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8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88화
제188화. 강호는 다시 혼란 속으로(1)
남궁악은 서책을 꼼꼼히 살폈다.
서책에는 남선이 함락되었을 당시의 일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창을 쥔 자는 절대적인 무공으로 남선의 무인들을 휩쓸었다. 잔인하고 흉포해 마치 야수를 보는 것 같았고 그자의 창에 살아남은 자가 없을 정도였다. 하나 그자와 함께 온 비쩍 마른 사내는 그를 몹시 경계하고 싫어해 다툼이 일기도 하였다.’
서책을 닫은 남궁악은 전서의 그자가 바로 남선의 그자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비쩍 마른 사내는 틀림없이 석장일 것이다.
‘석장이 그놈을 마적강이라 불렀다라…… 그놈은 사형이 비밀리에 양성한 자들의 우두머리였어. 그런데 그놈이 종예와 싸움을 벌였다는 것은…… 내분이거나 반란이로군.’
일의 전모를 대충이나마 파악해 낸 남궁악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이번 일을 잘만 이용한다면 대단한 고수 한 명을 자신의 밑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파, 네가 직접 고수들 서너 명을 데리고 호남에 다녀와. 절대 그놈을 자극하지 말고.”
“존명.”
남궁악의 명령을 받든 영파는 탁자 위에 놓인 산삼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이 귀한 것을 다른 놈들과 나눌 수는 없지.’
늦은 밤까지 무공을 수련하던 비강은 새 무복과 마른 수건을 챙겨 폭포 아래에 있는 커다란 웅덩이로 향했다.
그 웅덩이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맑은 물이 고여 있어 비강은 항상 그곳에서 목욕을 했다.
또한 그 아래로 흘러가는 물은 마을사람들이 사용하는 식수이자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는 즐거운 놀이터이기도 했다.
‘누가 있군.’
이 웅덩이는 다른 각주들도 사용하고 있기는 했으나 이 늦은 밤에 목욕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웅덩이에 도착해 보니 물 안쪽 수면 위에는 시커먼 머리카락이 반쯤 드러나 있었다.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시커먼 머리카락은 비강이 서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여느 보통 사람들이 보았다면 오줌까지 지릴 정도로 기겁할 모습이었다.
“장난치지 마시오, 신녀.”
하지만 비강은 물속이 있는 자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물가에 그녀가 벗어 개어 놓은 옷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어오세요.”
과연 웅덩이 안쪽에서 신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소.”
촤아악,
갑자기 물보라가 일며 검은 머리카락이 수면 위로 솟구치고 뒤이어 하얀 나신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비강은 얼른 몸을 돌렸다.
“거기 수건 좀 주시겠어요?”
비강은 물가에 놓여 있는 수건을 지어 웅덩이 안쪽으로 던졌다.
수건은 신녀를 향해 날아가더니 정확하게 그녀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물가로 걸어 나온 신녀는 수건으로 몸과 머리카락을 닦았다.
“당신은 언제나 한결같군요.”
“무슨 뜻이오?”
“당신같이 강한 사람이 누구보다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고 있어 한 말이에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이곳에서 하루를 정리하잖아요.”
“버릇이 되어 그렇소.”
옷을 다 걸친 신녀는 몸을 돌리고 있는 비강 앞으로 와 섰다.
“이제 당신 차례예요.”
“그런 것까지 알려 주다니, 참으로 고맙소.”
신녀와 대화를 나눌 때는 이상하게 심술을 부리게 된다.
그러나 신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싱긋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신녀가 돌아가야 내가 옷을 벗을 게 아니겠소?”
풋.
신녀는 입을 가리며 웃었다.
“뭐 볼게 있다고…….”
비강은 신녀의 장난에 긴 탄식을 토해 냈다.
하아……
그러고는 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검상을 비롯해 온갖 흉터가 가득한 전신이 드러났다.
풍덩!
비강은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제법 봐줄만 하네요.”
신녀는 아예 물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촤라락…… 촤라락……
물 한가운데에서 몸을 씻고 있는 비강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신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지난날을 얘기해 봐요. 기억이 있을 때부터…….”
“내가 왜 그래야 하오?”
“제가 듣고 싶으니까요.”
“웃기지도 않군.”
콧방귀를 뀐 비강은 물속으로 몸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물속으로 신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저는 어릴 때 제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다 보는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게 되었죠…….”
길고 긴 이야기가 신녀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물 밖으로 상체를 드러낸 비강은 곧 정좌를 하고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신녀의 시선은 비강에게 옮겨졌다.
“당신도 자신의 일을 다른 누군가가 알아준다면 마음이 편안해 질 거예요.”
비강은 대답 없이 물가에 놓여 있는 수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물가에 놓여 있던 수건이 빠르게 떠오르더니 물 안에 앉아 있는 비강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머리카락과 몸을 닦고 하체를 수건으로 가린 비강은 밖으로 걸어 나와 새 무복을 걸쳐 입었다.
“이야기 잘 들었소. 그만 들어갑시다.”
비강을 바라보는 신녀의 눈빛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담고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사람이야.’
오랜만에 남쪽으로 상행을 떠나는 용가 상단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용 단주 또한 직접 몸을 움직이며 상인들과 일꾼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렸다.
“창고에 넣어 두었던 송이버섯은 챙겼는가?”
“아,지금 바로 수레에 싣겠습니다.”
일꾼 십여 명이 창고로 뛰어가더니 커다란 항아리 여섯 독을 들고 나왔다.
항아리 안에는 소금에 절여 놓은 송이버섯이 들어 있었는데 남쪽에서는 고가에 거래가 되는 것이었다.
