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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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19화
제219화. 몇 해의 봄(5)
“여전히 열심이구나.”
밤늦게까지 무공을 수련하던 오기륭은 황급히 옷을 여미며 허리를 숙였다.
“나오셨습니까? 사부님.”
남쪽으로 떠났던 사부는 무슨 일인지 오늘 아침에 다시 동천으로 되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동천의 무인들에게 출전준비를 시켰고, 그 이유를 오기륭은 알지 못했다.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꾸나. 혹시 잘 아는 술집이 있느냐?”
오기륭은 사부 남궁악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아니,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이 방금 사부의 말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사부는 여태까지 자신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기륭이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남궁악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잘 아는 술집이 없다면 나를 따라오너라.”
“아…… 예…… 예.”
당황한 오기륭은 서둘러 남궁악의 등을 좇았다.
남궁악이 오기륭을 데려간 곳은 동천 밖에 있는 어느 허름한 술집이었다.
오기륭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던 사부는 절대 이런 술집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주로 홀로 술을 마시거나 술을 마시더라도 반드시 좋은 안주를 차려놓고 마신다.
삐걱……!
안으로 들어가는 문마저 낡아 문을 잡아당기자 귀를 거슬리게 할 정도의 거친 소음이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술집 안에 앉아 있던 늙은 노인이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남궁악은 마치 자신의 집이라도 찾아들어온 양 편안했다.
술집 안에는 손님이라고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하기는, 누가 이렇게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술집에서 술을 마신단 말인가.
몇 개 안 되는 식탁과 의자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낡아 있어 과연 저런 의자에 앉을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잘 있었나? 황노.”
“도련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로군. 먼저 술부터 내오고 내가 맡겨 놓았던 것까지 가져다주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술집 노인이 부엌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들어가자 남궁악은 술집 가운데 놓여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무얼 하고 있느냐? 어서 앉지 않고.”
남궁악의 말에 오기륭은 조심스럽게 의자에 가 앉았다.
삐걱,
낡아빠진 의자는 그의 몸이 부담스러웠는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 댔다.
오기륭이 앉자마자 부엌에 들어갔던 노인이 두부를 담은 접시 하나와 술병 하나를 내오고 술잔과 젓가락을 두 사람 앞에 차려놓았다.
제자가 황급히 술병을 잡아 사부의 잔에 술을 채우고 자신의 잔에 술을 채우려했다.
그러자 사부는 제자의 술병을 낚아채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때 안으로 들어갔던 노인이 보자기에 싼 물건 하나를 내와 남궁악 앞에 바쳐 올렸다.
고개를 끄덕이며 물건을 받은 남궁악은 그것을 오기륭 앞에 내려놓았다.
“이것이 무엇인지요?”
“나의 모든 것이니라. 너를 위해 모든 것들을 쉽게 풀이해놓았으니 그것을 가지고 가거라.”
도대체 사부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갑자기 이런 것을 내준단 말인가.
연이은 충격에 오기륭은 그저 멍하니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보자기만 내려다보았다.
“들자꾸나.”
남궁악이 술잔을 들어 올리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오기륭은 황급히 술잔을 잡으려다 술을 쏟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평소라면 크게 혼이 났을 것이다.
사부는 그만큼 조그만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말없이 술병을 잡아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워 주었다.
남궁악이 먼저 술잔을 비우자 뒤이어 오기륭도 술잔을 비웠다.
술을 마신 오기륭은 사부의 잔에 술을 채우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너는 이곳을 아느냐?”
“처음입니다, 사부님.”
남궁악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이곳은 내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곳이니라. 내 어린 시절의 남궁세가는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두려운 곳이었다. 너무 견디기 힘들어 가끔 밖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내가 갈 곳은 없었다. 그때 마침 나를 받아준 곳이 바로 이 술집이었느니라. 그 당시에는 그래도 제법 깨끗한 술집이었고 황노도 젊었지. 또한 이곳은 내가 사부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아…….
오기륭은 감격으로 몸을 떨었다.
이제야 사부가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조를 처음 만난 곳에서 제자에게 뭔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일 새벽에 이곳을 떠나거라.”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오늘은 놀랄 일만 계속 이어진다.
평생 놀랄 일이 오늘 하루에 다 터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사부님.”
의아해 하는 오기륭을 응시하던 남궁악은 술잔을 들어 비우고 젓가락으로 두부를 베어 입에 가져갔다.
오기륭이 다시 술병을 들어 술잔을 채워 주었다.
“며칠 안으로 나의 사형이 이곳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어쩌면 내일이라도 당장 들이닥칠지도 모르지. 당연히 내가 그 싸움에서 사형을 제압하고 강호의 황제가 될 것이나,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사내라면 실패에 대비한 준비도 해 놓아야 하느니라.”
오기륭은 이제야 사부가 남선으로 향하다가 되돌아온 이유를 알아차렸다.
사부는 이 동천에서 시천세와 강호를 놓고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싸움은 사부가 승리할 것이다.
아무리 시천세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먼 길을 달려온 적과 편히 기다렸다가 오히려 역습을 하는 쪽 중에 유리한 쪽을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였다.
이번 싸움에서 시천세를 죽일 수만 있다면 그대로 강호는 사부의 손에 떨어질 것이다.
오기륭은 이 싸움에 반드시 끼어들고 싶었다.
사부가 강호의 지배자가 된다면 자신은 바로 아래 이인자로 올라서게 된다.
그때 강호인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려면 반드시 공을 세워야 했다.
“저도 싸우고 싶습니다, 사부님.”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느냐?”
남궁악의 안색과 목소리가 갑자기 엄해졌다.
