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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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10화
제210화. 세월은 흐르고(6)
총관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간 비강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북궁도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어떤 기녀가 바로 뛰어 들어와 그 녀석의 품에 안겼었다.
두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마자 푸짐한 요리가 들어오고 기녀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둘 중에 하나는 나이가 이십대 초반쯤 되어 보였고, 또 한 기녀는 이십대 후반이나 서른쯤 되어 보였다.
보통 기루에서는 십대 중반부터 후반정도 되는 기녀들이 인기가 많았고 나이 이십을 넘어가면 지명도가 점점 떨어진다.
‘확실히 우리가 늦게 찾아온 모양이군.’
그러나 담혁수는 아리따운 기녀들이 안으로 들어서자 얼굴까지 붉혔다.
“청란이라고 해요.”
“황국이에요.”
청란은 이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기녀였고, 황국은 서른 가까이 되어 보이는 기녀였다.
“황국이 내 옆에 앉으시오.”
비강이 황국을 지목하자 청란은 담혁수 옆에 앉았다.
황국은 조심스럽게 비강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먼저 술병을 잡아 비강의 잔에 술을 채워 주자 청란도 담혁수의 잔에 술을 채웠다.
비강은 황국이라는 기녀가 채워 주는 술잔을 받으며 물었다.
“혹시 홍매라는 기녀를 알고 있소?”
“모르겠어요.”
뜻밖의 질문이었는지 황국이라는 기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황국은 화사한 눈웃음을 흘리며 애교를 떨었다.
“어머. 공자님은 제가 마음에 안 드셨나 보네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저는 공자님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기녀가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애교를 떨어 대자 비강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입에서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홍매와 술잔을 나누며 지난날의 북궁도를 추억하고 싶었다.
“금이나 한번 타보시오.”
“잠시만 기다리세요, 공자님.”
잠시 후 밖으로 나갔던 황국이 돌아오고 금을 품은 기녀가 뒤를 이어 방으로 들어왔다.
금을 품고 들어온 기녀는 자리를 잡고 앉아 음을 타기 시작했다.
띠리링…… 띵……
금음이 방안을 울리는 가운데 비강과 담혁수는 흥겹게 술과 요리를 즐겼다.
이윽고 술이 거나해진 담혁수를 기녀가 부축해 일으켰다.
“공자님. 우리는 저쪽 방으로 가요.”
“그…… 그……럽시다. 교…… 아니…… 형님……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기루에 들어오기 전부터 약속된 관계가 바로 형제였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비강을 교주라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담혁수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지만 형제라는 관계를 잊지 않았다.
기녀와 담혁수가 방을 나가고나니 방 안에는 비강과 황국만 남게 되었다.
“공자님. 우리도 방으로 들어갈까요?”
기녀가 비강의 팔을 잡아끌었다.
비록 술에 취해 있었으나 비강의 정신은 멀쩡했다.
“혹시 하오문이오?”
술에 취해 팔을 잡아끌던 기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요염했던 기녀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예전에는 그랬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 이 기루에 하오문은 없어요. 하오문의 기녀를 찾아오신 것이라면 잘못 들어오셨어요.”
“나는 사련의 무인이 아니오. 그러니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소.”
술에 취해 있던 기녀 황국은 처음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알아요. 제가 겪어 본 사내들이 얼만데 그만한 것도 눈치를 채지 못하겠어요. 공자님께서는 그들과 같은 냄새가 나지 않더군요.”
“냄새?”
비강이 말을 받으며 황국의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이 황국이라는 기녀는 여느 기녀들과는 뭔가 많이 달라 보였다.
“네. 그들의 몸에서는 항상 비릿한 피 냄새가 나요. 몸을 깨끗이 씻어도 그 냄새는 지워지지 않아요.”
“그렇다면 나는 무슨 냄새가 나오?”
“공자님은 얼음처럼 차가워요. 옆에 앉아 있으면 저까지 얼어 버리게 할 정도로요.”
