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27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27화
제227화. 십만대산의 혈사(3)
유강주는 긴장으로 인해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이곳은 과거의 황곡이다.
강호의 절대자는 새로운 터전에 황곡을 세웠으니 과거의 땅에 그의 일족을 남겨 놓았을 리 없었다.
그러나 확신은 금물이었다.
“죄송합니다. 아직까지 이곳에 머물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돌아가.”
유강주가 눈짓을 하자 양옆의 동료들이 먼저 물러났다.
동료들이 물러나자 유강주도 여인에게 예를 표한 후 몸을 뒤로 물렸다.
여인은 유강주와 동료들이 마을을 빠져나갈 때까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을을 나온 유강주는 동료들과 함께 마을과 멀리 떨어진 좌측의 험준한 산을 끼고돌았다.
산을 우회해 마을 뒤쪽으로 돌아 은밀히 안쪽의 상황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거칠고 험한 능선을 따라 움직이던 그들은 멀리서나마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 위의 평평한 곳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어렵게 절벽을 타고 올라 평평한 곳에 도착해 보니 까마득히 먼 곳에 초옥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초옥들 사이로 뭔가 희끗희끗한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아무리 보아도 사람의 형체였다.
사람들로 보이는 희끗희끗한 형체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저 마을 안쪽에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거나 모여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속았어. 그 계집은 절대로 황곡의 고수가 아니야.”
“차라리 잘됐어. 이곳을 포위해 공격한다면 저놈들을 몰살시킬 수 있을 거야.”
“가자.”
유강주와 동료들은 절벽 가장자리에서 물러섰다.
막 몸을 돌리던 그들은 바위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사내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놀란 정도를 넘어 가슴으로 싸늘한 한기까지 내려앉았다.
아무리 황곡에 모든 눈과 귀를 빼앗겼다고는 하지만 등 뒤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것이다.
바위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사내는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냥 돌아가 아무도 없다는 보고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책임을 다한 너희들이 죽어야 하니 안타깝구나.”
유강주는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는 사내의 말과 행동에 싸한 느낌을 받았다.
이자는 고수다.
그것도 자신들이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고수일 것이다.
“도망쳐!”
그의 입에서 외침소리가 튀어나오자마자 정찰조 세 명은 쏜살같이 좌우로 흩어졌다.
퍽!
좌측으로 신형을 뽑아 올렸던 유강주는 등으로부터 가슴까지 파고드는 묵직한 고통에 입을 쩍 벌렸다.
꺼어억!
입에서는 절로 고통을 알리는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렇게 죽는구나.
집에서 아내가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유강주가 앞으로 고꾸라지자 육선풍은 그의 등에 박힌 도끼를 뽑아냈다.
도끼를 뽑아내자마자 바람이 일고 그의 신형은 사라졌다.
퍽! 끄억!
또다시 도끼가 날아가 박히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울렸다.
“황곡으로 정찰을 나갔던 조원들이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옥돈조 조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부단주 염지황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급히 단주를 찾아갔다.
염지황으로부터 황곡의 상황을 전해 들은 염후룡은 안색부터 변했다.
“밖에 나가 있는 순찰조들을 전부 불러들여라. 지금 당장!”
급박한 명령이 떨어지자 염지황은 안에 남아 있는 조장들을 전부 불러 밖에 나가 있는 조원들을 불러들이게 했다.
조장들이 조원들을 부르기 위해 밖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염지황의 옆으로 염후룡이 다가왔다.
“너도 채비를 서둘러라.”
“직접 황곡에 가보실 생각이십니까?”
쯧쯧……
“한심한 녀석. 우리가 기거하고 있는 감숙 마가를 중심으로 적들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를 준비하란 말이다. 너는 순찰단의 부단주가 되어서 아직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단 말이더냐!”
엄중하게 염지황을 질책한 염후룡은 굳어 있는 안색을 조금 풀었다.
어찌 되었든 염지황은 약림 안에서 그나마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식견은 조금 부족해도 입이 무겁고 책임감이 강해 경험만 쌓는다면 충분히 제 몫을 해낼 것이다.
“정찰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적들에게 죽었거나 사로잡혔기 때문일 게다. 이런 상황에서 황곡에 들어간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오히려 우리들은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이곳을 무사히 지켜 내야 할 입장이란 말이다.”
그제야 염지황은 짐작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본대가 이곳에 도착하려면 앞으로 이틀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적의 습격이 없기를 바라야 했다.
계곡을 따라올라가 산을 넘으면 또 다른 계곡과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무공을 단련한 무인들이었지만 끝없이 이어진 계곡과 높은 산은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십만대산을 잘 아는 길잡이를 앞세우고 계곡을 올라가는 무인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졌다.
“조금 더 올라가다보면 커다란 동굴이 나옵니다. 제가 이곳을 오를 때마다 사용하던 동굴이라 안에 땔감도 남아 있을 겁니다.”
길잡이 중년사내가 손을 들어 계곡 위쪽을 가리켰다.
“잘 되었군. 그곳에서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면 되겠어.”
무인들을 이끌고 있는 자는 악양 주가의 가인으로 일찍부터 감숙에 들어와 있었다.
길잡이 사내를 따라 계곡을 오르는 무인들은 저마다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때문에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자들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도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길잡이 사내가 말한 동굴에 도착한 무인들은 차례로 뒤를 따라 올라오고 있는 무인들을 확인했다.
“이백사십오, 이백사십육, 이백사십…….”
무인들의 숫자는 이백오십을 넘어서고 있었다.
원래 십만대산에 자리 잡고 있는 일월신교의 후미를 치기 위해 출발한 인원은 정확하게 삼백이십 명이었다.
