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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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21화
제221화. 약림 출전(2)
“언제까지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것이오? 성안에서 살고 있는 자들은 배불리 먹고 있는데, 우리는 매일 끼니걱정에 시달리고 있소.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맙시다. 우리도 저 안으로 들어갑시다.”
사내의 선동이 먹혀들었는지 수많은 양민들이 그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저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는 굶더라도 아이들은 배불리 먹여야 합니다.”
“맞습니다. 성안에서 지원해 주는 식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얼마 견디지 못할 겁니다.”
배급받는 식량이 줄어드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양민들의 숫자는 늘어나지만 식량은 한정되어 있기에 배급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일월신교에서도 배급량을 늘리기는 했지만, 불어나는 양민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건장한 사내 십여 명이 몽둥이를 들고 앞장을 서자 수천 명의 유랑민들이 그 뒤를 따라 십만대산 안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걸음을 멈춰야 했다.
담혁수와 일월신교의 무인들이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물러가라!”
담혁수의 호령에 몽둥이를 든 사내들이 앞으로 나섰다.
“불가하오! 식량을 늘려 주든지, 아니면 우리도 성안으로 들어가 살게 해 주시오!”
“그런가?”
언제나 성정이 유하고 부드러운 담혁수의 눈에 시퍼런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도 참을 만큼 참았다.
유랑민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되도록 많은 식량을 그들에게 나눠 주려 했고, 논과 밭을 개간하도록 독려도 했었다.
하지만 당장 먹을 것이 부족했던 유랑민들 대부분은 씨앗으로 나눠 준 식량까지 먹고 말았다.
설사 개간해놓은 논과 밭에 씨를 뿌리고 정성을 들여 가꿔도 추수 때가 되면 도둑맞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전부 성안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논과 밭을 개간하고 집을 짓는 대로 유랑민들을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그 수는 매해 삼백 명을 넘지 못했다.
거기다가 일월신교에서 필요로 하는 자들과 가족부터 받아들이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들은 계속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유랑민들을 전부 받아들였다가는 성안에 있는 사람들도 굶게 될 것이었다.
담혁수의 허리춤에서 섬광이 번뜩이자 가장 앞에선 사내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어억!
선두에 서서 선동을 하던 자의 목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자 뒤를 따르던 이들이 놀라 몇 발자국씩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물러섰던 자들이 몽둥이를 치켜들며 달려들었다.
어차피 굶어 죽는다면 차라리 싸우다가 죽겠다는 심산이었다.
“죽여라!”
“성안으로 들어가자!”
몽둥이들이 담혁수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담혁수는 쏟아져 내리는 몽둥이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며 검을 종횡으로 그어 냈다.
크아악!…… 아아아악!……
구슬픈 비명 소리와 함께 몽둥이를 들고 있던 유랑민들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한순간에 십여 명이 죽어 나가고 핏물은 땅을 적셨다.
몽둥이를 들고 있던 사내들을 전부 베어 버린 담혁수는 몰려들고 있는 유랑민들을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살을 저미는 살기가 퍼져 나가자 무작정 뛰쳐나오던 유랑민들은 겁을 집어먹고 발을 멈췄다.
그러나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뒤에 있던 자들에 밀려 넘어지고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
“죽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은 음울한 목소리가 담혁수의 입에서 퍼져 나갔다.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검을 들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짓밟히고 넘어지며 몰려들던 유랑민들의 눈에 그는 사람이 아닌 저승에서 건너온 저승사자로 보였다.
끄으으……
앞에서 달려들던 자들 중의 일부가 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그들은 입에서 게거품을 흘리며 사지를 벌벌 떨었다.
유랑민들은 공포에 질려 담혁수의 얼굴조차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홀로 수천 명의 폭동을 막아 낸 담혁수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고 있는 자들을 둘러보며 손을 들었다.
“저놈. 저년. 저 노파. 저놈…….”
담혁수가 유랑민들을 일일이 가리키자 일월신교의 무인들이 그들 속으로 들어가 지목을 당한 이들을 끌어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우…… 우리는 그저 굶어 죽지 않으려고……, 제발 살려 주십시오…….”
교인들에게 질질 끌려 나오는 자들의 애원은 담혁수의 말 한마디에 멈춰버렸다.
“이미 너희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약추완이 보낸 자들이 아니더냐?”
순간 당황한 그들은 너무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냈단 말인가.
자신들은 정체를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숨죽여 지내며 성격이 격한 자들을 골라 뒤에서 부추기기만 했었다.
더군다나 자신들은 이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동료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아……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약림에서 보낸 간자가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저도 아니에요. 저는 그저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십만대산에서 식량을 나눠 준다기에 들어왔을 뿐이에요.”
“저 같은 늙은이가 어찌 그런 짓을 벌인단 말씀이십니까. 하늘에 맹세코 저는 약림의 간자가 아니올시다.”
저마다 자신들은 약추완이 보낸 자들이 아니라고 발뺌을 했으나, 담혁수는 조금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내가 너희들을 하루 이틀 지켜본 줄 아느냐. 무려 삼사 년을 주시했다. 끌고 가라.”
삼사 년을 지켜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간자들을 이용해 십만대산의 역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모른척하며 역정보만 흘리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앞으로도 저들로 인해 오늘과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담혁수의 입에서 차가운 명령이 떨어지자 교인들은 간자들의 몸을 포박했다.
포박을 당하던 이들 중에 하나가 교인을 뿌리치며 달아나려 했다.
스걱. 아아악!
그러나 그는 곧 교인의 검에 맞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교인들이 간자들을 포박해 끌어가고 담혁수는 넋을 놓고 있는 유랑민들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왜 너희들에게 식량을 나눠 줘야 하느냐. 우리가 왜 너희들을 성안으로 받아들여야 하느냐. 우리가 왜 매일 이런 수고를 해야 하느냐!”
