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7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76화
제176화. 틀어진 인연
남장을 한 송은반은 비강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행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호북까지 올라온 그녀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객잔을 찾아들어갔다.
이 객잔에서 배를 채운 후에 은운곡으로 가 볼 작정이었다.
강호에 떠돌고 있는 백리혈에 관한 전설과도 같은 소문은 은운곡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곳에서 백리혈 연비강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밥과 탕을 준비해 주시오. 빨리 되는 것으로.”
“술은 필요 없으십니까?”
“필요 없소.”
식사를 주문한 송은반은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여러 명의 강호인들과 다른 손님들이 각자 자신들만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주문한 요리가 나오자 송은반은 서둘러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끝내고 객잔을 나선 그녀는 은운곡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완숙한 가을로 접어들었는지 해가 중천인 대낮에도 그리 덥지 않았다.
한참을 걷던 송은반은 잠시 숨을 돌릴 겸 그늘을 찾았다.
그녀가 그늘을 찾아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후, 얼마 안 되어 강호인들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객잔에서 식사를 하던 바로 그 강호인들이었다.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은 송은반은 서둘러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좀 봅시다.”
바로 그때 강호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송은반은 일부러 목소리를 굵직하게 내며 허리에 차고 있는 검에 손을 가져갔다.
여차하면 검을 뽑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러나 강호인들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았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눈앞에 서 있는 이자는 무공을 익힌 강호인이 아닐뿐더러 사내도 아니라는 사실을.
눈썰미가 좋은 그들은 송은반을 향해 다가서며 이죽거렸다.
“가진 것을 다 내놓고 가야겠어.”
송은반은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내가 검을 뽑는다면 너희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그만 물러가라.”
싸늘한 그녀의 경고에 강호인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어디 한번 검을 뽑아보시지 그래. 아, 이왕 검을 뽑는 김에 입고 있는 무복도 전부 벗어 버렸으면 좋겠는데.”
송은반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질려 버렸다.
재수 없게도 흉측한 자들에게 잘못 걸렸다.
그녀는 바로 몸을 돌려 달렸다.
푸하하하…….
그런 그녀의 뒤로 강호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헉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망치는 송은반의 뒤로 강호인들이 쫓아 왔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송은반은 목청껏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관도에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 도움을 줄만한 자들이 아무도 없었다.
“잡았다, 요년.”
기어코 강호인 하나가 송은반의 어깨를 덥석 쥐었다.
아악!
송은반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지만 강호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낄낄낄…….
“이것 아주 요물이구만 그래.”
“놔! 이것 놔!”
버둥거리는 송은반을 억지로 끌어안은 강호인들은 그녀를 숲으로 끌고 갔다.
바로 그때 강호인들을 붙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
송은반을 억지로 끌고 가던 강호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큰길 가운데 세 명의 인물들이 서 있었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사내 둘과 여인하나.
특히 가운데 서 있는 여인은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있었다.
“너희들은 또 뭐냐?”
송은반을 잡고 있는 강호인 하나가 삐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금편복.”
면사를 쓰고 있는 여인 옆의 사내가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제기랄.”
송은반을 붙잡고 있는 강호인들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냐, 아니면 잘못을 빌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냐.”
강호인들은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다.
그들은 바로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겠습니다. 앞으로 절대 이런 못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강호인들이 용서를 빌자 사내는 옆에 서 있는 면사여인을 쳐다보았다.
면사여인은 엎드려 있는 강호인들을 살폈다.
이자들은 강호의 삼류 부랑아들이었다.
지니고 있는 무공도 그저 그럴 것이고, 평생 도둑질이나 하든가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자들을 죽여 마고로 칭송받는 자신의 손을 더럽힐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런 자들까지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 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을 찾아갈 테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호인들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줄행랑을 쳤다.
덕분에 몸을 건사하게 된 송은반이 일어나 고마움을 표했다.
“뉘신지는 모르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호는 위험한 곳이에요. 그러니 언제나 주변을 살펴야 해요.”
송은반은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어디로 가는 중인가요? 방향이 같으면 동행을 하죠.”
뜻밖의 호의에 송은반은 거짓 없이 목적지를 털어놓았다.
“은운곡으로 가는 중입니다.”
“은운곡? 왜 그곳으로 가려 하나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강호인이 아닌 것 같은데.”
“어느 분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서…….”
송은반은 말끝을 흐렸다.
강호에서는 백리혈 연비강에 관한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 못했다.
괜한 의심을 받기 때문이었다.
“어느 분이 누군가요?”
하지만 면사여인은 캐묻기를 그치지 않았다.
송은반은 함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면사여인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젖혔다.
면사여인의 정체는 바로 벽사군이었다.
아아…….
송은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강호에 나와 이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보지 못했다.
벽사군은 송은반이 자신의 얼굴을 보며 넋을 잃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어서 말해 봐요.”
“……네. 저…… 는 연비강이라는 분의 행적을 알고 싶어서…….”
기어이 송은반의 입에서 비강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순간 벽사군의 안색이 굳어졌다가 다시 환하게 풀렸다.
