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87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87화
제187화. 녹옥불상
겨울이 지나가고 있는지 조금씩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곳은 눈이 녹아 황토빛 기운이 감돌았다.
십만대산은 아직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법 날이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성질 급한 농부들은 농기구를 챙겨 논밭으로 나갔다.
거리마다 뛰어노는 아이들로 북적거렸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노인들의 차지였다.
비강도 육선풍과 함께 오랜만에 마을로 내려와 거리를 거닐었다.
거리를 거닐던 그들이 멈춰 선 곳은 장례가 한창 진행 중인 집 앞이었다.
집안에는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과 조문을 온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장례를 치르는 이들 중에는 무진도의 얼굴도 보였다.
비강과 육선풍이 집 앞에 멈춰 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얼른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들에게 있어 무인들은 언제나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집을 주고 식량을 주고 의복까지 내주며 살 곳을 마련해 준 사람들을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이 앉은 자리에 여러 음식들과 술이 나왔다.
육선풍은 비강의 잔에 술을 채우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드십시오.”
“드시오.”
비강과 육선풍은 술과 음식을 먹으며 무진도가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아버님께선 좋은 곳으로 가졌겠지요?”
죽은 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내가 무진도에게 물었다.
“일월성신께서 인도하셨느니라.”
아아…….
가족들은 하늘을 우러르며 두 팔을 벌렸다.
그들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웃기지도 않은 무진도의 짓거리에 비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모른 척하십시오.”
육선풍의 말이 아니더라도 비강은 무진도의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저들의 맹목적인 믿음은 온몸에 소름까지 돋을 정도였다.
“신선님. 아버님이 도착하신 곳은 어떤 곳인지요?”
“집집마다 황금으로 기둥을 세웠고 기둥위에는 봉황이 노닐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곳이로다.”
아아아…….
무진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경탄을 했다.
“마당에는 기화이초가 가득하고, 늘어서 있는 과실나무에는 천도복숭아가 열렸도다. 아름다운 선녀들이 춤을 추고 사람들은 미주와 용의 고기로 잔치를 벌이고 있구나.”
장례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눈과 귀는 무진도에게 쏠렸다.
꿀꺽,
사람들 중에 하나가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도 죽으면 그곳으로 갈수 있을까요?”
“일월성신을 위해 죽는다면 그곳으로 갈수 있느니라.”
“저…… 저는 선녀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원한다면 아홉 명의 선녀를 아내로 둘 수 있느니라.”
사람들은 무진도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지만, 비강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미친놈.’
아홉 명의 선녀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형벌을 받는단 말인가.
코웃음을 친 비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육선풍도 뒤를 따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집 밖으로 나왔을 때 육선풍이 물었다.
“교주님. 저 녹원선인의 이야기가 사실일까요?”
“육 대협.”
비강이 정색을 하자 육선풍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거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람들의 공포와 욕망을 자극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개수작에 불과하오.”
“그래도 저들은 일월성신의 화신인 교주님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것입니다.”
“알고 있소.”
저들의 죽음이 안타까울 것이나 가엾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을 만류할 생각도 없었다.
“형! 같이 가!”
“얼른 따라와.”
거리를 걷은 두 사람의 시선 속으로 아이들 둘이 들어왔다.
앞서 달리고 있는 아이는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으며 뒤에서 달리고 있는 아이는 양팔에 두 개의 쇠테를 두르고 있었다.
바로 이용과 양조였다.
앞서 달리던 이용은 비강을 알아보고 얼른 머리를 조아렸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급하게 뒤를 쫓아오던 양조 또한 급히 비강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재미있게 놀아라.”
아이들의 인사를 받은 비강은 품에서 전낭을 꺼내 아이들에게 은자 한 냥씩을 쥐어 주었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먹고.”
“감사합니다, 교주님.”
은자 한 냥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아주 큰돈이었다.
그러나 저 아이들은 은자 한 냥을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다.
몇 달 동안 목가상단을 조사하고 은밀히 뒤를 밟았지만 특별하게 나오는 것은 없었다.
순찰단주 염후룡으로서는 이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분명 목가 상단과 전 순찰단주 약철빙 사이에는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것인데, 아무리 조사를 하고 뒤를 밟아도 의심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잡아들여 문초를 할 수도 없고.’
겉으로 보기에 염가와 약가는 돈독한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염가는 총관의 가문인 벽가에도 은밀히 줄을 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염가뿐만이 아니었다.
약가와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가문들도 앞날을 위해 벽가와도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지금 중천을 움직이고 있는 실세는 약가가 아닌 벽가였다.
그렇다고 약가와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것이 앞날이 어찌 변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약 단주는 보통내기가 아니야.’
염후룡이 답답해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부단주가 들어왔다.
부단주 또한 약가와 혈맹관계에 있는 하남 변가의 사람이었다.
“방금 서패에서 사람을 보내 서신을 전해 왔는데 서신의 내용이 수상합니다.”
“수상하다? 뭐가 수상하단 말인가?”
“직접 보십시오.”
부단주가 서신을 바쳐 올렸다.
염후룡은 바로 서신을 받아 내용을 살폈다.
서신은 옥불상에 관한 보고였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염후룡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번뜩였다.
“어떻게 보십니까?”
부단주의 물음에 염후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수상하군.”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 급히 달려온 것입니다.”
서쪽에는 대표적인 갑부로 유징이라는 자가 있었다.
