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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52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5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52화

제152화. 사부를 위하여(3)

 

 

 

그들의 흥겨운 모습에 북궁도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장 목이 떨어진다고 해도 저렇게 웃을 것이다.

“아쉬움은 없습니까?”

북궁도가 묻자 옆에 앉아 있던 유영이 손가락을 들어 동료들을 가리켰다.

“저놈은 육대세가 중 모용세가에 의해 가문이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지. 살아남은 가인들을 뿔뿔이 흩어지고 저놈만 운 좋게 황곡으로 들어왔어. 결국 이십 년 전에 모용세가를 박살 내 원수를 갚았어. 뿔뿔이 흩어졌던 가인들도 찾아내 모용세가가 소유하고 있던 재물을 나눠 주었고.” 

유영은 다른 자를 향해 손가락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또 저놈은 고아였는데 어린 여동생이 하나 있었어. 개방의 거지새끼들이 그 어린아이를 강간하고 죽였지. 그래도 이십 년 전에 그 거지새끼들을 찾아내 사지를 찢고 다른 개방의 거지들을 쳐 죽였지.”

이번엔 유영의 손가락이 나이 든 여인을 가리켰다.

“저년은 소림의 땡중 놈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어. 소림의 땡중 놈이 저년의 어머니를 강제로 탐했거든. 아버지가 억울함을 견디지 못해 소림사를 찾아갔는데, 그게 화근이 됐어. 아버지는 물론이고 어머니까지 죽였으니까. 그래도 나이가 열 살밖에 안 되었던 아이는 죽이기 힘들었는지 내버려 뒀어. 덕분에 소림사가 박살이 나고, 땡중들의 목이 잘렸지.”

황곡의 고수들은 저마다 마음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년은…… 으음…… 선주님을 혼자서 좋아했어.”

“저 새끼가…….”

손가락질을 당한 여인이 발끈 성질을 냈다.

“왜? 내 말이 틀렸냐?”

하지만 유영은 뻔뻔하게 여인의 성질을 받아 냈다.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술만 들이켰다.

“우린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대부분 이십 년 전에 다 풀었지. 그런 우리들이 더 이상 원하는 게 남아 있을 것 같아? 없다.”

유영은 자신이 질문하고 자신이 대답했다.

“동료들 중에 선주님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도 있어. 하지만 우린 나이에 구애를 받지 않고 모두 동료가 되었지. 선주님 덕분에. 물론 그 은혜를 저버리고 저기 중천에 있는 분에게 붙어 버린 것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하면, 유 대협은 어떤 사연으로 사부님과 함께하게 되었습니까?”

“그건 내가 말해 줄게.”

도운패를 홀로 짝사랑했다는 여인이 기회다 싶었는지 얼른 말문을 열었다.

“저 새끼는 집안이 겁나게 부자였어. 호남에서도 알아주는 부자였으니까. 호남에 있는 유가 상단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였어. 그런데 숙부라는 자가 단주가 되고 싶었는지 독을 풀어 형을 죽였지 뭐야. 그때 열여섯 살이었던 저 새끼는 그래도 기특하게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지. 나중에는 제갈세가에 찾아가 억울함을 알렸어. 결과는 뭐, 호랑이 아가리에 고깃덩이를 집어넣은 격이었지. 저놈의 숙부는 제갈세가에 상단의 절반을 가져다 바쳤어. 덕분에 저놈은 집 없는 고아가 되어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고. 그때 저놈이 독을 먹었는데 길거리에서 다 죽어 가는 것을 선주님이 발견하고 황곡으로 데려오셨어. 제갈세가를 박살 내고 유가 상단까지 불태운 놈이 저놈이야. 동료들도 함께했지만.”

“아, 그때 정말 시원했었는데…….”

“대단했지. 숙부라는 자의 손가락과 발가락부터 잘라 대기 시작했으니까.”

