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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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05화
제205화. 세월은 흐르고(1)
“그놈의 끄나풀 노릇을 하던 상단은 어찌 처리하였느냐?”
“끄나풀이 아니었습니다.”
시천세의 안색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실이더냐?”
“예. 그 상단은 녹옥불상의 중간거래자일 뿐이었습니다. 다만 그 상단에 아주 특별한 자가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특별한 자? 누구를 말하는 것이더냐?”
“주동이라는 자였습니다.”
“주동? 내가 이름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냐?”
황옥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이에 의아해진 시천세가 대답을 재촉했다.
“무슨 곡절이 있는 모양이로군. 괜찮으니 어서 말해 봐.”
시천세가 좋은 말로 달래 주자 황옥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예…… 그자는 바로 마동에서 나온 마인이었습니다.
시천세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방금 뭐하고 했느냐?”
“주동이라는 자는…… 마동의 마인이었습니다. 백리혈을 추격할 때 잃어버렸는데 상단의 호위무사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원래 그놈은 백리혈과의 싸움에서 패해 죽임을 당했어야 했습니다만 백리혈이 목숨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백리혈을 따라다닌 모양입니다.”
“놈은 아직 살아 있느냐?”
“예. 죄송합니다.”
“멍청한 놈.”
“죽음으로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황옥은 옆에 놓여 있던 검을 앞으로 내밀고 목을 늘어뜨렸다.
한참 동안이나 매서운 눈으로 황옥을 노려보던 시천세는 긴 탄식과 함께 표정을 풀었다.
“네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련하구나. 내가 너를 죽여 무엇 하겠느냐. 쓸데없이 마음만 상하겠지.”
시천세의 말속에 들어 있는 따뜻함을 읽은 황옥은 이마를 바닥에 가져다 댔다.
“수십 번을 죽어 수십 번을 다시 태어난다고 하여도 저 황옥은 주공을 모시겠습니다.”
“그만 되었으니 나가봐. 호북의 우화봉이 홀로 있으니 그곳으로 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주도록 하고.”
“존명.”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황옥은 방을 나갔다.
그가 방을 나가자마자 총관 벽하원이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머리를 조아렸다.
“용가 상단은 백리혈 연비강과 긴밀한 관계로 연결 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장 잡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그 정도도 모를 것 같은가?”
“제가 주공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렸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시천세는 쓴웃음을 지었다.
“황옥 저놈은 십만대산에서 연비강을 만난 것이 분명해. 저놈 성정으로 볼 때 그냥 모른척하고 빠져나올 리 없거든. 하나 저놈 홀로 연비강을 당해 낼 리 없었겠지. 그런데도 상처 하나 없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보면 연비강이 저놈을 보내 준 거야. 저놈은 그 일을 잊지 못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내게 거짓말을 했어.”
하하……
“참으로 멋진 녀석이야.”
종예와 벽하원은 시천세의 넓은 아량에 크게 감복했다.
“과연 강호의 주인이십니다. 태산보다 크고 대해 보다 넓은…….”
미소를 지운 시천세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입에 발린 소리는 그만하고 방금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잊도록 해.”
“영을 따르겠습니다. 다만 백리혈 연비강은 일찍 처리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그대들도 그만 나가봐.”
종예와 벽하원은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방안에 홀로 남아 있는 시천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빠른 시일 안에 만나 보기는 해야겠지. 빠른 시일 안에…….”
***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주인들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오진권을 응시했다.
무림맹에 복귀하자마자 오진권은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주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동천에서 벌어진 일과 시천세에게 들은 말을 그들에게 전했다.
“본산으로 돌아가게 되다니……. 이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소.”
“오늘 크게 잔치를 열어 이 일을 축하해야 할 것 같소.”
“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소. 꿈에 그리던 그곳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주인들과는 달리 오진권과 남궁휘의 안색은 편치 못했다.
그들 옆에 앉아 있는 군사 제갈곤도 마찬가지였다.
“시천세는 우리에게 본산을 내주며 조건을 달았습니다. 첫째, 중천이나 황곡과 관련이 된 인물들과 가문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하였습니다. 둘째, 제가 매년 정월초하루에 그자를 찾아가 인사를 올려야합니다.”
“맹주, 본산을 찾기만 한다면 우리 정파의 힘은 지금보다 몇 배나 커질 것이오. 당분간 그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파의 힘을 키워야 하오.”
점창 장문인의 말에 다른 팔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주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장문인. 중천의 힘이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나 동천과의 싸움으로 인해 꽤 많은 고수들을 잃었습니다. 우리가 힘을 키워 하나로 모은다면 능히 중천을 함락하고 시천세를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청성 장문인이 맞장구를 치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구파일방과 육대세가 주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했다.
이제 문파와 가문을 재건한다면 예전처럼 강호의 그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희망을 가득 찬 그들을 살피던 제갈곤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맹주와 부맹주가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소이다. 우리들이 이곳에서 각자의 무문과 가문으로 흩어진 후에는 힘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오.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면 중천을 당해 내기 어려울 것이오. 맹주와 부맹주는 그 점을 걱정하고 있소이다.”
껄껄껄……
제갈곤의 걱정에 장문인들과 가주들은 크게 웃었다.
“별 걱정을 다하시오. 이곳 무림맹이 남아 있지 않소? 우리는 본산과 가문으로 전부 돌아가지 않을 것이오. 이곳에 일부를 남기고 항상 소식을 주고받을 것이니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힘을 합칠 수 있을 것이오.”
“당연한 말씀입니다. 더군다나 가문으로 돌아가 힘을 키우고 그 힘을 무림맹에 보낼 것이니 십 년 안에 무림맹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크고 강해질 것입니다.”
