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94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94화
제194화. 강호를 손안에
멀리 좌우로 늘어선 언덕과 숲에서도 수많은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공.”
뒤에 늘어서 있는 무인들은 물론이고 종예와 석장까지 놀라 당황했다.
그러나 시천세는 말없이 거리를 좁혀 오고 있는 남궁악만 지켜볼 뿐이었다.
이윽고 십여 장 가까이 접근한 남궁악이 걸음을 멈췄다.
그의 좌우에는 황곡에서부터 함께했던 무인들과 강호에서 은밀히 양성한 고수들이 늘어섰다.
그 숫자가 자그마치 일백오십 명이 넘어 보였다.
시천세의 몸에서 흐릿한 기운 한 줄기가 흘러나오더니 넓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우웅……!
무형의 기운은 바닥의 흙 알갱이들이 진동을 시키며 남궁악과 시천세, 그리고 그들의 수하들을 둥글게 감쌌다.
“사형을 뵙습니다.”
정중하게 예를 표하는 남궁악의 표정은 여유로 가득했다.
“그래. 얼굴이 좋아 보이는구나.”
하하하…….
“사형 덕분입니다.”
참을 수 없는 통쾌함이 남궁악의 입에서 퍼져 나왔다.
이번에야말로 두려워하던 사형을 넘어섰다.
오늘은 절대로 사형을 돌려보내지 않으리라.
“저번에 사형께서 목숨을 구걸하는 바람에 이 사제가 넓은 아량으로 고이 보내드렸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또다시 이 사제의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시천세로서는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남궁악은 유난히 어두워 보이는 시천세의 얼굴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때 사형께서는 굳은 맹세를 하셨습니다. 남선을 제게 양보할 것이고 먼저 공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채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 약속을 어기시는군요.”
한마디 한마디가 시천세의 가슴을 후벼 팠다.
가슴을 후비는 것은 나뭇가지가 아니라 예리한 송곳이었다.
저간의 사정을 모르고 있던 시천세의 수하들도 놀라 그의 등을 좇았다.
세상에서 가장 높고 넓은 등이라 여겼건만 지금은 왜소하고 초라했다.
“어디 한 말씀이라도 해 보십시오, 사형.”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네 말이 맞다.”
크하하하하하……!
목젖까지 드러낸 남궁악의 시원한 웃음소리에 시천세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네가 남선에 가 있는 줄 알았다.”
“중간에 돌아왔습니다. 사형. 발길을 돌리면서도 제발 사형이 이 동천에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시천세는 남궁악의 이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사제 남궁악은 자신이 동천에 나타나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굴욕을 되갚기 위해 오셨군요.”
“네 말이 맞다, 사제. 얼마나 치욕이었는지 밤에 잠도 오지 않더구나.”
남궁악은 시천세의 솔직한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네가 지금쯤 남선에 가 있는 줄 알았다.”
“다른 놈을 대신 보냈습니다, 사형.”
“다른 놈?”
“사형도 아시지 않습니까. 두궁천이라고. 그놈이 제법 사나울 뿐 아니라 쓸 만한 수하들도 많습니다.”
“그렇구나.”
시천세의 무덤덤한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궁악은 입가에 맴돌던 미소를 지워 버렸다.
“사형. 이번에는 절대로 놓아드리지 않겠습니다. 약속을 어긴 쪽은 내가 아니라 사형이 아닙니까.”
“그리하여라. 나 또한 죽음은 이미 각오하였으니.”
스으으…….
시천세와 남궁악, 그리고 고수들을 감싸고 있던 무형의 기막이 사라졌다.
“살고자하는 녀석들은 지금 떠나도 좋다.”
시천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남궁악의 좌우에 늘어서 있는 고수들이었다.
시선을 받은 고수들이 당황했는지 가운데 서 있는 남궁악을 슬쩍 쳐다보았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지금 불리한 쪽은 자신들이 아니었다.
크크큭…….
남궁악은 하도 어이가 없는지 제대로 웃지도 못했다.
