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9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96화
제196화. 무정(2)
“악아. 어디로 도망치려느냐. 너를 따르던 수하들은 어찌하고?”
뒤로 물러서던 남궁악은 멈칫 발을 멈췄다.
뚝…… 뚝…… 뚝…….
남궁악의 전신에서 흘러내린 피가 땅바닥을 적셨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시천세 또한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두 무신 모두 지치고 부상을 당해 겉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잠시 멈췄던 발이 움직이고 그곳에 바람이 일었다.
휘이이……
남궁악이 꺼지듯 사라지자마자 시천세가 서 있던 곳에서도 바람이 일었다.
컥!
쓰러진 고수의 목에 검을 꽂아 넣은 오진권은 또 다른 적을 찾아 움직였다.
등 뒤에서 다가오는 섬뜩한 살기에 그의 신형이 분열했다.
그러나 그 살기는 분열한 잔영 속에서도 정확하게 본체를 찾아냈다.
까깡!
목을 베어 오는 서늘한 살기를 막아 내자마자 허리에 또 다른 살기가 날아들었다.
순간 오진권은 신형은 순식간에 반회전하며 적의 목을 베어 냈다.
깡!
적 또한 대단한 고수라 쉽게 목숨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을 상대하는 고수는 오진권만이 아니었다.
서걱. 서걱,
사방에서 달려드는 사파 고수들을 베어 내는 동은각 고수의 어깨를 오진권의 검이 베며 지나갔다.
끄으윽!
짧은 단말마의 비명에 이어 그의 머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동천을 목표로 치고 올라오는 것이었는데.’
동천의 분위기를 살피느라 부린 늦장이 이처럼 후회스러울 수는 없었다.
무림맹을 나설 때부터 뛰어난 고수들을 선별해 동천으로 밀고 올라왔다면 한 번에 무림의 운명은 판가름이 났을 것이다.
“빌어먹을…….”
절절한 후회를 하고 있는 오진권의 시선 속으로 동은각의 고수를 상대하고 두궁천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놈 또한 앞날에는 반드시 없애야 할 적이었다.
차라리 이 기회를 이용해 놈을 없애버리자.
동은각 고수를 상대하고 있는 두궁천을 향해 다가가는 오진권의 귓가로 종예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악이 도망쳤다! 남궁악이 도망쳤다!”
그 외침소리가 얼마 남지 않은 동은각 고수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그들은 남궁악이 도망쳤다는 말을 도무지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악과 수십 년을 함께했다.
그에게서 무공을 배웠고, 그 덕분에 강호에 나와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마지막 목숨이 다할 때까지 동참하고 싶었다.
하아…….
“모든 것이 허망하기만 하구나.”
동은각의 고수 하나가 검을 내리며 탄식했다.
그리고 그 고수의 목은 오진권에 의해 잘려 떨어졌다.
“그만! 우리는 원래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어. 그러니 이제 항복해.”
종예의 높은 목소리에 사투를 벌이던 무인들은 병기를 멈췄다.
“무슨 소립니까? 저들은 반드시 없애야 할 적입니다!”
오진권이 종예의 말에 반발하고 나섰다.
“너, 이 새끼. 뒈지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종예는 오진권의 내심을 이미 읽고 있었다.
어떻게든 황곡 출신 고수들을 한 명이라도 더 죽여야 나중에 큰일을 도모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오진권은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동은각의 고수들은 종예의 마음을 외면했다.
“종예. 지난날 우리는 한 가족처럼 어울려 지냈지만 강호에 나온 이후로 뜻이 맞지 않아 멀어지지 않았나. 나는 아직도 그분이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잔존세력을 받아들인 것을 용납하지 못해. 또한 우리가 모시던 주인이 우리를 저버리고 도망을 치기는 했으나 우리는 그분을 저버리지 않을 거다. 이미 먼저 죽은 동료들이 아직 떠나지 못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그만 끝내기로 하지.”
사내가 내렸던 검을 들어 올리자 살아남은 자들도 각자 병기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병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자들도 있었다.
