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193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193화
제193화. 천하제일인은 누구인가(3)
“그……것이 약 일 년 전부터였습니다. 멀리 감숙 너머에 십만대산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식량과 목재, 무복, 병기 같은 것들을 대주었습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하여 근 일 년 동안 오직…… 십만대산에만 매달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황옥은 너무 놀란 나머지 중년 사내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정보였다.
“고…… 고맙소. 정말 고맙소.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소.”
얼마나 놀랐는지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이…… 이제 돌아가도 좋소.”
“고맙습니다.”
중년 사내는 황옥에게 넙죽 인사까지 하고는 헛간을 나갔다.
허억!
사내가 나가자마자 황옥은 전신에 힘이 빠졌는지 앞으로 쓰러지며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놈은 장구한 계책으로 우리를 쓰러뜨리려 하는구나.”
실로 두렵고 무서운 일이었다.
황옥이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을 때,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염파진이 안으로 들어왔다.
“황 대협, 저자를 죽여 뒤를 깨끗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격렬하게 흔들리던 황옥의 눈빛은 일순간에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뭐 이런 등신들이 다 있단 말인가.
저자를 죽인다면 오히려 의심만 더할 뿐이었다.
“똑똑한 염 단주가 이런 멍청이를 조장으로 앉힌 것을 보면 염가에 인물이 부족한 것은 확실해 보이는군.”
황옥이 가문까지 모욕했지만 염파진은 감히 한마디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쯧쯧……
그 한심한 작태에 황옥은 혀까지 찼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한심한 염파진이 아니라 십만대산이었다.
“중천에 전서를 띄워 십만대산에 백리혈 연비강이 머물고 있다고 전하라.”
“시…… 십만대산이 어디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너는 알 필요 없다. 그렇게만 전한다면 중천에서 알아서 찾아낼 것이니.”
“아…… 알겠습니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염옥진을 지켜보던 황옥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놈을 한시라도 빨리 죽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중천이 위험해져.’
그러나 그는 시천세가 고수들과 함께 이미 중천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중천에서 전한 전서를 받은 제갈곤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전서의 내용을 믿지 못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이…… 이럴 수가 있나.”
하지만 전서의 내용은 처음과 다름이 없었다.
크게 당황했던 제갈곤은 곧 뛰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국 선생을 불러오라!”
“바로 모셔오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문밖에서 호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마안자 국원이 안으로 들어오자 제갈곤은 그에게 전서를 보여 주었다.
전서를 확인한 궁원의 반응도 제갈곤과 다르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그는 멍한 눈으로 제갈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지금 제게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신지요?”
“나도 장난이라면 좋겠소이다.”
제갈곤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넋을 잃고 있던 국원은 곧 정신을 차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가 앉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제갈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마안자라 불릴 만 하오. 어리석은 이 몸에게 깨우침을 전해 주시오.”
“깨우침이라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국원은 겸양을 보이며 머리를 숙였다.
“지금 우리 두 사람의 판단은 무림맹의 생존과 직결이 되오이다. 군사로서의 판단이 어긋나지 않도록 고견을 부탁드리오이다.”
천하에 자신만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기세등등하던 평소의 제갈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에 국원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중천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중천은 우리 무림맹을 지배할지언정 죽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 동천은 중천과 다릅니다. 설사 남궁악이 우리를 멸절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많은 것들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천에는 사련이 있습니다. 남궁악의 손과 발이라 할 수 있는 사련이 있으니 우리를 중히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 제 의견은 어디까지나 중천이 승리했을 때를 가정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중천에 힘을 보태고도 패한다면 동천은 우리 무림맹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원의 판단은 제갈곤의 판단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하면 이번 싸움에 어느 곳이 승리할 것 같소이까?”
“중천일 것입니다.”
국원은 확신을 하고 있었다.
제갈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자신의 짐작과 비교해 보고 싶었다.
“이유가 무엇이오?”
“중천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는 것은 준비가 끝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번 싸움은 중천이 훨씬 유리합니다.”
껄껄껄껄……
“나 또한 같은 생각이외다.”
제갈곤은 크게 기뻐하며 답답했던 가슴속을 웃음으로 털어 버렸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국원이 생각하지 못한 다른 계책까지 짜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일은 하늘이 내려 주신 기회일지도 모르겠어.’
염파진이 보낸 전서가 중천에 도착했다.
전서구를 관리하는 자들 중에 하나가 전서통을 챙겨 총관을 찾아갔다.
“전서가 도착했습니다.”
총관의 거처를 지키고 있던 호위무사가 전서통을 건네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전서입니다.”
“이리 주게.”
호위무사로부터 전서통을 받아 전서를 꺼내 읽은 총관은 잠시 방 안을 서성거렸다.
‘결국 황옥이라는 고수가 찾아내기는 했군. 확실히 집요한 사람이야.’
종예와 석장, 황옥은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어 그들의 성정은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 황옥은 가장 말이 많고 우스갯소리를 잘했으며 연비강에게 큰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전서의 내용은 놀랄만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연비강보다 동천의 일이 더욱 중요했다.
주공 시천세는 고수들과 동천으로 떠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만약 황옥이 연비강의 거처를 알아낸다면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감시만 하고 있으라 하게. 부천주 약추완에게는 비밀로 하고.’
자리에 앉아 빈 전서를 꺼낸 총관은 붓을 들어 글을 써넣었다.
“밖에 누가 있느냐?”
총관 벽하원의 부름에 호위무사가 들어와 머리를 숙였다.
