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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마 연비강 218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0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18화

제218화. 몇 해의 봄(4)

 

 

 

“이름을 물어봤나?”

“물었으나 대답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음에 또 보게 될 때 대답을 해 달라고만 하고는 도적들과 함께 물러갔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자였다.

“용 단주께서도 처음 보는 자들이었습니까?”

“도적들 중에 몇 명은 눈에 익은 자들이었습니다. 전에 그들에게 은자를 바치고 새외로 넘어간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무공이 아주 뛰어난 자들인데 이삼 년 전부터 그자들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자들은 전부 처음 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도적 떼는 구파일방이나 육대세가의 잔당은 아닐 것이다.

이미 자신들의 집으로 되돌아간 그들이 뭐가 아쉬워 새외에서 도적질을 하고 있겠는가.

비강은 머릿속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고수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리고 그 고수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결국 최종적으로 뚜렷한 인물 한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오기륭. 설마 너냐?’

오기륭은 동천 남궁악의 제자였다.

검신으로 불렸던 남궁악이었으니 그의 제자 오기륭 또한 검법이 범상치 않음은 당연할 것이다.

남궁악이 시천세에게 패해 죽을 때 오기륭도 같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이 분명했고, 강호 무림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청해가 세력을 일으켜 세우기에 적당한 곳이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구파일방과 육대세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난날 구파일방과 육대세가가 힘을 키우기 위해 벌였던 짓거리와 어찌 이렇게도 닮았단 말이냐.’

아직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오기륭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왜인지 그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그인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단주님께서는 혹시 동천의 오기륭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예.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먼발치에서 한번 보았습니다. 한데…… 왜……?”

용 단주의 눈이 놀람으로 휘둥그레졌다.

“설마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오 대협이라 생각하고 계시는 것인지요? 하나 도적떼의 우두머리는 오 대협과 얼굴이 많이 다른…….”

도적떼 우두머리의 얼굴에는 검상과 함께 거친 수염까지 나 있었다.

말끔한 얼굴의 오기륭을 떠올리고 있던 용 단주는 말을 맺지 못했다.

어쩌면 정말 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확신이 없습니다, 교주님.”

“나도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 만약 그자가 정말로 오기륭이라면 백계산이 위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담 각주, 두 호법은 아직 백계산에서 돌아오지 않았소?”

본격적으로 오기륭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라면 분명 그자는 사부 남궁악이 만들어 놓았던 백계산을 칠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그자가 이끌고 있는 도적떼들은 예전에 백계산의 채주였던 추옥민의 수하들일 가능성도 있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교주님.”

“그렇다면 내가 직접 그곳으로 가겠소. 백계산이 위험할지도 모르오.”

“그자들이 이곳을 습격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교주님.”

담혁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비강은 백계산에 조금 더 많은 가능성을 두었다.

“이곳에는 많은 고수들이 있소. 설사 오기륭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거요.”

“알겠습니다, 교주님. 그렇다면 오늘부터 교주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비상체제를 유지하겠습니다.”

“나는 지금 바로 출발하겠소. 용 단주,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술 한 잔 나누지 못하고 자리를 비우는 이 사람을 이해해 주십시오.”

용 단주도 비강과 술잔이나 나누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표사와 상인들 여럿이 죽임을 당했고, 지금 의각에는 부상을 당한 표사와 상인들이 누워 있었다.

용 단주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모았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술이야 다음 기회에 있으니 그때 오늘 밀린 것까지 전부 마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쪼록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용 단주와 인사를 나눈 비강은 그대로 방을 나와 백계산으로 출발했다.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은 허리에 꽂혀 있는 검 한 자루가 전부였다.

 

***

 

백계산은 예전보다 더욱 사람들이 많아졌다.

유랑민들을 받아들여 집을 짓고 논과 밭을 늘린 것이다.

사람들이 많아지자 십만대산에서도 무인들을 파견해 마을을 지키게 했다.

유랑민들조차 갑자기 도적떼로 돌변하는 세상이라 무인들이 마을을 지키지 않고선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없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추옥민과 육선풍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저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니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채주님.”

“육 호법, 나는 이제 채주가 아니라 일월신교의 호법이에요. 예전 백계산의 채주는 세상에 없어요.”

“채주님은 영원히 저의 채주님입니다. 교주님께서도 그에 대해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요.”

“말씀은 않으셨지만 마음속으로는 불편해 하고 있을 거예요.”

껄껄껄……

“설마 교주님께서 그러시겠습니까.”

육선풍은 호쾌하게 웃으며 부정을 했지만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불편하지 않소.”

바로 그때 그들의 등 뒤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뒤돌아보니 비강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교주님께서 어인 일로 백계산까지 행차를 하셨습니까?”

육선풍이 놀라 물었다.

“아. 며칠간 이곳을 돌아보며 쉬었으면 해서 들르게 되었소.”

그럴 리 없었다.

추옥민과 육선풍이 생각하는 교주는 마음 편히 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교주님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백계산을 방문하셨을 리 없습니다.”

비강은 대꾸 한마디 없이 마을을 둘러보았다.

오기륭이 도적떼들을 이끌고 약탈을 온다면 이 마을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고 자금도 많이 들어가야 한다.

