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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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07화
제207화. 세월은 흐르고(3)
비강이 술잔을 내밀자 시천세는 술병을 들어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미안하다, 사제. 이 사형이 눈치가 없어서 사제의 술잔에 술을 채워 주는 것을 깜빡 잊었지 뭐냐.”
“나까지 잊어 주면 안 되겠소?”
응?
시천세가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크하하하……!
시천세의 웃음소리가 요리점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의 웃음소리로 인해 술을 마시고 있던 무인들이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비강이나 시천세의 정체를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사제가 이렇게 우스갯소리까지 잘하는 줄 알았다면 진즉에 찾아올 것을…….”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잔을 들어 술을 비웠다.
이번에는 시천세가 먼저 비강의 잔에 술을 채우고, 뒤이어 비강이 시천세의 잔에 술을 채웠다.
“나도 너처럼 지금 마을을 짓고 있는 중이다.”
“호북 이천에 말이오?”
“이런. 벌써 여기까지 소문이 난거냐? 나는 그래도 남들 모르게 한다고 했는데…… 역시 사제의 눈을 속이기는 쉽지 않구나.”
비강은 방금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다가 문득 호북과 남선, 동천, 서패의 정보까지 누가 전해 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담수연이 정보망을 확충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강호 무림 전체의 정보를 수집할 정도는 아니었다.
“새로 짓고 있는 마을의 이름이 혹시 황곡은 아니오?”
응?
이번에도 시천세는 눈을 둥그렇게 뜨며 놀란 척을 했다.
“역시 사부께서 사제를 제자로 들인 이유가 있었구나. 너를 보면 지난날의 사제들을 보는 것 같다.”
“나를 제자로 들이고 싶어서 들인 것이 아니라 나의 목숨을 살려 주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요.”
끌끌끌끌……
“그래. 너의 본명이 연월임일 알고 있다. 그리고 복수를 하고 있는 중인 것도 알고 있고. 사형으로서 응원하마.”
“중천을 전멸시킬 거요.”
시천세는 당연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술잔을 비웠다.
“사내라면 마음먹은 대로 해야지. 중천을 전멸시키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지. 어디 중천뿐이겠느냐. 약가와 악가에 쳐들어가 어리친 개새끼 한 마리도 남겨 놓지 말아야지.”
비강도 술잔을 비웠다.
“아무렇지도 않은 거요?”
끌끌끌……
“나는 새집을 짓고 있다니까 그러네. 중천은 약추완 그놈에게 물려주었어. 조금 전에 한말은 취소. 다른 사제들이라면 대번에 내 말을 알아들었을 거다.”
지나치게 즐거워하는 시천세를 마주하고 있는 비강도 점점 더 기분이 즐거워졌다.
시천세라는 사람의 원래 성격은 바로 이렇지 않았을까?
황곡에서 사제들과 이렇게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농담을 즐기지 않았을까.
어느새 요리점 안에서 술을 마시던 무인들도 전부 사라졌다.
조금 전에 문밖에서 다른 무인 하나가 손짓으로 그들을 불러냈었다.
비강과 시천세는 그것을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약추완이 엄청 좋아했겠소.”
탕! 탕! 탕!……!
크하하하하……!
시천세는 식탁까지 두드리며 웃어댔다.
“아, 눈물 나. 사제가 그놈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어야 하는 건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
시천세가 즐거워하고 있을 때 점소이가 주춤주춤 안주를 내왔다.
바로 양념을 몇 번이나 바르고 구워 낸 작은 크기의 통돼지였다.
통돼지를 내온 점소이는 옆에 서서 칼로 살을 발라 접시에 올려놓았다.
고기를 자르고 접시에 올려놓는 점소이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나 이름은 조금도 평범한 것들이 아니었다.
중천을 전멸시킨다거나 약가와 악가를 몰살한 다거나, 또는 중천을 약추완에게 물려주었다거나 하는 말이 어찌 평범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둘 중에 하나였다.
크게 미친놈들이거나 아니면 진정으로 강호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
어차피 점소이에게는 둘 다 두려운 자들이었다.
점소이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자 비강이 웃으며 말했다.
“그만 가보시오. 고기는 내가 알아서 자를 테이니.”
“가…… 감사합니다.”
“술이나 더 내오시오. 최고로 좋은 것으로.”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쯧쯧……
시천세가 갑자기 혀를 찼다.
“역시 사제는 아직까지 배울게 많아. 나나 다른 사제들 같았으면 저 점소이의 저런 모습을 오히려 즐겼을 것인데. 얼마나 재미있는 구경인데 그걸 거부하다니.”
비강과 시천세는 고기를 안주로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비강이 고기를 자르자 시천세는 두 사람의 잔에 술을 채웠다.
“나는 귀와 주둥이를 줘. 그 부위가 내 입맛에 맞아.”
“그 부위는 내 입맛에도 맞소.”
“아, 그 거참. 나는 손님이잖아.”
끄음……
“나를 죽이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도 있소?”
기이한 신음 소리를 흘린 비강은 결국 시천세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
시천세는 귀 한쪽을 입에 넣으며 좋아했다.
“역시 맛있군. 사제, 내가 그 이야기 했나? 약추완이 이곳에 간자들을 들여보냈어. 그런 것을 보면 그놈도 참 대단해.”
“왜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해 주는 거요?”
“사제니까. 그것 말고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나. 아, 거기 볼 살도 나줘.”
비강이 고기를 자르면 시천세는 술을 채웠다.
그렇게 술 세병을 비운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제 덕분에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어. 고기와 술도 맛있었고.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하는데 들어 주겠나?”
“해 보시오.”
“사제. 강호에 나오지 말고 이곳에서 살아. 그럼 사제는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거야.”
하하하……
시천세를 만난 후 처음으로 비강이 웃었다.
