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01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01화
제201화. 황곡 재림(1)
아이의 허리를 잡고 있던 가인은 검을 아이의 목에 바짝 가져다 댔다.
가인들을 향해 다가가던 담혁수는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그의 신형은 좌우로 분열했다.
마치 십여 명의 담혁수가 전방에 벽을 쌓은 것 같았다.
“막아!”
십여 명으로 분열한 담혁수는 일제히 가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분열한 담혁수들 중앙에서 검은빛이 아이의 목을 향해 스며들었다.
크아악!
검으로 아이의 목을 겨누고 있던 오른쪽 손등에 손바닥 만 한 비수가 날아와 박혔다.
손을 잡고 괴로워하는 가인의 뒤로 어느새 담혁수가 신형을 드러냈다.
스걱. 스걱.
가인들의 목을 쳐버린 그는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피해 허리를 숙였다.
촤아악, 아아악!
사타구니에서 허리로 길게 혈선을 만들어 내며 빠져나간 검은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담혁수의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막 담혁수의 뒷목을 베어 내려던 가인은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온 검에 가슴을 관통 당했다. 끄어어어…… 철퍼덕.
괴로운 신음 소리와 함께 마지막 남은 가인이 쓰러지자 담혁수는 손을 잡고 괴로워하는 가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너를 쉽게 죽이면 안 되겠지. 극한의 고통을 맛보게 해 주마.”
퍽!
담혁수는 무릎을 꿇고 있는 가인의 얼굴을 발등으로 올려 찼다.
우억!
휘어지듯 공중으로 솟아올랐던 가인의 몸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이자는 끌고 가 묶어 놓고, 시신들은 전부 한곳에 모아 불태워라.”
“예.”
뒤에 늘어서 있던 무인들이 담혁수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가만히 좀 계시오. 피가 계속 흐르잖소.”
약하림의 팔뚝을 간신히 헝겊으로 동여 싸맨 이종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머리가 풀어져 산발이 된 약하림의 모습은 광녀처럼 보였다.
“오랑캐의…… 씨를 낳는 것이 아니었어! 뱃속에 있을 때 일찍 죽였어야 했어!”
악다구니를 토해 내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한숨을 쉬어 낸 이종은 방을 나왔다.
“교…… 교주님.”
방밖에 조용히 서 있는 비강을 발견한 이종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다행히 목숨은 건질 것 같습니다.”
“수고했소. 내일 저것들이 출발할 때 상처가 덧나지 않는 약초나 챙겨 주시오.”
“알겠습니다.”
볼일을 끝낸 비강은 미련 없이 등을 보였다.
“저…… 교주님.”
“무슨 할 말이라도 있소? 각주.”
비강은 머뭇거리고 있는 이종을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나중에…… 아니. 언젠가 이번 일에 대해 교주님 스스로 원망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강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나는 저 여인에게 어떠한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오. 내 말뜻을 아시겠소? 나는 저 여자를 지독한 적으로 볼 뿐이오.”
아아…….
세상에 이런 혈연관계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어미는 아들을 저주하고 아들은 어미를 어미라 여기지도 않는다.
어미는 그저 반드시 죽여야 할 적일 뿐이었다.
이종의 눈에 언뜻 눈물이 비쳤다.
“나 때문에 마음 쓰지 마시오.”
“죄송합니다, 교주님. 제가 쓸데없는 말로 교주님의 심기만 불편하게 해 드렸습니다.”
“불편한 것 없었으니 괜찮소.”
짧은 대답을 끝으로 비강은 자신의 거처로 걸어갔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술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방 안에 앉아 먼저 술을 마시고 있던 신녀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어서 오세요, 교주님.”
비강은 말없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술잔을 들었다.
술잔에는 이미 술이 채워져 있었다.
“이야기 들었어요. 교주님은 내 짐작보다 훨씬 더 잔인한 분이에요. 뭐,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술을 들이켜자 목구멍으로 화끈한 불덩이가 넘어갔다.
비강이 술잔을 비우자 신녀는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비워 낸 잔을 채워 주었다.
