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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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83화
제183화. 정체가 밝혀지다(4)
‘맞아, 차크람.’
담노는 그제야 저 병기의 이름을 생각해 냈다.
“그것이 갖고 싶으냐?”
갑자기 나타난 비강의 물음에 양조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비강은 나무 막대기에 걸려 있는 챠크람 열 개를 빼내 양 손목에 걸었다.
“따라 오너라.”
비강이 병기고를 나서자 양조는 주춤주춤 뒤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그런 양조의 뒤를 담노가 웃으며 따라 걸었다.
비강이 걸음을 멈춘 곳은 전각 뒤쪽에 있는 공터였다.
공터 한쪽에는 나뭇잎이 떨어진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서 있었다.
쉬이,
손목에 걸려 있던 샤크람이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탁.
빠른 회전을 하며 날아간 샤크람은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잘라 버리고 나무기둥에 박혔다.
“이것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는 매우 위험한 병기다.”
비강은 넋을 잃은 채 구경을 하고 있는 양조를 돌아보며 경고했다.
“대……단해요.”
하지만 이미 양조는 챠크람이라는 병기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 같았다.
아이가 무인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막지 않는다.
아니, 막기는커녕 가르칠 것이다.
스으으,
비강이 손을 뻗자 나무에 박혀 있던 챠크람이 빠져나와 되돌아 날아왔다.
챠크람을 잡아챈 비강은 그것을 다시 날렸다.
스으으.
희뿌연 기운에 휘감겨 회전하던 챠크람은 나뭇가지를 자르며 날아갔다가 비강의 손으로 되돌아 날아왔다.
아이가 올라서야 할 궁극의 경지를 한 수로 보여 준 것이다.
아아아…….
양조는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인이 되고 싶으냐?”
“네…… 네.”
“따라 오너라.”
양조의 대답을 들은 비강은 다시 산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아이가 황급히 뛰듯 따르고 담노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파팡! 팡! 팡!,
아이의 권과 각, 퇴가 공기를 때렸다.
열심히 권법과 각법, 퇴법을 연마하던 이용은 비강이 나타나자 얼른 무공 연마를 멈추며 허리를 숙였다.
“잘 되느냐?”
“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쪽은 양조라고 하는 아이인데 네게는 동생이 되겠구나. 앞으로 네가 배운 것들을 이 아이에게 가르치도록 해라. 여러 각주들과 나도 가끔 시간을 내 도와줄 것이다.”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교주님.”
어른스런 이용의 대답에 비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양조에게 몸을 돌렸다.
“앞으로 용이와 같은 방에서 같이 자고 같이 먹어라. 용이를 앞으로 형이라 부르도록 하고.”
양조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마구 끄덕거렸다.
“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강은 양조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며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담노를 향해 걸어갔다.
“저기…… 그런데 정말 교주님이세요? 제가 어른들에게 듣기로 교주님은 일월성신이라고 하던데…….”
담노를 향해 걸어가던 비강이 고개를 돌렸다.
저 아이가 계모의 등에 단검을 꽂았을 때부터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과 많이 닮은 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네 마음대로 생각해라. 갑시다, 담노.”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용과 양조의 연무장을 떠나갔다.
“하늘이 흐린 것이 오늘 눈이 올 것 같습니다, 교주님.”
“쏟아지는 눈을 구경하며 술 한잔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담노.”
껄껄껄……,
“좋지요.”
가인들과 함께 중천에 무사히 도착한 약하림은 서둘러 아버지인 약추완을 찾아갔다.
“아버님, 서신의 내용이 정말인가요?”
그녀는 방문을 열자마자 예도 올리기 전에 그것부터 물었다.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라.”
이일은 절대 외부에 흘러나가서는 안 된다.
“말씀해 주세요, 아버님.”
“자리에 앉으래도.”
약추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약하림은 어쩔 수없이 자리에 가 앉았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
심증은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다.
당사자가 확인해 주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약하림은 이미 비강이 월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아니요. 그 아이는 월이가 맞을 거예요.”
약추완도 강하게 부정하지는 못했다.
부정하기에는 연비강과 사위였던 연서문이 너무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죠?”
“내게 다 방법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딸아이를 진정시키기는 했지만 특별한 묘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연비강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약하림은 아비의 속내를 훤히 꿰고 있었다.
“혹시 또 저를 이용하실 생각인가요?”
“맞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구나.”
약하림의 생각에도 그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곧 알아낼 것이니 참고 기다려라.”
“아버님…….”
초조하기는 약추완이나 약하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비강의 은신처를 알아내기 전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끌끌끌…….
“참으로 재미있는 세상이로군.”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시천세는 들고 있던 술병으로 목을 축였다.
약추완의 여식인 약하림이 성안으로 들어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대번에 대강의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 상황이란 것이 설마 연비강의 정체와 얽혀 있으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연비강이 연월이었다라…… 참으로 대단한 놈이 아닌가.”
아비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그리 태연한 놈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끌끌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스웠다.
“그럼 이번에 기대라는 것을 한번 해 볼까.”
하늘은 오직 연비강에게만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 주고 있었다.
하늘이 그놈의 편이 아니라면 벌써 잡혀 죽었을 것이다.
