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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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13화
제213화. 약림(2)
여인은 주변을 살피다가 아이의 손을 잡아끌고 비강과 담혁수 앞으로 걸어왔다.
걸레나 다름없이 해진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집 없이 떠도는 유랑민 같았다.
“무슨 일이오?”
담혁수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혹시 여자가 필요하지는 않으신지요?”
여인이 다짜고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담혁수의 물음에 여인은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앞으로 밀었다.
햇볕에 그을려 검은 얼굴에, 누더기 옷을 걸친 볼품없는 아이였다.
아이는 겁을 먹었는지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이 아이는 어떠신지요? 닷 푼만 내시면 밤새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요.”
여인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담혁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바, 방금 무어라 하였소?”
“닷 푼에 이 아이를 내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요.”
“당신은 이 아이와 무슨 관계이기에 이 아이를 내게 내주겠다는 거요?”
헤헤헤……
“제가 이 아이의 어미입지요. 입에 풀칠하기도 워낙 힘이 드니 어쩌겠습니까요. 호걸님들, 넓은 아량을 베풀어 이 아이를 데려가주십시오. 닷 푼이 비싸다면 네 푼도 가능합니다요.”
너무나 황망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담혁수는 누런 이를 내보이며 헤픈 웃음을 짓는 여인이 역겨워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자신도 고아였고, 남의 밥을 빌어먹으며 살았다.
하지만 고아가 되기 전에는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살았었다.
“닷 푼을 내주시오.”
그루터기에 앉아 있던 비강이 아이와 어미를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교주님……?”
담혁수가 놀라 비강을 쳐다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교주는 절대로 저런 아이까지 탐하는 호색한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일에 격하게 분개하는 사람이었다.
비강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담혁수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전낭에서 닷 푼을 찾아 꺼내려 했다.
교주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뭔가 다른 뜻이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전낭 안을 뒤져 봐도 잔돈이 없었다.
결국 그는 은자 한 냥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 있소.”
담혁수가 닷 푼을 내밀자 여인은 헤벌쭉 웃으며 그것을 낚아채듯 받아내 가슴속에 집어넣었다.
“거스름돈이 없는데 어떻게 할까요?”
“필요 없소.”
담혁수의 대답에 여인의 입이 귀에가 걸렸다.
헤헤헤……
“내일 아침에 오겠습니다요. 좋은 밤 되십시오.”
어미는 볼품없어 보이는 아이만 남겨 두고 부리나케 사라졌다.
홀로 남은 아이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런 일이 몇 번째냐?”
그제야 비강이 몸을 일으키며 아이에게 다가섰다.
아이는 얼마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괜찮다. 너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말해 봐라.”
비강의 입에서 세상에 다시없을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조금 안심을 했는지 아이는 고개를 살짝 들어 비강과 담혁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숙였다.
“세…… 번째예요.”
“그래. 그렇다면 앞으로도 네 어미와 함께 다니며 이런 일을 하고 싶으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 니요. 너무 힘들고…….”
아이는 말을 맺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담 대협, 이 아이를 안으로 데려가 먼저 씻기시오. 그런 다음에 밥을 먹이고 계시오. 나는 이 아이가 입을 만한 옷을 구해 오겠소.”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교주님.”
비강이 웃으며 농을 건넸다.
“그럼 내가 이 아이를 씻겨야 하겠소?”
“아…… 아닙니다.”
“다녀오겠소.”
비강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담혁수는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이에게 다가갔다.
“거…… 걱정하지 콜록…… 콜록…… 말고 안으로 들어가자.”
두려움을 덜어 주기 위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려 했으나, 침이 목에 걸려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네.”
그러나 아이는 담혁수가 나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흐흐…… 흐흐흐……
나무가 우거진 어두운 그늘 속에서 여인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인은 은자를 꺼내 달빛에 비춰보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자그마치 은자 한 냥이었다.
쌀 한 섬이 하룻밤 만에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차라리 고것을 그자들에게 팔아버려?’
은자 한 냥을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내준 것을 보면 그자들의 전낭 안에는 꽤 많은 은자가 들어 있을 것이다.
