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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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81화
제181화. 정체가 밝혀지다(2)
새로 임명된 순찰단주 염후룡은 하남 염가 출신으로 무공이 고강할 뿐 아니라 매사에 냉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자였다.
선대부터 이어 오며 염가와 약가는 겹사돈까지 맺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찾으셨습니까? 부천주.”
“어서 오게.”
염후룡을 반겨 맞은 약추완은 시비를 시켜 차를 내오게 했다.
“일은 힘들지 않은가?”
“약 단주가 꼼꼼하게 서류를 처리해놓고 떠난 덕분에 순찰단의 일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약추완은 여유를 부리고 있었으나, 염후룡은 그의 표정과 어딘지 이상한 몸짓에서 초조함을 엿보았다.
“하명하실 것이 있으신지요?”
허험…….
헛기침으로 속을 진정시킨 약추완은 염후룡을 부른 이유를 밝혔다.
“백리혈, 그 마왕을 찾을 수 있겠는가?”
생각지도 못한 물음이었으나 염후룡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가능은 하겠으나 꽤 많은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일이 년 안에 찾아내기는 힘듭니다.”
한시가 촉박한 상황이라 약추완의 몸은 바짝 달아올랐다.
“정말 방법이 없단 말인가?”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방법을 쓰려면 먼저 약 단주를 찾아야 합니다.”
“그 망할 계집은 왜?”
약추완은 약철빙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맹랑하게도 딸이 아비를 속여 이곳에서 도망쳤다.
그것도 수많은 재물을 챙겨 도망을 쳤으나 어디에도 하소연할 길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궁악에 대항하기 위해 밖에 따로 조직을 만든 것이라 했으나, 정작 약철빙에게서는 보고 한 번 올라오지 않았다.
자신의 핏줄이 아니었다면 벌써 목을 쳐도 열 번은 넘게 쳤을 것이다.
“약 단주라면 백리혈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전 북림에 있을 때 두 사람은 매우 사이가 좋아 연인 관계라는 소문까지 있었습니다.”
약추완도 그 소문은 들었다.
그러나 그 소문이 퍼져 나갈 때쯤 백리혈은 북림을 나갔다.
“나도 그 망할 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네. 달포 전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상인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네.”
“그 상인이 누구입니까?”
약추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인을 알려 주었다.
“우리 중천에 비단을 제공하는 목가 상단의 단주라네.”
“제가 눈썰미 좋고 영리한 수하들을 풀어 알아보겠습니다.”
“한시가 급한 일이니 서두르게.”
“예. 하나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중천에서도 백리혈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그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순찰단주을 내보낸 약추완은 급히 서신을 작성해 중천에 상주하고 있는 가문의 무사들을 불러들였다.
“너는 내가 준 서신을 가지고 가문으로 가 전하라.”
“존명.”
가인 둘을 먼저 내보낸 그는 또 다른 서신을 남아 있는 가인들에게 건넸다.
“너는 이 서신을 악가의 안주인에게 전하도록 하라.”
“존명.”
“만약 악가의 안주인이 이곳에 오기를 원한다면 악가의 가인들과 함께 모셔오라.”
“존명.”
가인들을 전부 내보낸 약추완은 총관의 거처로 서둘러 향했다.
그러나 총관은 자리를 비운 상태라 그는 어쩔 수 없이 직접 총관을 찾아 나섰다.
“총관은 어디에 계시느냐?”
“병기고를 점고하고 계십니다.”
총관의 거처를 지키는 무인의 대답을 들은 약추완은 서둘러 병기고로 향했다.
산을 돌아 내려간 그는 여러 무인들과 함께 병기고에서 낡은 병기들을 꺼내고 있는 총관을 발견했다.
“무엇을 하고 계시오? 총관.”
낡은 병기들을 세고 있던 총관은 슬쩍 얼굴을 찌푸렸다.
“어인 일로 이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부천주.”
“상의할 일이 있어 찾아왔소.”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이곳 병기고까지 찾아왔을까.
벽 총관은 은근슬쩍 약추완을 살폈다.
