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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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79화
제179화. 백계산을 얻다
남궁악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여병천을 죽였으나 바로 후회했다.
“이 늙은이가 끝까지…….”
분명 여병천 이 늙은이는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고자 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제자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것이다.
제자가 사부의 죽음을 알게 된다면 배신을 할 것이 분명하고, 배신을 한다면 백계산이 위험해진다.
“영파, 동은각에서 쉬고 있는 녀석들 다섯만 보내 백계산을 접수하라 이르라. 또한 산채를 다른 곳으로 옮겨 연비강의 공격에 대비하라 전하라.”
“존명.”
영파 또한 남궁악의 걱정을 간파했는지 급하게 움직였다.
“빌어먹을.”
남궁악은 피가 흥건한 바닥을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사부가 이르기를 열흘 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남겨 놓은 서신을 살펴보라 했었다.
열흘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사부를 걱정하는 추옥민은 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몇 번이나 서신을 뜯어보려 했으나 사부가 남기고 간 말씀이 너무나 지엄해 억지로 참고 기다렸다.
드디어 열흘째가 되는 날 아침, 추옥민은 사부가 남기고 간 서신을 뜯었다.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추옥민의 손은 하염없이 떨렸고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서신에는 사부의 죽음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날 일까지 적혀 있었다.
사부는 서신을 읽은 즉시 이 산채를 떠나라했다.
“사부님…….”
추옥민은 서신을 부여잡고 울었다.
그러나 마냥 사부의 죽음을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소매로 눈물을 닦은 그녀는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육 두령! 육 두령!”
그녀의 외침 소리에 육선풍이 집 안에서 달려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채주.”
추옥민은 사부가 남긴 서신을 보여 주며 말했다.
“지금 당장 산채를 떠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전부 동천의 손에 죽을 거예요.”
육선풍도 머리가 그리 아둔한 자가 아니었다.
대번에 그녀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우선 사람들과 재물을 챙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자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많은 사람들을 먼 곳까지 데리고 갈수 없으니 가까운 십만대산으로 잠시 몸을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바로 움직여요, 육 두령.”
“예.”
추옥민의 명령을 받은 육선풍은 산채에 마련이 된 종을 요란하게 울렸다.
댕! 댕! 댕!……!
위급한 상황에만 울리는 종소리에 마을사람들은 전부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육선풍은 그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이곳 백계산을 버리고 다는 곳으로 이주할 것입니다! 급한 사정이 있어 그리하는 것이니 간단하게 짐을 챙겨 나오십시오!”
“아니. 내 집을 두고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육 두령!”
“맞습니다. 우린 죽어도 집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당연하게도 이주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그럴 것이 허름한 움막과도 같은 곳에서 살던 자들이 초옥이기는 했지만 집 같은 것을 짓고 살았으니 유달리 애착이 강한 것이다.
육선풍은 이주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답답했으나 그들을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또한 설득당할 자들도 아니었고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이곳에 남고자 하는 사람들은 남으십시오. 떠날 사람들만 채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십시오.”
말을 마친 육선풍은 고수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마침 감숙 명문 무가 출신인 마반이 여러 고수들을 데리고 뛰어왔다.
“어떻게 된 일이오? 육 두령.”
“일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먼저 산채부터 벗어난 후에 설명해 드리겠소.”
“알겠소이다.”
마반은 군소리 없이 고수들을 이끌고 다른 고수들을 찾아 나섰다.
육선풍도 거처로 돌아가 산채를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무복 몇 벌과 은자 몇 냥, 그것이 산채를 떠날 채비를 하는 육선풍의 전부였다.
비강과 아직 서른이 안 되어 보이는 사내가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사내의 이름은 방과.
바로 담정천이 총관으로 추천하고 데려온 자였다.
“전에 있던 가문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 일에 대해 할 말은 없소?”
첫 질문을 받은 방과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백만 대군조차도 사람의 마음은 막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하물며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는 제가 어찌 마음을 그 소저의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도 그 소저를 마음에 두고 있었소?”
“아닙니다. 하나 막지는 않았습니다.”
비강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자는 자신의 말대로 칼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 백면서생이었다.
그런 자가 무인의 눈빛을 당당하게 마주 보며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명이 짧겠군.’
벌컥.
비강이 마음속으로 사내를 평가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신녀 강무화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비강의 허락조차 받지 않고 옆에 앉아 사내를 응시했다.
사내도 신녀를 마주 바라보았다.
“요절할 상이로군요.”
사내를 대하자마자 내린 신녀의 평가였다.
하하하…….
비강은 크게 웃었지만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점쟁이라도 되십니까?”
사내의 질문에 신녀는 묘한 미소를 짓더니 비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괜찮아 보여요.-
-요절할 상이라 하지 않았소?-
-네. 교주님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잖아요. 제 말이 틀렸나요?-
-정말 못 말리겠군.-
신녀의 말을 온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으나, 비강은 방과라는 사내가 마음에 들었다.
“방 공자를 오늘부로 이곳의 총관으로 임명하겠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방과는 넙죽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비강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곳은 뭐 하는 곳이며, 제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의 정체는 뭡니까?”
비강은 사내의 질문이 기가 막혔다.
“담 대협에게 듣지 못했소?”
“큰 무문의 총관이 필요하다고 해서 따라나섰습니다. 그분은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더군요.”
“이곳은 일월신교요. 나는 신교의 교주이고.”
“신교?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교(邪敎) 같은 곳이로군요?”
