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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74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74화

제174화. 일월(1)

 

 

 

두 사람은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어둠 속에 잠겨 가고 있는 여러 산봉우리들을 둘러보았다.

“바로 저곳이 여병천의 산채입니다.”

뒤쪽에 서 있던 사내가 산 아래쪽을 가리켰다.

한 발 앞에 서 있던 사내는 불을 밝히고 있는 수백여 채의 초옥들을 내려다보았다.

“제법이군.”

“예. 여병천의 제자가 제법 능력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저…….”

뒤에 서 있던 사내가 머뭇거리자 앞서 내려가던 사내는 발걸음을 멈췄다.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냐?”

“예.”

“말해 보아라.”

“다름이 아니라 천주께서 직접 그자를 상대할 필요가 없지 않나 싶어 감히 여쭙니다.”

끌끌끌…….

사내가 웃으며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뒤에 있던 사내도 앞쪽의 사내를 따라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사형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한 것이더냐? 

“예. 그분께 말씀드린다면 천주께서 굳이 직접 이곳까지…….”

“멍청한 놈. 설마 네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느니라.”

“죄송합니다. 천주님.”

사내는 더 이상 뒤를 따르고 있는 사내를 나무라지 않았다.

“척박한 이 지역의 광활함은 기름진 중원의 광활함에 비할 바가 못 되지. 해서 강호의 어느 세력도 욕심을 내지 않아. 하나 사형이 이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면 어찌 될 것 같으냐.”

그렇게 된다면 애써 일궈놓은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강호 무림은 황곡을 수십 년 동안이나 찾아내지 못했었다. 하나 사형이라면 일 년 안에 모든 것을 찾아내고 모든 것을 멸할 것이다.” 

황곡도 이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이곳은 사내들에게 있어 고향이나 다름이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가 살았던 곳을 둘러보자꾸나.”

“그렇게 하십시오. 저도 그곳을 보고 싶습니다.”

앞서 걷고 있는 남궁악도 그렇지만 뒤를 따르고 있는 영파에게도 황곡은 그리움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비록 기름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풀과 나뭇가지로 엮은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집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그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곳에서 예전처럼 천주님과 술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

하하하하…….

영파의 말에 남궁악도 벌써부터 즐거운 듯 환한 웃음을 지어 냈다.

 

산채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병천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 천하제일인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또한 진정한 강호의 주인은 동천의 남궁악이라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었고, 그 소문조차 이 먼 곳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모시고 있는 주인이 천하제일인이 되었다면 응당 기뻐해야 할 것이나 여병천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무서운 자인지 겪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곡에 있을 때만 해도 그는 의와 협으로 똘똘 뭉친 사내였었다.

하지만 동천의 주인이 되고 난후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숨겨 왔던 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동은각은 어린 강호의 낭인들을 수없이 납치했었다.

아니, 낭인들 스스로 동천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곳은 삶보다 죽음이 훨씬 더 가까운 곳이었다.

남궁악은 어린 낭인들을 판별해 가능성이 있는 자들은 살렸고 가능성이 없는 자들은 비밀을 유지하기위해 죽여 없앴다.

동은각의 고수들이 골라 데려온 낭인들이었으나 열에 아홉은 명을 달리했다.

여병청은 그 일을 맡지 않았으나 저간의 사정은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악이 베푼 은혜가 너무나 두텁고 깊어 감히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 놓지 못했다.

그 와중에 추옥민을 만나 제자로 들이게 되었고 제자에게 모든 정성을 쏟았다.

‘천주에게 맞서는 자들은 전부 죽게 될 게야.’

사련의 후계자인 두궁천을 받아들이고 힘을 실어 줄때도 별로 놀라지 않았었다.

두궁천의 휘하로 간악하고 잔혹한 자들이 몰려드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주인 남궁악은 이미 두궁천을 받아들일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여병천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산채를 내려다보았다.

환한 불빛 사이로 즐겁게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비록 주인의 명령으로 인해 이 산채를 세우기는 했으나, 강호에서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곳이 되고자 했다.

이곳은 오래전 황곡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천주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제 이곳도 머지않아 전란에 휩싸이게 되겠구나.”

지극한 안타까움에 절로 흘러나온 넋두리였다.

“그래서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여병천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엎드렸다.

“여모가 천주님을 뵙습니다.”

이 평화로운 산채에 등장한 자는 바로 천하제일인이자 동천의 주인인 남궁악이었다.

“저곳이 네가 기거하는 곳이로군.”

남궁악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채의 초옥들 중에 한곳으로 걸어갔다.

“술상을 차려오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병천은 황급히 산채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갔다.

 

쪼르르…… 

술잔을 채우고 있는 남궁악 앞에 두 사람이 부복했다.

한 사람은 여병천이었고 또 한 사람은 제자이자 이곳의 채주인 추옥민이었다.

영파는 남궁악 옆에 조용히 서서 여병천과 추옥민을 지켜보았다.

“제자를 잘 키웠군.”

술잔을 비운 남궁악의 첫마디에 여병천은 조심스럽게 말을 받았다.

“아직 미흡한 제자이옵니다.”

“아니야. 정말 잘 키웠어. 강호의 젊은 기재들 중에 저만한 놈들은 얼마 없을 게야. 아니군…… 아주 특별한 놈이 하나 있지.”

하하하……,

기분 좋게 웃어 보인 남궁악은 또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십만대산에 산채가 들어섰다고?”

“예. 그러하옵니다. 하나 우리 산채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염려하실 것은 없습니다.”