반 시진 넘게 무인들의 머릿수를 확인하던 주온회는 이백칠십이를 세고는 한참 동안 동굴로 들어설 무인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도록 사십팔 명은 올라오지 않았다.
밤이 되면 길을 찾지 못하는 무인들이 더 많을 것을 걱정한 그는 길잡이를 앞세워 뒤쪽에 처진 무인들을 찾아 나섰다.
계곡을 따라 한참이나 내려갔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인기척은 고사하고 늑대들의 울음소리만이 시끄럽게 들려왔다.
“늑대들이 사람냄새를 맡은 모양입니다. 빨리 돌아가셔야 합니다.”
길잡이 사내는 겁을 집어먹었는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온회와 무인들은 조금도 늑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만인지적의 무인들이 곁에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느냐? 잔말 말고 길이나 제대로 안내하라.”
무인들의 강압에 길잡이 사내는 어쩔 수 없이 계곡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다른 길로 빠진 것 같습니다. 내일 해가 밝으면 그때 다시 찾아보시지요.”
주변은 점점 더 어두워지는데다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주온회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날이 밝더라도 길을 잃은 자들을 기다릴 만한 여유는 없었다.
“멍청한 것들, 앞사람의 꽁무니조차 좇지 못하다니. 돌아간다.”
으르르, 으렁…….
게걸스럽게 음식을 탐하는 늑대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그들은 다시 계곡을 올라 동굴로 향했다.
날이 밝고 건포로 아침 식사를 해결한 주온회가 몸을 일으키자 동굴 안에 있던 무인들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무인들이 전부 동굴 밖으로 나오자 주온회는 길잡이를 앞세웠다.
길을 잃은 자들을 위해 나무를 베어 낸 후 표식을 남겨 두었다.
다시 계곡과 계곡으로 이어지는 행군이 시작되었다.
반 시진쯤 계곡을 타고 오르던 주온회는 문득 마음 한구석으로 느껴지는 찜찜함에 걸음을 멈췄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찜찜한 기분을 털어 보려 했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은 무언가가 그를 괴롭혔다.
“왜 갑자기 걸음을 멈추신 겁니까?”
뒤를 따르던 수하들 중에 하나가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아니…… 뭔가 좀 이상한 것이 있어…….”
말끝을 흐리며 계곡을 올라오는 무인들을 지켜보던 그는 찜찜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무인들의 머릿수였다.
분명 동굴에 들어갈 때와 아침에 길을 나설 때의 숫자가 달라 보였다.
주온회는 앞서 가는 자들을 앞질러 계곡 위로 올랐다.
“이곳에서 대기하라.”
그는 계곡을 올라오고 있는 무인들의 머릿수를 다시 확인했다.
“이백삼십칠…… 이백삼십팔…….”
계곡을 전부 오른 무인들의 숫자는 이백사십이 명에서 그쳤다.
동굴을 나선지 반 시진쯤이었기에 길을 잃은 무인들은 없을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주온회는 물론이고 무인들 전부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십만대산의 후미를 치기 위해 출발한 무인들은 삼백이십 명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 팔십 명이 종적을 감춘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이 언제 사라졌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오늘 아침일수도 있고 어젯밤일수도 있었다.
“적입니다. 적들의 함정의 빠졌습니다.”
“맞습니다. 적들이 숨어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적들의 함정에 빠졌습니다.”
“놈들이 우리의 이동경로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떠들어 대는 무인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동료들이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은 곧 자신도 그들처럼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주온회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싸우기도 전에 사기가 이 정도로 떨어졌다면 큰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다.
“얼마나 더 가야 십만대산 안쪽에 도착할 수 있나?”
길잡이 사내도 눈치가 있는지라 자신이 지금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무리 은자가 좋다지만 목숨을 잃은 다음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대놓고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했다가는 이 자리에서 목이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하루거리가 남았습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길은 더 험해질 겁니다.”
사내의 말은 거짓이었다.
앞으로 크게 험한 길은 없었다.
“너희들의 생각을 말해 보라.”
주온회가 무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누구도 먼저 앞으로 나서서 말하려 하지 않았다.
앞에 나서 그만 후퇴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가는 나중에 큰 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만 벌을 받는 것으로 그친다면 나설 수도 있으나, 가문 전체가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었다.
주온회도 무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도 상황이 몹시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후퇴하자는 말은 함부로 꺼내지 못했다.
또한 수년간의 고생을 이만한 희생 때문에 헛수고로 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놈들이 이미 침투경로를 알고 있으니 이제 기습이라는 의미는 사라졌다.
“천천히 이동한다. 앞사람과의 간격은 일장 이내로 유지하도록 하고 수시로 앞뒤의 동료들을 살피도록 하라.”
주온회는 가문과 자신을 위해 이와 같은 명령을 내렸다.
그의 주변으로 둘러서 있던 무인들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주온회의 결정을 듣고 있는 길잡이 사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길을 서둘러라.”
길잡이 사내는 이 자리에서 죽지 않기 위해 어쩔 수없이 앞장서 걸었다.
길을 안내하고 있는 그의 심정도 복잡했지만 주온회 정도는 아니었다.
‘과연 내가 잘한 결정인지 모르겠구나. 이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주온회와 무인들이 계곡을 넘어 다른 계곡을 찾아 이동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이 넘어온 계곡 위에서 누군가 무인들의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
팔 하나가 없어 소매가 헐렁한 아담한 체구의 중노인이었다.
“네놈들이 이대로 돌아갈까 봐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르니라.”
또 하나의 계곡을 넘어서자 눈앞에 우거진 풀밭이 펼쳐졌다.
사람 키보다 더 높은 마른 풀이 빼곡한 넓은 평야를 넘어 또 다른 산이 하나 보였다.
“저기 저 산만 돌아가면 바로 십만대산의 안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