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2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28화
제228화. 십만대산의 혈사(4)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거친 풀밭의 끝을 응시하던 주온회는 풀밭 양옆으로 늘어선 높은 산을 올려다보았다.
저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죽음의 함정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었다.
“오른쪽 산 능선을 타고 돌아간다.”
뜻밖의 명령에 길잡이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그렇게 멀리 돌아가시면 밤늦게까지 십만대산 안쪽에 당도하지 못하실 겁니다.”
‘빌어먹을.’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내일 새벽이 약속한 시간이었다.
십만대산 입구로부터 먼저 공격해 들어가면 성안을 지키던 자들이 빠져나갈 것이고, 그 틈에 성을 차지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십만대산이 험하고 거칠어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다.
“저 거친 풀밭 안에 적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온회의 차가운 대꾸에 주변에서 듣고 있던 무인 하나가 다가섰다.
“앞에서 몇 명이 길을 만들고 뒤를 바짝 따라 이동한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저도 앞에 서겠습니다.”
뒤이어 무인들 몇 명이 더 나서자 주온회는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 뚫리는 것 같았다.
무인들이 이렇게만 나와 준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싸움이 끝나고 난후 너희들은 큰 포상을 받을 것이다. 앞장 서라.”
앞으로 나선 무인들 다섯 명은 검과 도를 뽑아 들고 거친 풀을 베어 내기 시작했다.
곧 서너 명의 무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해 지나갈 넓은 길이 만들어졌다.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자 먼저 주온회가 그 길로 들어섰고 다른 무인들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반 시진이 지나가자 앞서 풀을 베며 나가던 무인들이 지쳤다.
“교대하라.”
주온회의 명령이 떨어지자 풀을 베던 이들이 뒤로 물러서고 다른 무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렇게만 간다면 이 넓은 마른 풀밭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적의 기습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약림의 무인들이 풀밭을 절반쯤 가로질러 들어갔을 때, 가장 뒤에서 따르던 이들이 갑자기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아악! 아아악!
그들의 비명 소리는 주은회와 무인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적의 기습입니다!”
뒤쪽에서 누군가 적의 습격을 알리고 무인들 대여섯 명이 양쪽으로 튀어 나갔다.
기습을 한 적들을 추격하기 위해서였다.
“멈춰!”
주온회가 급히 소리쳤지만 무인들은 풀밭 속으로 사라져 갔다.
“빨리 전진하라!”
선두를 향해 소리친 그는 뒤쪽으로 달려가 상황을 살폈다.
발목이 잘린 무인들 넷이 고통스런 비명과 신음을 토해 내고 있었고, 동료들은 행낭에서 헝겊을 꺼내 지혈을 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크악!
풀밭 속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행렬 중간쯤에서도 비명을 질러 대며 몇 명의 무인들이 주저앉았다.
무인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 옆쪽으로 마른 풀들이 흔들리며 빠르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할 주온회이지만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사방을 경계하며 자리를 지켜라!”
타탁!
발끝으로 땅을 박차자 그의 신형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주온회는 흔들리는 마른풀을 향해 쏘아져 갔다.
‘죽어.’
스아악…….
마른 풀들이 그의 검에 의해 반원을 그리며 우수수 잘려 나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빌어먹을.”
그가 이를 악물며 얼른 무인들을 향해 돌아가려 할 때 뭔가 검은 것이 풀숲에서 깜빡거렸다.
그것은 놀랍게도 사람의 눈이었다.
“이놈!”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으리라.
스아아악……
또다시 마른 풀들이 반원을 그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검은 눈동자를 잡지 못했다.
스스슥,
뭔가 풀숲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것을 느낀 주온회는 검을 현란하게 움직였다.
따당! ……땅!
손가락만 한 뾰족한 암기들이 검신에 부딪치며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는 발목으로부터 전해 오는 시큰한 감각을 느꼈다.
시큰한 감각을 느끼자마자 그의 몸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쓰러졌다.
풀썩.
엉덩방아를 찧으며 쓰러진 주온회는 시큰했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발목에서부터 붉은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으으…… 으아아악!
그제야 고통이 찾아오고 그의 입에서 고통을 알리는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그 비명 소리도 오래가지 못했다.
검은 무언가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가 빠져나왔다.
꺼어어억……
주온회의 입에서 애끓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몸은 마른풀 위로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자마자 검은 눈동자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낮은 자세로 빠르게 기어 나온 그는 빛을 잃어가는 주온회를 내려다보았다.
주온회는 자신의 죽음을 깨닫고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중노인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 구,?”
“살가.”
그랬던 건가?
살가가 아직까지 죽지 않고 이곳에 살아 있었던 건가?
그러니 당할 수밖에.
주온회가 눈을 뜬 채 숨을 거두자 살가는 곧 화섭자를 꺼내 마른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바로 사라졌다.
길을 만들어가던 무인들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
아쉽게도 바람은 그들을 향해 불고 있었다.
마른풀이라 삽시간에 불이 붙고, 붉은 불기둥은 빠르게 무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돌아서 달리는 무인들과 풀을 베는 것을 잊고 무작정 거친 풀을 헤치며 달려 나가는 무인들, 그리고 사방으로 도망치는 무인들로 인해 넓은 풀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으아아악! 아악! ……!
뒤쪽으로 되돌아 달리던 무인들이 연달아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들의 허리와 다리에서는 붉은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스걱.
무인들 중 하나가 풀을 연달아 베어 내자 풀숲 안에서 가슴을 움켜쥔 젊은 사내 하나가 튀어나오며 쓰러졌다.
크아아악……!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비명 소리는 약림 무인들의 것이었다.
