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5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51화
제151화. 사부를 위하여(2)
서패와 남선의 경계인 강주는 쌀이 많아 인심이 후하고 싸움도 없어 살기 좋기로 정평이 난 곳이었다.
쌀이 많으니 술이 흔했고 술이 흔하니 기루도 많았다.
서패나 남선에서도 주색잡기에 능한 한량들이 자주 들를 정도라 북궁도도 강주에 몇 번 다녀갔었다.
술자리를 함께하게 되면 적군이 아군이 되는 경우가 있고, 아군이 적군으로 변하는 일도 발생한다.
북궁도는 강주의 술자리에서 서패의 고수 중 몇 명과 꽤 깊은 친분을 나누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강주 서패의 지부장인 방광역이었다.
방광역은 나이 마흔에 강주의 지부장이 된 자로, 검법의 고수였다.
북궁도는 강주에서 방광역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잔인한 운명은 두 사람을 거리에서 마주치게 만들어 놓았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호인이라 아침 해장을 위해 거리로 나왔던 방광역은 수십 명의 무인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 북궁도를 발견했다.
“북궁 대협!”
북궁도는 방광역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사실 북궁도가 먼저 방광역을 발견했고, 그를 피해 얼른 강주를 통과하려 했었다.
“북궁 대협, 어디로 가는 거요?”
방광역이 반가운 얼굴로 달려오며 물었다.
그러나 곧 북궁도의 서글픈 표정을 알아보고는 발을 멈췄다.
“무슨 일이 있소? 북궁 대협.”
“방 대협, 나는 지금 성도로 가는 중이오.”
“남선의 사자로 가는 거요?”
“아니오.”
방광역의 안색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미안하오, 북궁 대협. 다른 볼일이라면 이곳 강주를 통과시켜 줄 수 없구려.”
“못 본 척해 줄 수는 없겠소?”
“정당한 일이라면 눈감아 주겠소. 하지만 북궁 대협 혼자 통과하시오.”
잠시 방광역을 응시하던 북궁도는 허리에 차고 있는 도를 빼 들었다.
“내 사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서패의 주인을 죽이고자 하오.”
사정을 모르는 방광역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강주의 지부장으로 적으로 돌변할지도 모를 북궁도를 그냥 보내 줄 수는 없었다.
“비상! 남선의 습격이다!”
방광역은 먼저 소리를 쳐 남선의 공격을 알렸다.
거리에 나와 있던 서패의 무인들도 있어 그들 중 일부는 강주지부를 향해 달렸고 일부는 방광역의 옆으로 모여들었다.
그 숫자가 다섯이었다.
“지금이라도 발을 돌린다면 없는 일로 해 주겠소.”
“미안하오.”
“그럼, 이제 나는 모든 것을 걸고 북궁 대협을 막겠소. 내 목숨을 완전하게 끊어 내지 않은 이상 이 강주를 통과할 수는 없소.”
스릉…….
방광역이 검을 빼 들자 양옆으로 몰려든 무인들도 병기를 뽑았다.
“내가 하마.”
두 사람의 친분을 눈치챈 유영이 북궁도의 어깨를 잡으며 앞으로 나섰다.
“아닙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심을 굳힌 이상 앞을 막는 자는 전부 적이었다.
북궁도가 앞으로 나서자 방광역의 입에서 차가운 명령이 떨어졌다.
“쳐라!”
음울함이 가득했던 북궁도의 눈동자가 기광으로 바뀌었다.
스아아아…….
허리에 들어 있던 도가 뽑혀 나오자마자 수십 가닥의 붉은 기운들이 서패의 무인들과 방광역을 덮쳐 갔다.
홍련개화.
몇 년 전 비강과 함께 혈저귀를 추격했을 때 펼쳤던 무공이었다.
그때보다 기운들은 더욱 붉고 강해져, 마치 공간 전체가 붉은빛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투툭…… 툭…….
병기를 빼 들고 달려들었던 무인 다섯 명의 몸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피가 튄 몸은 순식간에 벌어져 더욱더 많은 피를 쏟아 냈다.
크어어억! 어어억!
무인들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갈라지고 터진 그들의 몸은 푸줏간의 고깃덩이 같았다.
“미안하오, 방 대협.”
“북궁 대협은…… 하고자 하는 일을 한 것뿐이고…… 나 또한 하고자 하는 일을 한 것이오. 미안해하지…… 마시오.”
