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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224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24화

제224화. 약림 출전(5)

 

 

 

한 손에 나무 지팡이를 짚은 늙은 비렁뱅이가 일월신교의 성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성문을 지키던 교도들이 허리에 찬 검에 손을 가져가며 비렁뱅이를 막아섰다.

“무슨 볼일이오?”

“멀리서 심부름을 왔소이다.”

늙은 비렁뱅이의 차분한 대답에 교도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심부름을 왔다는 것이오?” 

“일월신교의 비각주라는 분께 전해 드려야 할 서신이 있소.”

교도들은 깜짝 놀라 문루를 올려다보았고, 문루에서 내려다보던 또 다른 무인은 어디론가 황급히 뛰어갔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남는 것은 시간뿐이니 천천히 하시구려.”

늙은 비렁뱅이는 병기를 차고 있는 교도들 앞에서 여유까지 부렸다. 얼마 안 있어 성문 옆의 쪽문이 열리고 그 문을 통해 담혁수가 달려 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일월신교의 호각주입니다.”

늙은 비렁뱅이 앞에 도착한 담혁수는 두 손을 모아 예부터 올렸다.

필시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을 했기 때문이었다.

허허허……

“이름조차 없는 늙은 비렁뱅이에게 과분한 예를 보이시는구려. 고맙소이다.”

얼굴에 잔주름이 가득한 늙은 비렁뱅이의 웃음은 담혁수의 눈에 꽤 좋게 보였다.

어찌 되었든 귀한 손님으로 보이니 대접에 소홀할 수 없었다.

“성문을 열어라.”

인사가 끝이 나자 담혁수는 성문을 크게 열어젖히게 했다.

삐걱…… 

큰 성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늙은 비렁뱅이는 담혁수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늙은 비렁뱅이가 객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일 보는 여인들이 손과 얼굴을 씻을 물을 내왔다.

거지처럼 보이는 노인은 말없이 손과 얼굴을 씻었다.

물을 담은 그릇을 치운 여인들은 방으로 술과 요리들을 내왔다.

그리고 여인들이 요리들을 전부 내왔을 때 문이 열리며 담수연이 안으로 들어섰다.

“비각주님, 또 뵙습니다.”

늙은 비렁뱅이가 먼저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올렸다.

담수연도 환한 미소로 마주 예를 올렸다.

“어서 오세요, 무영노.”

두 사람은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방 안에 함께 있던 담혁수는 그제야 이 늙은 노인이 무영노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사가 끝이 나고 자리에 앉으려던 무영노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지팡이로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쯧쯧쯧……

“나이를 먹으니 자꾸 까먹네 그려.”

품을 뒤져 봉서를 꺼낸 무영노는 그것을 담수연에게 공손하게 건넸다.

담수연도 허리를 굽혀 봉서를 받았다.

“그분께서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아주 급한 일이라 하셔서 제가 직접 이곳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영노. 요리가 식으면 맛이 없으니 어서 드세요.”

“감사합니다.”

무영노는 한 번 사양하지도 않고 요리를 먹고 술을 마셨다.

담혁수는 노인의 옆에서 잔이 빌 때마다 술을 채워 주었다.

그사이 담수연은 봉서를 열어 안의 내용을 살폈다.

하얀 종이에 검고 예쁜 서체가 눈에 가득 찼다.

봉서 안에는 감숙에 자리 잡고 있는 무가와 무문이 나열되어 있었고, 가인들의 수와 문인들의 수까지 쓰여 있었다.

감숙의 무가와 무문이 몇 년 동안 많은 제자들을 받아들였다는 것과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내용을 끝으로 글은 마무리가 되었다.

서신을 다시 봉서에 집어넣고 있는 담수연의 안색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교주님께서는 언제 돌아오시지?”

담수연은 술잔에 술을 채우고 있는 담혁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열흘 안으로 돌아오실 겁니다. 심각한 일입니까?”

“그래. 약추완이 우리 턱밑에서 칼을 갈고 있었는데 여태까지 눈치채지 못했어. 어리석게도.”

그녀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약추완이 간계를 부려도 교주님을 당해 낼 수는 없을 겁니다.”

“아니. 이번에는 걱정을 해야 해. 감숙에 있는 무가와 무문에 몇 년 사이에 늘어난 제자들의 수만 어림잡아 사백 명이야.”