십만대산에서 살아가고 있는 일월신교의 신도들이나 이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마을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렵게 일궈놓은 양민들의 터전을 잃게 할 수는 없었다.

“오기륭을 알고 있소?”

이윽고 비강의 입이 열리고 오기륭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오자 추옥민은 크게 놀랐다.

오기륭은 사부를 죽인 원수 남궁악의 제자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자의 이름이 하필이면 이 자리에서 입에 올린단 말인가.

남궁악은 추옥민에게 잊지 못할 고통이라 그자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가슴 한편으로는 시원하면서도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이 원통했다.

“알고 있어요.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으니까요.”

비강은 무섭게 굳어가고 있는 추옥민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자가 이곳을 습격할지도 모르오. 그자는 광활한 새외를 돌아다니며 고수들을 끌어모으고 있소.”

추옥민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남궁악의 제자이니 이곳을 알고 있을 것이고 이곳 백계산을 알고 있다면 당연히 습격을 할 것이다.

“그럼 준비를 해야겠군요.”

추옥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선풍이 움직였다.

이 백계산에는 약 삼십여 명의 신교 무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비강은 황급히 달려가는 육선풍을 불러 세웠다.

“육 호법, 너무 소란스럽게 움직일 필요는 없소. 평소보다 경계만 조금 더 강화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교주님.”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던 추옥민은 결국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옷을 걸쳤다.

축시가 넘어가도록 잠은 오지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

벌써 이렇게 잠을 설친지 열흘이 넘었다.

오기륭의 습격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돌았다.

이미 늦은 밤이라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마을 외곽에만 횃불을 밝히고 있었다.

마을을 나온 그녀는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으로 올랐다.

그곳이라면 적의 기습이 있기 전에 먼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산에 오른 그녀는 문득 어둠 속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검을 빼 들었다.

“자지 않고 왜 나오셨소?”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비강이었다.

하,

“교주님이셨군요.”

마음을 놓은 추옥민은 검을 집어넣으며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가까이 접근하기 전까지 어둠 속에 교주가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치 어둠 그 자체로 보였다.

어둠을 대낮처럼 꿰뚫어 보는 고수들의 눈으로도 교주를 확인할 수 없었다.

교주와는 꽤 오랫동안 함께 지냈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많았다.

그녀는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났고 더 늦게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언제나 교주가 먼저 일어나 있었고 더 늦게 잠이 드는 것 같았다.

“교주님이 언제 주무시죠?”

“왜, 내가 잠을 자지 않는 것 같소?”

비강이 웃으며 되물었다.

“네.”

“잠을 자지 않는 인간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소? 나도 잠을 자오. 다만 내가 원할 때 자는 것뿐이오. 사실 내가 십만대산에서 하는 일은 없지 않소? 각주들이 다 알아서 하니 말이오.”

맞는 말이기는 했다.

십만대산에서 비강이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하릴없이 마을을 거닐거나 가끔 각주들의 무공 수련을 도와주는 것 외에는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끔 교주의 방을 찾아갈 때면 그는 대부분 방을 비워 놓고 있었다.

푸른빛이 내려앉은 새벽이 가까워지자 마을 사람들도 일어날 준비를 하는지 집집마다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추옥민은 기나긴 침묵이 싫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하오문의 소식은…….”

그러나 그녀는 말을 맺지 못했다.

비강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과 멀리 떨어진 들판으로 수십 명의 검은 형체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습격이에요.”

추옥민이 놀라 몸을 일으키자 비강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육 호법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집 안에 있을 터이니 그자를 데리고 천천히 오시오.”

스아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비강의 신형은 새벽의 푸른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휘이이……

뒤늦게 추옥민이 서 있는 자리에 바람이 몰아치고 그녀도 마을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백계산을 오는 일이 이렇게 길고 험난할 줄은 몰랐다.

사부는 강호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이 백계산에 산채를 꾸리고 고수들을 불러 모았다.

당장 동천에 큰 보탬이 되는 산채는 아니었지만 멀리 앞날을 내다본 것이다.

오 년만 지난다면 자리가 잡혀 북쪽의 새로운 동천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병천은 사부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자는 오로지 협과 의만을 추구하던 협객이었다.

“천하를 이 손에 잡을 수 있었는데…….”

이미 지나간 일이었지만 아예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황곡이나 정파가 그랬던 것처럼 강호의 변방에서 힘을 길러 강호로 돌아가는 것이다.

새벽을 달리고 있는 수하들의 뒤를 따라 움직이던 오기륭은 앞쪽에 어른거리는 검은 형체를 발견했다.

“멈춰!”

오기륭의 외침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검은 형체는 이미 눈앞에 당도해 있었다.

“안 돼!”

공허한 외침소리와 함께 검은 형체를 향해 달려드는 수하들의 뒷목과 등 뒤로 광채가 빠져나왔다.

후두둑…… 후둑……

마치 원래 바위였던 것이 돌이 되어 부서지듯 수하들의 몸이 토막 나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고수들이 검 한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한 채 비명 소리 한마디 없이 죽어 나가자 누구 하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연비강…….”

오기륭은 태연하게 검을 털고 있는 비강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이곳은 나의 땅이다. 설마 그 사실도 모르고 이곳을 찾아왔나?”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곳을 정리한 후에 십만대산으로 쳐들어가 연비강을 죽이고 그곳을 차지할 생각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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