술잔을 비운 남궁악이 술을 채우며 물었다.

“너는 그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독고라는 성씨의 젊은 협객으로 알고 있습니다.”

크하하하하……!

여병천과 추옥민은 남궁악이 광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린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일은 사부의 이름이었고 독고는 사부의 성씨였다.

맹랑하게도 그놈은 사부의 성씨를 가져다 쓴 것이다.

“그놈의 원래 이름은 비강이라고 하지. 성씨는 연이고.”

비강의 정체를 밝힌 남궁악은 단번에 술잔을 비우고 내려놓았다.

여병천과 추옥민은 놀라마지 않았다.

그러나 속으로만 놀랐을 뿐 감히 얼굴을 들어 되묻지 못했다.

남궁악은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많이 놀랐나보군.”

“독고라는 젊은 사내가 설마 백리혈 연비강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함부로…… 함부로 독고라는 성씨를 입에 올리지 마라.”

두 사람은 왜 독고라는 성씨를 입에 올리지 말라는 지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또한 묻지 못했다.

방금 남궁악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남궁악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로 십만대산의 연비강이 그 이유였다.

천주 남궁악은 백리혈 연비강을 죽이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곳이다.

“남은 술은 돌아와 마시도록 하지.”

후회는 한 번으로 족했다.

연비강을 이대로 살려 둔다면 앞으로도 두고두고 후회할 일들이 생길 것이다.

남궁악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두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채주님, 섭운입니다. 혹시 안에 계시는지요?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때 밖에서 방문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사정이 있어 뵙지 못하니 내일 찾아오세요.”

추옥민의 거절에 남궁악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급한 보고는 들어야 하겠지. 들어오라.”

잠시잠깐 정적이 찾아오고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삼십대 초반의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사내 섭운은 눈으로 보이는 방안의 광경에 놀라 당황했다.

낯선 사내가 앉아 있고 채주가 그 앞에 엎드려 있었다.

또한 전에 몇 번 얼굴을 뵈었던 채주의 사부라는 분도 그 앞에 엎드려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섭운은 남궁악과 영파를 향해 은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채주는 그가 존경해마지 않는 사람이었고, 마음속으로는 은근한 연정까지 품고 있었다.

그런데 연정을 품고 있는 채주가 웬 낯선 사내들 앞에 엎드려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섭 두령, 함부로 무례를 범하지…….”

“그만.”

남궁악은 추옥민의 말을 막으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섭운을 바라보았다.

“급한 보고가 무엇이냐?”

질문 속에는 서늘한 살기가 섞여 있었다.

섭운은 갑자기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내가…… 왜 당신에게 보고를 올려야 하지?”

남궁악을 노려보고 있는 섭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크으으…….

곧이어 그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잡으며 괴로워했다.

“보고를 하라.”

괴로워하는 사내를 바라보며 남궁악은 보고를 재촉했다.

“내가…… 내가…… 왜…….”

크아아아…….

결국 사내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무릎을 꿇었다.

“천주님, 제가 대신 벌을 받겠으니 그만 용서해 주십시오.”

추옥민이 급히 나서서 용서를 빌었다.

순간 섭운을 고통스럽게 하던 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어서 보고를 올리세요. 이분은 저의 주인이십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섭운은 놀란 눈으로 추옥민을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채주가 모시고 있는 주인이 있었다니.

왠지 모를 배신감이 가슴속으로 치밀어 올라왔다.

“채주님의 주인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분이 바로 동천의 주인이세요.”

경악으로 부릅떠진 섭운의 눈동자가 경련을 일으키며 크게 흔들렸다.

동천의 주인이라면 지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천하제일인 남궁악이 바로 이 사람이란 뜻이었다.

여느 강호인 같으면 당장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했다.

하지만 섭운은 여느 강호인이 아니었다.

“저는…… 채주님을 저의 윗사람으로 모셨을 뿐입니다.” 

천하제일인을 주인으로 모시고자 했다면 벌써 사패를 찾아갔을 것이다.

하나 고향과 고향의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이곳에 머물러 있었고 채주가 그 뜻을 알아주어 이 산채로 들어왔다.

섭운의 가슴에는 지독하지만 허전한 배신감이 찾아들었다.

끌끌끌…….

남궁악은 그런 섭운을 내려다보며 의미 모를 웃음을 흘렸다.

썩 좋았던 기분이 삽시간에 사그라졌다.

감히 궁벽한 곳의 애송이 하나가 자신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저놈이 제법 뛰어난 고수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눈에는 그저 쓸모없는 밥버러지에 불과했다.

“천주님. 섭운은 감숙의 협객으로 감숙에 흩어져 있는 협객들로부터 크게 신망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넓은 아량으로 어여삐 보아주십시오.”

추옥민의 뒤를 이어 여병천까지 나서서 용서를 빌었다.

방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역시 너는 생각이 고루해.”

커억……!

남궁악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오자마자 무릎을 꿇고 있는 섭운의 입에서 핏물이 튀어나왔다.

털썩.

섭운은 바닥에 엎어지더니 연신 핏물을 토해 냈다.

꿀럭…… 꿀럭…….

“천주님!”

추옥민이 급히 앞을 막아섰지만 섭운은 이미 절명했는지 몸을 축 늘어뜨렸다.

“여병천.”

남궁악의 입에서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명하십시오, 천주님.”

여병천은 남궁악 앞에 넙죽 엎드리며 몸을 낮췄다.

지금 이 분위기로 보아 자칫 제자인 추옥민의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다.

“이 산채는 누구의 것이냐?”

“오직 천주님의 것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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