“사형. 장난은 이제 그만합시다.”
“사제. 나는 진심이다.”
시천세의 대답이 끝나는 순간 남궁악의 얼굴에 서리가 내렸다.
“목을 잘라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봅시다.”
콰콰쾅!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일그러졌다가 터져 나가며 굉음이 일었다.
시천세는 손에 검을 쥐고 있었고, 남궁악은 도를 쥐고 있었다.
“죽여.”
남궁악의 입에서 죽음을 알리는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콰쾅! 쾅!……!
휘황한 빛이 어지럽게 어울렸다가 나뉘어 떨어졌다.
대부를 쥐고 있는 종예와 맞서고 있는 상대는 영파였다.
“너와는 정말 오랜만에 어울려 보는구나.”
“오늘이 종 누이의 제삿날이오.”
“네가 나를? 어디 한번 해 봐.”
종예는 무거운 대부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에 영파는 신형을 어지럽게 분열하며 종예의 대부에 맞섰다.
콰쾅! 쾅!……!
목과 가슴, 허리, 허벅지를 거의 동시에 찍어 대던 종예는 신형을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대부를 일일이 쳐 내고 종예의 다리를 향해 파고들던 영파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대부를 향해 검을 뻗었다.
쾅!
대부와 검이 충돌하고, 종예는 몸을 뒤집으며 땅으로 내려섰다.
팔목을 찌르르하게 울리는 충격을 느끼기도 전에 영파는 땅을 밀려 뒤로 물러났다.
스아아악,
바로 그 순간 대부가 영파의 가슴을 갈랐다.
쾅!
목을 비스듬히 베어 오는 영파의 검을 쳐 낸 종예의 눈빛이 번뜩였다.
까깡!
몸을 반회전해 등을 파고드는 검을 비껴 막아 낸 영파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의 눈에 석장의 창백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퍽!
영파가 멈칫하는 순간 종예의 대부가 그의 어깻죽지를 찍었다.
끄으아아아악!
영파는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질러 대는 와중에도 종예의 목을 노리며 검을 날렸다.
하지만 어느새 석장의 검이 그의 다리를 베며 지나갔다.
풀썩.
다리를 잃은 영파가 균형을 잃고 주저앉자마자 대부가 그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황급히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리는 영파의 눈 안으로 시퍼렇게 날이 선 대부가 들어왔다.
순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강호일통이 바로 눈앞이었다.
주인의 원대한 야망은 영파의 야망이기도 했다.
이번 싸움은 그 야망을 이루어 줄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다.
퍽!
영파의 부릅뜬 눈이 종예를 올려다보았다.
머리를 쪼갠 종예는 잠시 영파와 눈을 맞추다가 사나운 얼굴로 석장을 노려보았다.
“네 도움 따윈 필요 없었어.”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주변을 돌아 봐.”
그제야 수많은 비명 소리와 죽음이 종예의 귀와 눈 안으로 들어왔다.
일백 명의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적들은 수천에 다다랐고, 그들이 흘리고 있는 피는 작은 강을 이룰 정도였다.
아무리 자신들의 무공이 절대적이라 하지만 그건 동천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가 그들의 숫자가 더욱 많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종예는 동료에게 합공을 하고 있는 동천 무인들을 향해 대부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땅에서 인간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면 하늘에서는 신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콰쾅! 쾅!……!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듯 순식간에 위치를 바꾸며 부딪쳤던 두 무신이 땅으로 내려섰다.
시천세가 땅으로 내려서자마자 동천의 여고수 하나가 그의 허리에 창을 들이밀었다.
동시에 남궁악이 날려 보낸 도가 목을 파고들었다.
순간 시천세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서걱.
창으로 허리를 노렸던 고수의 목이 땅으로 떨어지고, 남궁악의 날려 보낸 검이 어깨를 갈랐다.
‘미향.’
시천세는 하늘에서 남궁악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며 방금 자신의 검에 목이 떨어진 여고수의 이름을 되뇌었다.
유난히 숫기가 없어 황곡에서도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여인.