비강은 웃으며 잔을 비웠다.
이 기녀가 무엇을 보고 자신을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기녀는 비강이 잔을 비우자 술병을 잡아 술을 채웠다.
“우리 기녀들은 손님들을 위해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 웃는 일은 없어요. 공자님도 그러하더군요.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어요.”
“당신 같은 사람이 기녀로 있는 것이 아깝군.”
황국은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부터 기녀였던 사람은 없답니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여자였다.
그 사연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묻지 않았다.
“황 소저가 홍매 대신 밤새 술을 마시며 이야기나 나눕시다.”
기녀에게 소저라 부르는 사람은 이 기루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기루에 처음 찾아오는 손님들마저 소저라 하지 않는다.
황국은 조금 놀란 눈으로 비강을 응시하다가 술잔을 들었다.
다시 술잔이 오가며 술병은 비어 갔다.
“예전에 이 기루에 자주 찾아오는 강호의 젊은 협객이 있었어요. 그분은 여러 기녀들과 어울렸지만 특히 홍매를 좋아했지요. 홍매 또한 그 협객 분을 좋아했고요. 그분은 술자리에서 아주 짓궂었지만 기녀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어요. 언제나 예를 지켰지요. 기녀들도 그런 그분을 아주 좋아했어요. 그래서 많은 기녀들이 홍매를 질투했지요. 하지만 그 협객 분은 이제 다시는 홍매와 기녀들을 만나지 못해요. 강호에 나간 그분은 불귀의 객이 되셨거든요.”
비강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황국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윽고 그녀의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비강은 그녀의 잔에 술을 채우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게는 아주 친한 벗이 있소.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 얼굴을 대할 때부터 그녀석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소. 그 녀석은 친절하고, 짓궂고, 용맹하며, 무모하오. 나는 그 녀석이 언젠가 커다란 기루를 짓고 그 안에서 수많은 여인들과 함께 즐겁게 놀며 늙어 죽을 것이라 생각했소. 이제 그 녀석은 기루를 짓지 못하오. 땅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오. 나는 그 녀석을 꿈에서나마 만나고 싶어 하건만 그 녀석은 내게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구려.”
비강의 이야기가 끝이 나자 황국은 조용히 머리를 조아렸다.
“공자께서 바로 강호에서 백리혈이라 불리고 있는 연비강 대협이시로군요.”
“나를 알고 있소?”
“남협께서는 생전에 이곳을 찾아오실 때마다 자신보다 대협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셨어요. 자신에게는 연비강이라는 친한 벗이 있는데 그 친구는 강호가 감당 못할 태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술잔을 기울이는 비강의 눈에 기루에 앉아 기녀들에게 허풍을 떨고 있는 북궁도의 모습이 보였다.
“그놈이 참 성질이 더러워. 당한 것은 항상 되갚아 주는 놈이거든. 그래도 나는 그놈이 정말 좋아. 엄청나게 차갑고 성질이 더러운 놈이기는 하지만 속마음은 따뜻하거든. 언젠가 너희들에게도 내 벗을 소개시켜 줄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하하……
비강은 눈앞에 살아나 마음대로 지껄이고 있는 북궁도를 보며 즐겁게 웃었다.
황국이 이야기를 마치자 언제 나타났냐는 듯 북궁도는 사라졌다.
“고……맙소.”
목이 메여 오는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홍매는 남협이 강호에서 전사하셨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기루를 그만두었어요. 이 마을에서 서쪽 방향으로 삼십여 리에 있는 삼수리(森水里)라는 마을에서 살고 있어요.”
굳이 홍매까지 만나볼 필요는 없었다.
이 기루에서 충분히 북궁도를 추억하였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나 황국의 이어진 말에 비강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길이라도 좋으니 꼭 한번 홍매를 만나 보세요.”
“이유가 뭐요?”