작년에 용가 상단은 남쪽으로 상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십만대산에 필요한 물건들을 대주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십만대산에서 직접 식량과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기 시작해 한층 여유가 생겼다.
용가 상단이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보검을 허리에 찬 낯선 사내가 전각 안에서 걸어 나왔다.
사내는 화상이라도 입은 듯 얼굴이 몹시 흉했다.
용 단주는 전에 없을 공손함으로 그 사내를 맞이했다.
“벌써 나오셨습니까? 주 대협.”
“제가 민망하니 편하게 대하십시오, 용 단주님.”
흉한 얼굴의 사내는 바로 주동이었다.
그는 비강의 부탁으로 용 단주와 상단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혹시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있을까싶어 변장을 한 상태였다.
“어찌 주 대협을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출발할 것입니다.”
용 단주는 주동을 얻은 후부터 한층 힘이 솟았다.
비강의 말을 빌리자면 이 주동이라는 사내는 절대고수라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 있을 상행에 도적들이나 강도들로부터 피해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출발!”
채비를 끝낸 상단의 수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단을 빠져나온 수십 대의 수레들은 남쪽으로 향했다.
남쪽을 향해 움직이던 수레들은 점심때가 되자 길가에 서 있는 객잔 앞으로 모여들었다.
“간단하게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시지요. 저는 잠시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볼일을 빨리 끝내시고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용 단주의 허락을 받은 주동은 객잔이 자리 잡고 있는 뒤쪽 숲으로 들어갔다.
숲으로 들어간 주동의 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걸었다.
그리고 그가 발을 멈춘 곳은 두 명의 사내가 숨어 있는 커다란 나무 앞이었다.
“나와.”
주동의 서늘한 목소리에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사내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무 뒤에 숨어 있었던 자들은 자못 당당했고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어이없게도 상단의 호위무사 따위에게 자신들의 은밀한 추격을 들킨 것이다.
“우리는 중천의 순찰조다. 잠시 확인할 것이 있어 뒤를 따라온 것뿐이니 오해하지 마라.”
“확인할 것? 그게 뭐지?”
상대가 중천의 순찰조였지만 주동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네가 알바 아니다.”
“그렇군. 확인이 끝났으면 돌아가라.”
“그 또한 네가 알바가 아니니 너는 너의 일에나 신경 써라.”
순찰조원들은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주동은 이들의 대답에서 중천의 순찰조가 용가 상단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알아차렸다.
‘죽여야 하나?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나?’
만약 비강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바로 죽여 없앴을 것이다.
하지만 주동은 비강이 아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주동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차라리 몰래 죽여 없애고 모른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뭐하고 있나? 돌아가지 않…….”
스걱.
신경질을 부리던 순찰조원의 목으로 가는 빛줄기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툭……
스걱. 툭……
그리고 연이어 또 다른 순찰조의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단번에 순찰조원들의 목을 베어 낸 주동은 그들의 시신을 끌고 숲 속 깊숙이 들어갔다.
‘핏자국 때문에 오래 숨기기는 힘들어.’
바닥에는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쿠릉…… 쿠릉……
멀리 천둥소리가 들려오자 그늘이 졌던 주동의 안색이 펴졌다.
‘천만다행이야.’
“죄송합니다, 주공. 호남에서 놈을 놓쳤습니다. 놈이 남선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선은 이제 동천의 영역이었다.
시천세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동천이나 남선을 침범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직접 상대해 보니 어떻더냐?”
종예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진실을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저보다 강했습니다.”
“그래. 그놈은 그런 놈이지. 그놈이 조금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너의 자리를 그놈이 대신 했을 게야. 강호에서 말하는 백년기재가 바로 그런 놈이지.”
한마디 한마디가 종예의 가슴을 찌르고 뼈를 때렸다.
“사상자는?”
“둘이 전사했습니다.”
쯧쯧……
시천세가 혀를 차자 종예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입이 있어도 핑계를 대지 못했다.
놈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여덟 명이 갔지만 그들 중에 두 명이 전사했다.
“시신은 어떻게 하였느냐?”
“돌아오는 길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수고했다. 들어가 쉬어라.”
“벌을 내려 주십시오, 주공.”
종예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마적강이라는 놈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
시천세는 무릎을 꿇고 있는 종예를 투명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종예. 곧 남궁악이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너는 그때 이번 잘못을 만회하도록 하라.”
“그때는 반드시 마적강, 그놈의 목을 베겠습니다. 만약 놈을 베지 못한다면 스스로 죽게 해 주십시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종예였다.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동료들도 둘이나 잃었다.
그녀에게 마적강이라는 존재는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할 철천지원수였다.
그러나 시천세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네가 베어야 할 자들은 그자가 아니라 동은각의 그놈들이다.”
원한으로 번뜩이던 종예의 눈빛은 일순간에 깊게 가라앉았다.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주공은 마냥 참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이십 년의 긴 세월을 참고 또 참아야 할 때의 그 울분을 잊지 못한다.
종예는 시천세가 이십 년 동안 황곡에 들어앉아 인내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강호의 주인을 가리는 마지막 싸움이 되겠군요.”
시천세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네 말이 맞다. 하나 앞으로도 수많은 싸움을 해야 할 거다. 남궁악이 커다란 나무라면 나머지는 그에 붙어 있는 잔가지들이겠지. 제법 굵은 가지들도 있어 나를 놀라게 할 것이나 결국 사제만 쓰러뜨린다면 그것으로 강호는 평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굵은 나뭇가지인 백리혈 연비강이 비록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남궁악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약추완 그놈은 백리혈 연비강을 찾아냈는지 모르겠군.’
“총관을 불러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