오진권의 생각도 장문인들과 가주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군사 제갈곤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에…….”
오진권이 입을 열자 장문인들과 가주들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 쏠렸다.
“만약에 시천세가 우리 정파를 분열시키기 위해 은밀히 접근한다면 어찌…….”
“아미타불…… 맹주.”
소림 장문인이 불호를 외며 오진권의 말을 끊었다.
그의 얼굴에는 은은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다른 장문인들과 가주들도 마찬가지로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맹주는 우리가 설마 원수 놈의 수족이 될까 봐 그것을 걱정하시는 게요? 그놈을 위해 정파를 저버리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그런 말씀은 삼가시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오진권이 얼른 머리를 숙여 잘못을 인정하자 그제야 장문인들과 가주들의 얼굴이 펴졌다.
“맹주, 언젠가 강호 무림은 원래 주인이었던 우리 정파의 손안으로 들어올 것이오. 만약 정파를 배신한 자가 있다면 어찌 고개를 들고 살아갈 수 있겠소. 정말로 그런 자가 나타난다면 우리들은 절대로 그자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믿어 보시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용서를 청합니다.”
껄껄껄…….
“모든 일을 세심하게 살펴 처리해야 하는 맹주의 입장을 우리가 모르는 바도 아니니 그만 얼굴을 푸시오, 맹주.”
“감사합니다.”
오진권과 남궁휘의 안색은 조금 펴졌으나 제갈곤은 여전했다.
그는 책상에서 서류를 하나 꺼내 장문인과 가주들 앞에 펼쳤다.
“지금 무림맹에 남아 있는 자금을 각자 공정하게 분배했소이다. 대략 문파와 가문 앞으로 은자 삼만 냥 정도가 돌아갈 것이외다.”
은자 삼만 냥은 쌀 삼만 섬에 해당하는 대단히 큰 금액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패물과 금은보석을 처리한다면 은자 이만 냥씩 더 돌아갈 것이외다.”
“아미타불…….”
소림 장문인이 서류를 살펴보다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소림은 무림맹을 위해 은자 일만 냥을 남겨 두고 갈 것이오.”
소림 장문인이 먼저 은자 일만 냥을 내놓자 나머지 팔파일방과 육대세가들도 그 뒤를 따라 은자 일만 냥을 내놓았다.
“우리 당가도 은자 일만 냥을 내놓을 것입니다.”
“청성도 은자 일만 냥을 내놓을 것입니다.”
“화산 또한 은자 일만 냥을 내놓겠습니다.”
저마다 은자를 쾌척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오진권은 밀려드는 감동에 몸을 떨었다.
과연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정파였다.
이들의 진정이 이러할진대 어찌 정파를 배신한단 말인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진권이 깊숙이 머리를 숙이자 장문인과 가주들은 흐뭇한 얼굴을 그를 바라보았다.
“부디 맹주와 부맹주께서는 시천세를 강호에서 지워 버리는 일에만 신경을 써 주시오.”
“그렇게 할 것입니다.”
방 안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하고 흥겨웠으나 제갈곤의 안색은 끝까지 펴지지 않았다.
***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그놈은 어미도 못 알아본단 말이냐!”
이미 연안에서 보내온 전서로 가인들은 다섯 명밖에 살아남지 못했고, 약하림은 팔이 잘렸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추완은 쉽사리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중천으로 약하림과 가인들이 들어오고 나서야 전서가 틀림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님……!”
약하림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약추완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근처에 있던 중천 무인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그녀는 도통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괜찮다, 괜찮아. 그만 진정해라.”
약추완은 계속해서 그녀를 달랬다.
“그놈은 사람이 아니에요! 절대로 그놈을 용서하지 마세요!”
“오냐. 그렇게 할 것이니 그만 진정하고 방으로 들어가자꾸나.”
약하림을 달래 객관으로 들여보낸 약추완은 가인들을 다른 방으로 불러들였다.
“어떻게 된 것이냐? 어떻게 너희들만 살아 돌아왔는지 소상히 말해 보아라.”
가인들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자가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의 일을 밝혔다.
“저희들은 부천주님의 영을 받아 가모님을 모시고 십만대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중간에 황곡의 고수 황옥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자가 가모님을 옆에서 지켜 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바람에 우리 행렬에 합세하게 되었습니다. 십만대산 입구에 도착해 보니…… 결국 우리 다섯 명만 살아남게 되었고, 황옥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기나긴 이야기가 끝이 나자 약추완의 눈에는 불길이 일었다.
“이…… 찢어 죽일 것들!”
그의 분노는 약하림을 저렇게 만들고, 가인들을 죽인 연비강과 약하림을 지키지 못한 가인들, 그리고 황옥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가인들은 약추완의 분노는 전부 연비강을 향한 것이라 생각했다.
후우……
터질 듯한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힌 약추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을 것이니 푹 쉬도록 하라.”
“감사합니다, 부천주님.”
가인들의 방을 나온 그는 약하림이 기다리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시녀의 시중을 받으며 차를 마시고 있던 그녀는 약추완이 들어오자 소매로 눈물을 찍었다.
“가서 술을 내오너라.”
시녀에게 술을 내오라 지시한 약추완은 약하림과 마주 앉았다.
“그놈이 너의 목숨까지 빼앗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약추완은 비강이 약하림의 목숨까지는 빼앗지 않았다는 사실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만약 놈이 가인들을 죽이고 약하림의 팔을 베어 낸 것으로 아비의 복수를 끝낸 것이라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겠는가.
그러나 약하림의 대답은 약추완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 내놓았다.
“그놈은 제가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라고 있어요.”
으드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