약추완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다.
마치 저승사자를 두려워하는 겁 많은 노인 같았다.
“말씀해 보십시오, 부천주.”
“백리혈을 이대로 놔둔다면 두고두고 우리 중천의 후환이 될 것이오. 어서 그자를 찾아야 하오.”
갑자기 백리혈의 일을 왜 꺼내는 것일까?
이미 중천에서는 연비강을 찾기 위해 무인들을 풀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있었다.
“지금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은 부천주께서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미흡하오. 더 많은 무인들을 풀어야 할 것이오.”
“먼저 무슨 일인지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역시 벽 총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약추완은 자신의 가문과 관련된 일을 꺼내 놓을 형편도 아니었다.
약추완은 거짓을 꾸며 말했다.
“들리는 소문으로 백리혈 그자가 우리 중천을 노리고 있다고 하오.”
“그 소문은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내게 은밀히 정보를 전해 주는 자를 밝히란 말이오? 벽 총관도 그런 자들이 많지 않소?”
벽 총관의 의심을 능수능란하게 피해 간 약추완이 재촉을 거듭했다.
“그 소문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한시라도 빨리 그자를 찾아 없애야 하오. 해서 나는 가문의 가인들과 지인들을 총동원할 생각이오.”
결국 약추완이 총관을 찾아간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먼저 자신이 움직이는 목적을 밝혀 행여나 있을 의심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알겠습니다, 부천주.”
“약추완이 가문뿐 아니라 지인들까지 전부 풀어 백리혈을 찾을 것이라…… 차라리 잘됐군.”
시천세는 벽 총관의 보고를 덤덤하게 넘겼다.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주공.”
“물론 그렇겠지.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놈처럼 그리 급하게 찾는 것을 보면 분명 화급을 다툴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겠지. 종예, 알아 봐.”
“예.”
“잠깐.”
종예가 명령을 받고 방을 나가려 할 때 시천세가 그녀를 다시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의자에 몸을 묻고 생각에 잠겼다.
탐욕 가득한 놈에게 있어 화급을 다투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과 권력이고, 그다음은 가문이었다.
“총관, 약가의 가솔들 중에도 총관의 사람이 있겠지?”
벽하원은 깜짝 놀랐으나 얼른 허리를 숙였다.
“예, 주공.”
“그럼 총관이 알아봐.”
“예, 주공.”
명령을 받은 총관이 나가고 나자 시천세는 종예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어쩌면 아주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종예 너도 은밀히 알아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종예까지 방을 나가자 시천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모든 것이 결판이 난다.
그때까지는 죽은 듯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십만대산으로 들어선 주동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마주했다.
놀랍게도 이 거칠고 높디높은 산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네가 찾던 곳이 이곳이냐?”
“모르겠어요, 아저씨.”
며칠 동안 같이 움직인 탓인지 아이는 이제 주동을 겁내지 않았다.
아이는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던 손을 꺼냈다.
손안에는 비강이 전해 준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전에 어떤 형이 이것을 전해 주며 십만대산을 찾아오라고 했어요.”
주동은 아이가 쥐고 있는 단검을 내려다보았다.
병기에 대한 안목은 없었지만, 아이가 쥐고 있는 단검은 참으로 서슬이 퍼럴 정도로 잘 만든 보검이었다.
“그것을 잠깐 내게 빌려줄 수 있겠느냐?”
“……네.”
아이는 조금 꺼림칙했지만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주동에게 건넸다.
단검을 건네받은 주동은 멀리서부터 걸어오고 있는 강호인을 향해 다가갔다.
멀리서 걸어오고 있던 강호인도 주동을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약 십여 장을 격하고 멈춰 섰다.
‘세상에는 인물들이 참으로 많구나.’
주동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젊은 무인의 기세에 적지 않은 감탄을 했다.
젊은 무인은 한 자루 잘 벼린 검이 땅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위험한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무슨 일로 십만대산을 찾아오셨습니까?”
정중한 질문이 젊은 무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주동은 단검을 내밀며 되물었다.
