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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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08화
제208화. 세월은 흐르고(4)
“역시 사제는 속이 너무 좁아. 당한 것은 반드시 되갚아 주려 하는 것을 보면.”
“사제들을 전부 죽여 없앤 당신만 하겠소?”
시천세의 얼굴에 가득했던 온화한 미소가 지워지고 그 자리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네 말이 맞다. 나는 사제들을 전부 죽였지. 이제 너 하나만 남았구나.”
시천세와 비강의 전신에서 은은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무형의 살기는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두 사람이 서 있는 땅바닥을 갈랐다.
타타탁! 탁!……!
두 사람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지는 땅바닥에서 돌이 튀어 올랐다.
“사부께서 악이에게 칠 년을 기다리라 했다지? 너는 칠 년의 의미를 아느냐?”
“당신을 넘어설 시간.”
끌끌끌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부가 너에게 악이나 나를 넘어설 칠 년의 시간을 준 것이라고. 하지만 이곳에 와 너를 만난 후에 나의 짐작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는 칠 년 후에도 나를 넘지 못해.”
비강은 시천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어쩌면 시천세의 확신이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 저자와 싸운다면 분명히 패할 것이다.
그러나 비강은 그가 두렵지 않았다.
“자, 이제 다시 물으마. 너는 칠 년의 의미를 알고 있느냐?”
시천세의 질문에 비강은 청광을 뿌리고 있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파팍! 파파팍!
비강이 흘리고 있는 살기와 시천세가 흘리고 있는 살기가 부딪치며 기의 파편을 뿌렸다.
“몰라.”
이윽고 비강이 대답을 내놓자 시천세는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이 너의 한계다. 칠 년은 사부에게 남은 시간이야.”
고요했던 비강의 표정이 흔들렸다.
시천세는 비강의 표정을 즐기기라도 하듯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알겠느냐? 칠 년 후에 나는 사부의 뒤를 이어 강호의 신이 되는 것이다.”
언뜻 얼굴에 비치는 희열은 그가 얼마나 그것을 갈망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비강은 그런 것에 관심조차 없었다.
“강호의 신이 되어 뭐 할 거요?”
허어……
시천세는 진정으로 놀랐다.
강호인들 중에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쉽구나. 처음부터 네가 이 정도로 작은 그릇인줄 알았다면 적으로 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풍 림주가 당신의 손에 죽는 순간부터 우리는 적이 될 운명으로 엮였소.”
“그렇겠지. 그럼 이제 엮여 있는 운명을 끊어 보자꾸나.”
쿠웅……!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강과 시천세가 마주한 공간이 일그러졌다.
어느새 두 사람은 검을 빼 들고 있었다.
휘이이잉……!
막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검을 날리려는 순간 한 줄기 미약한 회오리바람이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비강과 시천세는 그 자리에 굳어 버린 듯 움직이지 못했다.
무신들이 격돌하는 공간은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라하더라도 그들의 공간을 비껴가야 했다.
그런데 거센 회오리바람도 아니고 미약하기 그지없는 회오리바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공간으로 들어와 지나쳐갔다.
굳어 있던 시천세는 검을 거두고 회오리바람이 불어온 곳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비강도 검을 거두고 시천세와 마찬가지로 허리를 숙였다.
어둠 속에서 독고일이 걸어 나와 두 사람 앞에 멈춰 섰다.
“악이에게 칠 년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독고일은 언제나 같은 모습과 같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욱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들었습니다, 사부님. 다만 사제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기 위해 찾아왔을 뿐입니다.”
시천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비강을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러나 사부는 그 거짓말을 알면서도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시천세의 짐작처럼 독고일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비강을 쳐다보았다.
잠시 비강에게 시선을 준 그는 다시 시천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의 말처럼 칠 년 후에 나는 없을 것이다. 네가 자격이 있다면 내 뒤를 잇게 되겠지.”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 그때까지 모든 준비를 마칠 것입니다.”
자신에 찬 시천세의 대답이었다.
“돌아가라.”
“예. 사부님 언제 한번 이 제자를 찾아와주십시오.”
독고일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시천세는 기쁜 얼굴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어둠 속으로 걸어 사라져 갔다.
“이제는 아저씨라 부르기 싫은 것이냐?”
여전한 목소리였으나 비강은 그 목소리 속에서 따뜻함을 읽어 냈다.
“아저씨, 뵙고 싶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강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비강은 자신이 왜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아저씨 앞에서 이게…… 왜 이러지?’
소매로 눈물을 쓰윽 닦은 비강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독고일은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에…… 식사라도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비강은 고요한 어둠 속을 향해 홀로 중얼거렸다.
“제가 몰래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담혁수가 안절부절하다가 비강과 시천세가 사라진 쪽으로 달려가려 했다.
“움직이지 마라. 교주님께서는 당당한 걸음으로 이곳에 나타날 것이니라.”
하지만 곧 담노의 말에 막혀 발을 멈춰야 했다.
각주들도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서성거렸다.
교주를 믿고 있기는 하지만 상대는 천하제일인 시천세였다.
“교주님께서는 절대로 패하지 않을 것이니라.”
비강에 대한 담노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믿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어둠 속에서 비강이 걸어왔다.
“교주님.”
담노가 제일 먼저 비강을 반겼다.
“시천세는 어찌 되었습니까?”
