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80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80화
제180화. 정체가 밝혀지다(1)
비강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터라 군말 없이 각주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각주들이 전부 방을 나가고 방 안에는 오직 비강과 추옥민만이 남게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십시오.”
그때까지 비강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추옥민이었다.
그녀는 육선풍과 다르게 지금도 망설이고 있었다.
과연 십만대산으로 도망친 것이 잘한 일일까?
자신들로 인해 이 십만대산에 큰 화가 미치지 않을까?
“교주께서는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남궁악을 감당할 수 있는지 묻고 싶어요.”
추옥민이 가장 묻고 싶은 말이었다.
비강은 설핏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 십만대산은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자의 손에서 살아남았을까?
추옥민의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비강이 말을 이었다.
“그자와 나의 승패에 관해 알고 싶은 모양이로군요. 내가 패했습니다. 하나 어떻게 그자의 손에 살아남았는지는 묻지 마십시오.”
어떻게 그자의 손에 살아남았을까?
추옥민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말아달라고 하니 묻지 못한다.
대신 이것만은 꼭 알고 싶었다.
“교주와 남궁악은 여전히 적이겠지요?”
“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자가 죽지 않는다면 내가 죽겠지요.”
이 대답이면 충분했다.
사부는 제자의 자유를 위해 죽었지만 제자는 자유를 얻지 못했다.
어떻게든 사부의 죽음에 대한 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제자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감숙과 서장이 넓고 넓다지만 우리는 이곳이 아니면 피할 곳이 없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저와 산채의 식구들을 받아들여 주신다면 그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추옥민은 비강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산채를 떠나오며 챙겨 온 은자와 재물들은 많았다.
하지만 당장 있을지도 모르는 동천의 추적을 피할 자신은 없었다.
어떻게 남궁악의 손에서 살아남았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이곳이라면 안전할 것 같았다.
비강은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칠 년. 내가 당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새로운 터전을 찾아내 자리를 잡을 자신이 있었다.
“부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힘없는 양민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성 안에 산채의 식구들이 자리를 잡을 장소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비강의 허락이 떨어지자 추옥민은 이마를 바닥에 가져다 댔다.
“엄마, 배고파.”
“조금만 참아. 성 안에 들어가면 밥을 해 줄게.”
엄마가 자식을 배가 고프다는 자식을 끌어안으며 달랬다.
“아버님,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채주님께서 어떻게든 해 주실 겁니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에휴…… 늙으면 죽어야 하는 것인데…….”
양민들을 지켜보고 있는 마반의 속도 좋지 않았다.
이곳에서 자신들을 거부한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마반은 십여 장 앞에 조용히 서 있는 담혁수를 바라보았다.
상인들의 상행을 호위할 때 저 담혁수라는 젊은 무인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담혁수가 밝은 얼굴과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넸었다.
마반과 시선을 마주하던 담혁수는 문득 고개를 돌려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목통에 물을 가득 떠와 저들에게 먹여라.”
“예.”
수하들 서너 명이 담혁수의 명을 받고 성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담 대협.”
마반은 살짝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어차피 곧 한식구가 될 것이 아닙니까.”
담혁수의 대꾸에 마반은 크게 놀랐다.
어찌 저렇게 자신한단 말인가.
마반이 놀란 표정을 짓자 담혁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말고 편안히 기다리십시오.”
잠시 후 수하들이 물을 떠와 나이 든 노인들과 여인, 그리고 아이들부터 마른 목을 축이게 했다.
양민들에 이어 무인들이 차례를 물을 마실 때쯤 육선풍이 성 안에서 달려 나왔다.
“허락을 받았소!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오!”
그의 힘찬 외침소리에 나이 든 어른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다.
와아!
그런 그들의 모습을 미소로 지켜보던 마반은 또다시 담혁수와 눈이 마주쳤다.
이에 마반은 살짝 머리를 숙였고, 담혁수도 미소를 지으며 마주 머리를 숙여 화답했다.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아이는 주변을 살피다가 품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냈다.
손잡이가 상아로 만들어진 것이 제법 귀해 보이는 단검이었다.
이 단검은 객잔의 손님으로 온 어떤 무인이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 단검을 어머니의 등에 꽂았다.
단검을 소중하게 품속에 집어넣은 아이는 길을 재촉했다.
아이에게는 병들어 누워 있는 아버지가 있었으나 얼마 전에 죽어 홀로 남았다.
힘들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사람 하나가 집에 찾아왔다.
그 마을사람은 홀로 남은 아이를 불쌍하게 여겨 자신이 돌보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아이는 그 사람을 믿지 않았다.
평소에도 행실이 고약했던 사람이 갑자기 무슨 마음이 들어 고아를 돌보겠는가.
그 사람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객잔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결국 회유와 협박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은자 한 냥 받지 못한 채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야 했다.
아이는 길을 걸으며 낡은 행낭에서 주먹밥 한 덩이를 꺼냈다.
집을 떠날 때 싸 온 것인데 제법 싸늘한 날씨 탓인지 아직까지 쉰내는 나지 않았다.
주먹밥을 입안으로 우겨넣으며 길을 걷던 아이는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는 강호인을 발견했다.
아이는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걸음을 늦췄다.
비록 나이 어린아이었지만 강호인들이 무섭다는 것은 직접 겪어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가던 강호인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몸을 돌렸다.
강호인은 뒷걸음질을 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려워할 것 없어.”
