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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199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99화

제199화. 무정(5)

 

 

 

약가와 악가의 가인들은 젊은 무인의 안내를 받아 성문으로 다가갔다.

“저…… 약가와 악가에서…… 오…… 오셨답니다.”

문루에서 내려다보던 또 다른 무인은 한마디 질문도 없이 문을 열게 했다.

“문을 열어라!”

쯧쯧…….

“기가 막히는군.”

그들의 모습에 가인 하나가 고개를 흔들며 혀까지 찼다.

아무리 약가와 악가가 강호에서 유명한 무가라고 하지만 확인조차 없이 성문을 연다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자들과 전쟁을 한다면 성을 함락시키기까지 한 시진도 안 걸릴 것이다.

어찌 되었든 성문은 활짝 열렸고, 가인들과 마차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에는 커다란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중앙으로 큰 길이 나 있었다.

옷을 파는 상점들과 고기와 쌀을 파는 상점들,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파는 상점들이 있는 것이 여느 큰 마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가인들과 다르게 황옥은 지금 크게 놀라고 있었다.

‘십만대산 안쪽에 이런 큰 마을이 있을 줄이야…….’

가인들과 황옥이 한창 마을을 둘러보는 가운데, 대여섯 명의 무인들이 달려와 넙죽 허리를 숙였다.

“약가와 악가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저희들이 객관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말을 더듬는 젊은 무인이나 확인조차 없이 성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무인보다는 확실히 절도 있는 무인의 말투에 가인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겠소.”

“예. 저희들을 따라오십시오.”

무인들은 가인들과 마차를 마을 뒤쪽으로 안내했다.

넓은 공터와 개울로 이어진 건물 앞마당에 도착한 무인들이 걸음을 멈추자, 말을 타고 있던 가인들도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도착했습니다. 마차에서 내리시지요.”

말에서 내린 가인들이 마차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조아려 청했다.

“수고들 하셨어요.”

문이 열리고 약하림이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때 신교 무인들 중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약하림을 대신해 약가의 가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곳의 주인을 만나러 왔소.”

“아. 그러시군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위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약가와 악가의 가인들은 무인들의 미숙한 일 처리에 짜증을 부렸다.

“그것보다 먼저 방부터 안내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아 ,아. 죄송합니다. 들어가시죠.”

가인들 몇 명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피고, 다른 가인들은 약하림을 호위하며 객관 안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준비해 올릴 터이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알겠소.”

마지막으로 객관 안으로 들어가던 황옥은 산 위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비강은 여러 각주들과 함께 약하림이 객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교주님.”

담수연의 물음에 비강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직 비강과 약하림의 관계를 모르는 추옥민이 입을 열었다.

“우선 저들의 목적을 알아야 해요. 중천에서 교주심이 이곳에 계시다는 것을 확신했다면 저들이 아니라 수많은 고수들을 보냈을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나 저 여자만은 확신하고 있소. 저녁 식사가 끝나면 저 여자만 올려 보내시오.”

“가인들이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하하……

비강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오. 저 여자는 분명히 그렇게 할 거요.” 

객관에서 시선을 뗀 비강이 몸을 돌려 거처를 향해 걸었다.

“주동.”

“예, 교주님.”

“가서 술이나 한 잔 나눠야 하지 않겠나?”

“네? 무슨 말씀이신지…….”

주동은 물론이고 각주들 모두 황옥이 가인들의 무리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황옥이라는 자, 영리할 뿐 아니라 아주 끈질겨.”

그제야 비강의 말뜻 알아차린 주동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알겠습니다, 교주님.”

 

방에서 따로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던 약하림은 비강이 부른다는 소리에 얼른 시녀를 불렀다.

“얼굴의 화장을 전부 지우도록 해라.”

“지금 매우 아름다우신데, 왜 화장을 지우라고 하시는지……?”

시녀가 의아해하자 그녀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느냐?”

“죄, 죄송합니다. 얼른 지우겠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더 예민한 약하림의 반응에 시녀가 놀라 급히 얼굴의 화장을 지웠다.

마지막으로 물을 떠와 얼굴을 깨끗이 씻겨낸 시녀는 경을 가져다 보여 주었다.

경을 통해 얼굴을 확인한 약하림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문을 나서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인들이 넙죽 허리를 숙였다.

“가모,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약하림은 손을 저으며 객관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가인들의 반대는 완강했다.

“절대 가모를 홀로 올려 보낼 수 없습니다.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긴다면 저희들은 가문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이곳에서 쉬고 계세요.”

“안됩니다, 가모.”

가인들이 끝까지 반대하고 나서자 약하림은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희들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

그녀의 목소리가 워낙 차갑게 느껴졌는지 가인들도 우물쭈물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모.”

그때 황옥이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좋아요.”

약하림이 허락을 하자 그제야 가인들은 안심을 하며 길을 내주었다.

“안내해요.”

약하림의 말에 심부름을 왔던 젊은 무인은 넙죽 허리를 숙이더니 앞장서 걸었다.

오르막길을 따라 산중턱에 오른 약하림은 횃불 아래 등을 보인 채 서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그녀는 대번에 사내가 비강임을 알아차렸다.

비강은 몸을 돌려 약하림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악가의 가모를 뵙습니다.”

