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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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86화
제186화. 겨울이 지나가며(3)
마적강이 성문을 향해 걸어가자 성문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은 긴장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마적강의 정체를 몰랐지만 언뜻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용무로 오셨소?”
크크…….
마적강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이 가소로웠다.
“천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왔다.”
“천주님이라면…… 혹시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내가 이름을 밝힌다고 너희들이 알 것 같으냐? 어서 문이나 열라.”
낯선 사내가 자신들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했는지 무인들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정체를 밝히시오.”
“하찮은 것들이…….”
마적강의 눈빛이 사나워지려 할 때 문루 위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라.”
마적강은 목소리가 들려온 문루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영광이군. 당신이 마중을 다 나오고.”
낄낄낄…….
앞서 산길을 오르던 종예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뭐가 그리 재미있지?”
“등 뒤의 대부가 당신과 꽤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말이오.”
이놈은 언제나 기분이 나쁘다.
종예는 몸을 돌려 산으로 올라갔다.
“대부 솜씨가 천하제일이라고 하던데…… 어떻소? 나와 한번 부딪쳐 보는 것이. 이왕이면 생사투가 좋을 것 같소만.”
“시끄럽다.”
낄낄낄…….
“이제 보니 겁을 먹었군.”
쓰앙!
마적강의 말이 끝나는 순간 번뜩이는 한 줄기 빛이 그의 목을 잘라 버렸다.
목이 잘렸던 마적강의 신형이 흩어지고 일장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쓰읍,
입맛을 다신 마적강은 손가락으로 목을 쓸었다.
손가락 끝마디에 붉은 핏물이 묻어나왔다.
“역시 사나운 계집이군.”
자칫 저 대부에 목이 잘릴 뻔했다.
스산한 살기가 마적강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만하라.”
바로 그때 두 사람의 귓속으로 시천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낄낄낄…….
“오늘 운 좋은 줄 아시오.”
“미친놈. 다음에는 반드시 네 목을 잘라 주마.”
대부를 거둔 종예가 먼저 올라가고 창을 쥐고 있던 마적강도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산을 올라갔다.
“들어와.”
전각 앞에 도착한 종예와 마적강은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주 마적강이 주인을 뵙습니다.”
마적강은 시천세의 얼굴을 대하자마자 바닥에 엎드렸다.
“서쪽은 별일 없느냐?”
시천세는 묘한 눈으로 마적강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떠나올 때까지는 없었습니다.”
비록 바닥에 고개를 숙인 채 엎드려 있었지만, 마적강의 말투에는 공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시천세는 마적강을 꾸짖지 않았다.
“내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예. 감히 묻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묻고 싶은 일이라…… 해 봐.”
시천세의 허락이 떨어지자 마적강은 고개를 들고 시천세와 눈을 마주했다.
“남선은 제가 힘으로 빼앗았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그곳을 동천에 넘겨주셨습니까?”
흐흠……
쓰린 속을 후벼 파는 마적강의 질문이었지만 시천세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충격적인 진실을 밝혔다.
“내가 패했기 때문이다.”
“예……?”
시천세의 대답에 마적강은 물론이고 뒤에 조용히 서 있던 종예까지 놀랐다.
종예 또한 저간의 사정은 대충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시천세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놀람도 잠시 마적강은 입가에 조소를 담았다.
“천하에 적수가 없을 것이라던 주인께서 패하셨단 말씀이십니까?”
“내 짐작보다 그놈이 조금 더 영악했을 뿐이다.”
“그렇군요.”
낄낄낄낄……
마적강의 입에서 예의 그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던 공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절대 패할 것 같지 않던 천하최강자가 또 다른 자에게 패했다.
결국 이자도 자신과 같은 인간이었다.
“이놈! 감히 어디서…….”
마적강이 기분 나쁘게 웃자 종예가 크게 꾸짖으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됐다.”
시천세는 앞으로 나서려는 그녀를 손을 들어 막았다.
부복해 있던 마적강은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펴 시천세와 마주했다.
“주인께 도전하고 싶습니다.”