“맞소.”
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방과가 조금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너무…… 솔직한 게 아닙니까?”
“사교를 사교라 하는데 뭐가 잘못되었소? 숨겨봤자 어차피 알게 될 게 아니오?”
“그렇기는 하지만…… 너무 솔직하게 대답을 하시니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방과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욱 생기가 도는 눈을 하고 있는 것이 큰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한데 교주님의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 총관으로서 교주님의 존함이나 별호라도 알아야 형편에 맞게 처신을 할 게 아니겠습니까.”
비강은 선선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연비강이라 하오. 각주들 외에는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자들이 없으니 비밀을 지켜 주시오.”
“그러지요…… 어?”
방과의 눈망울은 비강의 얼굴에 고정이 된 채 점점 커져 갔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눈망울로 되돌아갔다.
“정말…… 놀랐습니다. 강호에서 무신으로 불리는 분을 직접 뵙게 되다니…….”
“두렵지 않소?”
비강이 떠보듯 물었다.
“두렵습니다.”
“일 보시오.”
“네.”
머리를 숙이고 방을 나가는 방과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비강은 꽤 흡족한 얼굴이었다.
운 좋게도 제법 괜찮아 보이는 자가 총관으로 들어왔다.
“심지가 곧은 자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그 때문에 천수를 누리지 못할 거예요.”
“신녀의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오.”
“저도 제 예언이 틀렸으면 좋겠어요.”
마을을 순찰한 담혁수는 성벽 위의 문루에 올랐다.
아직까지도 성 안에는 건물이 세워지고 있어 마을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형편이었지만,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을 때보다는 한결 여유로웠다.
그때는 무공을 연마할 시간조차 부족할 정도로 아주 바빴었다.
문루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담혁수의 눈에 문득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뭐지?’
안력을 집중해 살펴보니 그것은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이었다.
“비상!”
담혁수의 짤막한 외침에 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성벽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그들 눈에 사람들이 보일 리 없었다.
아직까지 거리가 너무 멀었고, 산이 좌우로 엇갈려 있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협소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각주님.”
“기다려 봐.”
담혁수의 말대로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충 사백은 넘어 보이는군. 그런데 왜 저들이…….”
성벽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자들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사백은 넘었다.
하지만 담혁수가 놀란 것은 그들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앞에 선 자, 그와도 안면이 있는 육선풍 때문이었다.
그리고 육선풍의 뒤에는 백계산의 채주라는 추옥민도 있었다.
담혁수가 문루에서 아래로 내려가자 그곳에 있던 십여 명의 수하들이 뒤를 쫓아 움직였다.
삐…… 이걱!
곧 커다란 대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담혁수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육선풍을 향해 다가갔다.
양편이 점점 가까워지고 약 백여 장 정도의 거리가 되었을 때 담혁수가 멈춰 섰다.
담혁수가 멈춰 서자 육선풍도 뒤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 혼자 앞으로 걸어 나갔다.
담혁수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육선풍을 주시하다가 등 뒤 너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남녀노소를 보호하듯 호위하고 있는 수십 명의 무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보호받는 사람들은 나이 든 노인에서부터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전부 짐을 지거나 손에 들고 있었다.
그들 모두 불안한 얼굴이었고, 조금 덜하기는 했지만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육 두령.”
담혁수가 먼저 말을 냈다.
“교주님을 뵙게 해 주십시오. 담 대협, 부탁드립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먼저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교주님을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육선풍은 호탕하고 당당한 사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디에도 당당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담혁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육선풍은 적잖이 안심을 하며 몸을 돌렸다.
“가시지요, 채주님. 마 두령은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시오.”
“알겠소.”
소 두령 마반은 수하들을 시켜 지친 사람들을 쉬게 했다.
채주 추옥민이 앞으로 나서자 담혁수는 그들을 안내해 성안으로 들어갔다.
상석에 앉아 있는 비강도 말이 없었고, 방 안에 모여 앉은 각주들과 총관도 말이 없었다.
이미 추옥민으로부터 저간의 사정을 모두 들었다.
“우리 산채가 다른 곳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만이라도 이 십만대산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
육선풍의 간곡한 요청이 아니더라도 비강은 저들을 이곳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육선풍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각주들에게 본심을 털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의견을 말해 보시오.”
비강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담노가 머리를 조아리며 먼저 나섰다.
“교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이 늙은이는 무조건 교주님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담노 다운 말이었으나 담정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지금 우리는 은인자중하며 크게 세력을 일으켜 세워야 할 때입니다. 만약 저들을 받아들였다가 동천의 관심이라도 받게 된다면 일월신교는 시작도 하기 끝장이 날 것입니다.”
담정천의 의견을 들은 비강은 여러 각주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른 각주들의 생각은 어떻소?”
“교주님의 뜻대로 하세요.”
신녀가 부교주와 뜻을 같이하자 무진도는 냉큼 그녀의 말에 찬동했다.
“저도 신녀와 같은 생각입니다. 저분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일월신교의 힘은 단번에 두 배 이상이 될 것입니다.”
각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며 갑론을박을 했지만, 이곳에 들어온 지 이틀이 되지 않은 총관 방과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월신교도 이곳에 들어와 알게 되었고, 백계산에 산적들의 산채가 있다는 사실도 조금 전에야 알았다.
“교주께 단 둘만의 독대를 청합니다.”
그동안 말없이 방안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던 추옥민이 입을 열었다.
비강은 잠시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모두 나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