이 앞에 떨어졌다.
“네 것이다. 아버지가 많이 위중하다면 그 은자로 가까운 의원을 찾아가 보도록 해라. 그리고 이곳에서 살기 힘들다면 십만대산을 찾아가라.”
슉, 턱.
비강의 손을 떠난 단검은 전낭 옆에 꽂혔다.
원래 저 단검은 담노가 노숙이 잦은 비강을 위해 선물한 것이었다.
“그것을 그곳의 주인에게 보여 주면 안에서 받아들일 것이다.”
아이가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비강은 여인의 시신을 질질 끌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아이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이는 한참이나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아이는 바닥에 꽂힌 단검과 전낭을 주워들었다.
아이가 걸어가고 있는 곳은 아버지가 누워 있는 집이었다.
* * *
“남선 도운패의 제자 북궁도가 금지의 고수들과 함께 서패로 진격했다는 정보가 올라왔습니다.”
총관 벽하원의 보고에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시천세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운패가 제자를 정말 잘 키웠군. 정말 잘 키웠어.”
시천세의 감탄에 총관은 머리를 조아렸다.
“소신은 북궁도의 소문과 실제가 많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북궁도는 강호 무림을 이끌어 갈 젊은 동량으로는 많이 모자랍니다.”
시천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유는?”
“자고로 복수는 십 년을 기다려도 늦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무신을 상대하는 데 십 년조차 기다리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도신은 제자를 잘못 키운 것입니다.”
“그건 총관이 운패를 몰라서 하는 소리지. 운패는 네 사제들 중에 가장 욕심이 없었어. 협객에 가장 가까웠던 녀석이지. 그런 녀석이 제자를 어떻게 키웠을까.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놈을 골라 키웠을 게야.”
천주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벽하원은 북궁도가 절대로 신후 당백요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곧 허무하고 쓸데없는 죽음을 뜻했다.
자신이라면 십 년. 아니, 이십 년, 삼십 년이라도 기다릴 것이다.
“전에 말한 사람은 어떻게 했는가?”
“예. 이미 남선에 들어가 있습니다. 명령만 내리신다면 바로 남선을 접수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마동에서 나온 놈들을 붙여 줄 테니.”
“당장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벽하원이 방을 나가고 시천세는 종예를 불러들였다.
“동주(洞主)를 불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