“이 미친 새끼가……!”
기어이 종예가 분노를 터뜨리며 대부를 뽑아 들었다.
“저 새끼의 목을 치게 허락해 주십시오, 주공.”
“종예.”
시천세의 안색이 변하자 식식대던 종예는 어쩔 수 없이 대부를 거두며 뒤로 물러섰다.
“나에게 도전을 하고 싶다?”
“예. 감히 청하옵니다.”
끌끌끌끌…….
시천세는 무릎을 꿇고 있는 동주 마적강을 응시하며 웃었다.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것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나, 이제 보니 남다른 야망까지 가지고 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미련한 놈이었다.
“네가 패한다면 어찌하겠느냐?”
“당연히 죽을 것입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내가 패한다면?”
“주인을 대신해 제가 강호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것입니다.”
크하하하…….
통쾌하고 시원한 웃음이 시천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미련하기는 하지만 마음에 드는 놈이었다.
이놈은 자신의 속내를 전혀 숨기려 하지 않는다.
강자존이라는 강호의 생리에 가장 어울리는 놈이었다.
“오냐. 밖으로 나가자.”
시천세는 마적강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전각을 나온 마적강은 먼저 넓은 공터 중앙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하늘을 향해 있던 장창이 내려오며 시천세의 얼굴을 겨냥했다.
시천세는 검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오너라.”
크아아아……!
마적강의 입에서 맹수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스아아…….
창날은 순식간에 공간을 좁히며 날아와 시천세의 목을 꿰뚫었다.
목을 꿰뚫고 나온 창은 마적강의 전신을 빼곡하게 채우며 빛을 뿌리다가 하늘 위로 치솟았다.
수십 자루의 창날은 빛이 되어 하늘을 수놓았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던 시천세의 검도 빛에 휩싸였다.
콰콰…… 쾅!
마적강이 서 있는 주변의 땅이 들썩이더니 쩍쩍 갈라졌다.
그러나 시천세의 검을 막아 낸 마적강은 멀쩡했다.
낄낄낄낄낄…….
그는 십장 너머로 날아내리는 시천세를 지켜보며 웃었다.
막았다.
저 괴물 같은 자의 검을 상처조차 입지 않고 멀쩡하게 막아 냈다.
낄낄낄낄…….
그런데 하염없이 웃기만 하던 마적강은 갑자기 웃음을 그치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보았다.
몸은 멀쩡했으나 잡고 있는 철창은 여기저기 베어져 곧 부러질 것 같았고, 긴 창날도 빛을 잃은 채 검게 변해 있었다.
으으으……. 으아아아아!
분에 겨워 소리를 질러 대는 마적강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종예. 이놈이 가지고 있는 철창과 비슷한 것으로 하나 골라 와라.-
전음을 받은 종예는 두말없이 철창을 가져오기 위해 신형을 감췄다.
그녀의 입가에는 마적강을 향한 냉소가 맺혀 있었다.
“제가 패했습니다. 이 목을 치십시오.”
마적강은 시천세를 향해 머리를 늘어뜨렸다.
‘정말 재미있는 놈이군. 한번 쓰고 버리기에 아까운 놈이야.’
이놈은 어딘가 모르게 연비강이라는 놈과 많이 닮았다.
그놈도 뒤를 보지 않을 정도로 저돌적이지만 이놈은 그놈보다 더했다.
“네놈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마.”
시천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죽어 있던 마적강의 눈이 생기를 되찾았다.
“여기 있습니다, 주공.”
언제 나타났는지 종예가 철창 한 자루를 바쳐 올렸다.
그 창은 마적강이 사용하던 창과 닮은 구석이 아주 많았다.
턱.
철창은 무릎을 꿇고 있는 마적강 앞에 떨어졌다.
“너를 풀어 주겠다. 그러니 강호로 나가 마음껏 살아보아라. 단, 중천과 서패의 출입은 금한다.”