“찾으셨습니까? 총관.”
“이걸 연안지부로 보내게.”
총관은 전서를 보내는 것으로 연비강의 일을 잠시 미뤘다.
동천에서 주공 시천세가 돌아온다면 연비강의 일도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중천으로 전서를 보낸 섬서 연안지부에는 약추완의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들 중에 발 빠른 자는 벌써 서안과 하루거리에 도착해 있었다.
***
“오롯이 맹주님의 판단에 의해 무림맹의 앞날이 결정되오이다.”
제갈곤의 계책을 들은 오진권은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군사. 우리 무림맹에도 고수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자들을 당해 낼 만한 고수들은 몇 명 없습니다.”
“맹주.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계책은 인해전술밖에 없소이다. 열이 죽는다면 백을 내보내고, 백이 죽는다면 천을 내보내야 할 거외다. 천이 죽는다면 만을 보내야 함은 물론이고.”
남궁휘 또한 오진권과 다르지 않았다.
“군사의 계책이 실패한다면 정파는 씨가 마를 것입니다.”
“맹주, 부맹주. 어찌 되었든 우리는 시천세의 명령에 의해 당장 동천으로 밀고 올라가야 하오.”
제갈곤도 자신의 계책에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와 기회가 생긴다면 틀림없이 단 한 번의 싸움으로 강호 무림을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시천세가 동천의 주인을 죽이고 진정한 강호의 주인이 된다면 장차 우리 무림맹은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아주 오랫동안 작은 지역을 차지하고 앉아 그자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할 거외다. 앞으로 맹주께서 무공으로 그자를 넘어서게 되었을 때 그 작은 지역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그자가 죽은 다음에야 기회가 찾아올 거요.”
오진권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군사의 말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은 강호의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기회가 오기는 올까?
탁!
결심을 굳힌 오진권은 탁자를 내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좋습니다. 무림맹에 총동원령을 내리겠습니다.”
“알겠소이다. 맹주. 바로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에 사람을 보내 고수들 전부를 불러들이겠소이다.”
“수고해 주십시오.”
제갈곤이 급히 자리를 뜨고 난 후 남궁휘가 조용히 물었다.
“가능하겠소? 맹주.”
“군사가 저리 자신만만하니 한번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소.”
“일이 잘못되면 무림맹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하오. 전에 말한 대로 십 년 후를 기약하는 것이 어떻겠소?”
“아니오. 운만 따라 준다면 군사의 계획대로 일이 수월하게 풀릴지도 모르오.”
남궁휘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무림맹을 이끌고 있는 맹주는 요행 따위를 바라서는 안 되었다.
맹주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오진권도 그 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부맹주, 남선이 단 일인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소?”
후우……
“어제 들었소.”
남궁휘는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부터 무림맹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었다.
남선을 지키던 동천의 절대고수 열세 명이 단 일인에게 패해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일인은 스스로를 남선의 주인이라 했다고 한다.
그 정보를 전해 들었을 때 남궁휘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꿈으로나마 바라마지 않던 그 일을 강호의 고수가 해냈다.
강호에 출도 할 때는 바로 그런 고수가 되고자했다.
어떤 어려움도 검 한 자루로 헤쳐 가는, 강호인 모두가 두려워하고 존경하며 우러르는 고수가 되고 싶었다.
제갈 군사는 그 정보를 전해 듣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들어갈 무덤을 파고 있는 어리석은 자올시다. 힘만 믿는 무부는 절대로 천하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고래로부터 꾸준히 증명이 되고 있소. 부맹주께서는 그런 어리석은 자를 부러워해서는 아니 될 것이외다.’
머리로는 군사의 말이 맞다 했지만 가슴은 아니었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의해 움직이라 하고 있었다.
“부맹주, 나는 중천과 동천을 상대로 그런 고수가 되고자 하오.”
오진권도 남궁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강호 전체가 경배하는 고수가 되고 싶소. 이번에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천세나 남궁악과 일전을 벌여볼 것이오.”
“맹주…… 나도 맹주의 생각과 같소.”
***
멀리 황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을 멈춘 시천세는 웅장한 황산을 바라보다가 멈췄던 걸음을 재촉했다.
일보를 움직일 때마다 그의 신형은 십여 장씩 거리를 줄였다.
지금쯤이면 남궁악은 남선에 도착했거나 마적강을 만나고 있을 것이다.
남궁악이 동천에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마적강을 죽이고 남선을 되찾기 위해 꽤 많은 고수들이 동천을 빠져나갔을 테니까.
마적강의 죽음이 애석하기는 하나 강호를 제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황산과 거리를 좁혀가던 시천세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좌우를 돌아보았다.
양옆으로 논과 밭들이 펼쳐져 있고 그 뒤에 높지 않은 언덕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언덕들을 응시하고 있는 시천세의 안색은 점점 굳어져 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주공.”
종예가 등 뒤를 따라붙으며 물었다.
그녀의 뒤에는 일백 명에 가까운 무인들이 걸음을 멈춘 채 시천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으로 인해 들풀과 나무들이 숨을 죽이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사제를 얕봤구나.”
좌우를 주시하던 시천세의 시선은 황산을 향했다.
저 멀리 뭔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천리 밖을 내다본다는 고수들이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사제가 오는구나.”
종예나 고수들과는 달리 시천세는 정확하게 그곳을 보고 있었다.
남궁악은 수많은 고수들을 이끌고 사형을 맞이하기 위해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