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26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26화
제226화. 십만대산의 혈사(2)
약림이 십만대산을 향해 출전했다는 소식은 쏜살처럼 비강의 귀로 전해졌다.
담수연으로부터 약림의 출전을 보고받은 비강은 그녀로 하여금 곧바로 각주들과 총관을 전부 불러들이게 했다.
가장 먼저 여전히 신선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무진도가 대전 안으로 들어와 머리를 조아렸다.
이어 총관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각주들이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살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던 살가가 들어와 대전 높은 곳에 앉아 있는 비강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대들도 이미 비각주의 입을 통해 약림의 출전소식을 대충이나마 들었을 것이오. 나는 원래 이번 가을이나 내년 봄을 기해 강호로 진출하려고 했었소. 하나 약림이 먼저 우리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이상 그들을 먼저 쳐부수고 강호로 나가야 할 것 같소.”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비강은 대전 안의 여러 인물들을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대전 안을 들어설 때부터 비강의 안색을 살피고 있던 무진도가 냉큼 말을 받았다.
“그것들이 감히 이 신성한 곳을 침략하기위해 오고 있으니 교주님께서는 마땅히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무진도는 약림이 출전했다는 소식에도 비강이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자, 이미 그에 대한 방비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교각주,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이니 의미 없는 말은 삼가주시오.”
“죄송합니다, 교주님.”
무진도가 머쓱해 입을 다물자 담수연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께서는 우리 일월신교를 향해 오고 있는 적들의 규모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전해 듣고 파악한 바로는 먼저 약림의 순찰대가 선봉에 섰고, 뒤를 무력대로 이루어진 본대가 뒤따르고 있다 합니다. 머릿수는 대략 일천오백 명쯤인데 강호인들이 속속 합류하는 바람에 십만대산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천오백 명은 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감숙에 숨어 있던 자들이 사백 명 정도 되니 그자들까지 합하고 감숙에 있는 무가와 무문들까지 합세한다면…….”
적들의 머릿수가 점점 더 늘어가자 대전 안 분위기도 무거워졌다.
“교주님께서 세워 놓으신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담정천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비강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만약 자신이 세워 놓은 계획대로 적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십만대산은 큰 피해를 입을 것이었다.
이 십만대산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적들에 의해 전멸을 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슬프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 꼭 지켜 주고 싶은 자들도 있었다.
“말씀하세요.”
망설임을 보이던 비강은 신녀 강무화의 목소리에 가슴 한구석이 차분해졌다.
그만큼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킬 정도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살각주는 살수들을 이끌고 십만대산 북서쪽에 위치한 골짜기에서 적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시오. 살행의 시작과 장소는 살각주가 판단해 정하도록 하시오. 침입해 오는 적들 중에 단 한 명도 살아 돌아가서는 안 될 것이오.”
“존명.”
살가는 별다른 소리 없이 비강의 명을 받아 들었다.
“비각주는 고수 이백 명을 이끌고 적들이 십만대산 입구의 유랑민들을 선동해 쳐들어오기 전에 먼저 그들을 치도록 하시오.”
“존명.”
담수연 역시 비강의 명을 받아 들었다.
“무각주와 호각주, 두 분 호법은 나와 함께 일원신교의 고수들을 이끌고 나가 적의 본대를 쳐부술 것이오.”
“존명.”
담혁수는 별말 없이 비강의 명을 받아 들었으나 담정천은 아니었다.
“우리 일월신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리 나가 적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알겠으나, 그리하려면 꽤 많은 물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보급대가 필요한데 그 일은 누구에게 맡길 생각이신지요?”
자못 타당한 질문이었으나 그 질문에 대답을 한 사람은 비강이 아닌 총관이었다.
“이미 그 일은 모두 마쳤으니 심려 놓으십시오.”
담정천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로 물자를 옮겨 놓았단 말이오?”
총관도 장소까지는 몰라 비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황곡.”
“……예?”
신녀를 제외한 이들은 전부 놀랐다.
왜 갑자기 황곡이 이 자리에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상행으로 꾸며 황곡에 식량을 포함한 다른 물자들을 옮겨 놓았소. 또한 그 물자들을 지키기 위해 두 분 호법이 나가 있소.”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는 추 호법과 육 호법이 없었다.
두 호법은 백계산의 일로 나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듣고 보니 그들은 황곡에서 물자들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약추완이 큰 세력의 주인이라고는 하나 감히 황곡 안으로 무인들을 들이지는 못할 거요. 우리에게 있어 그곳만큼 편안히 기다리고 있기에 적당한 장소는 없소. 하여 우리는 그곳에서 적들을 기다렸다가 맞이할 생각이오.”
“그렇지만 한두 명이 들어와 정찰을 할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소. 황곡은 은신처가 아니라 주둔지일 것이니.”
약림은 섬서 전체와 감숙 일부까지 장악을 하고 있었기에 보급대는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쉬는 곳마다 무가와 무문들이 달려 나와 편의를 제공했다.
섬서를 넘어 감숙에 들어선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본대의 사정이 그러할 뿐 선두에 선 순찰대는 꽤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순찰조들은 사방으로 나가 적들의 매복을 확인해고 십만대산의 정보를 확인했다.
순찰조들이 정찰을 하는 동안 단주 염후룡은 창오문에서 그동안 수집해놓은 여러 정보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옥돈조의 복귀가 조금 늦는 것 같습니다, 단주님.”
부단주 염지황의 보고에 염후룡은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염지황이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그는 염후룡과 같은 가문의 혈족으로 이어져 있었다.