“그렇군요. 오랜만에 뵈어요.”

약하림도 마주 허리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 비강은 뒤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내를 흘깃 쳐다보았다.

“정말 대단한 자로군.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라도 확인하고 싶었나?”

‘역시 무리였나. 잘만하면 통할 줄 알았는데. 오늘 일진은 더럽게 사납군.’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황옥은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비강과 시선을 마주했다.

“나를 죽여 입을 막아도 네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못할 거다.”

“나중에 다시 보도록 하지.”

비강은 황옥에게서 시선을 돌려 약하림과 마주했다.

“무슨 긴히 하실 말씀이 있어 찾아오신 것 같으니 대전에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지요.”

비강이 방으로 청하자 약하림은 순순히 대전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대전으로 들어가고 난 후 어둠 속에서 주동이 걸어 나왔다.

“또 보는군.”

“주동…….”

“그래. 내 이름은 주동이지.”

황옥은 허리의 검파를 잡아가자 주동은 슬쩍 몸을 뒤로 물렸다.

“따라와라.”

 

비강과 약하림은 대전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이 마주 앉자마자 담수연이 차를 내왔다.

“드시지요.”

비강이 차를 권하자 약하림은 찻잔을 들어 올렸다.

“아. 알고 계십니까? 여기 담 소저가 악가의 장로와 가인들을 죽이고 불을 질렀습니다.”

순간 찻잔을 들어 올리던 담수연이 멈칫 놀랐다.

“그렇군요. 뭔가 큰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오해는 무슨……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것뿐인데.”

약하림은 비강의 적의가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녀는 태연을 유지했다.

아무리 비강의 적의가 대단하다지만 천륜을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월아…….”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갑자기 애절한 눈으로 비강을 쳐다보았다.

“월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강은 그녀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이미 다 알고 왔다. 왜 나를 거부하는 것이냐? 내가…… 내가 너의 어미란다.”

약하림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녀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월아……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나 나는 너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단다. 강호가 전부 들고 일어나 아버님과 우리 가문을 협박하는 바람에 너를 떠날 수밖에 없었어…….”

그녀의 그 눈물이 얼마나 애절하고 슬퍼보였는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었다면 같이 울어 줄 정도였다.

하지만 비강은 의자에 앉아 무덤덤하게 내려다보기만 했다.

흑흑…… 

“미안하구나…… 정말 미안하구나……. 이 못난 어미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다오…….”

약하림의 울음소리는 통곡으로 변해 갔다.

“내 이름이…… ‘월’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랬구나, 역시 그랬었어…… 내가 내 자식을 잘못 보았을 리 없지.”

“그런데 아버지를 죽인 자가 당신의 아비인 것은 맞지 않습니까?”

약하림은 급살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며 소리쳤다.

“아니다! 절대 아니야! 네 아버지를 죽인 자는 너의 외할아버지가 아니라 오천왕 중의 일인이었던 구청자였어. 절대로 네 외할아버지가 한 짓이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런데 당신께서 저를 그렇게 아끼셨으면서 어찌 시신조차 찾아보지 않으셨습니까? 역시 내가 당신이 먹인 극독에 중독이 됐기에 죽었을 거라 판단한 것이 아닙니까.”

“월아…….”

눈물을 흘리며 무릎걸음으로 기어 온 약하림은 비강의 발밑에 엎드렸다.

“아니야…… 절대 그렇지 않아…… 네가 독에 중독이 되었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있었겠느냐, 그것들은 전부 강호에 흘러 다니는 헛소문일 뿐이니 제발 진실을 알아다오…….”

하하…… 하하하하하!

비강의 입에서 메마른 웃음이 흘러나왔다.

종래에 그 웃음은 대전을 뒤흔들 정도의 광소로 변해 갔다.

크하하하하하……!

약하림은 비강의 광소에 놀라 고개를 슬쩍 들어 눈물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웃음을 그친 비강의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담노, 구경 잘하셨습니까?”

“아주 좋은 구경을 했습니다, 교주님.”

대전의 장막을 걷으며 담노가 걸어 나왔다.

약하림은 얼른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저자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워…… 월아……?”

그녀가 의문을 표하자 담노가 웃으며 물었다.

허허……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약하림은 흉터가 가득한 담노의 얼굴을 눈물진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누……구 신지…….”

“예전에 주인께서는 저를 담 아저씨라고 부르셨지요.”

“다…… 담 아저씨……?”

눈물이 가득했던 약하림의 눈동자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다.

“서…… 설마…….”

“맞습니다. 저의 이름이 ‘담진산’이라 주인께서는 담 아저씨라 부르셨지요. 마님께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여전히 아름다우시고 여전히 거짓을 잘 꾸미시며 여전히 독하십니다. 주인께서도 그 거짓에 속아 몹쓸 짓을 당하셨지요.”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약하림의 눈물은 기적처럼 멈춰졌다.

대신 그녀는 잔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떨었다.

잘못 생각했다.

저 담노라는 자가 살아남아 연비강의 옆에 있으리라고는 꿈에서도 짐작하지 못했다.

담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떨고 있는 약하림을 섬뜩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아마 지금도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인지 궁리를 하고 있을 겁니다, 교주님.” 

“알고 있습니다, 담노.”

드륵…… 

의자가 밀리며 비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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