투툭, 툭, 퍽!
마지막으로 방광역의 몸이 터져 나갔다.
털썩.
방광역이 쓰러지고 난 후, 저 멀리서 수십 명의 무인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적이다!”
“남선의 습격이다!”
수십 명의 무인이 달려오는 모습을 지그시 지켜보던 무인 하나가 유영의 뒤에서 빠져나왔다.
“저들은 내가 맡지.”
그의 양손에는 단창 두 자루가 쥐여 있었다.
* * *
“무슨 소리요? 은운곡에서 도운패가 전사를 한 것 같다니?”
세상사를 훤히 내다본다는 천목자였지만, 무신 도운패의 죽음은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무신 중 도신 도운패가 가장 먼저 죽을 것이라 예측한 그였지만, 그 죽음이 지나치게 빨랐기 때문이었다.
“언제…… 누구에게 죽었는지 알고 있소?”
마안자는 손에 쥐고 있던 서신을 조심스럽게 바쳐 올렸다.
화락.
서신을 거칠게 편 천목자 제갈곤의 안색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도대체! 도대체 은운곡에 들어가 있는 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기에 도운패가 전사한 지 달포가 지나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단 말이오!”
“제가 살펴본 바로 은운곡에 들어가 있던 간자들은 백리혈의 추격전에 나섰다가 차례로 전사한 듯합니다. 해서 이번에 새로운 간자들을 그곳에 투입시켰습니다.”
“하필이면 이때에…….”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정보가 늦는 것도 당연했다.
도운패가 당백요에게 패해 전사한 것은 강호가 놀라 자빠질 큰 사건이었다.
이번 일은 무신 도운패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주인을 잃은 남선은 크게 몰락할 것이고, 도운패와 싸워 승리한 서패는 기세가 오를 것이다.
그러나 천목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남선은 무주공산이었다.
“마안자께서도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겠지만, 나는 무림맹에 들어오자마자 남선에 고수들을 침투시켰소이다. 산적이나 수적 혹은 흑도로 들어가 남선에서 자리를 잡게 하기 위함이었소. 하나 도운패는 그리 만만한 자가 아니었소. 들여보내는 자마다 죽어 나가 다른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소. 하지만 이제 도운패가 죽었으니, 일은 우리 뜻대로 풀릴 것이오.”
“제 짧은 소견으로는 산적이나 수적, 흑도의 무리로 침투시키는 것보다 무문의 제자로 침투시키는 것이 더 안전한 방법 같습니다만.”
껄껄껄…….
“바로 그것이오. 해서 무문은 물론이고 상단과 표국에까지 간자들을 들여보내고 있었소.”
“남선은 이제 어찌 될 것 같습니까? 군사.”
“틀림없이 중천의 수중에 떨어질 거외다. 시천세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여태까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당백요와 도운패가 생사결전을 벌일 이유가 없소.”
마안자 국원의 생각도 같았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제가 듣기로 황곡의 고수들이 남선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자들이 도운패의 죽음을 두고 보고만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서패에도 황곡의 고수들이 있소이다. 싸워 봤자 패하는 쪽은 남선이 될 것이오. 생각이라는 것이 있다면 참고 기다려 후일을 도모하려 할 것이외다.”
“그렇겠지요.”
이번에도 마안자 국원과 제갈곤의 생각은 같았다.
“이제 맹주에게 이 일을 보고하러 갑시다.”
* * *
“패주, 북궁도와 유영의 무리가 벌써 내강까지 진출했습니다. 진군 속도가 무척 빨라 내일 저녁이나 모레 아침쯤이면 성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실로 대쪽을 쪼개는 기세라 하였습니다.”
“몇 명이나 죽었느냐?”
“앞을 가로막는 서패의 무인을 전부 죽이며 올라오고 있는데, 이미 사망한 숫자가 오백을 넘겼다 합니다.”
“운패가 제자를 잘못 키웠구나. 참고 기다리는 법도 알았어야지.”
북궁도와 사십여 명의 고수가 강주를 넘었다는 급전을 받은 것이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벌써 내강에 들어왔다는 것은 아예 끝을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봐야 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당백요는 양쪽 허리에 두 자루 검을 채웠다.
“아직 부상이 다 낫지 않으셨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 어찌해야 하겠느냐? 나는 이곳에 남고 너희들을 전부 내보내야 하겠느냐?”