철컹!
“나는 항복하겠습니다.”
“나도 항복하겠습니다.”
그들은 남궁악이 동천을 세운 후에 뒤늦게 받아들여 양성한 자들이었다.
그 숫자는 대략 서른 명이 못 되었다.
그들이 항복하고 나자 남아 있는 동은각의 고수들은 채 스무 명도 되지 못했다.
“정말 이래야 하겠냐?”
종예는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때 한 팔이 잘린 석장이 앞으로 나서며 검을 들어 올렸다.
“내가 죽을 때까지 너희들을 기억하마.”
그 말을 끝으로 멈췄던 혈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황산을 오른 남궁악은 정상에 도착하자 신형을 멈췄다.
뒤따라 도착한 시천세도 남궁악처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응시했다.
“왜 계속 도망치지 않는 것이냐?”
남궁악은 잠시 대답이 없다가 엉뚱한 말은 내놓았다.
“나는 매년 봄이면 이곳에 올라 꽃이 피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사형. 어제와 오늘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은 어제가 아니더군요.”
“사부께서 하신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시천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봄이면 응당 피어나는 것이 꽃이건만 오늘과 내일이 같지 않고 작년과 올해가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나고 보니 사부의 그 말속에는 수많은 함축된 의미가 숨어 있었다.
“사형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아라.”
“사부님 손에 이끌려 처음 황곡에 들어갔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사형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우리 네 사람에게 사형은 정말 친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한데 온화했던 사형이 왜 그렇게 차갑게 변했던 겁니까?”
시천세는 싸움이 끝나가는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지난 일을 떠올렸다.
“어느 날 사부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구나. 너희들과 나는 강호에서 우열을 다툴 것이라고.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강호를 제패하고 난후에도 너희들과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때부터 너희들이 전과는 많이 달라 보이더구나.”
“그랬었군요.”
고개를 끄덕인 남궁악이 시천세를 향해 돌아서고 시천세도 남궁악을 마주 보았다.
“얼마 전에 사부를 뵈었습니다.”
“어디서 뵈었느냐?”
시천세는 편안하게 그 말을 받았다.
“연비강이 숨어 있는 십만대산이었습니다.”
시천세의 인상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저는 그놈을 죽이기 위해 그곳에 갔었습니다. 한데 사부께서 그러시더군요. 칠 년만 기다리라고.”
“칠 년이라…….”
허허…….
사부의 속내를 대강이나마 짐작해 낸 시천세는 헛웃음을 지었다.
사부가 칠 년만 기다리라고 한 것은 그 시간이면 연비강이 자신에게 도전할 정도의 실력을 갖출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부는 참으로 잔인한 분이로구나.”
“그렇지요. 잔인한 분이시지요.”
“이야기 잘 들었다, 사제. 이제 끝을 내야겠구나.”
“저는 사형을 넘어서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형께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그러마. 나를 죽여 사부님의 후계자가 되어 보거라.”
쿠쿵! 쿵!……!
황산이 진동을 하고 꼭대기에서는 빛이 충천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황산 아래에서는 동은각의 고수 하나가 살아남아 흔들리는 산과 충천하는 빛을 올려다보았다.
“도망친 것이 아니었구나. 그분께서는 우리를 저버리고 도망친 것이 아니었어.”
피를 뒤집어쓴 듯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그는 황산을 올려다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 악기.”
종예가 도끼를 치켜들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퍽!
마지막 남은 고수까지 쓰러뜨린 종예는 긴 숨소리와 함께 황산을 올려다보았다.
후우……
황곡 출신의 고수들은 이제 스무 명도 남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 중에는 팔을 잃거나 다리를 잃은 자들도 있었고, 크게 부상을 당한 자들도 있었다.
종예도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으나 석장은 한 팔을 잃었다.
이 싸움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한 곳은 다름 아닌 두궁천이 이끌고 있는 사파였다.
그들은 일천이 넘는 인원이 죽거나 크게 다쳤다.
“동천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나?”
