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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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23화
제223화. 약림 출전(4)
“그때 우회한 약림의 고수들은 빈집이나 마찬가지인 십만대산을 공격해 함락시킬 것입니다. 확실히 괜찮은 계획입니다.”
벽하원은 약추완이 자신의 말대로 움직일 것이라 확신했다.
시천세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승패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공멸을 하거나 약림이 패할 것입니다.”
“그 또한 나의 짐작과 같아.”
약추완은 약림의 완승을 점치고 있었으나, 시천세와 벽하원은 십만대산이 이번 싸움에 이길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오직 시천세만 아는 일이지만 벽하원은 이미 십만대산에 간자를 심어 두고 있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자주 연락을 취하지는 못하나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십만대산의 정보를 전해 오고 있었다.
그 정보에 따르면 바깥에서 듣는 정보와 안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정보는 천지차이라고 했었다.
우선 무인들의 숫자가 크게 차이가 나는데 바깥에서는 일천 명 정도로 알고 있으나, 안에 들어가 있는 정보원의 정보로는 삼천 명을 웃돌 것이라고 하였다.
거기다가 여러 각주들이 있는데 그들의 무공 또한 심상치 않다고 하였으니, 약추완의 계획이 아무리 잘 맞아 들어가도 결국에는 전멸을 하거나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 할 것이다.
“약추완에게 사람을 보내 주의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공.”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장난스런 말투였지만 진심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기에 대답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약림이 사라진다면 강호에는 무림맹과 사련밖에 없습니다. 세력이 둘밖에 남지 않으면 결국 그들도 전쟁을 벌일 것인데 초반에는 사련이 유리하더라도 나중에는 무림맹이 승기를 잡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럼 곧 황곡에 반기를 들 것이니 주공께서 귀찮은 일을 겪으실 것입니다.”
하하하하……,
시천세는 기분 좋게 웃어 젖혔다.
웃음을 짓고 있는 동안 희끗희끗했던 그의 하얀 머리카락 몇 올이 뿌리부터 검게 변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세월의 역행.
처음 그 광경을 목격했을 때 벽하원은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날 밤 잠조차 이루지 못했었다.
그때부터 강호인들 중에 신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아니, 비록 시천세가 신은 아닐지라도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이 세상을 통틀어도 시천세를 대신할 주인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에 약림이 패한다면 무림맹에 일러 약림의 본거지를 차지하라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 요즘 소문을 들어 보니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을 하는 것 같던데, 그것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니겠나.”
“주공께서는 연비강과 무림맹을 부딪치게 하고 싶으신 거로군요?”
그제야 시천세의 의도를 알아차린 벽하원이 말을 거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연비강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또다시 혼자가 되어 강호를 떠돌다가 황곡을 찾아들어올 것이다.
“주공께서 직접 나셔서 연비강을 죽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칠 년의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하나 그놈이 먼저 내게 검을 빼든다면 그 약속은 더 이상 무의미한 것이 되겠지.”
“칠 년의 약속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동안 주공 시천세는 연비강을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해 묻고 싶었으나 왠지 그 일에 대한 질문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속에 숨겨 두고 있던 말이 병이 되었는지 절로 튀어나왔다.
“그 일은 다음에 또 논의를 하도록 하고…… 은운곡에 제법 뛰어난 기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인가?”
역시 그 일에 대해서는 묻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예. 사실입니다. 네 명이 있는데 모두 기재들이라 하였습니다.”
“그자들을 산서로 보내도록.”
“주공.”
어지간한 일에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던 벽하원이었다.
그런데 기재들을 산서로 보내라는 말에 격하게 감동을 하였다.
산서로 보내라는 말에 감동한 이유는 바로 무공 때문이었다.
그곳에 가는 자들은 전부 황곡의 무공을 전수받게 된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자들은 예전 황곡의 고수들과 중천에 있을 때의 무인들이었다.
중천의 무인들 중에서도 뛰어난 자들은 이미 몇 년 전에 산서로 들어갔다.
산서로 들어간 이들이 나오는 날 황곡은 전보다 더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주공.”
이곳에서 벽하원이 하지 못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하는 일 대부분은 시천세의 허락조차 받지 않았다.
‘내가 정말 주인을 잘 골랐어. 세상에 나처럼 하늘이 내린 복을 받은 자는 없을 것이야.’
방 안의 무거운 분위기는 방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질식하게 만들 정도였다.
제갈곤과 남궁휘는 잔뜩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고, 오진권은 얼굴에 엷은 열기를 띠고 있었다.
“삼 년입니다, 군사. 삼 년 안에 가능하겠습니까?”
제갈곤은 무거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삼 년 안에 시천세를 넘을 수 있겠소이까?”
“부맹주와 함께 한다면 가능합니다.”
제갈곤의 입에서 실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가능하단 말씀이시구려.”
그의 실망을 읽은 오진권은 불끈 노기가 솟아났다.
군사가 맹주를 업신여기다니.
참고 참았던 인내심이 한 번에 폭발해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가까스로 한 번 더 참았다.
은연중에 살기까지 흘러나오자 제갈곤은 물론이고 남궁휘까지 흠칫 놀랐다.
오진권은 급히 살기를 거둬들였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군사.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맹주가 공손히 사과를 하자 제갈곤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드러운 웃음을 보였다.
“아니외다. 이 군사가 먼저 실수를 했소이다. 용서해 주시구려, 맹주.”
두 사람이 화해를 하자 어둡고 무거웠던 방 안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실은 시천세를 두려워해 부맹주와 함께 상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함께 하고 싶은 겁니다.”