불덩어리는 풀밭에 쓰러진 무인들을 집어삼켰고, 부상을 당해 쓰러진 무인들은 불을 피해 기어 다녔다.
그러나 그들보다 덮쳐오는 불의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거친 풀을 헤치고 빠져나오는 이들을 반기는 것은 검은 검신이었다.
푹. 서걱.
가슴과 목에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자들을 뒤로하고 살가는 풀숲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십만대산에서 멈춰있던 살공의 경지가 높아졌다.
교주는 자신을 위해 놀이 비슷한 것을 가끔씩 해 주었다.
그것은 누가 더 빨리 상대방의 기척이나 숨어 있는 곳을 알아내냐는 것이었다.
승리는 언제나 교주가 가져갔으나 자신은 교주에게 기척을 숨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 결과 멈춰있던 살공의 경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풀숲으로 들어간 살가는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자들의 가슴에 검은 검신을 찔러 넣었다.
푸푹!
연달아 검은 검신을 찔러 넣은 그는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또 다른 자가 밖으로 뛰어나오는 것을 발견한 살가는 검은 검신을 뻗으려다 급히 회수했다.
그는 약림 무인들의 길잡이었다.
“너는 살려 주마. 다시는 들어오지 마라.”
풀숲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오자 길잡이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공포에 질려 정신까지 전부 날아간 상태라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숲의 목소리로 들렸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절대로…… 앞으로 절대로 이곳에 들어오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풀숲은 대답이 없었다.
눈물까지 흘리며 주변을 살피던 사내는 황급히 풀을 헤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숲이 말을 하다니…… 숲이…….’
일월신교를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기 위해 이동을 하던 무인들은 높은 산봉우리 위쪽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검은 연기를 발견했다.
“병신 같은 것들.”
일백오십 명의 무인들을 이끌고 이동하던 사내가 연기를 발견하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원래 약속한 날짜와 시간은 내일 새벽이었다.
그런데 벌써 쳐들어가 불을 지르면 자신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달려가 앞쪽에서 협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더 피해를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 연기로 보아 일월신교의 무인들은 성안에 전부 몰려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문을 파괴하는 일이 오히려 더욱 쉬워졌다.
“십만대산 입구까지 쉬지 않고 달려라!”
그렇게 명령을 내린 사내가 먼저 신형을 날리자 일백오십 명에 이르는 무인들도 일제히 그 뒤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그들은 며칠째 숨어 다니며 이동을 하는 바람에 피로가 쌓인 상태였다.
적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는 길이 아닌 곳으로 이동해야 했고, 길이 아닌 곳은 편안하게 쉴 곳이 없었다.
이제 일월신교의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큰길로 나와 달리던 그들은 곧 경공을 멈췄다.
저 멀리 이백 명쯤 되어 보이는 강호인들이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약림의 무인들은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잠시 혼란이 일었으나 좋은 쪽으로 받아들였다.
‘바보 같은 것들. 근거지가 불에 타고 있는데 이곳까지 나와 있다니.’
그들은 길을 막고 서 있는 자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중앙에는 싸늘한 인상의 여인이 서 있었는데 바로 담수연이었다.
그녀는 약림의 무인들을 지켜보다가 십만대산으로 눈길을 돌렸다.
검은 연기가 구름 위로 치솟고 있었다.
‘살각주가 불을 질렀군.’
아마도 적들은 저 연기가 일월신교의 여러 건물들이 불타고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지금까지는 교주님의 계책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데…….’
크크크크……
담수연은 앞쪽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십만대산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성이 불타고 있어 조바심이 나는가 보지?”
비웃듯 말을 건네는 사내는 사십 대 초반쯤 되어 보였다.
아마도 저자가 일백오십 명쯤 되어 보이는 무인들을 이끄는 우두머리일 것이다.
담수연의 대꾸가 없자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빨리 돌아가 성이나 지키는 것이 어떠냐?”
“그럴 필요 없어. 저 연기는 일월신교가 아닌 네놈들의 동료들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이니까.”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냐?”
“저 세상에서 알아 봐.”
그 대답이 끝이었다.
곧 그녀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사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사내는 눈앞에 갑자기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이만한 여고수가 십만대산에 웅크리고 있었다니.
황급히 몸을 틀어 피하려는 그의 허리가 갈라지고 목에 붉은 실선이 생겼다.
투툭. 퍽!
허리와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머리는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죽여!”
일월신교의 무인들은 일제히 약림 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 중에 선두에서 달려드는 앳된 청년이 있었는데 그 청년의 이름이 바로 이용이었다.
이용은 아버지 이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일전에 참여했다.
그의 옆에는 날카로운 원반을 날려 보내고 있는 양조가 있었다.
퍼퍽.
날카로운 원반은 정확하게 적들의 목을 뚫고 들어갔다.
그들로서는 첫 살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강호에서 살아가려면 그 경험은 필히 거쳐야 했다.
“내 옆에 붙어 있어. 알았지?”
“내 걱정은 하지 마. 형.”
적의 목에서 원반을 뽑아내는 양조의 머리 위로 또 다른 적의 검이 떨어져 내렸다.
양조가 급히 뒤로 물러나는 순간 이용의 검이 적의 허리를 가르고 지나갔다.
“거봐. 위험하다고 했잖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어.”
상인들과 양민들, 유랑민들이 오가는 큰길에 시신이 쌓이고, 피가 흘러 내를 이루기 시작했다.
“수고가 많았네. 순찰단주.”
본대를 이끌고 온 약추완은 순찰단주 염후룡을 치하했다.
그러나 염후룡의 어두운 안색은 약추완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황곡에 놈들이 있습니다.”
약추완이 묻기도 전에 염후룡은 적의 은신처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