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77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77화
제177화. 교주가 되다
“그 산채의 산적들과 우리는 사이가 아주 좋습니다. 그러니 손님으로 대접해야 할 것입니다.”
“들어오라 이르시오.”
“제가 직접 모셔오겠습니다, 교주님.”
비강의 허락이 떨어지자 담혁수가 문을 열고나갔다.
다시 술자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담혁수가 세 명의 인물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한 사람은 채주 추옥민이었고 또 한 사람은 육선풍이었으며 또 한 사람은 나이 든 노인이었는데 비강이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기운은 예사인물이 아니란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각주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을 맞이했다.
마지막으로 비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육선풍이 먼저 머리를 숙였다.
“육선풍이 인사 올립니다.”
“무사한 모습을 뵙게 되니 반가워요.”
육선풍의 뒤를 이어 추옥민이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나이 든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여병천이라는 사람으로 채주의 사부가 되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일월신교의 교주입니다.”
비강은 스스로를 일월신교의 교주라 말했다.
그 말에 육선풍과 추옥민이 놀랐고 여병천의 눈빛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잔치를 열고 있었으니 자리에 함께 하시지요.”
비강이 자리를 권하자 담혁수는 얼른 의자를 가져왔다.
그렇게 술상이 새로 차려지고 술이 새로 올랐다.
추옥민과 여병천, 육선풍은 방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전부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특히 신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노인과 신비한 분위기의 여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병천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분명 천주는 연비강을 죽일 것이라 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 천주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일부러 이곳을 찾아와 본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이곳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산채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이곳의 규모는 대단했다.
더군다나 이미 죽었어야 할 연비강은 아무렇지도 않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허허허…….
“한잔 받으시오.”
무진도는 어느새 여느 때의 신선으로 돌아가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여병천이 화들짝 놀라 잔을 들었다.
“감사하오이다. 한데 존함이 어찌 되십니까?”
허허허허…….
“이 늙은이는 녹원선인이라 하오.”
선인이라니…….
여병천은 신선이라는 존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신선이라는 존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눈앞에 앉아 있는 노인은 분명 신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본노는 수미산 아래에서 도를 닦아…….”
비강은 무진도가 주절거리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며 술잔을 비웠다.
저들이 왜 이곳에 갑자기 찾아온 것일까?
또한 저들의 안색이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비강이 내심을 숨기고 세 사람을 살피고 있을 때 강무화가 추옥민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혹시 태어난 날과 시를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왜 묻지요?”
“그냥 알고 싶어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저는 언제 태어났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군요. 하면 여 대협께서 대신 대답해 주시겠어요?”
강무화의 물음에 여병천은 당황했다.
하지만 태연하게 자신이 태어난 날과 시를 말해 주었다.
강무화는 손가락을 들어 무언가를 헤아렸다.
“십만대산이 이렇게 변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세 사람 중에 육선풍의 안색이 그나마 나아 보였다.
그는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좋게 보아주어 고맙소, 육 대협.”
껄껄껄…….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교주님, 저 여병천이라는 사람은 교주님의 적이에요.-
갑자기 날아든 강무화의 전음에 비강은 피식 헛웃음을 지었다.
전음을 보낼 정도의 고수가 여태까지 무공을 숨기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
-칭찬으로 들을 게요. 고마워요.-
끄응,
고개를 저은 비강은 곧 추옥민을 응시하며 물었다.
“내게 볼일이 있어 찾아온 것 같은데 말씀해 보십시오.”
추옥민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여병천이 추옥민을 대신해 입을 열었다.
“교주와 독대를 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소?”
“그럽시다.”
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술잔을 기울이던 각주들은 전부 방을 나갔다.
비강만 방안에 남게 되자 여병천이 말문을 열었다.
“나는 동천의 사람이라오.”
비강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남궁악을 찾아오셨소이까?”
바로 핵심을 찌르는 비강의 질문에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육 대협, 당신도 산채가 동천의 것임을 알고 있었소?”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외다. 나 또한 당신들에게 정체를 숨기고 있었으니. 나는 강호에서 백리혈로 불리고 있는 연비강이오.”
세 사람 또한 비강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군. 아니, 동천 소속이니 당연하다고 해야 하나.”
“천주가 일러 주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추옥민의 솔직한 대답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남궁악이 이곳에 왔었소. 지금쯤이면 아마도 동천에 도착했을 것이오. 걸음이 빠른 자이니.”
“그렇군요.”
“내가 그자의 손에서 무사히 살아남게 된 이유는 그자에게 직접 물어보시오.”
여병천은 쓰게 웃었다.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하기는 하지만 묻지 못한다.
이유를 묻는다면 분명 목이 잘릴 테니까.
“고맙소이다. 우리는 이만 가 볼까 하오.”
“안녕히 돌아가시오.”
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자 비강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각주들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자, 마저 듭시다.”
비강이 술잔을 들어 올리자 각주들도 술잔을 들었다.
신교를 나서고 있는 세 사람은 마을을 지나쳐 걸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했고, 아이들은 전부 즐거워 보였다.
산채와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담혁수 대협이라 하셨소?”
여병천은 자신들을 안내하고 있는 담혁수에게 말을 걸었다.
“네. 하지만 대협은 아닙니다. 그냥 담 소협이라 불러 주십시오.”