담혁수가 저들을 꾸짖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갔다.
엄한 목소리로 유랑민들을 꾸짖은 그는 신형을 돌려 십만대산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교인들 서너 명을 이끌고 뒤를 따르던 젊은 무인 하나가 공손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각주께서는 저들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말을 건넨 자는 주중팔이라는 이름의 젊은 조장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다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아…… 예. 제 생각에 저들을 잘만 이용한다면 큰일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담혁수는 걸음을 멈추고 젊은 조장을 돌아보았다.
몇 년 전에 교주가 했던 말을 이 젊은 조장의 입을 통해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계속해 보아라.”
담혁수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예. 제가 여러 번 상행에도 동행을 하며 느꼈던 생각입니다. 해마다 유랑민들이 늘어날 뿐 아니라 땅을 가지고 있는 자들조차 많은 세금으로 인해 굶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관리들이라고는 탐관오리들밖에 없어 앞으로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몇 년간 지속이 된다면 틀림없이 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이냐?”
“저들을 잘만 이용한다면 강호 무림을 정복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강호 무림에 고수들이 널려 있다고는 하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병력을 막아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에게 병기만 쥐어 준다면 바로 병사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영리한 자였다.
그러나 교주는 힘없는 양민들을 이용해 강호 무림을 정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담혁수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저들 중에 무공에 소질을 보이는 자들을 뽑아 무공을 전수하고 있고, 혹시 모를 적의 침입에 대비해 성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무공을 가르치고는 있지만 강호를 정복하기 위해 나서는 자들은 양민들이 아닌 무인들이었다.
그리고 이미 무인들의 수는 사천 명을 넘기고 있었다.
“민란이 일어나든 말든 우리는 절대 그 일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민란이 일어난다면 강호 무림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십만대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되도록 그런 일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것이 담혁수의 솔직한 바람이었다.
담혁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주중팔의 표정은 실망감으로 가득했다.
그는 성안의 모든 이들이 신봉하고 있는 일월성신을 믿지 않았다.
이미 교주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상행을 호위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덕분에 정체까지 짐작하고 있었다.
교주는 일월성신의 화신이 아니라 강호 무림을 피로 물들였던 백리혈 연비강이란 자였다.
‘왜 쉬운 길을 버려두고 어려운 길을 가려 한단 말인가. 잘하면 황제도 될 수 있거늘.’
약림의 간자들을 성안으로 끌고 온 담혁수는 그들을 감옥에 가둬두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취조는 감옥을 관리하고 있는 간수장 보원충에게 맡겼다.
보원충은 약 일 년 반 전에 십만대산에 들어온 자인데 무공이 특별히 뛰어나고 심성이 차가워 죄인들을 가두고 취조하는 감옥의 간수장을 맡게 되었다.
“약림의 간자들이니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또 무엇을 알고 있는지 전부 알아내게. 취조를 견디지 못해 죽는다 해도 상관이 없네.”
“존명.”
담혁수가 명령을 내리고 감옥을 나가자 그는 간수들을 불러들였다.
“취조를 준비하라.”
간수들은 잡아 온 간자들을 의자에 차례로 묶고 인두가 들어 있는 화로를 들여왔다.
시뻘건 인두가 들어 있는 화로를 보게 된 간자들은 벌써부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보원충은 의자를 가져다가 묶여 있는 간자들 앞에 앉았다.
“쉽게 갈 것이냐, 아니면 어렵게 갈 것이냐?”
의자에 묶여 있는 간자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끔찍한 고문을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토설을 해야 했으나, 토설을 하고 난 이후가 문제였다.
혹시라도 약림의 귀에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간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어렵게 가려 하는구나. 시작하라.”
보원충의 눈짓을 하자 간수 하나가 벌건 인두를 화로에서 꺼냈다.
아아아아악……!
곧 살 타는 냄새와 함께 끔찍한 비명이 감옥 안에 울려 퍼졌다.
“소금을 가져오라.”
인두질이 끝나고 살이 익은 곳에 소금이 뿌려졌다.
끄아아아아아……!
“그만! 그마…… 안! 제발…… 그만!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비명을 질러 대던 간자가 결국 고문을 못 이겨 굴복을 하자 보원충은 싸늘한 웃음과 함께 손을 들었다.
고문이 멈추자 고문을 당하던 자는 자신이 했던 일을 술술 털어놓았다.
“맞습니다. 저는 약림에서 보낸 간자입니다. 제가 약림에 보낸 정보는 이곳의 상황과 고수들의…….”
간자의 이야기를 듣던 보원충이 중간에 말을 끊으며 물었다.
“십만대산에 고수들이 몇 명이나 있다고 알렸느냐?”
“일천 명입니다. 식량을 나눠 주던 일월신교의 무인들이 자기들끼리 그런 말을 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크크크크…….
“한심한 것들.”
보원충은 간자들을 비웃었다.
일천 명이라니.
족히 사천 명은 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 또한 마냥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었다.
자신도 약추완에게 직접을 받아 십만대산에 숨어든 간자였다.
언젠가 약림이 십만대산을 칠 때 안에서 호응하라는 지시를 받고 숨어든 것인데, 안쪽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십만대산으로 들어온 이래 단 한 번도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었고, 밖으로 나가려 해도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무인들은 상행을 호위하거나 백계산을 오가느라 여러 번 외출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바깥에 안쪽의 상황을 알려야 할 터인데…….’
이곳은 허락을 받지 못하면 절대로 십만대산 밖으로 출입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중요한 정보가 있어도 바깥에 전해 주지 못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나 외에 다른 간자들도 있을 터이니 그자들만이라도 이곳의 정보를 전해 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