“제갈세가는 어떻고? 그래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들이라 그런지, 잘못했다고 엎드려 싹싹 빌더라. 저놈은 보이는 자마다 쳐 죽이기는 했지만. 에이, 잔인한 놈.”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보다 더 잔인하게 복수를 한 놈들이 너희들이잖아, 이 개자식들아!”

“그래서 어쩌라고.”

하하하하…….

북궁도가 소리 내어 웃자 유영의 동료들도 웃었다.

“선주께서는 가끔 우리들과 술잔을 나누며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여자 좋아하고 말썽만 일으키는 놈이지만 속이 깊다고 하셨었지. 그래서 우리는 너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

“당신들이 돌아간다면 저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림없는 소리!”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도 같습니다.”

북궁도의 대답을 듣고 난 유영과 동료들의 얼굴에 뿌듯함이 어렸다.

제자라면 마땅히 저렇게 해야 한다.

머리는 아니라지만 가끔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죽음이 되어 돌아올지라도.

“강호 무림은 이제 중천의 그분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

유영은 앞으로의 강호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북궁도의 대답은 달랐다.

“아마도 아닐 겁니다.”

“이유는?”

“제 벗이 남아 있으니까요.”

“백리혈 연비강을 말하는 거냐?”

“예.”

“죽었다고 들었는데.”

북궁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죽을 놈이 아닙니다.”

유영도 짓궂게 웃었다.

“연비강을 부를 때 이놈 저놈 할 처지가 아닐 텐데.”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만 알고 있다, 나만. 선주님께서 넌지시 귀띔을 해 주시더구나.”

북궁도와 유영의 대화에 유심을 귀를 기울이던 동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데?”

“뭘 들었는데?”

“도대체 뭐야?”

북궁도는 잠시 망설이다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이들은 자신의 동료들이기도 했다.

죽음을 함께할 동료들 말이다.

“비강은 제 벗이자 사숙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동료들은 북궁도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말뜻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섯이 아니고 여섯이었다는 거로군.”

그들도 네 명의 공자와 한 명의 공녀에게 ‘사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사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사부가 네 명의 공자와 한 명의 공녀를 가르쳤고, 네 명의 공자와 한 명의 공녀는 자신들을 가르쳤다.

크크크크…….

“이렇게 되면 강호가 아주 재미있게 돌아가겠는데?”

“그 광경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구나. 에이, 괜히 알았어.”

하하하하…….

어찌 되었든 그들은 즐겁게 술을 들이켰다.

그들은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를 이 밤을 우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비강아, 정말 살아 있는 거지?’

북궁도는 술병을 비우며 환하게 떠오른 달을 쳐다보았다.

 

* * *

 

비강은 환하게 떠 있는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일 이곳을 떠나 흑산도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술 생각이 간절한지 모르겠군.’

오늘 밤은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아 밖에 나왔는데 술까지 고팠다.

원래부터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기는 했지만, 오늘은 술이 간절했다.

하지만 다들 잠에 든 깊은 밤이라 술을 구할 만한 곳이 없었다.

‘부엌에라도 들어가 볼까? 하아…… 별생각을 다 하는군.’

스스로에게 어처구니가 없어진 비강은 다시 밝은 달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만 나오시오.”

비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검은 복면과 야행복을 차려입은 인물이 걸어 나왔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비강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으니까요.”

어둠 속의 인물은 검은 복면을 벗었다.

그는 바로 살수 살가였다.

살가는 놀란 눈으로 비강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 옛날 북림에 쳐들어갔을 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내 존재를 알아차렸소?’

‘공기가 바뀌었으니까.’

그때 북림의 풍천양은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연비강이라는 젊은 고수도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이 찾아온다면 아마도 전설의 살수라는 이름을 남길 것이다.

“그런데 이 한밤중에 무슨 일이십니까?”

“살수는 낮보다는 밤에 어울리는 법이지요. 가려 뽑은 자들에게 살수 훈련을 시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벌써 훈련을 시작했습니까?”

