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00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00화
제200화. 천륜을 베다
“담노께서 직접 저 여자를 끌어내 팔을 자르십시오.”
“교주……님.”
담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당연히 저 여자는 목을 베어야 했다.
그런데 팔 하나만 자르라는 것은 그것을 끝으로 용서해 준다는 뜻이 아닌가.
약하림은 담노와는 다른 의미에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어미의 팔을 자르라고 하다니?
너무나 경악한 나머지 그녀는 본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워…… 월아.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게냐? 하늘이 정한 천륜을 끊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어.”
비강은 감정 한 올 실리지 않은 눈으로 약하림을 내려다보았다.
“오래전에 그 천륜을 끊어 내신 분이 바로 당신이지 않습니까?”
그러고는 다시 담노에게 시선을 돌렸다.
“편안한 죽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럽니다. 오늘만 날이 아닙니다.”
그제야 안색을 편 담노는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
“곧바로 시행하겠습니다.”
“워…… 월아…… 월아…… 이 무슨 짓이냐? 어떻게……?”
약하림은 넋을 잃은 채 중얼거렸지만, 비강은 그녀를 무감정한 눈으로 한번 힐끗 보고는 대전을 나갔다.
주동과 황옥은 말없이 술잔만 비웠다.
벌써 술 한 병이 다하고 두 번째 술병을 잡은 황옥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알고 있나? 내가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그래? 그럼 나를 어릴 때로 되돌릴 수 있나? 그렇게 해 준다면 제대로 대우를 해 주지.”
“그건 불가능하지. 하나 그때로 되돌린다고 해도 너는 불행한 삶을 살았을 거다.”
“그건 순전히 새 삶이야. 그리고 불행하게 살았더라도 내 형제들은 잃어버리지 않았겠지.”
쪼르르……
황옥은 처음으로 주동의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어차피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 잊고 앞으로의 삶에만 충실해.”
“그런가. 참으로 편한 말이로군.”
술잔을 비운 주동은 황옥의 잔에 술을 채웠다.
“어떻게 저자들과 함께 오게 되었나?”
“그게 말이야. 너와 용 단주를 추격하다가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저것들이 찾아오더라고. 조금 더 바짝 붙어 추격하고 싶었는데 너 때문에 그러지도 못해 억울해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주동의 눈빛에 살기가 어른거렸다.
“언젠가 나의 시간을 빼앗아 간 그자를 죽이러 갈 거다.”
황옥은 주동의 살기를 가볍게 받아넘기며 모른척했다.
“그렇게 해. 말리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말이야…… 혹시 악가의 가모에 대해 들은 건 없나?”
“모른다.”
“그럴 리가…… 그럼 그 여자가 연비강의 어미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나?”
크게 놀란 주동은 술을 비우다말고 황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럼 자신을 죽였다던 어미가 바로…….’
지난날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비강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랐다.
“정말로 몰랐던 모양이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줄까? 저 여자는 백리혈이 아주 어렸을 때 극약을 먹여 죽이려 했어. 원래는 죽었어야 하는데 기적적으로 살아났지. 또한 저 여자의 아비는 백리혈 아비의 목을 베었지. 어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 일이 있었군.”
주동은 침음을 삼키고는 단번에 술잔을 비웠다.
자신도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교주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해 준 줄 알아? 우습게도 그 여자와 나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거든. 그 여자가 죽는다면 나 또한 그놈이 살려 둘 리 없으니까. 내가 이곳으로 들어올 때 한 가지 약속을 했어. 이곳에서 무사히 내보내 주겠다고 말이지. 웃기지 않나? 잘못하면 어차피 다 죽는데 약속이 무슨 소용이냔 말이야.”
낄낄낄낄…….
황옥은 자신의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유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연비강을 죽이고는 싶은데 무공이 너무 강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한 목숨 바쳐 연비강을 죽일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건만, 그것이 안 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 빌어먹을. 웃기지도 않은 일에 쳐웃고 있다니, 내가 조금 맛이 갔어.”