“그……렇군요. 이것도 인연이니 우리와 함께 가는 것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벽사군은 송은반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녀의 뛰어난 재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까 나이 열세 살에 이미 사서삼경을 전부 떼었다는 말이로군요.”
“네. 그런데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인가요?”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욕심이 생긴 벽사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 검을 뽑아 봐요.”
“네?”
송은반은 크게 의아했으나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았다.
“태산압정의 초식을 펼쳐 봐요.”
“네?”
송은반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벽사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 봐요.”
“네.”
검을 두 손으로 잡은 송은반은 검을 공중으로 올렸다가 일직선으로 내려쳤다.
벽사군의 눈이 이채로 번득였다.
가장 기초적인 초식이었지만 검조차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그녀의 검은 흔들림 없이 정확하게 일직선을 그렸다.
백년기재를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되었다.
“흙속에 진주가 묻혀 있었군요.”
“네?”
송은반은 벽사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송 소저는 우리 은은곡을 대표하는 고수가 될 거예요.”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연비강이라는 분의…….”
“알아요. 은운곡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그자가…… 아니 그 사람이 분명히 찾아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저벅저벅……
비강은 단위에 놓여 있는 보좌로 망설임 없이 걸어 올라갔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비강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마자 단 아래에 서 있던 자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담노와 담정천, 담혁수, 무진도, 살가, 신녀, 이종이 바로 그들이었다.
“자리에 앉으시오.”
비강의 말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앞으로 이곳을 일월신교라 칭할 것이오.”
“영을 받습니다.”
“영을 받습니다.”
일월신교의 교주가 된 비강은 방 안에 있는 자들의 직책을 정해 발표했다.
“담정천은 신교의 모든 무인들을 통솔하는 무각의 각주로 임명하겠소.”
“영을 받습니다.”
“자리를 비운 담수연은 신교의 모든 정보를 담당하는 비각의 각주로 임명하겠소.”
“영을 받습니다.”
담수연을 대신해 담노가 머리를 조아렸다.
“담혁수는 신교의 방어를 책임지는 호각의 각주로 임명하겠소.”
담혁수가 머리를 조아렸다.
“영을 받습니다.”
“무진도는 교인들을 가르칠 교각의 각주로 임명하겠소.”
“영을 받습니다.”
무진도가 머리를 숙이며 허연 수염을 늘어뜨렸다.
“살가는 교의 살수들을 양성하는 살각의 각주로 임명하겠소.”
“영을 받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한식구가 된 살가가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려 비강을 명령을 받아들였다.
“강무화는 교의 제사와 의식을 담당하는 천각의 각주로 임명하오.”
“모든 것이 교주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이종을 의술을 책임지는 의각의 각주로 임명하겠소.”
“영을 받습니다.”
“담노께서는 언제나 제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말아주십시오. 담노를 교의 부교주로 임명합니다.”
“이 늙은이의……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주인.”
담노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얼마나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던가.
이제 젊은 주인은 한 세력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남은 생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나 젊은 주인을 위해서라면 남은 생마저도 전부 바칠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교주가 되어 각자의 자리를 배정한 비강은 조촐하게나마 잔치를 열게 했다.
여러 요리들이 상위에 오르고 술이 나왔다.
비강은 부교주를 시작으로 여러 각주에게 술을 받아 마셨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십니까? 교주님.”
담정천이 술잔을 비우며 물었다.
“오 년 후에 강호를 평정할 것이오. 그러니 그 시간에 맞춰 고수들을 양성하시오.”
“알겠습니다.”
담정천을 크게 기뻤다.
떠돌아다니는 삶 끝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많은 수하들까지 생겼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수하들이 아래로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강호를 평정해 강호의 주인이 된다.
얼마나 가슴 벅찬 계획이란 말인가.
그런 그를 흘깃 바라본 강무화는 내심 속이 좋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담정천과 비강은 상성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벌써부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지난번에 비강에게 큰일이 닥칠 것이라는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쩌면 저 비강이라는 사람은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껄껄껄껄…….
술이 거나하게 취한 무진도는 자신의 잔을 연달아 비우며 떠들어댔다.
“앞으로도 교주님께서는 교인들에게 얼굴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교주님께서는 신인이시라 언제나 신비한 분으로 남으셔야 합니다.”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껄껄껄껄…….
“또한 신교의 앞날을 위해 혼인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대대로 우리 신교가 이어질 것입니다.”
“혼인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교각주가 신경 쓰지 마시오.”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교주. 교주께서는 신인이시라 혼인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교인들이 납득할 만한 여인과 혼인을 하셔야 합니다.”
비강은 무진도의 입에서 헛소리가 나올까 봐 미리 그의 입을 막았다.
“혼인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마시오. 교주의 명령이오.”
“알겠습니다. 영을 받습니다.”
그렇게 술자리가 이어져 가는 가운데 밖에서 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계산의 산채에서 손님들이 방문하셨습니다. 세분이신데 그중에는 채주님도 있습니다.”
시끌벅적하던 잔치 자리에 정적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