오기륭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이럴 때 사부의 말을 거스른다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쉽고 또 아쉽지만 사부의 말대로 움직여야 한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사부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재물과 은자를 준비해 놓으라고 하였으니 그것까지 챙겨 떠나도록 해라.”
“예.”
남궁악이 술잔을 들어 올려 내밀자 오기륭도 술잔을 들었다.
“전에 백계산의 산채를 어디로 옮겼는지 일러 주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싸움에서 패한다면 너는 그곳에서 준비를 하며 나를 기다려라. 설사 내가 싸움에서 패한다하더라도 죽지는 않을 것이니 그곳으로 찾아갈 것이다. 만에 하나 내가 죽는다면 너는 그곳에서 힘을 기르도록 하라. 최소한 오 년은 숨을 죽이고 무공을 연마해야 할 것이며 광활한 청해와 감숙을 돌아다니며 고수들을 끌어모아 세력을 만들어야 하느니라.”
오기륭은 남궁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집중했다.
“세력을 크게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면 십만대산을 쳐 그곳에 있는 무인들을 아울러 거느려라. 하나 그곳은 백리혈 연비강이 주인으로 있으니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내가 일궈놓았던 백계산도 그놈의 수중에 들어갔겠지. 백리혈 연비강은 지금의 너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게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그 보자기 안에 나의 모든 것이 들어 있으니…….”
오기륭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강호에서는 백리혈 연비강을 무신이라 부르고 있었다.
팔이 잘리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당백요를 죽인 놈이 무신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연비강이 십만대산의 주인으로 있으면서 무인들까지 거느리고 있다니.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었다.
“연비강을 넘어선다면 너는 무신이라 불릴 것이다. 하나 그놈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니 적어도 오 년은 그놈과 부딪치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
사부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아쉽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내가 직접 상대한다. 전부 뒤로 물러서.”
오기륭의 명령에 의해 도적들은 비강과 거리를 벌렸다.
사부의 말은 사실이었다.
보자기 안에 있던 것은 무공비급이었다.
그것도 사부의 무공을 알기 쉽게 풀이한 것이었다.
아니, 풀이가 아니라 문득 문득 떠오르는 무공의 단상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그것으로 오기륭은 멈춰있던 무공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니 세상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전신의 모든 감각이 하나하나 살아 움직여, 천리 밖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는 나비의 움직임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이제 강호에서 자신을 당해 낼 자는 오직 시천세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서 있는 연비강은 뭔가 이상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미약하기 그지없을뿐더러 그 기운조차 불규칙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런 불규칙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놈이 지독하게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패하지 않는다. 반드시 저놈을 죽이고 강호의 새로운 무신이 될 것이다.’
마음을 다잡은 오기륭은 비강을 향해 발을 내디디며 검파를 잡아갔다.
연비강과의 거리는 대략 육장. 목을 베기에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
스악.
검파를 잡는 순간 그의 검은 이미 비강의 목을 베며 지나갔고, 신형은 비강의 좌측에 서 있었다.
비강의 목에 검은 선이 그어지고 몸과 분리되어 흩어졌다.
검을 비껴들고 있던 오기륭의 팔에 빛이 스쳐 지나가며 검은 선이 그어졌다.
잘려 나간 팔과 검이 흩어지고 몸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뒤늦게 바람과 바람이 부딪쳐 회오리를 일으키자 멀찍이 물러섰던 자들이 화들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콰쾅……!
도적떼들이 물러서자마자 희뿌연 빛줄기들이 충돌하고 빛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수십으로 늘어난 연비강과 오기륭의 신형이 들판을 가득 채우며 격돌했다.
콰쾅! 콰콰쾅! ……!
강기와 강기가 부딪치고 신형과 신형이 엇갈렸다.
수십으로 늘어났던 오기륭이 하나로 합쳐지고, 그의 손에 있던 검이 수십 명의 비강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애액……
빛살로 날아간 검은 정확하게 비강의 본체를 찾았다.
쾅!
비강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쳐 내는 순간 수십 명의 비강들이 바람에 날리듯 스러졌다.
검과 충돌한 후 되돌아오는 검을 잡아챈 오기륭이 비강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형체 없는 무언가가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흡!
오기륭은 기겁을 하며 몸을 비틀었다.
투투툭……
몸을 비틀어 가슴을 파고드는 무언가를 피해 내고 있는 오기륭의 눈에 가슴을 가리고 있던 무복이 깨끗하게 잘려 나가는 것이 보였다.
푸학!
뒤이어 무복이 잘려 나간 부위에서 붉은 피가 솟구쳤다.
‘이럴 리 없어.’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는 핏물은 내 것이 아닐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오기륭의 신형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가슴에서 솟구친 핏물은 바람을 타고 지상으로 흩뿌려졌다.
오기륭의 신형이 공중으로 날아오르자마자 비강의 검이 그의 머리를 쪼개듯 떨어져 내렸다.
쾅!
크윽!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던 오기륭의 신형이 지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휘리리릭,
추락하던 그의 신형이 공중에서 뒤집히며 두 발이 땅으로 내려섰다.
땅으로 내려선 그의 가슴을 향해 또다시 무형의 강기가 파고들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무슨 무공이란 말이냐.’
쾅!
이를 악물며 무형의 강기를 막아 내기는 했지만 완벽하게 막아 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검을 쥐고 있는 팔과 어깨에 무수한 실선들이 생겨나고, 그 실선에서 피가 솟아 올라왔다.
거기다가 검을 쥐고 있는 손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너무 성급했다.
자신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는 동안 연비강도 또 다른 경지에 올라 있었다.
사부의 말이 맞았다.
적어도 오 년은 이놈과 부딪치지 말아야 했었다.
아니, 오 년이 아니라 육 년, 칠 년은 마주치지 말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