“예. 그동안 눈여겨보고 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비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수고해 주십시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살가는 머리를 숙여 보이며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아, 혹시 부엌에 몰래 숨어 들어가 술 한 병을 구해 오실 수 있습니까?”

허허…….

“술이 고프신 모양이로군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살가는 곧 술 한 병과 소채 한 접시를 내왔다.

“더 시키실 일이 있으신지요?”

“저의 술벗이 되어 주시지요.”

허허허허…….

“무척 아쉽습니다. 지금은 훈련 중이라 정중히 사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예.”

살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비강은 홀로 술을 비웠다.

그때였다.

“술벗이 없으면 저와 함께 마셔요.”

비강은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리고는 쓴 미소를 지었다.

“드시오.”

자신이 마시던 술병을 비강이 건네자 강무화는 거리낌 없이 술병을 받아 술을 들이켰다.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네요.”

“그렇소.”

“이유를 알아봤나요?”

잠이 오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

비강은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 보았다.

이상하게 불안했다.

뭐가 불안한지는 모르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 마음이 불안한 것 같소.”

“아주 가까운 사람이나 당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징조예요.”

“그렇다고 합시다.”

건성으로 그녀의 말을 받은 비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강무화가 옆에 있으니 오지 않는 잠도 억지로 청해야 할 것 같았다.

“저는 당신이 좋은데, 당신은 제가 거북한 모양이로군요.”

“왜 내가 좋소?”

“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당신과 나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다고.”

“당신만 그렇게 믿으시오. 나는 끌어들이지 말고.”

그 말을 남긴 비강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홀로 술을 마시던 강무화는 반쯤 남은 술병을 내려놓았다.

“혼자 마시니까 맛이 없구나.”

 

* * *

 

환한 달빛 아래 비쩍 마른 사내가 무덤을 향해 다가갔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무덤 앞에 선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들었다.

그 순간. 검을 빼 들어 막 무덤을 가르려던 그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내의 눈은 공포에 질려 떨리고 있었다.

“꼭 그렇게 해야겠느냐?”

사내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을 들었던 사내는 억지로 몸을 돌렸다.

환한 달빛으로 인해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무덤을 가르려던 사내는 바로 남궁악이었다.

그리고 그런 남궁악의 옆을 또 다른 사내가 스쳐 지나갔다.

그 사내의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쪼르르르…….

술병에 든 술을 전부 무덤에 뿌린 그 사내는 술병을 옆에 내려놓고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기…… 다리십시오.”

남궁악의 입에서 쥐어 짜낸 것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게 볼일이 남았더냐?”

“그…… 렇습니다.”

“무슨 볼일이더냐?”

“제가 이곳으로 올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너는 원래 의심이 많은 녀석이 아니더냐. 운패의 죽음을 확실하게 하고 싶었겠지. 네가 천세나 다른 녀석들을 속인 것처럼, 다른 녀석들도 너를 속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했겠지.”

맞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는 사부가 더욱 두려웠다.

“제게 남길 말씀은 없으십니까? 사부.”

“없느니라.”

“혹시 저도 사부님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누구나 가능하겠지.”

말을 마친 사부의 신형은 어둠과 동화되듯,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남궁악은 아직도 들고 있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스륵.

검을 집어넣은 그는 동천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형을 움직였다.

사부가 무덤에 술까지 뿌려 준 이상 도운패의 죽음은 확실했다.

 

* * *

 

아침이 밝고, 북궁도와 사십여 명의 동료들은 성도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한참을 달리던 그들은 바위들이 무성한 어느 야산의 끝자락에서 경공을 멈췄다.

건너편 야산에 십여 명의 인물들이 보였다.

북궁도와 동료들도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언젠가는 공녀라 불렀고, 지금은 패주라 불리고 있는 당백요였다.

그녀가 자신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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