특히 가문 안에서도 서로 마음이 잘 통했기에 일부러 부단주의 자리에 앉힌 것이다.
때문에 약림 안에서도 그와 사적인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이었다.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신경이 쓰입니다. 어서 털어놔보십시오.”
이런 말을 하면 염후룡은 차마 못 이기겠는지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아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너는 도저히 못 당하겠구나. 실은 이번 싸움의 결과를 놓고 그 후의 일을 짐작하고 있었다.”
“결과라니…… 무슨 결과를 말씀하십니까?”
염후룡은 대답에 앞서 주변의 인기척을 살폈다.
“첫 번째는 약림의 피해가 적은 승리를 가정했고, 두 번째는 약림의 피해가 많은 승리를 가정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약림의 패배를 가정해 짐작을 했으니 너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염지황도 염후룡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은근히 긴장을 했다.
“첫 번째는 약림의 힘이 더 커질 것이니 우리 염가도 조금은 더 힘이 강해 질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 염가에게 뜻밖의 기회가 올수도 있겠지. 약 림주가 죽어 없어진 다음이라면 말이다. 세 번째는 아마도 우리 염가의 모든 가인들은 강호에 뿔뿔이 흩어져 몇 년간 숨어 살아야 할 게다. 일월신교나 정파가 약림을 공격할 테니까.”
“황곡의 그분이 지켜보고 계시는데 정파가 어찌 감히 함부로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염지황은 염후룡이 왜 자신의 질문에 저렇게 웃어 대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그가 느끼기에 황곡의 시천세는 강호 무림의 절대자였다.
아니, 강호인들 전부가 그를 강호의 절대자라 인정하고 있었다.
웃음을 그친 염후룡은 염지황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염후룡이 자신을 뚫어질 듯 쳐다보자 염지황은 당황해 얼굴을 붉혔다.
“너는 그분을 아직까지 잘 모르고 있구나. 그분이 강호를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강한 자는 억누르고 약한 자에게는 힘을 실어 주어, 서로 견제하고 서로 힘을 깎아먹게 조종하는 것이 그분이 강호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하나 약림이 쓸모가 없어질 정도로 약해진다면 강한 자로 하여금 약한 자를 치게 하고 다른 자에게 대신 힘을 실어 줄 거다.”
염지황은 놀라 입을 떡 벌린 채 얼른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렇다면 다른 자라라는 것이 혹시 형님과 우리 가문이…….”
말을 하고 있는 염지황의 온몸에 돋아난 털들이 곤두서며 소름이 솟았다.
시천세는 새로 건설한 황곡으로 떠나기 전 염후룡을 불러 무언가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염후룡이 살펴보고 가문으로 전해졌다.
약추완은 자신이 내준 무공비급으로 인해 염후룡의 무공이 일취월장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염후룡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도 강호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삼십 년 후에도 여전히 황곡의 지배를 받을 것이니 우리 염가가 살아남으려면 그분께 충성하는 방법밖에 없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습니까? 형님.”
염지황은 가문에서 부르던 호칭을 사용했다.
그만큼 그가 받은 충격이 컸다.
“전에 벽 총관과 함께 그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분은 나를 자세히 살피더니 늙지 않는 자신의 본모습을.”
말을 이어 가던 염후룡은 갑자기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염지황은 몸까지 떨리는 경악으로 혼미한 와중에도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옥돈조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잠시 후 문밖에서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염지황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이십여 명의 젊은 무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조장은 들어오고 나머지 대원은 돌아가 쉬고 있도록 하라.”
“예.”
조원들은 해산하고 옥돈조 조장은 방 안으로 들어와 단주를 향해 예를 올렸다.
“이상 없었나?”
“예, 수상한 자들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달리 할 말이 없다면 돌아가 쉬도록 해. 한 시진 후에 출발할 테니까.”
옥돈조 조장은 머뭇머뭇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앞으로 닷새 정도 더 정찰을 하다보면 황곡으로 접어드는 길이 나옵니다. 그곳도 정찰을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장의 말이 옳다.
그러나 쉽사리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그곳은 시천세와 무신들의 고향이었다.
시천세가 그곳을 버렸다고는 하지만 허락도 받지 않고 함부로 정찰을 했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나중에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곳을 살펴보지도 않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발 빠르고 눈썰미 좋은 조원들로 셋을 뽑아 그곳을 살펴보도록 하라.”
“존명.”
옥돈조 조장이 명령을 받고 나가자 염후룡은 염지황도 내보냈다.
“나는 생각할 것이 있으니 너도 나가 일을 봐라. 한 시진 후에 출발할 것이니 채비를 서두르고.”
“예. 나가보겠습니다.”
염지황까지 내보낸 염후룡은 몹시 피곤한 듯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이번 싸움에서 약추완과 악추산만 죽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조원들 중에 가장 발이 빠른 유강주는 동료 두 명과 함께 은밀히 마을로 숨어들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만 싸인 마을은 적막함을 넘어 으스스한 귀기까지 느껴졌다.
수많은 초옥들을 꼼꼼하게 훑어 올라가던 유강주의 눈앞에 장신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골목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여인은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는데 눈꺼풀을 가로지르는 검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삶을 살아온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다부진 목소리가 유강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빈집을 수색하던 그의 동료들이 양옆으로 빠르게 따라붙었다.
“이곳은 너희들이 함부로 들어올 곳이 아니다.”
여인의 전신에서는 살을 에는 싸늘한 살기가 풀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