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95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95화
제195화. 무정(1)
“원래부터…… 저놈은 사형의 사람이었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다만 전에 한번 얼굴을 마주쳤을 뿐이다.”
“고작…… 고작…… 그 정도로 저놈이 이…… 나를 배신했단 말입니까?”
남궁악은 지금의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천세의 대답에 그의 안색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너도 저놈이 언젠가는 배신할 줄 알고 있었지 않느냐.”
알고 있었다.
두궁천이 배신할 것이라는 사실은 처음 대하는 자리에서부터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먼 훗날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해서 강호일통을 한 후에 놈을 처리하려 했었다.
“나는 저놈이 나의 적임에도 죽이지 않았다. 또한 저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
크크크크……. 크하하하…….
시천세가 한 말의 의미를 뒤늦게 깨달은 남궁악은 어깨까지 흔들며 웃었다.
한쪽에서는 살이 갈라지고 피가 흐르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지만 한쪽에서는 남궁악의 웃음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결국 저놈은 살기위해 배신을 했다는 말이었다.
“멍청한…… 아니. 놈이 현명한 거였군.”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까지 용납한 사형이니 사련도 능히 받아들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하긴, 원래부터 똑똑한 놈이었으니 이번이 배신할 절호의 기회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이길 겁니다. 어차피 저놈들은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들일 뿐입니다.”
두궁천과 사파가 합세해 수적 우위는 점했으나, 절대고수들의 숫자는 동천이 더 많았다.
퍽!
기회를 엿보고 있던 고수의 머리가 박살 나는 것을 시작으로 두 무신은 다시 격돌했다.
콰콰쾅!
***
하북을 들어서자마자 미묘한 공기를 알아챌 수 있었다.
하북은 두궁천이 동천주의 허락아래 장악을 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사파는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고, 오히려 정파의 진군을 막은 자들은 하북에 산재해 있는 무가와 무문들이었다.
무림맹에서 동원한 무인들의 숫자가 자그마치 이천오백여 명이었다.
하북에 자리 잡고 있는 동천의 무리들이 그들을 막아 낼 리 없었다.
수많은 전각들로 이루어진 장원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고작 오십 명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대단한 고수들이 아니라 간신히 자신들의 몸만 추스를 수 있는 자들뿐이었다.
끄아아아악……!
“항복하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오십 명도 되지 않는 자들 중에 살아남은 자들은 네 명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금 무림맹의 무인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하는 중이었다.
“두궁천은 어디로 갔느냐? 사실대로 말하라.”
무림맹의 무인들은 팔다리를 짓이기는 가혹한 고문을 자행하면서도 낯짝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고수들을 이끌고 떠나면서 우리들에게 이곳을 지키고 있으면 돌아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멀찍이 떨어 서서 무인들이 토설하는 말을 듣고 있던 오진권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스걱. 스걱. 스걱…….
오진권이 고개를 흔들자 무림맹의 무인들 중에 하나가 검을 빼 그들의 목을 차례로 쳐버렸다.
“맹주,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소. 이쯤에서 멈춰 추이를 살펴야 할 것 같소.”
불안감이 가득한 남궁휘의 말에 오진권의 마음도 적잖이 움직였다.
이곳은 예전 팽가의 장원으로 지금은 두궁천이 주인으로 있는 사파의 본거지였다.
그런데 남아 있는 자들이 쭉정이들뿐이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사파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질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 진군에 참여한 마안자 국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무림맹에 남아 있는 제갈곤을 대신해 맹주와 부맹주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 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맹주. 사파 무리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동천에 큰 이변이 발생했다는 뜻일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속도를 높여 동천으로 밀고 올라가야 합니다.”
오진권은 국원의 말도 그럴듯해 얼른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국원이 답답해하며 재촉했다.
