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30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30화
제230화. 용은 악마의 모습으로(2)
비강의 전신은 수십 조각으로 갈라지며 흩어졌다.
휘이이잉…… .
뒤늦게 바람이 일고 비강의 신형은 오장 뒤에 나타났다.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공격과 회피였다.
비강은 깨끗하게 잘려 나간 자신의 소매를 들어 보았다.
‘손가락이 잘린 것이 놈에게 오히려 약이 된 것인가.’
자신의 검이 강호제일의 쾌검이라 자부하던 예전의 철없던 악추산이 아니었다.
크흐흐흐…….
악추산의 입에서 득의양양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강호에서 무신이라 불리고 있는 놈의 소매를 잘랐다.
그렇다는 것은 놈의 팔을 자를 수도 있다는 뜻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놈의 목까지 벨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너를 죽이고 내가 강호의 새로운 무신이 될 것이다.’
악추산은 오장 너머에 모습을 드러낸 비강을 향해 종횡으로 검을 그어 냈다.
십자(十字)의 형상을 이룬 희뿌연 기운이 오장 너머로 뻗어 나갔다.
오장 너머로 날아간 십자의 희뿌연 기운이 갈라지며 비강의 검이 튀어나왔다.
콰쾅!
강기를 막아 낸 비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악추산이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콰콰콰쾅!
땅이 갈라지며 돌과 흙이 튀고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길게 갈라진 고랑은 오장 너머에 있는 비강 앞까지 길게 이어졌다.
“네가 서안을 반으로 갈랐다고 했느냐! 나는 너를 반으로 가르고 강호를 반으로 가를 것이다!”
약추산의 포효는 산과 들판을 울렸다.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당당한지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약하림까지 고개를 내밀 정도였다.
그녀는 기쁨에 겨운 나머지 눈물까지 훔치고 있었다.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고 비강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단 한곳도 해지거나 상한 곳이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악추산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아쉽구나. 네게 더한 절망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잔인하고 흉포한 빛을 번뜩이는 눈동자가 약하림과 악추산을 쓸고 지나갔다.
악추산을 죽여 약하림을 극한의 좌절감을 안겨줄 것이다.
휘이이이……!
비강의 검에 희뿌연 기운이 휘돌기 시작하자 인근의 공기는 바람이 되어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을 휘돌던 회오리는 순식간에 거대하게 몸집을 불리며 검신을 빠져나갔다.
집채만 한 아가리를 벌린 거대한 용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전부 휩쓸며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갔다.
그것은 이제 용이 아니라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수십 개의 크고 흉측하며 거대한 이빨은 휘황한 강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악추산을 덮쳤다.
악추산은 자신이 이 악마를 베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으아아아아……!
콰콰콰…… 쾅!
콰콰콰…… 쾅!
땅의 진동과 폭음을 감지한 약추완과 염후룡의 경공이 빨라졌다.
“빌어먹을. 순찰단주의 짐작이 맞았군.”
높은 산을 돌아가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약추완과 염후룡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절벽 중간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다 화살을 맞고 떨어져 내리는 백호대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절벽 아래로 내려온 백호대도 절벽 중간에 묶여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뒤에 늘어서 있던 십여 명의 고수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백호대의 목을 손쉽게 베어 넘겼다.
특히 그들 중에 젊은 고수 하나는 염후룡으로서도 쉽사리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백호대를 이끌고 있는 대주조차 그의 검을 감당하지 못했다.
대주마저 쓰러져 숨을 거두자 나머지 대원들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 광경은 싸움이라기보다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추산아!”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절벽과 동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추산과 연비강의 싸움이었다.
악추산은 이미 혈인이었다.
간신히 두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지만 몸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약추완의 외침에 화답이라도 하듯 비강은 고개를 돌려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호…….
“왔나?”
비강은 약림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확신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저들에게 절망을 안겨 주리라.
“네놈의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약추완은 바로 검을 뽑아 들며 달려들었다.
이 순간만은 순수한 분노가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약추완이 움직이자 염후룡도 신형을 날렸다.
희끗희끗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두 사람의 신형은 순식간에 삼십여 장의 공간을 뛰어넘었다.
약추완의 검은 비강의 목을 베어 들고 염후룡의 검은 허리를 파고들어갔다.
그 순간 그들의 눈앞에 한 줄기 사선이 그어졌다.
콰콰쾅……! 콰쾅……!
약추완과 염후룡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력과 비강의 검이 맞부딪쳤다.
강기의 파편은 사방으로 눈부시게 비산하였다.
동시에 강기의 파편 속으로 희뿌연 악마가 흉포한 이빨을 드러냈다.
악마는 하나가 아니었다.
상하좌우로 모습을 드러낸 악마들은 약추완과 염후룡의 분신들을 나뉘어 휩쓸었다.
콰콰…… 쾅! 콰콰콰콰…… 쾅!
땅이 갈라지고 바위가 쪼개졌다.
사방으로 갈라져 이곳저곳에 길게 패인 고랑과 웅덩이는 사람이 들어가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끄르르르…… 쿨럭!
게걸스런 소리와 함께 염후룡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입고 있는 무복은 넝마나 다름없었고 가슴과 허벅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그는 두발로 땅을 디딘 채 비강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하지만 염후룡의 두 눈은 비강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백리혈이라는 자와 검을 맞대어 보았다.
어려서부터 무공에 남다른 자질이 있었고, 천하제일인이라는 시천세에게 무공까지 받았다.