“긴히 내게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것 같은데, 하고자 하는 말을 이제 해 보시오.”
하하……
“정말 당신은 못 말리겠군요. 좋아요. 교주님이…… 아니 당신이 그렇게 먼저 말하니 나도 편하게 말을 할게요.”
흐흠……
신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 일도 그렇지만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술잔을 들어 올리는 비강의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술을 들이켜고 빈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고맙소.”
이른 아침 살아남은 가인들 다섯 명과 시녀가 객관 앞에 끌려나왔다.
챙그랑!
신교 무인들은 그들 앞에 검 다섯 자루를 내던졌다.
뒤이어 또 다른 무인들이 한 팔을 잃은 약하림을 끌고 나왔다.
“가모!”
“가모, 어찌 된 일입니까?”
죽은 줄만 알았던 약하림이 살아나오니 가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인들이 가인들 앞에 그녀를 내던지듯 밀어 버렸다.
약하림은 힘없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 악독한 놈들, 너희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가인들이 분개를 하며 소리쳤으나 신교 무인들은 대꾸 한마디 하지 않았다.
무심하게 그들을 바라보던 신교 무인들은 갑자기 양쪽으로 나뉘어 길을 만들었다.
그길로 담정천이 들어섰다.
가인들 앞에 당도한 담정천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살려줄 터이니 그만 돌아가라. 두 대의 마차를 몰아 돌아가려면 너희들이 타고 왔던 말은 전부 이곳에 남겨 놓아야 할 것이다.”
수십 필의 말을 빼앗기게 생긴 가인들은 기가 막혔다.
하지만 목숨을 구한 것만으로도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눈치 없는 가인 하나가 따져 물었다.
“그, 그럼 우리 가문의 마필을 너희들이 빼앗겠단 말이더냐?”
“네놈의 목 대신 말 두필을 돌려주마.”
담정천의 차가운 말에 가인은 얼른 입을 다물며 뒤로 물러섰다.
“이놈들을 십만대산 입구까지 안내해 주고 돌아오라.”
“존명.”
명령을 받은 신교 무인들은 가인들을 마차에 오르게 했다.
“죽기 싫으면 어서 올라가.”
가인들과 시녀는 먼저 약하림을 마차에 태우고 자신들은 마부석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시녀가 마차에 오르자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등에 오른 신교 무인들은 그들을 안내해 객관을 빠져나갔다.
거리로 나오자 수많은 마을사람들이 몰려나와 그들을 구경했다.
“저 때려죽일 놈들이 우리 마을의 아이를 죽이려 했다는구먼.”
“못된 놈들일세 그려. 쳐 죽일 것들.”
“교주님께서 예의를 갖춰 대접을 맞이하셨다는데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마을사람들은 마차를 향해 욕지거리를 하고 손가락질을 해 댔다.
성문을 빠져나온 마차는 산길을 통해 십만대산을 벗어났다.
한참을 가다 보니 움막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나와 마차행렬을 구경했다.
마차가 움막에 가까워지자 아이들 수백 명이 달려 나와 손을 내밀었다.
“한 푼만 주세요!”
“어제 하루 종일 굻었어요. 한 푼만 주세요!”
십만대산을 들어갈 때 베푼 거짓 호의에 속은 아이들과 소문을 들은 아이들이 이번에도 은전을 받아볼까 하여 몰려든 것이다.
그러나 마차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마차를 몰던 가인들의 날선 목소리가 아이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
“꺼져! 이 거지새끼들아!”
그러자 불쌍한 눈으로 마차를 쳐다보던 아이들은 눈치를 살피며 뒤로 물러섰다.
“왜 욕을 하고 지랄들이야.”
“좋은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나쁜 것들이었네.”
퉤! 퉤!,
제 딴에는 속삭이듯 지껄이는 아이들이었으나 가인들의 귓속으로 선명하게 들려왔다.
전날 은자를 받은 아이들은 십여 명이었고 오늘 몰려들 아이들은 이백 명이 넘은 까닭이었다.
으드득…….
가인들은 저마다 이를 갈았다.