감숙에 자리 잡고 있는 크고 작은 무가와 무문들만 해도 거의 오십 곳에 달했다.

그들 중에 약 삼십여 곳이 제자들과 식객들을 받아들였는데, 비교적 섬서와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무가나 무문들이 많고, 더러는 십만대산과 가까운 쪽에 자리 잡고 있는 무가나 무문들도 끼어 있다고 했다.

서신에는 그들 전부가 약림의 무인이거나 약림과 깊은 관계에 있는 무가나 무문의 제자들이라 적혀 있었다.

담수연의 이야기를 들은 담혁수도 크게 놀랐다.

“그럼 약추완은 그자들을 이용해 이곳을 기습하려 했었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새외에서 값비싼 장신구나 향신료, 뿔, 쇠 같은 것들을 사들인 상단은 십만대산과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신교의 상단에 그것들을 전부 넘겼다.

신교의 상단은 장신구와 향신료를 건네받는 대신 그들에게 차를 넘겼다.

차는 새외에서 항상 후하게 값을 쳐주기에 상인들의 주요 거래품목이었다.

향신료와 장신구를 건네받은 상단은 물건을 싣고 남쪽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물건들의 값이 높아지기는 하지만 위험부담이 높아 주로 섬서 인근에서 물건들을 처리했다.

싣고 온 물건들을 처리하고 그 대신 차를 사들여 십만대산으로 돌아가면 한 번의 상행은 끝이 나는 것이다.

새외에서 들어오는 상단은 길이 더 멀기에 섬서 인근을 오가는 상인들은 십만대산에서 그들이 돌아올 때를 기다려야 했다.

다른 상단의 물건들을 중간에서 사들이는 경우도 있었기에 일월신교에서는 총 네 개의 상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감숙을 가로지르던 상단의 행렬은 날이 어두워지자 인근의 객잔을 찾아 몸을 쉬었다.

상행을 할 때마다 쉬어가던 객잔이라 그런지 호위들보다 먼저 상인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상인들을 호위하던 보원충도 객잔으로 들어가 식사를 끝내고 몸을 쉬었다.

밤이 깊어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같은 방을 쓰고 있는 호위 하나가 몸을 뒤척이며 입을 열었다.

“조장, 호위는 술을 마시면 안 되오.”

“알고 있네. 잠이 오지 않아 바람을 쐬려는 것일세.”

그렇게 말을 받은 보원충은 객방을 나서 객잔으로 들어갔다.

이미 늦은 밤이라 손님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젊은 점소이 하나가 객잔 바닥을 비로 쓸고 있었다.

“혹시 백주가 있나?”

보원충이 늦은 시간에 찾아와 술을 찾자 바닥을 쓸던 점소이는 몹시 당황해했다.

“지금 술을 드시게요? 이미 주방 아저씨도 들어가셨는데요.”

점소이의 반응이 예상과 달라 보원충도 당황했다.

분명 십만대산에 들어가기 전에 듣기로 이 객잔에 정보를 전해 주라 하였다.

인근 사 오십 리 안에 다른 객잔이 없으니 이 객잔이 맞을 것이다.

보원충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고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백주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젊은 점소이는 뭔가를 깨달았는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어…… 어떤 백주를 찾으시는지요?”

“색깔이 푸른 고정궁주면 좋겠네만.”

원래 백주는 색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푸른빛의 백주를 찾고 있었다.

“그…… 그 술은 아주 비쌉니다. 그리고 저희 객잔에는 없습니다.” 

긴장 가득한 점소이의 대답에 보원충은 주변을 살피다가 몸을 돌렸다.

보원충이 객잔을 나가자 점소이는 얼른 품을 만져 보았다.

어느 틈에 넣었는지 품속에는 봉서가 들어 있었다.

점소이는 급히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주인어른. 주인어른.”

방 안에 누워 막 잠이 들려던 객잔주인은 몸을 일으키며 버럭 짜증을 부렸다.

“왜 잠을 깨우고 지랄이야? 이놈아!”

“주인어른. 이거요.”

점소이가 품에서 봉서를 꺼내 내밀자 객잔주인의 눈빛이 대번에 변했다.

“수고했다. 혹시 근처에 다른 사람은 없었겠지?”

“네. 네. 없었어요.”

이 봉서는 대단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이 년 전 어느 날, 눈빛이 흉흉한 강호인이 객잔을 찾아왔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봉서의 전달이었다.

