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7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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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75화
제175화. 일월(2)
“마을 순찰을 돌려 하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담정천과 담혁수와 함께 담노가 길을 나서며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이만 쉬고 싶으니 다녀오십시오.”
강무화가 허리를 숙여 거절하자 담노는 두 사람을 데리고 산책 겸 순찰을 나셨다.
길을 돌아내려가는 그들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강무화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별빛이 붉구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보던 그녀는 별빛이 동쪽 하늘에서부터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강무화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길한 기운이 밤하늘을 뒤덮어 오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어. 당장이라도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
강무화의 인생에서 이 정도로 불길한 느낌을 받은 적은 몇 번 없었다.
불안한 눈으로 별빛 하나 없는 어두운 하늘을 지켜보던 그녀는 비강의 거처로 서둘러 걸었다.
비강의 앞날은 모르겠지만 이 불길함은 그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컥.
강무화는 급한 마음에 방문조차 알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순간 푸른빛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슨 일이오?”
비강이 깊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갑자기 찾아와 미안해요. 다름이 아니라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조심하라는 말을 전해 주러 왔어요.”
“그런 일은 없을 거요. 나가시오.”
강무화는 비강의 이런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다.
“제발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내 말에 귀를 기울여 봐요.”
결국 그녀가 목소리를 높이자 비강은 마지못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 내가 어찌했으면 좋겠소?”
“며칠만이라도 좋으니 잠시 이곳을 떠나 있다가 돌아와요.”
“그럴 수 없소. 대신 마을이나 한번 둘러보고 오겠소.”
하아아…….
고개를 푹 숙이며 깊은 한숨을 내쉰 강무화는 방을 나서는 비강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정말 이럴 거예요?”
비강은 강무화의 외침을 한쪽귀로 흘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교주.”
강무화의 외침소리를 들었는지 무진도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아니니 관심 끊으시오. 그리고 그 교주란 소리는 그만 좀 하시오.”
흐으음…….
무진도는 비강과 방을 나서는 강무화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신녀께서 비록 나이가 많기는 하나 여인…….”
“스스로 신선이라는 소리를 지껄이는 자가 못하는 말이 없군.”
껄껄껄…….
“선계에서는 나이를 따지지 않습니다.”
쯧쯧…….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찬 비강은 산 아래쪽으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십여 발자국쯤 걸었을 무렵 비강은 발은 멈추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느낌을 뭐라 해야 할까?
소름이 돋고 몸까지 떨렸다.
하하…….
비강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보니 저기 방 앞에서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강무화의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았는가.
“나와.”
비강의 말에 막 방 안으로 들어가려던 무진도와 어두운 얼굴로 서 있던 강무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끌끌끌…….
이어서 어둠 속에서 메마른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무진도는 놀라 방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하지만 강무화는 체념이라도 한 듯 슬픈 눈으로 비강을 응시했다.
곧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남궁악.”
비강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살 떨리는 충격을 전할 만한 자는 천하에 남궁악과 시천세 밖에 없었다.
“별로 놀라지 않는구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느냐?”
“그럴 리가.”
비강의 시선은 남궁악의 얼굴에서 그의 허리로 옮겨 갔다.
남궁악의 허리에는 전에 보았던 천마의 도가 걸려 있었다.
그런 비강의 시선을 느꼈는지 남궁악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 사부의 애병이었지, 지금은 나의 것이지만. 탐나느냐? 사제.”
“아니.”
“이런…… 네게 자랑하려 차고 왔는데 아쉽게 되었구나. 술이나 한잔 하겠느냐? 사제.”
남궁악은 능글능글한 여유까지 부리고 있었다.
“당신에게 차려내 올 술 같은 없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비강은 남궁악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저자는 후환을 사전에 제거하려 한다.
“따라와.”
비강이 앞장서 걷자 남궁악은 영파를 돌아보았다.
“너는 이일에 끼어들지 마라.”
“지켜보게라도 해 주십시오, 천주님.”
영파 또한 절대 고수였다.
그런 자가 무신들의 무공을 견식 할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남궁악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영파는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표했다.
비강과 남궁악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난후 방문이 열리며 무진도가 뛰어나왔다.
“이…… 이런…… 큰일이야. 정말 큰일이야. 동천의 무신이 찾아오다니…….”
“조용히 따라와요.”
강무화는 불안해 호들갑을 떨어 대는 무진도의 옆을 지나쳤다.
“무슨 짓이오? 신녀는 저자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오?”
“나도 이름을 들었어요.”
“그런데 따라간단 말이오? 자칫 발각이라도 된다면 우린 무신의 손에 죽을 거요. 아니, 반드시 발각 될 거요.”
“네. 그렇겠죠. 하지만 어차피 연 대협이 죽으면 우리도 죽어요. 녹원선인의 옆에 저승사자가 다가와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군요.”
화들짝 놀란 무진도는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산을 돌아 이동하던 비강은 넓은 분지에 도착하자 걸음을 멈췄다.
끌끌끌…….
뒤따라온 남궁악이 웃으며 비강과 마주했다.
“그래도 네놈 덕분에 내가 사형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으니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겠구나.”
비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웃음을 거둔 남궁악과 비강은 서로의 눈만 쳐다보았다.
휘이이…….
넓은 분지로 들어온 바람은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가다가 십여 장을 격하고 무언가에 부딪친 듯 둥글게 퍼져 나갔다.
