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7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71화
제171화. 죽음을 전하다
벌써 숲의 그늘이 어두워지는 것이 얼마 후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것 같았다.
십만대산 안쪽으로 들어가자 수십여 채의 집들과 화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는 것이 지금도 야산 한쪽에 허름한 움막 같은 집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열심히 뛰어다니고 그보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은 어른들의 일을 돕고 있었다.
대부분 다 해진 옷을 입고 있었으나, 다행히도 안색은 밝은 것이 배를 곯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루하루가 달라져 가는 십만대산에 들어선 비강은 수레를 멈추고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성벽 위에는 꽤 멋들어진 문루까지 세워져 있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성문 앞에 서 있던 무인들이 수레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들은 비강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이곳의 주인과 안면이 있소.”
“교주님과 친분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교주?”
비강이 의아해하며 묻자 무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곧 문루를 향해 소리쳤다.
“교주님과 친분이 있다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잠시 기다려라.”
위에서 대답 소리가 들려오고 발자국 소리가 급하게 멀어져 갔다.
“그런데 교주라니 무슨 말이오?”
“이곳의 주인 되시는 분은 일월성신의 화신이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분은 교주님이지요. 한데 정말로 교주님과 친분이 있습니까?”
후우…….
비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무진도 그 늙은이가 쓸데없는 짓을 저질렀다.
“문을 열어라.”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비강은 수레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에는 수백여 채의 집들이 있었고, 지금도 지어지고 있었다.
집들 사이로 뻗은 넓은 길을 따라 수레를 몰고 가던 비강은 곧 안쪽에서 달려 나오는 담혁수를 만났다.
“어서 오십시오, 주공.”
담혁수는 비강을 보자마자 넙죽 엎드렸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웅성거렸다.
“그만하고 일어나시오.”
“예.”
바닥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담혁수는 얼른 수레에 올라타 비강의 손에서 고삐를 빼앗듯 넘겨받았다.
“잠깐 사이에 많이 변했구려.”
“잠깐이 뭡니까? 주공. 주공께서 밖에 나가신 것이 늦은 봄이었고, 이제 거의 가을이 다 되었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어찌 되었든 이곳 사정은 어떻소?”
“자금이 바닥났습니다. 용 단주께서 대금을 받지 않고 계속 식량과 목재 같은 것들을 대주시는데, 그것도 곧 한계가 올 것 같습니다.”
“용 단주는 어디에 있소?”
“아마 내일쯤 이곳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곳까지 수레를 몰아 올라간 담혁수는 곧 안으로 달려가 비강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러 사람들이 달려 나왔는데, 특히 담노가 환한 얼굴로 가장 먼저 달려 나왔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인.”
“내가 무슨 고생입니까? 오히려 담노가 고생이 많았습니다.”
허허…….
“이곳에도 주인에 대한 소문이 전해졌습니다. 주인께서 홀로 서패를 치셨다지요?”
담노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뿌듯해 했다.
아마도 용 단주가 그 소식을 전해 준 모양이었다.
담노에게 있어서 비강은 모셔야 할 주인이고 가족이었으나 북궁도는 외인이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 먼저 장 소저와 나눌 말이 있습니다.”
비강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장경주를 향해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연 대협.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오. 안으로 들어갑시다.”
장경주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비강은 조용히 그녀가 울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미안하오, 장 소저. 내가 조금 더 빨리 갔더라면 문주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울고 있는 장경주는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녀는 비강이 십만대산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이미 아버지의 죽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게 되니 억눌러 참고 있던 슬픔이 폭발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비강은 그녀를 살짝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참고 있던 그녀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헝헝헝…….
장경주는 비강의 품에 안겨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그녀의 울음소리가 천천히 낮아져 갔다.
“그만 쉬시오, 장 소저.”
장경주를 침상에 눕힌 비강은 그녀의 방을 나왔다.
문밖에서 담혁수가 기다리고 있다가 비강을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담혁수가 안내한 곳은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이었다.
담노와 담정천, 담수연, 강무화, 무진도, 살가, 그리고 의원 이종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어서 앉으십시오.”
담혁수는 비어 있는 상석으로 비강을 이끌었다.
비강은 잠시 그 의자를 바라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앉으십시오.”
비강이 자리에 앉자 담노를 시작으로 방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주인.”
담노의 물음에 비강은 먼저 하오문주의 죽음을 알렸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침중한 얼굴로 머리를 숙였다.
하오문주를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비를 잃은 장경주가 가여웠기 때문이었다.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장경주의 아버지가 하오문주임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참으로 슬프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살가이 하오문주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몇십 년간 그와 함께 했으니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서패의 주인이 행방불명되었다고 하는데 아시는 것이 있으신지요?”
이번에도 담노가 물었다.
“죽었습니다.”
“무신이 죽었단 말씀이십니까?”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마지 않았다.
오직 강무화만이 별로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방 안의 사람들은 강무화를 흘깃거리며 쳐다보았다.
“저도 서패의 주인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어요. 다만 얼마 전 밤하늘의 큰 별이 하나 지기에 큰 인물의 죽음을 짐작했을 뿐이에요.”