언젠가 누군가 찾아와 암어를 말할 것이고, 그가 서신이나 봉서를 전해 준다면 그것을 받아 창오문(槍梧門)이라는 무문에 전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일에 대한 대가는 자그마치 은자 오십 냥이었지만 거절할 시에는 객잔을 몰살할 것이라고 했었다.

목숨을 잃을까 봐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은자 오십 냥에 욕심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이 년이 넘어가도록 암어를 말하고 봉서를 전해 준 자는 아무도 없었다.

흐흐…….

침상 밑에 봉서를 숨기는 객잔주인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제 이 봉서를 창오문에 전달하기만 하면 은자 오십 냥을 받게 된다.

‘이런 일이 서너 번만 더 있다면 큰 부자가 될 터인데.’

침상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 눈을 감던 객잔주인은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외침 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불이야!”

객잔주인은 황급히 객잔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부엌 안으로 연기와 함께 불꽃이 보였다.

다행히 부엌 안에는 커다란 물통에 길어 놓은 물이 있어 불은 쉽게 끌 수 있었다.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온 상인들이나 호위무사들은 불을 끄자마자 전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궁이 안에 불에 타던 나무가 있어 불똥이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입니다요.”

점소이는 송구한 듯 머리를 조아리며 핑계를 댔다.

다른 점소이들도 허리를 숙이며 주인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불에 탄 것은 아궁이 옆에 놓여 있던 장작 몇 개와 의자 하나가 전부였던지라 객잔주인도 그리 큰 화를 내지 않았다. 

“앞으로 더욱더 조심해라.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시에는 쫓겨날 줄 알아.”

점소이들에게 주의를 주고 방 안으로 돌아온 객잔주인은 얼른 침상 밑에 손을 넣어 보았다.

손에 봉서가 잡히자 그는 안심을 하고는 침상에 누워 잠을 청했다.

 

흐흠…….

환한 달빛에 의지해 서신을 살펴본 비강은 잠시 고심에 잠겼다.

보원충을 밖으로 내보낸다면 틀림없이 일월신교에 관한 정보를 밖으로 빼돌릴 것이라 짐작했다.

그 짐작이 맞아 그자는 남몰래 정보를 전했고, 비강은 그 정보를 가로채 다른 것으로 바꿔놓았다.

보원충의 서신에는 일월신교에 관한 여러 정보가 담겨 있었다.

무인들의 숫자를 포함해 고수들의 이름, 그가 알아낸 여러 각주들에 대한 정보까지 들어 있었다.

‘네가 빠를까, 내가 더 빠를까?’

각주들에게 약속한 오 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일월신교는 이번 가을이나 내년 봄에 강호로 진출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상대는 당연히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약림이었다.

부스스스……

비강의 손에 쥐어져 있던 서신이 가루가 되어 밤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어찌 되었든 미끼를 던졌으니 걸려들기를 바랄 수밖에.’

스으으……

지붕 위에 앉아 있던 비강의 신형도 바람에 흩어지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약림의 림주이자 아버지인 약추완을 찾아보기위해 계단을 오르던 약하림은 어제와는 사뭇 다른 약림의 분위기를 느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니 산 아래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약림의 무인들이 보였다.

한두 명이 바쁜 것이 아니라 약림 전체가 들떠 있었다.

눈치가 빠른 그녀는 대번에 저들이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저들은 지금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감히 내게 일언반구조차 없다니…….’

약하림의 눈빛은 독사의 그것마냥 표독스러워졌다.

약림에 주둔하고 있는 악가의 가인들만 해도 일백 명이 넘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도 그녀에게 귀띔을 해 주지 않았다.

서둘러 계단을 오른 약하림은 림주의 전각을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들을 무시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호위무사들도 멈칫거릴 뿐 그녀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아버님.”

방 안에 앉아 지도를 살피고 있던 약추완은 신경질적인 약하림의 목소리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왔느냐?”

“제게 한마디 말씀조차 없이 일을 진행시키고 계셨군요.”

그녀의 날선 눈빛과 목소리에 약추완은 짧은 한숨과 함께 의자를 가리켰다.

“거기 앉아라.”

약하림이 의자에 앉아 뭐라 따져 묻기도 전에 밖에서 호위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찰단주께서 오셨습니다.”

“들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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