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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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29화
제229화. 용은 악마의 모습으로(1)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자들이 그곳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염후룡이 안내를 하자 마가의 가주가 기다리고 있다가 약추완을 향해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숙였다.
“북방의 주인을 뵙습니다.”
북방의 주인이라…….
언짢았던 기분이 가주의 아부에 잠시나마 사라졌다.
“고맙소. 차후에 후한 보상이 따를 것이오.”
“우리 마가는 후한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강호의 협과 의를 행하는 림주님을 지지할 뿐입니다.”
“어찌 되었든 저녁때 봅시다. 지금은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러니.”
“알겠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마가의 가주는 약추완을 위해 자신의 집무실까지 내주었다.
방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은 염후룡은 그동안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약추완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놈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황곡의 입구를 막고 진을 칠 수밖에.”
이윽고 약추완이 상체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놈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들에게 불리할 텐데 어찌하여 움직이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긴 거리를 행군하느라 수하들이 많이 지쳤으니 오늘은 편히 쉬게 해 주고 내일 움직여야 할 것 같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한데 강호인들은 얼마나 합류했습니까?”
약추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밖에 나가 확인해 보게. 장원 근방은 전부 우리 약림과 강호인들로 가득할 것일세. 행군을 하는 와중에 합류한 강호인들이 칠백 명이 넘는다네.”
염후룡도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합류한 강호인들 대부분은 삼류무인들일 것이나, 그래도 제법 고수라 불릴 만한 자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도검을 쓸 줄 아는 자들이 칠백여 명이나 더해졌으니 이번 싸움은 승리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대주들이 그들을 지휘하느라 고생을 하고 있으니 자네가 나가 도움을 주게.”
“알겠습니다.”
가주의 방을 나온 염후룡은 여러 전각을 지나쳤다.
담 너머로 전해 오는 왁자지껄한 소리는 그의 걱정을 잠시나마 덜어 주었다.
안쪽에서 정문을 지키던 마가의 가인들은 염후룡이 나오자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허어,
대문을 나서자마자 눈으로 들어오는 것은 누런 천막들과 강호인들이었다.
그들은 청룡대와 주작대의 지시를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과 고기를 즐기고 있었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커다란 솥 안에는 돼지고기와 양고기가 삶겨지고 있었고, 마가의 가인들은 술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면전이 벌어질 때 저들을 앞장세워야겠군.’
어차피 자신들의 명예와 약림의 눈에 들기 위해 달려온 자들이었다.
실력이 없으면 일월신교의 칼 아래 목숨을 잃을 것이고 실력이 뛰어나다면 공을 인정해 약림의 무인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차후에 자신이 약림을 대신해 북방의 새로운 패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삼백여 명의 무인들을 이끌고 약림을 나섰던 백호대의 대주는 뒤를 따르고 있는 커다란 마차를 흘깃 쳐다보았다.
정말 성가신 마차였다.
행군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같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쓰였다.
특히 마차를 호위하는 악가의 가인들 중에 악추산이라는 유명한 놈도 함께하고 있었는데, 건방지고 오만하기가 짝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 이외에는 전부 아래로 보는 눈빛은 인내심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마주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모자지간의 정은 두터워 서로를 끔찍할 정도로 챙겨 주고 있었다.
‘뭐 오늘 저녁이면 본대와 합류하니 그때까지만 참으면 되겠지.’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대원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두시진 정도면 본대와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잠시 쉬었다 가자.”
대주가 발을 멈추자 그를 따르던 무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휴식을 취했다.
마차를 끄는 말들도 걸음을 멈추고 옆에 붙어 있던 악추산은 마차 문을 살짝 열었다.
“어머님. 잠시 내려 편하게 쉬십시오.”
“괜찮다. 나는 마차 안이 편하니 괜히 나 때문에 애쓰지 마라.”
백호대주는 악추산과 약하림의 대화를 들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강호에 은밀히 돌고 있는 소문으로는 백리혈이 저 여자가 낳은 아들이라고 하던데,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저 여자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호에 은밀히 퍼지고 있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지독한 모자지간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죽이려 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죽이려 한다.
하늘도 분노할 폐륜이었다.
이유 모를 불쾌하고 찜찜한 기분이 염후룡을 괴롭혔다.
그가 알고 있는 연비강은 약림의 출전을 알면서도 가만히 앉아 기다릴 인물이 아니었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지도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우리가 이미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가만히 있을 자가 아닌데.’
톡 톡 톡 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염후룡의 머릿속으로 번뜩이는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백호대.”
백호대는 후미에서 본대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아마 오늘 저녁이나 늦어도 밤에는 이곳에 도착해 합류할 것이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염후룡은 그 백호대가 신경이 쓰였다.
벌컥!
급하게 문을 열고 나간 그는 약추완을 찾아갔다.
“림주님, 지금 당장 청룡대와 순찰조를 내보내 백호대의 배웅을 나갔으면 합니다.”
“언제 적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을 내보내자니? 갑자기 무슨 말인가?”
약추완의 말도 일리가 있었으나, 염후룡은 자신의 찜찜한 기분을 털어 내고 싶었다.
“그럼 순찰조와 마가의 가인들만이라도 내보내 백호대를 맞이해 왔으면 합니다.”
흐음……
약추완은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그동안 염후룡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지라 더 이상 그의 의견을 반대하기가 어려웠다.
거기다가 백호대에는 외손자와 하림이 동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게. 하나 백호대에는 추산이가 있네. 그 아이의 무공은 나도 놀랄 정도이니 큰일은 없을 것일세.”