스스로에게 이런 얘기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 황옥은 지금 술에 취했거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아악!
바로 그때 문밖에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황옥은 단번에 그 비명 소리의 주인이 약하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콰직,
대번에 분위기가 바뀌며 황옥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문 앞마당에는 비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 돼! 제발…….”
비강의 등 너머에서는 담노가 약하림을 끌고 나와 무릎을 꿇리고 있는 중이었다.
황옥은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비강을 노려보았다.
“이곳에서는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나? 전쟁 중에도 적진을 왕래하는 사신의 목숨은 보장해 주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저 여자는 사신이 아니다.”
비강의 대답이 끝나고 담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당 당신의 목숨을 가져가야 하나 지금은 팔 하나로 대신하겠소. 다음에는 반드시 당신의 목숨을 가져갈 터이니 그때까지 기다리시오.”
“안 돼!”
담노가 검을 빼 들었고 그와 동시에 황옥의 허리에서도 검이 빠져나왔다.
스걱. 아악!
까깡!
황옥의 검은 비강의 검에 막혔으나, 담노의 검은 약하림의 팔을 잘라 냈다.
그리고 황옥의 뒷목에 주동의 검이 닿아 있었다.
하아……
황옥은 깊은 한숨과 함께 앞마당을 응시했다.
아아악……!
마당을 적시는 붉은 피와 고통을 참지 못해 악을 쓰며 비명을 질러 대는 여인이 그의 눈에 잡혔다.
“죽여라.”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백산형의 복수를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 남길 말이 무엇이 있겠느냐?”
황옥은 죽음을 앞두고도 꿋꿋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교주님.”
그때 주동이 황옥에게 검을 겨눈 채 입을 열었다.
“말해 봐.”
“이자를 살려 주십시오.”
주동의 청에 비강은 놀랐으나 이유는 묻지 않았다.
“죽지 않을 정도로 치료를 해 줄 테니 그 후에 여자를 데려가라.”
객관에 남아 있던 가인들은 시녀들이 술과 안주를 내오자 삼삼오오 식탁에 둘러앉았다.
시녀들이 식탁에 술과 요리를 차리자마자 나이 든 가인 하나가 요리와 술을 가리켰다.
“시식을 해 보도록.”
시녀들은 군소리 없이 술잔에 술을 조금 채우고 젓가락으로 요리들을 한 점씩 떼어 맛을 보았다.
“대주님은 의심도 많으십니다. 아까 저녁 식사 때도 그러시더니.”
시녀들이 밖으로 나가고 난 후 가인 하나가 술병을 잡으며 운을 뗐다.
“매양 조심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강호라 그런 것이니 너희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야.”
“악가와 우리 약가의 가인들이 함께 있는데, 감히 어느 누가 그런 짓을 벌인단 말씀이십니까? 특히 이곳에 있는 무인들의 상태는 대주님도 직접 확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는 하다만 출발할 때 부천주님께서 특별히 조심하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시지 않았느냐.”
하하하……
“그분께서는 우리가 먼 길을 떠날 때 항상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어서 한잔 받으십시오.”
대주는 술잔을 받으면서도 약하림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했다.
“그나저나 큰 아씨께서는 괜찮을지 모르겠구나. 지금이라도 올라가 봐야 하는 건 아닌지…….”
“대단한 고수가 옆에 붙어 있는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비록 황곡 출신 고수들과는 썩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만큼 믿음직한 자들도 세상에 없었다.
“그렇기는 하다만…… 사실 나는 십만대산이라는 이곳에 이런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가면 이곳을 힘으로 빼앗아 우리 가문이 차지하도록 보고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가인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아까운 곳입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시간을 내 이곳저곳을 두루 살펴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막 술잔을 비우던 그들의 귀로 여인의 구슬픈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쿠당탕! 쿠탕!