“불가하오. 당신은 북림의 주인을 죽였고, 당신은 내 벗인 북궁도의 죽음에 발단이 되었으며, 당신은 하오문주를 죽여 내가…… 아니, 어찌 되었든 불가하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게 만들었소.
비강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그동안 내가 너를 사제로 여기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지. 그만 일어날까?”
“그럽시다.”
비강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을 불렀다.
“얼마요?”
“으…… 은자 네 냥입니다. 술이 워낙 비싼 것들이라…… 죄송합니다.”
두려움에 질린 주인은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죄송할 게 무엇이 있겠소. 여기 있소.”
은자 네 냥으로 값을 치른 비강이 먼저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여러 각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뒤이어 문밖으로 나온 시천세가 그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
술집을 빠져나온 담노의 제자는 담혁수가 있을 만한 곳으로 달려갔다.
아마 지금쯤이면 저녁 식사를 끝내고 무공 수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짐작대로 담혁수는 연무장에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각주님!”
무공을 연마하고 있던 담혁수가 검을 내리며 신형을 돌렸다.
“무슨 일이냐?”
“교주님께서 낯선 사람과 요리점에 들어오셨는데 대화가 매우 이상합니다.”
“대화가 이상하다니? 자세히 말해 봐.”
“예. 낯선 자가 교주님을 사제라 부르고 중천의 부천주 약추완을 발톱의 때만도 여기지 않습니다.”
보고를 받은 담혁수는 대번에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요리점 안에 또 누가 있느냐?”
“제가 가르치는 무인들 셋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지금 그곳으로 달려가 그들을 몰래 빼내오도록 하라.”
“예.”
담혁수는 급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각주들을 불러 모았다.
담노와 담정천, 담수연, 육선풍, 추옥민, 강무화, 살가, 무진도가 바로 그들이었다.
“지금 마을 요리점에서 교주님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데 아무래도 시천세인 것 같습니다.”
담혁수의 말에 각주들이 전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그자가 우리 일월신교를 멸하기 위해 들어왔구나.”
담노는 결연한 표정으로 앞장서 걸었다.
각주들도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마을로 내려왔다.
요리점 앞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려는 담노를 신녀가 붙잡았다.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교주님도 뭔가 생각이 있어 그자를 만나고 계시는 걸 거예요.”
평소에도 신녀를 크게 신임하고 있던 담노는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얼굴에는 초조함과 걱정이 가득했다.
***
“이런 환대를 받을 줄이야.”
“그만 물러가시오.”
비강의 말에 여러 각주들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명령이오.”
여러 각주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뒤로 물러나기는 했으나, 담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교주님, 저는 이곳에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담노의 고집을 알고 있는 비강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비강은 별다른 내색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담노, 저를 믿지 못하십니까?”
그제야 담노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시천세는 여러 각주들을 살피다가 얼굴에 검상이 가득한 담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대가 담진산이로군. 이 시천세가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겠소.”
그러나 시천세를 노려보고 있는 담노의 전신에서는 오직 살을 에는 살기만이 줄기줄기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미 늙은 몸이라 지금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여한이 없다. 죽기 싫으면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할 것이다.”
하하하……
시천세는 담노의 살기를 편안한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담노, 사형과 사제 간의 일이라오.”
부드러운 목소리와 미소는 시천세가 담노를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담노와 여러 각주들은 그것을 미처 알아차릴 겨를이 없었다.
사형과 사제지간.
분명 시천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미 시천세와 비강의 관계를 알고 있는 담노와 신녀, 무진도는 그리 놀라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은 경악으로 눈과 입이 커졌다.
교주가 시천세의 사제라니.
‘맙소사. 그럼 그동안 천하를 움직였던 무신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한 사람의 제자란 뜻이 아닌가.’
경악으로 물들었던 그들의 눈동자는 점점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교주가 갑자기 강호에 뚝 떨어졌을 리 없었다.
교주가 갑자기 피바람을 몰고 다니는 백리혈이라 불리었을 리 없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시초라는 것이 있었다.
비강은 시천세의 이 모습에서 그의 또 다른 면을 확인했다.
어쩌면 이 사람이 야망과 욕심을 버렸다면 세상에 다시없을 협객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담노, 괜찮습니다. 그러니 그만 들어가 쉬십시오.”
비강도 시천세와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담노를 달랬다.
“주인, 저는 이곳에 서서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아무도 따라오지 마시오.”
담노의 고집을 꺾지 못한 비강은 각주들 사이를 지나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시천세 또한 비강과 어깨를 나란히 해 걸음을 옮겼다.
막 각주들 사이를 빠져나가던 시천세가 고개를 돌려 무진도를 흘깃 쳐다보았다.
“이곳에 신선이 내려온 모양이로군.”
시천세가 관심을 주자 무진도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하얀 수염을 쓸어내렸다.
“강호에서 ‘무진도’라는 별호로 불리었소.”
아……
뭔가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지 시천세는 눈까지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기꾼이었군.”
파릇파릇한 풀로 뒤덮인 평야에 시천세와 비강이 마주섰다.
드넓은 평야를 둘러보던 시천세가 물었다.
“이곳을 밭이나 논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어찌 놀리고 있나?”
“물이 조금 먼 거리에 있어 논보다는 밭이 어울리는 곳이오. 하나 지금은 신교 무인들의 연무장으로 사용하고 있소. 풍 림주나 도 선주였다면 단번에 알아봤을 거요.”
아……
시천세는 한눈에 이곳이 연무장임을 알아보았다.
풀조차 자라지 않는 넓고 단단한 땅에 찍혀 있는 흐릿한 발자국은 이곳이 틀림없이 연무장이라 말하고 있었다.
이에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진 농담이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뼈를 때릴 만큼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