“저도 림주님과 같은 생각이기는 하나, 혹시 연비강이 직접 그쪽으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제야 약추완도 조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와 자네가 직접 갔다 오도록 하지. 그래야 수하들보다 빨리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림주님.”
사실 염후룡이 원했던 것은 자신과 림주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었다.
목적을 달성한 그가 방을 나와 채비를 끝내자 약추완도 검을 들고 방을 나섰다.
“가지.”
“예. 제가 모시겠습니다.”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백호대주는 문득 고개를 들어 맞은편의 바위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저곳에서 바위라도 굴리면 이곳은 난리가 나겠군.”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절벽을 올려다보던 그는 갑자기 눈빛이 변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피해!”
쏴아아아…….
검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퍼퍽! 투투툭! ……!
쏟아져 내린 검은 비는 무인들의 정수리, 어깨, 얼굴을 깊숙이 뚫고 들어갔다.
어억! 컥! ……!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꽤 많은 무인들이 화살에 맞아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말 못 하는 말들도 화살비를 피하지 못했다.
머리와 등에 화살이 박혀 난폭하게 날뛰는 말들로 인해 마차는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았다.
화살비를 쳐 내던 악추산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말의 목을 차례로 쳐 냈다.
따당! 따다다당! ……!
검을 뽑아 화살비를 쳐 내던 백호대주가 소리쳤다.
“백호대는 산을 올라가 적들을 주살하라!”
갑자기 쏟아진 화살비에 당황했던 백호대의 대원들도 화살을 쳐 내며 절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그렇게 되자 절벽 위에서 쏘아대고 있는 화살은 그들의 몸에 닿지 않았다.
백호대주와 대원들은 절벽을 중심으로 둥글게 퍼져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님. 잠시 여기서 쉬고 계세요.”
악추산은 약하림을 바위 뒤에 숨겨 놓았다.
이곳이라면 적들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나를 이곳에 버려두고 도망이라도 치려는 것이냐?”
약하림은 불안한 눈으로 악추산의 옷소매를 움켜잡았다.
“아닙니다, 어머님. 저를 믿으십시오. 강호의 그 어떤 자라도 제 앞에서 감히 어머님을 해하지 못합니다. 적들을 전부 쓸어버린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악추산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약하림은 감격으로 몸을 떨었고,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들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없던 힘까지 솟는 것 같았다.
“갔다오너라.”
약하림의 허락이 떨어졌을 때 악추산의 신형은 이미 백호대의 대주를 따라잡고 있었다.
절벽을 날 듯 달려 올라가는 그의 전신을 향해 여러 대의 화살이 쏟아졌다.
따다당!
그러나 화살들은 전부 악추산의 검에 부딪쳐 부러지거나 튕겨 나갔다.
“기다리시오, 대주. 내가 저 위에 올라가 적들을 전부 쓸어버리겠소.”
악추산은 백호대주가 뭐라 대꾸도 하기 전에 신형을 뽑아 올렸다.
그의 신형은 연거푸 바위를 차며 멋들어지게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쐐애애액!
그때 절벽 위에서 쏟아져 내리던 화살과는 소리부터 다른 화살이 백호대주의 등 뒤로 날아들었다.
철퍽!
백호대주 옆에 붙어 절벽을 오르던 무인의 머리를 커다란 화살이 뚫고 지나갔다.
머리를 뚫어 버린 화살은 그대로 바위절벽에 박혀 들어갔다.
쐐애애액,!
또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퍽!
이번에 날아온 화살은 백호대 대원의 목을 뚫고 절벽에 틀어박혔다.
백호대주는 고개를 돌려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저 멀리 길 한가운데 오십여 명 정도가 서 있었는데 화살은 그곳으로부터 날아오고 있었다.
쐐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검은 점은 순식간에 커지더니 백호대주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헉!
백호대주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검으로 화살을 후려쳤다.
깡!
검과 화살이 부딪치자 불꽃이 튀었다.
검에 의해 방향이 꺾인 화살은 백호대주의 얼굴을 비껴 절벽을 파고들어갔다.
퍽!
화살촉이 바위 절벽을 파고들며 돌가루를 튀겼다.
지이이잉!
백호대주는 아직까지 진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손과 검을 응시했다.
‘강호의…… 어느 누가 이만한 궁술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그의 의문은 곧 머리 위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소리에 해소되었다.
“연비강!”
쐐애애애액……!
악추산의 외침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또 한 대의 화살이 날아왔다.
깡!
그러나 그 화살은 악추산의 검에 튕겨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
“이제 호각주가 맡으시오. 나는 따로 볼일이 있소.”
비강은 절벽을 날아오는 악추산을 지켜보다가 커다란 활을 담혁수에게 넘겼다.
활을 건네받은 그는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놈들에게 계속 화살을 퍼부어라.”
담혁수의 명령에 활과 화살을 지니고 있던 신교의 무인들은 절벽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고맙소, 장 소저.’
장경주는 비강이 황곡으로 떠나기 전에 무영노라는 노인을 보내 약림의 이동 상황을 전해 주었다.
순찰단이 선두에 서고 중앙에는 약추완이 이끄는 본진이 있으며 뒤를 맡고 있는 무력대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무력대에는 커다란 마차가 동행을 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비강은 단번에 그 마차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잘 만났다, 연비강.”
비강은 천천히 악추산을 향해 다가갔다.
그는 길 가장자리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바위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아마도 그 바위 뒤에는 약하림이 숨어 있으리라.
“눈물겹군.”
냉랭한 미소가 악추산을 넘어 바위 뒤로 향했다.
악추산은 비강의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놈이 어머니가 낳은 아들이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스스스……
악추산의 신형이 늘어나며 분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 하나가 순식간에 튀어나와 비강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