결국 남선이나 동천으로 가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마적강이 놀란 것은 이제 자신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세력을 만들든 무공을 연마하든 네 마음대로 해라. 언젠가 나를 넘어설 자신이 생긴다면 그때 찾아오라. 그때에도 패한다면 너를 죽이겠다.”
마적강은 눈앞에 놓인 철장에 오른손을 가져가 굳게 쥐었다.
‘중천과 같은 곳을 남선에 세우리라. 그리하여 남궁악을 죽이고 이자에게 다시 도전하리라.’
그의 계획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곁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서 중천과 같은 곳을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기다리마.”
철창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난 마적강은 바로 등을 돌려 산을 내려갔다.
이제 이곳을 떠난 후에는 주인과 종이 아닌 적의 관계로 마주할 것이다.
“이대로 그냥 보내 줘도 되는 것인지요? 저놈은 분명히 후환으로 남을 것입니다.”
종예는 마적강을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은근히 내비쳤다.
“그런 일은 없다, 종예. 저놈은 이제 돌아오지 못해.”
“저는 주공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곧 알게 되겠지. 그놈의 내 계획대로 움직일지 아니면 연비강처럼 짐작과는 다르게 움직일지.”
도통 모를 말만 이어 가던 시천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종예의 바람을 들어 주었다.
“그놈을 죽일 수 있다면 죽여 봐라. 하나 너 혼자 힘으로는 안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공.”
허리를 넙죽 숙인 종예는 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중천을 나온 마적강은 남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으아아아……!
그의 입에서는 악에 바친 외침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너 같이 약한 놈은 죽어야 해! 마적강, 이 병신 새끼야!”
마적강은 스스로를 욕했다.
시천세만 넘어선다면 천하최강이 된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시천세는 넘보지 못할 높은 산이었다.
으드드득…….
이를 갈며 맹세를 했다.
“반드시……. 놈을 죽이고 내가 이 세상의 주인이 될 것이다.”
막 경공을 펼치려던 마적강은 멀리 대부를 든 채 서 있는 종예를 발견하고는 싸늘하게 웃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시천세가 자신과 같은 강자를 고이 보내 줄 리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뒤에도 고수가 따라붙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좌우에도 또 다른 고수들이 거리를 좁혀 오고 있는 중이었다.
낄낄낄낄…….
패배로 인한 굴욕감이 잦아들고, 그 자리를 핏빛 살심이 채워진다.
“죽어라, 종예!”
창을 꼬나 쥔 마적강은 종예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후방과 좌우에서 거리를 좁혀 오던 자들도 공중으로 신형을 날려 올렸다.
일직선으로 뻗어가는 창날과 종예의 대부가 충돌했다.
콰쾅!
크으으…….
종예는 손목이 부서지는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과연 주공의 말대로 마적강의 무공은 석장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상회하고 있었다.
콰쾅!
놈은 자신을 물러나게 한 후 세 고수들과 어울리고 있는 중이었다.
“죽여!”
종예가 신형을 띄우며 소리치자 사방에서 고수 네 명이 날아올랐다.
콰쾅! 쾅!……!
고수들과 격렬하게 부딪치던 마적강은 형편이 여의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적들은 종예를 포함해 모두 여덟, 잘못했다가는 남쪽에 가보지도 못하고 여기서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몰랐다.
크크크…….
그러나 기분만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세상에 저들을 상대할 고수가 자신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쾅!
다시 한번 종예의 대부와 부딪친 마적강은 손목에 시큰한 고통을 느끼며 그 반동을 이용해 뒤쪽으로 튕겨 날아갔다.
콰쾅!
뒤를 막고 있던 고수들의 병기를 차례로 쳐 낸 마적강은 땅바닥에 한 발을 딛자마자 우측 숲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놓치지 마!”
종예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고수들은 이미 속속 숲으로 스며들어갔다.
“멈춰!”
숲으로 들어간 종예는 급히 소리를 쳐 고수들을 불러 모았다.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한 숲에 흩어져 들어갔다가는 한 사람씩 각개격파를 당할지도 몰랐다.
고수들이 양옆으로 모여들자 종예가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그 뒤를 일곱 명의 고수들이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