뒷걸음질을 하던 아이는 마치 바로 옆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는 강호인의 목소리를 듣고는 두려움에 더욱 몸을 떨었다.
들판에 서 있던 강호인은 아이를 향해 걸어왔다.
느린 걸음이었지만 어느새 아이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혹시 남은 밥이 있느냐?”
아이는 허겁지겁 행낭에서 밥 한 덩이를 꺼내 내밀었다.
“바…… 밥이 조금 쉬었어요.”
“괜찮아.”
아이의 손에 있는 밥덩이를 빼앗듯 낚아챈 강호인은 그것을 입에 우겨넣었다.
우적우적……
강호인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몹시 배를 주렸던 모양이었다.
두려운 눈으로 강호인을 지켜보던 아이는 다시 행낭을 열어 밥 한 덩이를 더 꺼냈다.
행낭에 들어 있는 마지막 밥덩이였다.
“그것까지 내가 먹을 수는 없지. 고맙구나.”
어느새 밥덩이 하나를 먹어치운 강호인은 들판으로 몸을 돌렸다.
십여 걸음 걸어가던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까지 가느냐?”
“시…… 십만대산이오.”
“십만대산? 그곳이 너의 집이냐?”
“아…… 아니요. 저는 집이 없어요.”
“나와 같구나. 그곳까지 데려다주마.”
아이는 강호인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함부로 그 말을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십만대산은 어느 쪽이냐?”
“저도 잘 모르는데…… 상인들이 이르기를 저쪽으로 쭉 가보랬어요.”
아이가 방향을 가리키자 강호인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뒤를 아이가 주춤거리며 따라 걸었다.
이 낯선 강호인의 정체는 마동에서 나온 마인, 주동이었다.
그는 비강과의 싸움에서 패하고 난 뒤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또한 가족들이 살고 있는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도 알게 되었다.
주동은 마인들을 떠나 고향을 찾아갔다.
고향을 찾아가 왜 자신을 버렸냐고 묻고 싶었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어 그러했다지만, 정체조차 모르는 낯선 자에게 아들을 팔아넘길 수 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러나 기억을 떠올리며 어렵게 찾아간 고향에 그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을사람들을 붙잡고 가족들의 행방을 물었지만 제대로 아는 자는 없었다.
주동은 갈 곳이 없었다.
다 큰 어른이 찾는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 천애고아가 된 것이다.
결국 생각 끝에 정한 목적지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마동이었다.
이제 그곳은 버려져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런데 십만대산을 찾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
“갈 곳이 그곳밖에 없어요.”
“그렇구나. 너는 정말 나와 똑같구나.”
***
“낯선 자가 이 서신을 부천주께 전해 달라 하였습니다.”
중천의 정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봉서를 조심스럽게 바쳐 올렸다.
“낯선 자가 무인이었느냐?”
“예.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는데 눈빛이 몹시 날카로운 자였습니다.”
약추완은 선뜻 봉서를 받아 들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저 봉서에서 불길한 느낌이 전해져왔기 때문이었다.
지금 약추완은 적지 않게 몸을 사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목숨마저 위태로웠다.
그런 그의 모습에 수문장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부천주님……?”
“아…… 거기 내려놓고 돌아가게.”
“예.”
수문장은 탁자 위에 봉서를 놓아두고 방을 나갔다.
약추완은 한참 동안이나 탁자 위의 봉서를 내려다보다가 어쩔 수 없이 손을 가져갔다.
봉서를 열고 안에 들어 있는 서신을 펴본 약추완의 눈은 격랑이라도 만난 듯 거칠게 흔들렸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이게 어찌 된 일이야?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니?”
분명 그 아이는 죽었다.
아니,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죽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극독에 중독되었기에 도저히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서신에는 살아 있는 아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쓰여 있었다.
“연…… 비강…… 연비강이라니? 연비강이라니!”
약추완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약추완의 고함 소리에 밖에 있던 호위무사가 물었다.
“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급히 목소리를 가다듬어 대답했지만, 지금 약추완의 심장은 벌렁거리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이…… 이걸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연비강은 강호 무림 최강자인 무신이었다.
그런 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가문 하나는 하룻밤 새에 초토화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놈은 왜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까?
‘가만…… 혹시 그놈은 자신의 가문도 모를뿐더러 아비가 어찌 죽었는지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
약추완은 너무도 황망하고 두려운 나머지 희박한 가능성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지, 아니야. 그놈이 스스로 연씨 성을 쓰는 것을 보면 아비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런 결론을 돌출한 약추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잔인하다.
세상에 이렇게 잔인한 놈이 있기는 있을까?
놈은 지금 복수를 즐기고 있는 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처절하게 복수를 완성해 나가며 원수의 반응까지 살피고 있었다.
‘이 난국을 타계할 좋은 계책이 없을까?
안전부절, 방 안을 서성이며 불안에 떨던 약추완은 곧 묘책 하나를 떠올렸다.
“옳거니.”
자고로 천륜은 사람의 힘으로 끊어 내려야 끊어 낼 수 없다 했었다.
그렇다면 그 천륜을 다시 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설마 놈이 제 어미를 제 손으로 죽이지는 않겠지.’
그놈이 비록 사위였던 악규를 죽였다고 하지만 가문과 자신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라고 해도 그렇게 해야 해.’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먼저 연비강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했다.
중천에서도 놈을 찾고 있기는 하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순찰단주를 불러오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