한 팔을 잃은 석장이 종예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아니. 여기서 기다려. 주공께서 내려오실 때까지.”
종예의 말에 석장은 두말없이 물러났다.
두궁천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명령을 내려 부상당한 자들을 돌보고 시신들은 한곳에 모으게 했다.
오진권과 남궁휘는 피에 절은 모습으로 가만히 서서 황산만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황산을 울리는 굉음과 충천하는 빛이 그쳤다.
과연 두 무신들 중에 누가 살아남았을까?
살아남은 무신은 오롯이 강호의 주인이 될 것이다.
종예와 석장, 두궁천, 오진권, 남궁휘, 그리고 황곡 고수들은 조용히 서서 강호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누군가 저 멀리에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점이었던 그는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경하드립니다, 주공.”
종예가 먼저 바닥에 무릎을 꿇어 시천세를 반겼다.
그러나 시천세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런 얘기를 듣기 싫구나. 다친 녀석들은 동천으로 들어가 먼저 치료부터 하고 죽은 녀석들은 무덤을 만들어 주어라.”
“존명.”
시천세는 고개를 젓더니 바로 자신의 말을 바꿨다.
“아니다, 아니야. 이 녀석들은 내 손으로 직접 묻어 주어야겠다. 술이나 준비하라.”
***
무인들을 태운 수십 필의 말과 마차 두 대가 북쪽을 향해 달렸다.
그들은 바로 약가와 악가의 가인들과 가모 약하림이었다.
앞선 마차에는 약하림과 시녀가 타고 있었고, 뒤에서 달리는 보다 큰 마차에는 식량과 솥, 그릇, 이불, 옷 같은 것들이 실려 있었다.
약추완은 연안지부에서 달려온 무인의 보고를 받자마자 약하림을 불러들였다.
“놈이 있는 곳이 바로 십만대산이라 하더구나. 어찌하겠느냐?”
“제가 직접 가겠어요. 제가 가서 직접 어머니인 것을 밝히고 용서를 빌겠어요. 그럼 그 아이도 생각이 바뀔 거예요. 아버님도 저와 함께 가주세요.”
약추완은 연비강을 만나기가 꺼림칙했다.
아니, 두려웠다.
절대로 그놈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본심이었다.
“갑자기 나를 만난다면 오히려 네게 좋지 않을 게다. 그러니 네가 먼저 만나 그놈을 다독여 주어라.”
“알겠어요. 아버님. 그럼 채비가 되는 대로 바로 떠날게요.”
“이미 가인들에게 준비를 하라 일렀으니 곧 준비를 끝낼게다.”
약하림은 채비가 끝나자마자 북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비강이 있는 십만대산이었다.
중천을 떠난 지 닷새 만에 감숙으로 들어선 가인들은 십만대산이란 곳을 찾았다.
그러나 십만대산이라는 곳을 알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상인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보면 그런 곳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소만.”
그나마 나이 든 노인이 길을 알려 주어 가인들은 북쪽으로 길을 재촉할 수 있었다.
말을 달리던 약가와 악가의 가인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서둘러 객잔을 찾았다.
그러나 인근에는 객잔은 물론이고 민가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가모. 아무래도 노숙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상관없으니 준비해요.”
약하림의 허락을 받은 가인들은 먼저 노숙할 곳을 찾았다.
때마침 조금 더 말을 몰아가다 보니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가인들은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말을 몰았다.
말을 몰아가보니 작은 개울 한쪽에 넓은 공터가 있었고, 공터 중앙에는 몸집이 퉁퉁한 사내가 불을 피우고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검을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사내는 칼밥을 먹고사는 강호인이 분명했다.
우적우적……
강호인은 불 앞에 앉아 건포를 씹고 있었다.
“실례하겠소. 귀한 분이 이곳에서 밤을 보내야 하니 자리를 비워 주면 고맙겠소.”
약가와 악가의 가인들은 막무가내로 자리를 요구했다.
그러자 건포를 씹고 있던 사내가 고개를 슬쩍 돌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자리는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