‘어디 두고 보자, 이곳에 다시 오는 날에는 개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마차들은 우여곡절 끝에 십만대산 입구에 도착했다.
안내를 맡았던 신교 무인들이 되돌아가고 마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마차 안에 앉아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던 약하림은 작은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야 그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났다.
‘이번에는 반드시…… 네놈을 죽여주마.’
복수를 다짐한 그녀는 고통을 참아 내며 앞에 앉아 있는 시녀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것이냐? 어서 새로 단장을 하지 않고.”
“죄, 죄송합니다.”
놀란 시녀는 급히 약하림의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기고 호화로운 비녀를 꽂았다.
시녀에 의해 얼굴 화장까지 마친 약하림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듣고 보았던 모든 것들을 잊도록 해라.”
시녀는 바로 마차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본능적으로 죽음의 위기를 알아챈 것이다.
“소녀는 들은 것도 없고, 본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잊을 것도 없습니다.”
“기특한지고. 그래서 내가 너를 옆에 두는 것이야.”
십만대산 입구에 두 필의 말이 마주했다.
말 위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길을 바라보며 황옥이 입을 열었다.
“나를 구명해 준 이유가 무엇이냐?”
“나도 몰라.”
주동 또한 그 길을 응시했다.
“혹시 교주의 정체를 비밀로 해 달라는 것이라면 거절한다.”
황옥의 말에 주동은 피식 웃었다.
“교주께서 그러시더군. 어차피 얼마 안 가 알게 될 일을 비밀로 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확실히 백리혈이 영리하기는 하지.”
“대신 네가 해 주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낄낄낄낄…….
“역시 백리혈이 나를 그냥 살려 둘 리가 없지. 무엇이냐?”
“중천으로 돌아가는 중에 약하림과 약추완에 대한 비사를 퍼뜨려 달라고 하시더군.”
“나보고 매담자 노릇을 하란 말이로구나. 뭐, 그것도 좋겠지.”
별것 아니라는 듯 쉽게 허락한 황옥은 말배를 찼다.
다그닥, 다그닥……
말을 달리던 그는 주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또 보자. 그땐 네가 너를 벨지도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인 주동도 십만대산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교주는 황옥이 의를 아는 사람이라 했었다.
때문에 그를 적으로 대할 뿐이지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목숨을 살려 주었으니 그는 어떻게든 은혜를 갚으려 할 것이다.
‘과연 저자가 뜻대로 움직여 줄지…….’
중천으로 돌아온 시천세는 총관 벽하원을 불러 보고부터 받았다.
“약하림을 호위해 약가와 악가의 가인들이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순찰조가 은밀히 뒤를 쫓고 있는데, 아직 목적지에는 당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황옥은 뭐하고 있나?”
“아직 연락받은 것이 없습니다.”
“순찰조가 붙어 있는 것을 아는데.”
“워낙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분이라 종적을 놓쳤다고 합니다.”
쯧쯧…….
“바보 같은 놈들.”
순찰조를 몹시 못마땅해 하던 시천세는 다른 일을 물었다.
“호북 이천의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곳을 버릴 작정이신지요?”
“그곳이 황곡과 아주 비슷해. 더군다나 강호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사방을 두루 살펴보기가 편하기도 하고.”
“주공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우 여협께 사람을 보내 공사를 조금 더 서두르라 전하겠습니다. 늦어도 올해 가을이 되기 전에는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 그리고 약추완을 불러 와.”
“예.”
드디어 강호를 평정했다.
동서남북, 이제 중천에 맞설만한 세력은 없었다.
강호일통의 염원을 이루었으니 천도를 함은 당연했다.
이곳은 원래 사제 풍천양이 세운 곳이라 잠시 빌려 쓰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이제 강호의 주인이 되었으니 새로운 보금자리를 지어 그곳으로 옮겨 가는 것은 당연했다.
“부천주 약추완이 천주님의 무사귀환에 감축 인사를 드리옵니다.”
방밖에서 약추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
시천세의 허락이 떨어지자 약추완과 벽하원이 함께 회의실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