“그래도 저희가 나서는 것이…….”
당백요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앞에 부복하고 있는 나이 든 여인의 머리를 쓸었다.
“어화야.”
“예, 패주.”
“너도 내가 운패를 죽인 일을 원망하고 있느냐?”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패주.”
“그렇겠지. 너는 항상 그랬으니까.”
당백요와 어화라는 여인은 무공을 가르치고 배운 사제와 같은 사이였다.
하지만 어화는 당백요를 사부가 아닌 언니라 불렀었다.
“나는 사형에게 이곳만은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는 못 할 것이 없었지. 하지만 이제 다른 것을 보게 되었구나. 언젠가 너도 내 뜻을 알게 될 날이 있을 게다. 너를 포함해 열 명만 준비시키도록 해라. 반 시진 후에 출발할 것이니.”
“영을 받듭니다.”
어화라는 여인이 명령을 받고 나간 후 당백요는 제자 여문탁을 불러들였다.
“너도 길 떠날 채비를 하거라.”
“무슨 일이신지요? 사부님.”
“남선의 북궁도가 고수들을 이끌고 쳐들어왔다고 하는구나.”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급하게 밖으로 나온 여문탁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행낭을 꾸렸다.
‘멍청한 놈.’
여문탁은 행낭을 꾸리며 지난날의 북궁도를 떠올렸다.
웃음이 많고 밝아 은근히 마음이 갔던 사내였다.
하지만 지금은 복수에 미친 살귀가 되어 있었다.
북궁도는 무공을 갈고닦으며 기다려야 했다.
남선을 물려받아 힘을 키우고 적이 허점을 드러낼 때까지 참아야 했다.
행낭을 챙겨 나온 그녀는 사부의 전각 앞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당백요는 하얀 비단무복을 입고 전각을 나섰다.
* * *
북궁도와 사십여 명의 무인 모두 피에 절어 있었다.
무복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는 피는 그들의 피가 아닌 앞을 막아선 적들의 피였다.
지금의 그들은 아무도 막아 내지 못했다.
앞을 막아선 적들을 베어 낸 유영의 눈에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객잔이 들어왔다.
“오늘 저녁은 술이나 한잔했으면 좋겠군.”
유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동료들이 객잔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객잔에서 각기 술 열 동이를 사고, 구운 오리도 한 보따리 사 챙겼다.
“오늘 저녁은 객잔에서 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북궁도의 말에 유영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르니 밖에서 별과 달을 보며 쉬고 싶구나.”
북궁도도 굳이 유영의 말에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말없이 그들을 따라 노숙할 만한 적당할 장소를 찾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소나무들이 둘러싼 큰 공터가 보였다.
북궁도와 유영은 그 공터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근처에 있는 개울로 가 얼굴을 씻고 돌아온 그들은 나무와 풀을 베어 모깃불을 피웠다.
그리고 모깃불에 사십여 명이 둥글게 둘러앉았다.
동이째 사 온 술독을 돌리고 보따리에 싸 가지고 온 구운 오리들도 한 마리씩 돌렸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술을 퍼마시고 오리를 뜯었다.
사십여 명의 고수 중에 여인들도 일곱이나 끼어 있었으나, 눈치를 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우백아, 소리 좀 내지 말고 처먹어.”
“지랄하고 자빠졌네. 미친년.”
“저게 뒈지려고.”
“이 자리에서 살풀이 한번 해 볼까?”
나이 든 사내와 나이 든 여인이 말싸움을 벌이자, 둘러앉은 동료들은 미소를 머금으며 싸움을 부추겼다.
“싸워 봐.”
“이번에 판가름을 내야지.”
“판가름을 내기는. 열흘 전인가 야밤에 둘이서 알몸으로 뒹굴던데.”
으응?
신나게 싸움을 부추기던 동료들은 마지막 말을 내뱉은 사내를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정말이야?”
“정말로?”
“자세히 말해 봐. 어떻게 뒹굴었는데?”
그러자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까지 잡으려 했다.
“그러니까 우백이가 밑에서 이러고 있고, 추소가 위에서 이렇게…….”
“너, 뒈진다!”
“우리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두 사람은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만히 있어 봐. 그랬든 안 그랬든 무슨 상관이야? 저놈이 잘 놀고 있는데.”
으음…….
“그건 그렇지.”
낄낄낄…….
크크크…….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