보통 유 대인이라 불리는데, 그의 가문은 수많은 논과 밭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음식점과 포목점, 상단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가문은 서쪽의 패자라고 불리던 사천 당가와 아미파, 전진파와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당백요가 서쪽의 패자가 되었을 때 상황은 급변했다.
당가와 아미, 전진이 몰락하고 전진의 본산에 서패가 들어섰다.
유 대인은 가문을 살리기 위해 서패의 당백요를 찾아가 애지중지하던 가보를 바쳤다.
그 가보가 바로 녹옥불상이었다.
덕분에 유 대인의 가문은 큰 피해 없이 난세를 헤쳐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서패의 당백요에게 바쳤던 녹옥불상을 유 대인이 우연찮게 다시 사들인 것이다.
유 대인은 몹시 당황했다.
그가 사들인 녹옥불상은 확실히 가문의 가보였던 그 녹옥불상이 맞았다.
당백요에게 바쳤던 녹옥불상이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원래 주인의 품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유 대인은 녹옥불상을 거래한 자를 역 추적해 보았다.
그랬더니 용가 상단이라는 곳이 녹옥불상의 소유주라는 것이 드러났다.
“용가 상단이라…….”
“예. 전에는 우리 중천과도 거래를 하였던 상단인데 지금은 관계가 끊겼습니다.”
“이유는?”
“북림이 함락된 후로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네 생각을 말해 보게.”
“예. 강호 무림은 서패 패주 당백요의 죽음에 우리 중천의 천주께서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단주가 말끝을 흐렸다.
단주 염후룡도 강호 무림이 모르는 비밀스런 내막을 알고 있었다.
패주 당백요는 한 팔을 잃은 큰 부상을 당한 상태였고, 마왕 연비강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광경을 목격했던 자가 말하기를 당백요를 죽인 자가 커다란 궤짝 두 개를 가지고 사라졌다고 한다.
“용가 상단은 섬서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만.”
“예. 하지만 은자가 되는 곳이라면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상행을 하는데, 산동과 광동, 사천, 새외까지 오가고 있다합니다.”
“아주 발이 넓고 부지런한 자로군. 순찰조를 따로 붙여 그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보게. 그리고 이번 일은 절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될 것일세.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예.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가 넘어올 때까지 함구하고 있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백리혈 연비강의 꼬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번에 공을 세우게 되면 그건 모두 자네와 나의 몫으로 돌아갈 것일세.”
“예. 명심하겠습니다.”
두궁천에게서 날아온 급전을 받은 영파는 전서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급히 남궁악을 찾아갔다.
마침 남궁악은 선물로 들어온 산삼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 산삼은 해외까지 장사를 나가는 자가 가져왔는데, 고려의 것이라 했다.
“영파입니다.”
“들어와.”
방 안으로 들어온 영파는 급히 보고를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남궁악이 먼저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소신의 눈에는 삼으로 보입니다만.”
“그렇지. 삼이야. 하나 보통삼이 아닌 산삼이지. 그것도 고려 산삼. 무려 사백 년 가까이 묵었다고 하더군. 이 산삼조차도 사백 년을 넘게 살아가는데, 이런 것들을 먹고 사는 인간들은 일백 년을 넘기지 못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더냐.”
고려 산삼은 영파도 들어 알고 있었다.
삼중에 최고로 치는 것이 고려 인삼이었고,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고려 산삼이었다.
강호에도 산삼이 있기는 하나 고려의 것에 비하면 약효가 많이 떨어진다고 했다.
무인들이나 의원들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얻으려는 보물 중의 하나였다.
“의원에게 말해 저녁때 다려 올리라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남궁악은 고개를 저으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야, 아니야. 이제 이런 것들은 내게 소용이 없어. 네가 가져가.”
“예…… 예?”
당황해 하는 영파의 표정이 재미있는지 남궁악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크하하하…….
“이것을 다려 너 혼자 먹을지, 아니면 동은각의 동료들과 함께 먹을지는 네가 결정해.”
“감사합니다, 주공. 정말 감사합니다.”
영파는 바로 바닥에 부복해 머리를 조아렸다.
저 산삼을 복용한다면 공력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산삼이 아니라 두궁천에게서 날아온 전서였다.
“호남에 대부를 지닌 여고수와 칠팔 명의 고수들이 출현했는데, 창을 지닌 고수와 혈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을 지닌 자에 의해 고수 하나가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강호에 보기 드문 고수들이라 두궁천이 급전을 보냈습니다.”
영파가 보고와 함께 전서를 바쳐 올리자 남궁악은 그것을 재빨리 낚아챘다.
그 또한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서의 내용을 확인한 남궁악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대부를 지닌 여고수라면 사형 밑에 있는 종예가 분명했다. 그리고 칠팔 명의 고수들은 그녀의 동료들일 것이다.
종예는 사형도 인정하는 고수 중의 고수였다.
그런데 그런 막강한 고수들과 어울려 싸우고 있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연비강? 아니야. 그자가 연비강이었다면 두궁천이 전서에 써놓았겠지.’
으으음…….
남궁악의 고심은 깊어졌다.
종예를 포함한 칠팔 명의 고수들과 일전을 치르고도 죽었다는 내용이 없는 것을 보면 그자의 무공은 절대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두궁천이 긴장해 급전을 보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남궁악을 조심스럽게 올려다보던 영파가 입을 열었다.
“소신이 생각해 봤는데 전에 중천이 남선을 함락시킬 때 창을 사용하는 자의 무공이 아주 대단…….”
생각에 잠겨 있던 남궁악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