“틀림없이 중천의 주인인 시천세도 고수들을 이끌고 동천주와 일전을 벌일 것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무림판도는 크게 바뀌게 될 것입니다. 군사께서 당부 하셨듯이 맹주와 부맹주의 옳은 판단이 절실한 때입니다.”
마안자 국원의 재촉에 남궁휘가 물었다.
“마안자의 말씀대로 만약 시천세가 출전을 했다면 이미 동천과 가까운 곳에 다다랐거나 어쩌면 싸움까지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오. 지금 출발한다고 해도 그 기회를 잡을 수는 없소.”
“그렇지 않습니다, 부맹주. 중천과 동천의 거리는 우리 무림맹보다 훨씬 멉니다. 우리 무림맹도 중천에서 날아온 전서를 받자마자 바로 움직였으니, 그들과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고수들을 가려 뽑아 사력을 다해 그곳으로 달려간다면 제때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 같았다.
남궁휘와 눈빛을 교환한 오진권은 햇빛이 드는 곳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쉬고 있는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주인들을 둘러보았다.
저들을 모두 데려간다면 의견이 맞지 않아 시간이 지체될 가능성이 컸다.
“우리 둘이 먼저 동천으로 가 그곳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소. 부맹주.”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소, 맹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저 많은 무인들을 이끌고 갈수는 없소.”
의견을 맞춘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장문인과 가주들에게 다가갔다.
“우리 둘이 먼저 동천에 다녀올 것입니다. 장문인과 가주들께서는 동천을 향해 천천히 진군하십시오. 두궁천이 어디에 숨어 간계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니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모든 일을 여기에 있는 마안자와 상의를 한다면 위험에 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진권의 걱정을 소림 장문이 덜어 주었다.
“맹주. 우리 걱정은 조금도 마시게. 계획을 세웠다면 남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실행해야 하네. 어서 떠나시게. 정파의 미래가 두 분, 맹주와 부맹주께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고언을 뼈에 새기겠습니다. 그럼 가까운 시일 내에 뵙겠습니다.”
장문인과 가주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오진권과 남궁휘는 바로 장원을 나와 동쪽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먹는 것조차 건포로 해결했고, 잠은 한시진도 자지 않았다.
안휘를 넘어선 그들 앞에 멀리 웅장한 황산이 나타났다.
은근히 긴장을 한두 사람은 경공을 멈추고 조금 빠른 속도로 걸었다.
“괜찮소? 부맹주.”
“괜찮소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한 이틀 정도 푹 잠이나 잤으면 좋겠소. 맹주는 어떻소?”
“나도 부맹주와 같은 바람이오.”
황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른 것들이 들려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이곳까지 전해지는 기파의 진동이었다.
꿀꺽.
침을 삼킨 두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멈췄던 경공을 다시 시전했다.
대로를 벗어나 언덕을 넘어서는 그들 눈앞에 상상하지 못한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천과 수백의 싸움, 그리고 그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두 무신의 싸움이었다.
두 사람은 두 무신의 싸움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어느 정도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들이 모습을 보니 아직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혈전을 시작한 지 꽤 오래 지났는지 바닥에 즐비한 시신들 또한 거의 일천에 가까웠다.
오진권은 이 혈전이 총력전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콰쾅! 쾅! 쾅!……!
뿌연 강기를 덧씌운 병기들이 사방에서 부딪치고 있었고 그 숫자가 거의 일백이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맹수처럼 날뛰고 있는 두궁천의 모습도 보였다.
멍하게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바라보던 남궁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다립시다. 제갈 군사의 말대로 이 싸움은 우리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것이오. 저들이 서로 싸워 죽게 내버려 두고 시천세와 남궁악이 서로 죽이게 내버려 둡시다. 싸움이 끝난 후에 우리 둘이 살아남을 자를 죽인다면 그대로 강호는 우리 무림맹 손에 떨어지는 것이오.”
오진권 또한 조용한 목소리로 남궁악의 말을 받았다.