허허…….
기분 좋은 웃음이 여병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재기발랄한 젊은이었다.
하지만 저 젊은이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은은한 기운은 평범하지 않았다.
“교주는 어떤 사람이오?”
하하…….
담혁수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모습이 참으로 순진해 보였다.
“아주 좋은 분입니다.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분이지요. 강호에서는 마왕으로 불릴 정도로 잔인한 분이란 소문이 있지만 그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육선풍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여병천 또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마왕으로 불릴 정도로 잔인한 자라면 남선의 협객이라는 남협 북궁도와 죽음을 초월한 친분을 맺었을 리 없었다.
놀랍게도 연비강은 벗의 원수를 갚기 위해 홀로 서패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그 일로 인해 수많은 억울한 죽음이 있을 것이나, 그것은 강호에서 살아가는 칼 든 자들의 운명이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에도 좋은 얼굴로 뵙기를 바랍니다.”
문 앞까지 안내한 담혁수가 세 사람을 향해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고맙소, 담 대협. 그럼 다음에 또 뵙겠소.”
세 사람도 담혁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문을 나섰다.
십만대산을 벗어나는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백리혈이 우리 정체를 알게 되었으니 틀림없이 공격할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여병천의 속내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싸운다면 자신들이 패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어르신.”
육선풍의 말을 추옥민이 거들었다.
“네. 육 조장의 말이 맞습니다. 그는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확신하느냐?”
“네. 우리를 공격하려 했다면 저 안에서 벌써 그렇게 했을 겁니다.”
여병천은 걸음을 멈췄다.
“제자야. 나는 네가 천주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이 싫구나.”
“사부님. 저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저의 운명이라면 당당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추옥민은 여병천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인 후 육선풍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육 조장은 저와 다릅니다. 천주와는 어떠한 관계도 얽혀 있지 않으니까요.”
하하하하…….
육선풍이 크게 웃었다.
그는 채주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고 있었다.
채주는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 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약속과 달랐다.
자신은 채주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맹세는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그것이 비록 추하고 비루한 죽음이라 하더라도.
“채주. 이 육선풍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죽음으로 맹세를 지키겠습니다.”
어찌 육선풍의 속내를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제자 추옥민과 육선풍을 응시하고 있는 여병천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 나는 오래 살았고 복수도 끝냈으니 더 이상 여한이 없지 않은가.’
딱딱하게 굳어 있던 여병천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서 가자꾸나.”
“교의 살림을 담당할 총관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담정천이 비강이 찾아와 물었다.
비강도 총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꼼꼼하게 살림을 헤아릴 만한 자를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적당한 사람이라도 있소?”
“아직 없습니다만 어떻게든 사람을 찾아 임시라도 맡겨야 합니다. 제가 소문을 들으니 감숙에 있는 유명한 가문에서 축출당한 젊은 총관이 있다고 합니다.”
“가문에서 축출을 당했다면 뭔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겠소?”
“듣기로 가문의 여식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는 바람에 가주가 크게 노해 쫓아냈다고 합니다만.”
하하…….
“재미있는 자로군. 한번 데려와 보시오.”
“알겠습니다.”
담정천이 방을 나가고 강무화가 비강을 찾아왔다.
“저와 함께 어디 좀 같이 가요, 교주님.”
“제자들이 있잖소.”
“그들은 필요 없는 일이에요.”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가보면 알아요.”
비강은 내키지 않았으나 강무화를 따라나섰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그녀는 비강을 산 위로 이끌었다.
“저곳은 왜 올라가려는 것이오?”
“잔말 말고 따라와요. 올라가보면 알아요.”
하하…….
강무화의 어이없는 말투에 비강은 웃고 말았다.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강무화가 말하는 그분은 아저씨일 것이다.
“아주 대단한 분이오. 내게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오. 내 아버지와 의형제 사이였으니.”
“계속 말해 보세요.”
비강은 강무화의 편안한 말에 이끌려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차피 이제는 알아도 상관없었다.
“아저씨는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오. 그런 것을 보면 아주 오래 사신 것이 분명하오. 오래전에는 천마라는 별호로 불리셨소. 어쩌면 그분이야말로 신이라는 존재에 가장 가까운 분이 아닌지 모르겠소.”
“그렇군요.”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요?”
강무화는 살풋 미소를 지었다.
“그분이 그러셨어요. 당신과 나의 함께 할 운명이라고 말이에요.”
“지금 함께하고 있지 않소.”
“네.”
후아아아……,
산 위에서 바라보는 정경은 장엄했다.
갑갑했던 속이 시원하게 뚫리고 저절로 양팔이 하늘로 올라갈 정도였다.
천천히 흐르고 있는 구름과 구름 아래로 보이는 여러 산봉우리들,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좋죠?”
강무화가 나란히 서서 웃으며 물었다.
“고맙소.”
“저는 자주 이곳에 올라와요.”
“앞으로는 나도 자주 이곳에 올라와야겠소.”
구름과 산봉우리, 계곡으로 이어졌던 비강의 시선은 어느새 그 아래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 옮겨 갔다.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다.
“하찮군.”
“네. 하지만 저들의 모습이 바로 저나 교주님의 모습이에요.”
비강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강무화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당신의 진정한 정체가 뭐요?”
“신녀. 사람들은 그렇게 불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