허허허…….
“과연 우리 신교의 신녀는 남다른 예지력을 가지고 계시군요.”
무진도가 크게 기뻐하다가 비강의 눈치를 살피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신녀(神女)라니 무슨 말이오?”
비강이 무진도에게 묻는 말이었으나 대답은 담노의 입에서 나왔다.
“교내의 사람들이 저분을 신녀라 부르고 있습니다. 예언이 하나도 빗나가는 것이 없어서 그리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크으음…….
비강은 얼굴까지 찌푸리며 몹시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강무화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비강을 쳐다보았다.
“교주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알고 싶지도 않소. 그나저나 왜 나를 교주라 부르는 겁니까?”
허허허허…….
비강이 질문을 하자마자 무진도가 또 웃으며 나섰다.
“그것은 전부 저의 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 대협께서는 이곳의 교주가 되셨습니다. 일월신교의 교주가 되셨으니 교인들은 죽음으로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
“정말 뻔뻔한 자로군.”
분노한 비강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이에 무진도는 겁을 집어먹었고 담노가 급하게 나섰다.
“주인, 고정하십시오.”
“지금 고정하게 되었습니까? 담노. 저자는 불쌍한 사람들을 선동해 없는 신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거기다가 신교라니요? 진정 이곳이 신이 사는 신교이고 제가 신입니까? 일월성신? 그런 것은 애초부터 없었습니다.”
크게 노한 비강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담노는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강호인들도 사천존이나 중천의 주인을 무신이라 불렀습니다, 주인.”
“그들을 비록 무신이라 부르고 있으나 진정 신이라 여기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신에게 죽음이 가당키나 한답니까.”
“아무도 없지만은 않습니다. 강호인들 중에는 그들을 진정 신으로 여기는 자들이 꽤 있습니다. 저 양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 양민들은 오래전부터 일월성신이라는 신을 믿고 있었고 다만 무진도는 주인이 일월성신의 화신이라 말했을 뿐입니다. 저들에게 있어 신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살아갈 집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입을 옷을 주는 분이 바로 진정한 신입니다.”
담노는 비강이 어떻게든 세력을 키워 강호의 주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것이 비록 사교(邪敎)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원수를 갚고 강호의 주인이 되기만 한다면.
“내일 내가 직접 나서서 일월성신이 아님을 밝히겠습니다.”
비강이 완강하게 고집을 부리자 눈치를 살피고 있던 무진도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원래…… 교주는 함부로 얼굴을 내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로운 존재로…….”
“닥쳐!”
비강이 소리를 지르는 순간 살기가 자연스럽게 무진도를 향해 쏟아졌다.
억!
무진도는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가슴을 움켜잡았다.
“주인!”
만약 담노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무진도는 틀림없이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방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그들도 무공의 고수이거나 의원이었기에 방금 이번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의지만으로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다니…….’
후우…… 후우…….
가슴을 움켜쥐며 괴로워하던 무진도는 숨을 연거푸 쉬었다.
“교, 주님…… 저도 이런 식으로 계속 교주님과 함께 하기 힘들 것이니 내기 한번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내기? 무슨 내기?”
무진도는 옷을 가다듬고 정중하게 청했다.
“내일 양민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일월성신이라는 신은 원래 없다. 그러니 너희들은 앞으로 일월성신을 믿지 마라.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양민들은 절대로 제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과연 양민들이 저 무진도의 말을 믿을까?
생각에 잠겼던 비강은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비강과 무진도의 일이 일단락되자 조용히 앉아 있던 담정천이 물었다.
“그런데 서패의 주인이자 무신인 당백요는 누가 죽인 겁니까? 주공.”
담정천은 당백요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무신을 죽인 자가 누구였는지를 먼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무진도로 인해 참고 기다려야 했다.
비강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내가…… 죽였소. 당분간 여러분들만 알고 계시오.”
허허허허허허…….
담노의 기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말……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신을 죽였다는 것은 그 무신보다 더 강하다는 뜻이었다.
사패가 아닌 이제 막 생겨난 신생조직의 수장이 무신이라는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당백요는 정상이 아니었소. 그러니 내가 무신과 비견될 정도로 강하다는 뜻은 아니오.”
비강은 무신을 죽이기 위해 당백요와 싸운 것이 아니었다.
벗의 복수를 위해 원수를 죽인 것이다.
***
무진도는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성문 안의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녹원선인의 말이라 그런지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몰려들었다.
높은 곳에 서 있는 무진도는 여느 때보다도 더 신선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근엄한 표정에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 그리고 하연 도포가 하늘에서 바로 내려온 신선의 모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신선을 대하자마자 전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대들이 알아야 할 일이 있어 보자고 했느니라.”
엎드려 있는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말씀하소서.”
“말씀하소서.”
무진도는 엎드려 있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위쪽에는 비강과 함께 여러 사람들이 나와 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무진도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일월성신은 없느니라. 그러니 앞으로 일월성신을 찾지 말 것이며 기도하지 말라.”
그러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