“홍매를 만나 보시면 자연히 알게 될 거예요.”
황국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니 홍매가 뭔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비강은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기녀일지라도 벗이 사랑한 여인이었다.
“그렇게 하리다.”
***
이른 아침 비강과 담혁수는 황국과 청란이 차려 준 푸짐한 아침 밥상을 받았다.
“같이 듭시다.”
비강이 황국과 청란에게 같이 앉기를 청했다.
“저희들이 어떻게…….”
청란은 말끝을 흐리며 거절하려 했으나 황국은 비강의 맞은편에 앉았다.
황국이 자리에 앉자 청란도 담혁수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청란을 훔쳐보며 식사를 하던 담혁수가 물었다.
“교…… 아니, 형님. 우리 이제 어디로 유람을 떠납니까?”
“글쎄…… 마음 가는 대로 움직여 보자.”
식사가 끝이 나고 밥상이 치워지자 청란은 담혁수의 팔을 껴안았다.
“돌아오시는 길에 생각이 나시면 꼭 저를 찾아주세요. 꼭요. 아셨죠?”
“그럴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소.”
담혁수는 어정쩡하게 대답을 하며 비강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비강은 미소만 지을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기루에서 멀어져 가는 비강의 뒷모습을 열려진 창문을 통해 하염없이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시선의 주인은 바로 황국이었다.
‘성정이 저러하니 문주님이 아직도 저분을 잊지 못하는 것이겠지.’
얼마나 잔인한 사람이었으면 백리혈이라는 별호까지 붙었을까.
그러나 황국이 경험한 백리혈은 잔인하지도 않을뿐더러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밤새 그는 그녀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누워 남협과 있었던 일을 물었을 뿐이다.
기억이 나는 대로, 기녀들에게 들었던 이야기까지 전부 끄집어냈지만, 미처 끄집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아쉽기만 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저 사람이 얼마나 남협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끼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아……
황국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점이 되어 사라져 가는 비강의 모습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남쪽에 퍼져 있던 하오문의 정보망을 새로 짜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그런데 이 무슨 미련이란 말인가.
***
목적지도 모른 채 걸음을 옮기던 담혁수는 왠지 모를 허전함이 들어 뒤쪽을 돌아보았다.
“아쉽소?”
그의 그런 모습에 비강이 미소를 지었다.
“아…… 아닙니다, 교주님.”
벌게진 얼굴로 말을 얼버무리는 담혁수에게 잠깐 시선을 주었던 비강은 서쪽으로 뚫린 길 너머를 응시했다.
“하룻밤의 인연일 뿐이니 정을 주지 마시오.”
담혁수도 아둔한 사람이 아니라 비강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죄송합니다, 교주님.”
“내게 죄송할 게 무에 있겠소.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감정일 것인데. 희로애락이 없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소? 있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
말을 이어 가던 비강은 곧 누군가를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쓸데없이 말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담혁수도 더 이상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교주님,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경치 좋은 곳이라도 알고 계십니까?”
“‘삼수리’라는 마을을 찾아가오.”
“그곳에 경치가 좋은 곳이 있는 모양입니다.”
하하……
“그렇소.”
부지런히 걸은 두 사람은 점심이 되기도 전에 작은 마을의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비린 생선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마을에 모여 있는 집들은 약 삼십여 가구쯤 되어 보였고 눈이 닿는 곳은 온통 푸른색이었다.
울창한 나무들은 인근의 산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계곡마다 물이 흘러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삼수리(森水里)라 불린 이유가 있었군요. 이 정도로 울창하게 나무들이 들어찬 마을은 처음 보았습니다.”
마을을 둘러보던 담혁수의 감상이었다.
비강과 담혁수는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을 안으로 걸음을 옮기던 비강은 지팡이를 짚고 있는 늙은 노파를 발견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비강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자 노파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혹시 이 마을에 스물이 조금 넘는 처녀가 홀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