우웅, 우웅,
두 사람 사이에 괴이한 공명음이 일고 빛이 번쩍였다.
쿵! 쿠웅!……!
어둠을 가르는 무수한 빛의 선들은 수없이 많은 수로 남궁악과 비강의 전신을 갈라놓았다.
스아아아아…….
수없이 늘어난 비강은 한순간 하나의 비강으로 합쳐졌다.
크으으음…….
하나로 합쳐진 비강은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다.
검은 무복은 난도질하듯 갈라져 있었고 갈라진 무복사이로 피가 흘렀다.
남궁악은 길게 갈라진 자신의 무복을 내려다보았다.
무신이라 불리고 있는 연비강의 무공은 이 정도였다.
한 치의 거리.
그 거리가 연비강과 자신의 차이였다.
하지만 그 거리는 생과 사를 결정하는 거리였고 평생을 기어올라도 넘지 못할 높고 높은 산이었다.
“훌륭했다, 사제.”
“몇 번을 말해. 나는 너의 사제가 아니야.”
남궁악은 비강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는 사제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남궁악이 도를 들어 올리자 비강도 그에 맞춰 검을 들어 올렸다.
비강의 눈을 응시하던 남궁악의 시선이 분지 너머의 어둠 속을 향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흔들렸다.
“사부……?”
비강도 남궁악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비강은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사부.”
또다시 남궁악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아저씨는 비강의 눈앞에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제자의 앞을 막으시는 겁니까? 사부.”
사부를 응시하고 있는 남궁악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려 나왔다.
“내게 그 도를 겨눌 것이더냐?”
나지막한 독고일의 목소리였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 제자의 앞을 막으시는 겁니까, 사부!”
남궁악은 독고일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도를 쥐고 있는 그의 손은 분노인지 아니면 안타까움 인지 모를 떨림을 보였다.
남궁악의 눈은 점점 붉어져 갔다.
“천양의 죽음도, 운패의 죽음도, 백요의 죽음도 방치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 저 어린 제자의 죽음이 안타까우셨습니까?”
“이 아이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붉게 충혈된 남궁악의 눈이 깊은 의문으로 흔들렸다.
제자가 아니라니?
그렇다면 사형이 거짓말을 한 것이란 말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사부의 제자가 아니라면 저 무공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슨……?”
의문으로 물들었던 남궁악의 눈빛이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사부가 거짓을 말할 리 없다.
제자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너희들이 황곡을 나설 때 천세에게 이십 년을 기다리라 했었다.”
그 말을 마친 독고일은 비강의 앞에서 물러났다.
흐흐…… 흐흐흐…….
남궁악은 마치 실성이라도 한 것처럼 웃어댔다.
사부의 말대로라면 자신들은 이십 년 동안이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때 자신들과 함께 사형이 강호에 나왔더라면 지금쯤 강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니,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돌아…… 가겠습니다, 사부.”
“칠 년 후에는 막지 않으마.”
남궁악은 등을 돌리고 있는 사부를 향해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부.”
사부에게 인사를 끝낸 남궁악은 조용히 서 있는 비강을 향해 눈을 돌렸다.
“칠 년 후 오늘이다. 잊지 마라.”
남궁악은 비강에게 등을 돌리고 멀어져 갔다.
제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부와 연비강은 어떤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것일까?
혈연?
아니었다.
사부는 언제나 홀로 고고하고 고독한 사람이라 여인이 있을 리 없다.
‘이십 년이 아니라 칠 년이란 말이지. 칠 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야.’
“아저씨를 뵙습니다.”
비강은 등을 보이고 있는 독고일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독고일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넙죽 엎드려 있는 무진도와 조용히 서 있는 강무화를 지켜보았다.
“이제 마음을 정했느냐?”
비강도 무진도와 강무화를 바라보았다.
“전부 아저씨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저기 저 사기꾼 노인이나 그 옆의 이상한 여인까지. 아니, 저조차도 아저씨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알고 있었구나.”
“예. 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기 저 사기꾼 노인은 아저씨의 이름과 저의 이름을 붙여 이곳을 일월교라 하더군요.”
“이름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중요한 것은 너의 마음이겠지.”
아저씨는 참으로 잔인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마음을 정한다면 강호는 또다시 혈난에 휩싸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피가 강호에 흐를 것이다.
그래도 아저씨를 미워할 수 없었다.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비강이 고개를 숙이자 독고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칠 년이다. 네가 그놈들보다 못하다면 그땐 정말 죽게 될 게다.”
휘이이…….
그 말을 남긴 독고일은 어둠 속에 스며들 듯 희미한 바람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또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강의 입에서 가득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비강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다시 한번 아저씨에게 목숨을 구함 받았다.
이제 혼란하기만 했던 가슴속에 하나의 의지가 세워졌다.
저 어리석은 자들의 주인이 되리라.
“교주님…….”
무진도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비강은 허리를 폈다.
“교주님은 그분처럼 신이 되실 것입니다.”
무진도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어려 있었다.
“알았으니 오늘 일어난 일은 입 다물고 있으시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먼저 돌아가 이 의원을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비강의 부상이 심각해 보였는지 무진도는 황급히 신형을 날렸다.
강무화는 조용히 비강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내게 할 말이라도 있소?”
“바로 그분이었군요. 나를 당신에게 인도한 분이.”
머릿속으로 울렸던 목소리는 비강이 아저씨라 부른 바로 그 존재의 목소리와 같았다.
“억울하오?”
“그럴 리가요.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