술잔의 술을 비우다가 서로 얼굴을 쳐다본 가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으로 뛰쳐나온 가인들은 산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달리다가 일곱 명의 무인들과 맞닥뜨렸다.
그들의 선두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자는 다름 아닌 담정천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늘어서 있는 무인들은 담노의 제자들이었다.
담정천은 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눈으로 그들을 쓸어 보았다.
“교주님께서는 너희들 중에 다섯 명만 살려 보내고자 하시니 알아서 결정하라.”
“미친!”
격분한 가인 하나가 검을 빼 들며 달려들었다.
스악.
그러나 그 가인은 달려들던 그 상태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미 담정천의 검이 그의 복부를 훑고 지나간 것이다.
커어억!
바닥에 고꾸라진 사내는 뒤늦게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를 토해 냈다.
“가모님을 구출하라!”
대주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인들이 달려들었으나, 담정천은 오히려 그들 사이로 파고들어갔다.
서걱. 스악, 끄으윽, 크억,
그의 검이 스칠 때마다 가인들의 목이 떨어졌고 가슴이 갈라졌다.
이에 약가의 가인들을 이끌고 온 대주와 악가의 가인들을 이끌고 온 대주가 직접 나섰다.
대주들이 담정천의 앞을 막아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교의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까깡! 깡!……!
강호 명가의 대주라 그런지 그들의 검과 창에는 뿌연 기운이 덧씌워져 있었다.
그러나 담정천의 검과 격돌을 한 그들은 팔목에 이어 팔뚝과 어깨까지 타고 넘어오는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강한 충격을 받았는지 자칫 검과 창까지 놓칠 뻔했다.
튕겨 나온 창의 방향을 틀어 담정천의 목을 꿰뚫으려던 악가 대주의 목에 붉은 실선이 생겼다.
어느새 대주의 등 뒤에 있던 담정천은 목이 떨어지는 그 공간으로 검신을 집어넣었다.
마주 검을 뻗어 오는 검과 교차가 되며 약가 대주의 이마에 붉은 점이 생겼다.
털썩.
대주들은 짧은 시간에 잠재운 담정천은 뒤쪽에서 도망치고 있는 가인들을 흘깃 바라보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그곳으로 가 봤자 죽는 건 마찬가지야.’
서늘한 미소를 짓던 담정천은 허리를 숙이며 수평으로 검을 그었다.
그에게 달려들던 가인의 복부가 베어져 땅에 나뒹굴었다.
“저자, 저자, 저자……만 살려놓도록.”
담정천은 가인들 중에 정확하게 다섯을 골라 가리켰다.
성문을 향해 달려가던 약가와 악가의 가인 여섯 명을 담혁수와 수하들이 가로막았다.
“너희들이 도망칠 곳은 없어. 병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지 않으면 목을 잃을 거다.”
서슬 퍼런 담혁수의 경고에 가인들은 탈출로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 목숨을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가문으로 돌아가 수많은 고수들을 동원해 이번 일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마침 골목에서 얼굴을 빠끔 내밀어 구경을 하고 있는 아이가 가인들의 눈에 들어왔다.
가인 하나가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아이의 허리를 낚아챘다.
“잘 들어라, 이 악적들아! 우리를 내보내 주지 않는다면 이 아이의 목숨은 없다!”
으아아앙……!
인질이 된 아이는 대번에 울음을 터뜨렸다.
가인이 그렇게 외치자마자 다른 가인들도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정말…… 금수만도 못한 것들이로구나. 그것이 너희들의 대답이란 말이더냐.”
아이까지 인질로 잡은 그들로 인해 담혁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를 토해 냈다.
어깨까지 내려온 치렁치렁한 흑발은 올올이 곤두서고 눈빛은 붉은 혈광으로 번뜩였다.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그 말을 끝으로 담혁수는 어린아이를 인질로 잡고 있는 가인들을 향해 걸어갔다.
“움직이지 마! 이 애새끼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