“부맹주. 부맹주는 지금 당장 저곳에 뛰어 들어가고 싶지 않소? 나는 저곳에 뛰어 들어가 저것들을 다 쳐 죽이고 내가 강호제일이라 외치고 싶어 미치겠소.”
남궁악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오진권도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부맹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소?”
“그렇기는 하오만 무림맹을 위해서는 참고 기다려야 하오. 어차피 남을 자들을 처리하면 우린 영원히 무림의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무얼 하고 있나?”
갑자기 두 사람의 귓속으로 시천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
공간에 굵고 검은 선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쩌저저적…… 쿠쿵!
이번에는 거대한 바위가 반쪽이나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바위가 서 있던 자리에는 길게 땅이 갈라져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형, 이제 그만 죽어 주시오. 내 수하들이 다 죽는다면 누구를 시켜 강호 무림을 다스리겠소? 이미 형세는 기울었소.”
“별 걱정을 다하는구나.”
“빌어먹을 새끼.”
처음의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남궁악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함을 드러냈다.
쉬아아악,
남궁악이 날려 보낸 도는 시천세의 목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돌았고, 시천세가 날려 보낸 검은 남궁악의 목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두 무신의 목에 가는 선이 생기고 연기가 꺼지듯 형체가 스러졌다.
콰쾅! 쾅!……!
그들은 어느새 하늘에서 격돌하고 있었다.
“왔구나. 두궁천보다 일찍 도착할 줄 알았건만.”
땅에 내려선 시천세의 미소에 남궁악의 안색은 더욱 굳어졌다.
“무림맹도 부른 거냐?”
“강호의 주인을 결정하는 싸움이니 강호 전부를 불러 모아야 하지 않겠느냐. 버러지들에 불과한 자들이지만 그만한 자격이 있다. 너도 나도 지쳤으니 그만 결정을 보아야겠다.”
시천세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무얼 하고 있나?”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쉬아아아…….
두 무신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며 종횡으로 검과 도를 그어 냈다.
굵고 검은 실선이 공간을 종횡으로 난도질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시천세가 만들어 낸 검은 실선은 작은 아가리를 벌렸다.
크아아앙……!
검은 실선과 검은 실선이 충돌하며 심혼을 뒤흔드는 묘한 기성이 일었다.
쿵! 쿠쿵! 쿵!……
땅바닥에 깊은 족적을 남기며 뒤로 밀려나던 남궁악은 공중으로 몸을 뒤집으며 멀찍이 물러섰다.
퍼퍽!
그와 동시에 남궁악의 등 뒤에 서 있던 고수들의 몸에서 피가 사방으로 튀어나오며 부서졌다.
끄으음……
가는 신음 소리가 도를 세워 쥐고 있는 남궁악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검을 휘돌고 있는 기운이 거대한 검으로 화해 남궁악의 머리를 쪼개듯 떨어져 내렸다.
콰앙!
거대한 검을 쳐 낸 거대한 도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시천세의 목을 갈랐다.
수십으로 분열한 두 무신은 각기 다른 형태로 사방을 누비며 격돌했다.
수십으로 분열했던 두 무신이 하나로 합쳐지고, 낭패한 기색의 남궁악은 시천세를 너머 그 뒤를 응시했다.
음울한 그의 눈동자는 변해 버린 전장의 상황을 살폈다.
사파의 수많은 고수들이 죽어 가고 있었지만, 동은각의 수하들도 하나둘 목숨을 잃어 갔다.
무림맹의 맹주 오진권과 부맹주 남궁휘의 무공은 동은각의 수하들을 뛰어넘고 있었다.
“네가 패했다, 남궁악.”
이제 남궁악을 도와 시천세를 괴롭히던 고수들도 없었다.
‘빌어먹을…….’
남궁악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오늘을 수십 년이나 기다려왔건만 하늘은 사형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아직 완벽하게 패한 것은 아니었다.
기회는 앞으로도 있을 것이고 시간도 자신의 편이었다.
남궁악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