술병을 들고 지붕 위에서 일어서려던 시천세는 문득 뭔가 머릿속을 관통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이거, 이거…… 아무래도 남궁악 그놈의 입김으로 시작된 것 같은데.”
아무도 연비강의 정체를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약추완이 연비강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이 일은 우연일수 없었다.
“놈. 연비강이 표적이 아니라 내가 표적이었구나.”
크크크크…… 크하하하……,
스으으…….
시천세의 신형은 바람에 흩어지는 연기처럼 웃음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따당! 땅! 땅!……!
비강의 검과 담정천의 검이 격렬하게 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스으으으……
설원에 쌓인 눈이 용오름처럼 치솟아 오르다가 사방으로 퍼져 내려앉았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두 사람이 어지럽게 어울린 설원은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았다.
담정천이 허리를 숙이고 물러나자 눈을 밟고 있던 비강의 발이 눈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어떻습니까? 교주님.”
“담노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허허허…….
담노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수연이가 돌아왔습니다.”
하하…….
“잘 됐군요.”
비강은 크게 기뻐했다.
장경주가 담수연과 함께 나갔으니 그녀도 같이 돌아왔을 것이다.
“장 소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교주님.”
“그래요?”
여러 달 만에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는 기대감은 한순간에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 아쉬움을 털어 버렸다.
전각으로 들어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담수연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고생했소. 안으로 들어갑시다.”
비강이 방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담수연은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공손히 바쳐 올렸다.
“장 소저가 교주님께 전하라 하였습니다.”
비강은 갑자기 불안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별다른 내색 없이 봉서를 뜯어 서신을 펼쳤다.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비강의 눈빛이 흔들렸다.
장경주는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녀는 하오문의 재건을 위해 남은 생을 다 바칠 것이라 하였다.
속이 쓰리고 가슴 한쪽이 허전해졌다.
장경주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흔들리던 비강의 눈빛이 고요함을 되찾았다.
그녀가 원한다면 보내 주는 것이 맞다.
평생 그녀를 가슴 한쪽에 품고 살 것이지만 보내 줘야 한다.
“장 소저와 같이 있으며 많은 것을 배웠소?”
비강은 전서를 접으며 담수연의 눈을 주시했다.
“네. 장 소저는 저를 위해…… 아니, 교주님을 위해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럼 신교의 정보는 담 소저가 맡으시오.”
“존명.”
스으으으…….
하얀 눈밭을 두 사람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가로질렀다.
들판을 뒤덮고 있는 하얀 눈은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거렸다.
달빛을 받으며 들판을 가로지르던 두 사람의 신형은 어느 순간 검은 바람이 되어 산 위로 치솟아 올라갔다.
산 정상에 멈춘 두 사람은 건너편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건너편 산 아래에는 수십 개의 흐릿한 불빛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예상 밖이로군요. 어쩌면 동천은 이곳을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산 정상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 사람은 바로 비강과 추옥민이었다.
추옥민은 백계산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홀로 다녀오겠다는 그녀의 말에 마침 백계산의 일을 궁금해 하던 비강이 따라나서게 되었다.
“내려가 봅시다.”
두 사람이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마을로 내려갔다.
전에는 한밤중이라도 뛰어 놀던 아이들이 넘쳐 났으나, 지금은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집 안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뭘 어떻게 해?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논이 있고 밭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당장 먹을 식량조차 없는데 어떻게 씨를 뿌려요? 그리고 산적들이라도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고요. 무인들도 전부 이곳을 떠났잖아요.”
“설마 산적들이 이곳까지 노리겠어?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요.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전에 채주님이 떠나자고 했을 때 따라나서야 했는데…….”
집 안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두 사람은 무인들이 전부 이 마을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남아 있던 무인들이 전부 떠난 것을 보면 다른 곳으로 산채를 옮긴 모양이에요.”
“내가 남궁악이라도 그렇게 했을 거요. 우리 모르게 산채를 옮긴 것을 보면 북서쪽으로 이동했을 거요. 북동쪽에는 십만대산이 있어 그쪽으로 움직였다면 우리가 모를 리 없소.”
“그럼 청해 쪽으로 이동했겠군요.”
추옥민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저들을 내버려 둘 거요? 남은 논과 밭이 많기는 하지만 식량이 없는 형편이라 올 겨울을 넘기기 힘들 거요.”
“네. 이미 저들에게 기회를 줬어요. 이제 저들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매몰차다 못해 비정함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대답이었다.
흐흠…….
그러나 비강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들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이곳은 빈집이 넘쳐 났다.
그리고 십만대산에는 성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그들을 불쌍하게 여겨 아직까지 식량을 대주고 있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도움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돌아갑시다. 할 일이 있소.”
이튿날 아침 담혁수와 육선풍은 움막을 짓고 사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전부 모이시오!”
막 아침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담혁수의 외침 소리에 움막을 나와 담혁수와 육선풍 앞으로 몰려들었다.
“무사 나리. 무슨 일이십니까?”
움막을 짓고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담혁수는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때때로 담혁수가 식량을 나눠 주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한다.
“다름이 아니라 당신들이 살아갈 곳이 생겼소. 그러니 짐을 꾸려 그곳으로 갑시다.”
담혁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우리는 이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제발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씀은 마십시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