때문에 백리혈이 아무리 무신이라 하더라고 일방적으로 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걸음을 걸을 때 저자는 열 걸음, 스무 걸음을 걷고 있었어.’
약추완은 염후룡보다 사정이 조금 더 나았다.
그 또한 무복은 넝마나 다름이 없었고 여기저기 피를 흘리고 있었으나, 그리 중한 부상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강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염후룡의 것과 비슷한 빛을 띠고 있었다.
약추완도 비강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려 겨누었다.
먼저 움직인 쪽은 약추완과 염후룡이 아니라 비강이었다.
십 장 너머에 검을 들고 서 있던 비강은 단숨에 약추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서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약추완도 기의 파동을 감지하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스악……
약추완이 만들어 낸 휘황한 선은 비강의 목에서 오른쪽 어깨,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 왼쪽 옆구리에서 오른쪽 옆구리, 마지막으로 머리에서 사타구니까지 순식간에 이어졌다.
스걱.
약추완은 자신의 왼팔이 왜 몸에서 떨어져 공중을 휘돌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조각처럼 갈라진 비강의 신형이 사라졌다.
“귀보라고 하더군. 혹시 들어 봤나?”
목소리는 약추완의 왼쪽 일장 너머에서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악……!
세상에 이토록 처절한 비명 소리가 또 어디에 있을까.
고통에 겨워서 질러 대는 비명 소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 울부짖음이었다.
“이 개자식아!”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드는 약추완의 두 눈에서는 원한과 절망으로 인해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콰쾅! 쾅! ……!
그는 한 팔이 잘린 와중에도 무지막지한 강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비강은 강기를 비껴 흘리거나 쳐 내며 뒤로 물러섰다.
“지금 의원에게 보이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듣자 하니 아들을 새로 들였다던데. 그놈이 꽤 똘똘한 모양이지?”
팔을 하나 잃었지만 아들이 있어 희망이 있다.
약추완은 삶에 대한 미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그 미련에 쐐기를 박았다.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네놈들을 돌려보내 주겠다.”
“무슨…… 개수작이더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을까.
약추완은 쉽사리 비강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네놈들과의 싸움은 한 번의 정면 승부로 결정지을 생각이다.”
쿨럭…… 쿨럭
가만히 서 있던 염후룡은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했다.
“림주님,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결국 약추완은 고개를 끄덕여 비강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하늘은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았고, 눈으로 보이는 사물까지 흐릿했다.
“조건을…… 말하라.”
비강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백호대를 포기해. 어차피 저놈들은 다 죽을 테니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백호대에 속해 있는 무인들은 그저 그런 하찮은 가문의 가인들이 아니었다.
약림의 기둥이나 대들보 같은 가문의 가인들이자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들을 약림의 주인이 포기한다면 어느 누가 명령을 따를 것이고 복종을 할 것인가.
“그럼 이 자리에서 결정을 보든지. 장담하건대 너는 이 자리에서 죽어.”
죽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달콤한 권력의 힘을 맛보고 싶었다.
“하림과…… 추산이를 데려가겠다.”
약추완은 결국 또다시 자신의 충실한 수하들이자 식구들이라 할 수 있는 백호대를 배신했다.
오래전 사위의 목을 직접 베어 낼 때처럼.
낄낄낄낄……,
비강은 길거리의 파락호처럼 웃었다.
“그렇게 해.”
똑같이 팔이 잘린 아비와 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비강의 두 눈은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제발 저들이 무사히 살아 돌아가기를 바라본다.
제발 저들이 다시 한번 자신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라본다.
제발 저들이 죽는 순간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왜 저들을 놓아주셨습니까? 교주님.”
담혁수가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저들을 이 자리에서 처리한다면 약림과의 싸움은 이겨 놓고 시작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비강은 대답 대신 다른 말을 늘어놓았다.
“저, 염후룡이라는자 말이오. 나를 공격할 힘이 남아 있었는데도 크게 다친 척을 한 것을 보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소. 저자가 야심을 숨기고 있는 자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요.”
“예? 저는 교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담혁수의 모습이 우스웠는지 비강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신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소. 뭉쳐 있는 것보다 흩어져 있는 적들을 공격하기가 더 쉬울 거요.”
비강은 여전히 무슨 뜻인지 모를 말과 함께 절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백호대는 고작 삼십여 명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절벽 위에서 약추완과 염후룡이 자신들을 버려두고 떠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지만 선뜻 항복은 하지 못했다.
가문과 사문이라는 것에 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가문과 사문에는 자신들의 가족과 사형제들이 있기에 항복을 한다면 진정으로 그곳에서 버려질 것이다.
그리고 두고두고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강호에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비록 가주나 사부가 자신들을 버릴 수는 있을지언정 자신들은 가문과 사문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살려 주시오! 항복하겠소!”
절벽 위에서 항복을 알리는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교주님.”
“내가 무슨 대답을 할지는 호각주도 알고 있지 않소? 저들을 살려 보낸다면 또다시 우리를 향해 검을 겨눌 거요.”
“알겠습니다.”
비강의 명령을 받든 담혁수는 절벽을 향해 다가갔다.
“그만 내려오시오! 목숨은 살려 주겠소!”
더 이상 위태로운 절벽에서 버틸 수 없었던 백호대는 담혁수의 외침소리에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자비한 칼날이었다.
크아악! 아아악!……!
구슬픈 비명과 함께 백호대 삼십여 명은 차가운 땅에 지친 몸을 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