가끔 동료들이 동네에서 잡은 돼지고기를 안주로 술을 건넬 때면 쑥스러워하며 잔을 받던 여인.
그리고 남궁악에게 무공을 배울 때면 언제나 최선을 다하던 여인.
콰쾅!
검과 도가 충돌하며 강기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퍼져 날아갔다.
스걱.
또다시 동천의 고수 하나가 이번에는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스악.
단번에 허리를 갈라 버린 시천세의 신형이 사라지자마자, 그 자리를 남궁악의 도가 베고 지나갔다.
크크…….
남궁악은 아무도 없는 벌판을 등지고 서 있는 시천세를 비웃었다.
“등이 가렵지 않소? 사형.”
방금 남궁악의 검이 등에 기다란 상흔을 만들어 놓았다.
시천세는 멀리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의 수하들을 흘깃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동천의 고수 하나가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며 가슴을 찔러 오는 고수를 향해 시천세도 마주 검을 뻗었다.
컥!
검이 고수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리고 시천세는 이미 그 고수의 등 뒤에서 남궁악과 부딪치고 있었다.
콰쾅! 쾅!
-그만 좀 죽어, 시천세.-
-사형에게 예의가 없구나.-
-크크크크…… 자신의 야망을 위해 사제들을 죽인 자가 과연 사형이라 할 수 있을까.-
-너도 그 녀석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느냐.-
크크크크……
“아직 당신이 남았잖아.”
콰쾅!
하늘에서 격돌했던 두 무신은 땅에 내려서며 멀리 서 있는 서로를 향해 검과 도를 내리그었다.
검과 도가 지나간 궤적을 따라 검은 실선이 생겨났다.
검은 실선은 언제 나타났냐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흘러내린 남궁악의 귀밑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흩어졌다.
그리고 그의 귓불이 갈라지며 피가 망울져 떨어져 내렸다.
쩌쩌…… 쩍…… 쿠쿵!
남궁악의 등 뒤 십여 장 너머에 서 있던 고수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고, 그 뒤 너머의 아름드리나무도 수직으로 갈라져 넘어갔다.
“내가 조금 더 낫구나.”
시천세의 그 말에 남궁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결국 당신은 내손에 죽게 될 거야.”
“그럴지도…… 아니. 안타깝게도 이제 그럴 기회는 없겠구나.”
시천세의 대꾸가 끝나기 무섭게 언덕 너머 이곳저곳에서 또 다른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십, 오십, 일백, 오백, 일천…….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무인들의 수는 순식간에 늘어 갔다.
어림잡아도 이천 명에 가까운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시천세의 수하들을 둘러싸고 있던 무인들도 공격을 멈췄다.
잠시 잠깐 그들의 공격이 멈춰있는 동안 언덕 위에 있던 무인들은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왔다.
그들의 선두에는 사파의 주인인 두궁천이 한 손에 대도를 들고 있었다.
“언제부터…….”
남궁악은 두궁천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일이 자신의 뜻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두궁천은 절대로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이 자리에 나타날 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곳이 아닌 남선에 있어야 했다.
“전부 죽여라!”
두궁천은 대도를 들어 그들의 적을 가리켰다.
대도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중앙에 있는 중천이 아닌 바깥쪽 동천의 무인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두궁천은 대도를 치며 들고 제일 먼저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쫘아악.
그의 도가 수직으로 내려치는 곳에는 동천의 고수들이 토막이나 널브러졌다.
“언제부터…… 언제부터였습니까? 사형.”
끌끌끌끌…….
넋을 잃은 남궁악의 질문에 시천세는 웃기만 했다.
“원래부터…… 저놈은 사형의 사람이었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다만 전에 한번 얼굴을 마주쳤을 뿐이다.”
“고작…… 고작…… 그 정도로 저놈이 이…… 나를 배신했단 말입니까?”
남궁악은 지금의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시천세의 대답에 그의 안색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너도 저놈이 언젠가는 배신할 줄 알고 있었지 않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