“혹시 이 단검의 주인을 알고 계십니까?”
젊은 무인의 시선이 단검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곧 그 젊은 무인의 눈빛이 동요했다.
“아주 귀한 분이 방문하셨군요. 담혁수가 인사 올립니다.”
저 단검은 할아버지가 교주님을 위해 선물한 것이었다.
그 단검이 낯선 자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은 교주님이 매우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했다는 뜻이었다.
담혁수가 자신을 소개하자 주동도 얼결에 이름을 밝혔다.
“주동입니다.”
“반갑습니다, 주 대협.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아…… 예.”
담혁수가 앞장을 서고 주동과 아이가 뒤를 따라 걸었다.
아이는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주동과 아이는 십만대산 안으로 걷고 또 걸었다.
마을이 끝나고 산을 돌아가니 산과 산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성벽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아…….
“참으로 대단하구나.”
주동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토해 냈다.
산과 산을 가로막고 있는 성벽은 웅장했으며, 성벽 위에는 아름다운 문루까지 세워져 있었다.
주동의 감탄사에 담혁수가 밝게 웃었다.
하하…….
“저 성벽을 세우기 위해 참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문을 열어라!”
끼이이익…….
담혁수를 발견한 문루에서 외침이 들려오자 거대한 성문이 열리며 안의 전경이 시야에 잡혔다.
성벽 안쪽에도 수많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 가운데로 넓은 대로가 뚫려 있었다.
담혁수는 주동과 아이를 안내해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을 지나자 맞은편 산중턱에 여러 채의 전각들이 보였다.
지붕을 전부 기와로 올린 전각들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산 중턱으로 이어진 마을 오른쪽의 길을 따라 오른 그들은 넓은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연무장 가장자리에는 기암괴석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흔히 구경할 수 있는 바위들이 아니었다.
담혁수는 비강의 거처 앞에 멈춰 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교주님, 주동이라는 귀한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방문이 열리며 비강이 얼굴을 드러냈다.
“억!”
비강의 얼굴을 확인한 주동은 깜짝 놀랐다.
어찌하여 저자가 이곳에 있단 말인가.
주동은 얼마나 놀랐는지 저도 모르게 검을 빼 들며 주춤 물러설 정도였다.
“놈!”
주동이 검을 빼 들자마자 담혁수도 비강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아이는 이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적인 줄 모르고 함부로 안으로 들였습니다.”
당황한 담혁수의 말을 흘려들은 비강이 앞으로 나섰다.
비강은 투명한 눈으로 주동을 응시했다.
“나와 싸우러 온 것이냐?”
아니었다.
그저 아이를 데려다주러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아니오. 나는 그저…… 이 아이를 데려다주고자 했을 뿐이오.”
“그럼 그 검은 뭐지?”
주동의 눈빛은 탁해지고 머릿속은 뒤엉켜 어지러웠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와 다시 싸워야 할까?
아니, 저자가 지금도 적이기는 한 걸까?
주동이 쥐고 있는 검이 흔들렸다.
스릉…….
이내 검은 내려지고 검집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주동이 검을 집어넣자 담혁수도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검을 집어넣었다.
“이제 이 아이를 이곳까지 데려다주었으니 나는 그만 돌아갔으면 하오. 허락해 주시겠소?”
비강은 대답을 미룬 채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잘 왔다.”
겁을 집어먹고 있던 아이는 비강과 주동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냐?”
“이…… 아저씨는 좋은 분이에요.”
아이의 말에 비강은 미소를 지었다.
“호 각주, 이 아이를 데려가시오.”
“저자는 어찌해야……?”
“내게 맡기시오.”
담혁수는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저의 실책입니다, 교주님.”
“괜찮소. 신경 쓰지 마시오. 돌아가기 전에 나와 술이나 한잔 하겠나?”
비강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내를 대하자 담혁수도 안심을 하며 아이를 다른 전각으로 데려갔다.
“바로 술상을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담혁수의 말을 뒤로하며 비강은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곧 비강의 등을 좇아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