담정천이 싸움의 결과에 대해 물었다.
“갔소. 우리는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했소.”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라…….’
아무래도 담정천은 비강이 시천세와 일전을 벌인다면 틀림없이 패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비강은 그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내가 아주 기분이 좋소.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합시다. 담노도 함께 가시지요.”
이미 꽤 술을 많이 마신 비강이 각주들을 요리점으로 이끌었다.
늦은 밤이라 요리점 안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일을 보던 점소이는 안으로 들어서는 무진도와 신녀를 발견하고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주인어른! 신녀님과 선인께서 오셨어요!”
점소이의 놀란 외침소리에 부엌에 있던 주인과 주방장까지 달려 나왔다.
“아이고! 세상에 이런 광영이 또 언제 있겠습니까. 신녀님과 선인을 뵙습니다.”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들은 그대로 바닥에 넙죽 엎드려 눈물까지 흘렸다.
허허허……
“중요한 분들을 모셔왔으니 그만하고 일어나게.”
뿌듯한 얼굴로 무진도가 그들을 안아 일으켰다.
주인과 주방장은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황급히 부엌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와 술을 내오겠습니다.”
신녀와 선인을 대접할 요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강과 담노가 상석에 자리하고 각주들은 양옆으로 나뉘어 앉았다.
점소이가 날 듯 술과 소채를 내오자 비강이 직접 술병을 잡아 담노를 시작으로 여러 각주들의 잔에 술을 채웠다.
“내가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시천세와 나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요. 그동안 여러분에게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오.”
비강이 먼저 술잔을 비우자 각주들도 술잔을 비웠다.
다시 술이 잔에 채워지고 비강은 말을 이었다.
“시천세, 풍천양, 남궁악, 도운패, 당백요가 사형제 지간임을 그대들 또한 알고 있을 거요. 그리고 그들이 천마의 무공을 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거요. 그들이 사부라고 부르는 분은 내가 아저씨라 부르는 분이오. 그분은 극독으로 인해 죽어 가는 나를 살려 주셨고, 나를 키워 주셨소.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다 그분 덕분이오.”
각주들은 조용히 비강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가족은 오직 그분밖에 없었소. 나중에 여기 담노를 만나 나에게도 또 다른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내가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분과 담노, 그리고 당신들이오.”
급하게 만든 안주들이 나오자 비강은 잠시 말을 끊었다.
“자, 듭시다.”
술이 몇 순배 오가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비강이 아니라 무진도였다.
“교주님께서 저와 각주들을 가족이라 여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교주님 덕분에 신과 같은 그분을 뵈었습니다. 시천세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아직까지 살아계신단 말씀입니까?”
담정천이 놀라 물었다.
“그렇소이다. 그분은 세월을 초월하는 분이오.”
“그렇다면 왜 강호에 나오지 않으십니까? 그런 분이라면 지금 이 강호의 혼란을 단번에 잠재울 수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 혼란을 제자인 시천세가 잠재웠지 않소?”
무진도와 담정천의 대화를 듣고 있던 비강의 말이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담정천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나는 시천세가 평정한 강호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소. 하나 그것은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멸하기 위함이오. 나는 강호를 지배하지 않을 것이오.”
여러 각주들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특히 담정천의 안색은 눈에 띄게 표시가 날 정도였다.
술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신녀뿐이었다.
그녀는 이미 비강이 강호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교주님. 이 늙은이는 교주님을 믿습니다.”
담노의 말에 비강이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담노. 아, 그리고 며칠 후에 강호에 나가볼까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강호는 이미 시천세의 세상일 것인데…….”
“몰래 다녀오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혁수를 데려가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술자리가 파하고 난후 비강과 여러 각주들은 전부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으나 담정천은 홀로 남아 마을을 거닐었다.
‘교주가 말한 강호제패가 이런 뜻일 줄이야.’
그는 큰 꿈을 꾸고 있었다.
일월신교가 강호를 제패한다면 사천존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 또한 한 지역의 패자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교주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은가.
교주는 강호를 비로 쓸 듯이 깨끗하게 쓸어버리려 한다.
물론 강호인들이 전부 쓸려 나가지는 않겠지만 다스려야 할 자들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다.
사패의 사천존들은 그 지역의 왕이었으며 황제였었다.
‘내가 왜 교주의 복수를 위해 희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온갖 고생을 하며 강호를 떠돌았다.
그 이유는 오직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어린 주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 그 주인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당연하다는 듯 수하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후우……
‘어찌 되었든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조용히 따를 수밖에.’
마을을 거닐던 담정천을 향해 마을을 순찰하던 신교 무인들이 다가왔다.
“각주님. 밤늦게 어인 일로 나오셨습니까?”
낯익은 무인들을 만나자 담정천의 무거웠던 안색이 풀렸다.
“아, 순찰 중이었나?”
“예. 지금 막 교대를 끝내고 들어가는 중이었습니다.”
“고생이 많군. 어떤가? 나와 술 한잔하는 것이.”
평소 일에 있어서는 수하들을 조금 엄하게 대하는 담정천이었으나 사적으로는 자주 술자리에서 수하들과 어울렸다.
때문에 신교 무인들로부터 큰 신임을 얻고 있었다.
하하하……
“저희들이야 불러만 주신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술집이 전부 문을 닫았으니 내 방에 가서 한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