먼저 오진권이 속내를 밝히며 변명을 하자 제갈곤도 온화한 웃음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껄껄껄……
“제가 그런 말씀을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모든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외다. 두 분께서 시천세와 맞닥뜨렸다가 행여 한 분만 그자와 상대하게 될 일이 발생할 수 있소이다.”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한데 삼 년 안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황곡으로 쳐들어가 시천세와 결판을 내고 싶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외다. 현재 우리 무림맹은 일천이백 명의 무인들이 상시 주둔하고 있소이다. 삼 년이 지나면 최소한 삼천 명은 넘을 것이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금 더 기다리고 싶소. 더욱이 우리 무림맹의 행사를 가로막고 있는 곳이 바로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라 답답하기 그지없는 심정이외다.”
당장이라도 무림맹에 주둔하고 있는 무인들과 구파일방과 육대세가의 무인들을 합친다면 족히 이만 명은 넘을 것이었다.
하나 작금의 상황은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후우……
제갈곤이 답답한 심정을 내비치자 오진권과 남궁휘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전부터 강호무림에서는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명문과 명가로 불리었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이었다.
불과 사 년 만에 그들은 자리를 잡고 제자들을 불러 모아 거의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자 가장 먼저 하고 있는 일은 영토 확장이었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구역을 늘리기 위해 호시탐탐 다른 무가나 무문의 땅을 넘보고 있는 중이었다.
더군다나 이제는 대놓고 사련을 멸절시키자는 말까지 하고 다녔다.
힘을 되찾게 되니 피가 고픈 것이었다.
다행히 사련이 조금씩 양보해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그것도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들은 매달 한 번씩 사람을 무림맹에 보내 독촉을 하고 있는데, 사련과 싸움을 시작할 터이니 지원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맹주 오진권과 부맹주 남궁휘가 그들을 설득해 막고는 있지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먼저 쳐야 할 곳은 사련이 아니외다. 시천세만 죽인다면 사련과 약림은 우리에게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오. 미리 저것들과 싸워 피해를 입어서는 아니 되오이다.”
오진권과 남궁휘도 같은 생각이었다.
“저희들이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었지만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들을 막지 못한다면 무림맹의 미래는 어두웠다.
“많은 무인들을 먹이고 입히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할 터인데 자금사정은 어떻습니까?”
남궁휘의 물음에 제갈곤은 설핏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금사정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뜻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주 어려웠으나 올해는 조금 여유가 있소이다.”
“다행이로군요.”
“해서 인근의 논과 밭을 사들여 소작을 하고 있소이다. 마안자가 처음부터 세세하게 관리를 하고 있으니 가을에는 그곳에서 거둔 식량들이 꽤 많은 보탬이 될 것이외다.”
원래 이곳에 무림맹을 세울 때부터 땅은 조금씩 사들였었다.
하지만 자금사정이 좋지 못해 그 일을 멈췄었는데 이제 다시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제갈곤은 오진권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시천세는 우리 정파를 이대로 방관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외다. 나는 그자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하오. 이런 상황에서 먼저 그자를 공격한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이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맹주. 어쩌면 기다리는 시간이 삼 년이 넘지 않을 수도 있소이다.”
“알겠습니다, 군사. 제가 마음이 급해 서둘렀나 봅니다.”
“나를 믿어 주어 고맙소이다.”
적잖이 마음을 놓은 제갈곤이 방을 나갔다.
하지만 그가 방을 나가자마자 오진권의 얼굴에 냉랭한 서리가 내렸다.
“부맹주는 어찌 생각하오?”
“무엇을 말이오?”
언제나 생각이 깊고 신중한 남궁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을 받았다.
“과연 제갈 군사의 말대로만 한다면 우리가 시천세의 손아귀에서 강호 무림을 구해 낼 수 있을 것 같소?”
남궁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제갈곤은 식견이 높아 강호의 상황을 잘 살피고 앞일을 짐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또한 무림맹의 살림까지 꼼꼼하게 챙기니 저만한 군사는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강호 무림의 행사는 식견으로만 헤쳐 나가지 못한다.
가끔은 자신의 직감을 믿어야 할 때가 있었다.
군사 제갈곤은 그것이 부족했다.
“부맹주, 나는 두렵소. 영원히 시천세의 발밑에서 내가…… 아니 우리가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그것이 두렵소. 매해 첫날 그자의 얼굴을 대할 때마다 나는 절망을 한다오. 그자는 절대로 늙지를 않소. 오래전에 보았던 그 얼굴을 매해 첫날마다 다시 대해야 하는 절망감은 참으로 끔찍하다오.”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이번에는 맹주 뜻대로 해 보시오. 나도 맹주의 뜻을 따르리다.”
오진권은 남궁휘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기쁘기 한량없었다.
“고맙소, 부맹주.”
***
“간수장, 이 년이나 십만대산에 갇혀 지냈으니 많이 답답했을 것이 아닌가. 이번에 상행을 호위에 밖에 나갔다가 오는 것이 어떤가. 바람도 좀 쐴 겸. 명령은 아니니 억지로 가려고 하지는 말고.”
담혁수의 제안을 보원충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쁘다는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답답했는데 마침 잘되었습니다. 한데 저 대신 감옥은 누가 관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간수장이 마음에 드는 자를 임명해 맡기면 되지 않겠나. 두 달은 넘게 걸릴 것이니 꼼꼼한 자를 임명해야 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담혁수는 감옥이 있는 방향으로 바삐 걸어가는 보원충을 서늘한 눈으로 지켜보다가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