흐흐흐흐……
“강호인들 중에 부자가 많다더니…… 소문이 사실이었어.”
달빛에 비춰보던 은자는 다시 여인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술 한잔하겠나?”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여인은 화들짝 놀라 바닥에 엎드렸다.
품속에 있는 은자를 숨기려는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저……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턱!
자신이 빈털터리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여인의 앞에 술병이 놓였다.
여인은 고개를 살짝 들어 술병의 주인을 살펴보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사내들 중 한 사내가 바위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헤헤…… 헤헤헤……
여인은 누런 이를 내보이며 웃더니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았다.
“호걸님이셨구먼요. 괜히 놀랬지 뭡니까요.”
헤죽헤죽 웃으며 비강의 눈치를 살피던 여인은 얼른 술병을 잡아 입안에 쑤셔 넣었다.
벌컥벌컥……
술은 목구멍 속으로 하염없이 넘어갔다.
거억……
“정말 좋구먼요. 감사합니다요.”
욕심 많은 여인은 단번에 술병을 다 비웠다.
비강은 말없이 여인을 바라보기만 했다.
술병을 내려놓은 여인은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헤죽헤죽 웃었다.
“혹시 그 아이를 사실 요량이시라면 은자 두 냥만 더 주시면 됩니다요.”
“방금 마신 술이 뭔지 아나?”
여인은 무슨 말인지 몰라 비강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죽은 자에게 바치는 술이라네.”
“……예?”
도무지 영문을 몰라 멍한 표정을 짓는 여인을 내려다보던 비강은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나를 낳았던 계집보다는 조금 낫다고 하려나?”
어둠을 가르며 가는 빛 한 줄기가 지나갔다.
비강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여인의 눈은 점점 아래로 숙여졌다.
툭. 털썩.
여인의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바위를 적시고 바닥으로 흘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깨끗이 닦인 길을 통해 수많은 수레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길옆으로는 넓은 개울이 있고, 개울 너머로는 들판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 맞은편에는 수많은 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개울을 따라 이어진 길을 통해 들어간 수레들이 멈추고 수레를 끌던 무인들이 내려섰다.
수레를 끌던 무인들이 실린 짐을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무인들은 그것들을 안으로 옮겼다.
“곡주님의 물건은 위로 옮기시오!”
“병기들은 마을 중앙에 있는 전각으로 옮기시오!”
짐을 옮기고 있는 무인들을 지휘하고 있는 자는 서패의 총관으로 있었던 공의였다.
그는 서패의 본거지가 전진문으로 넘어가자마자 가족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올라왔다.
그와 동행한 무인들의 숫자도 오십여 명이 넘었고, 그들의 가족들까지 합하면 수백 명에 이르는 큰 행렬이었다.
그들은 먼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새롭게 세워지고 있는 황곡의 일을 거들었다.
짐이 이곳저곳으로 옮겨지고 있는 가운데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는지 수많은 일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인들을 지휘하던 공의는 수레에서 내려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사내를 발견하고는 얼른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공의가 인사 올립니다.”
“벽하원이올시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오히려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나눈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동안 중천을 오고 가는 무인들을 통해 여러 번 서신을 나누었다.
서신을 통해 서로를 알아본 그들은 서로 만나 보기를 학수고대하며 오늘을 기다렸다.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전부 주공과 저 자신을 위한 일인데 고생이랄 게 무에 있겠습니까.”
하하하……
“조금 있다가 어둠이 지면 우리끼리 술 한 잔 나눕시다.”
“기다리고 있던 말씀입니다. 준비는 제가 하겠습니다.”
나누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지금은 한창 바쁜 때였다.
짧게 인사를 끝낸 공의와 벽하원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아 움직였다.
벽하원은 시천세가 머물 전각과 황곡 고수들이 머물 전각을 정리해야 했고, 공의는 나머지를 맡았다.
“그 수레는 위로 올라가야 하오!”
“그건 잠시 이곳에 내려놓았다가 나중에 옮기시오!”
두 사내와 여자아이가 언덕에 앉아 끝없이 이어진 수레들의 행렬을 구경했다.
두 사내들 가운데 앉아 있는 여자아이는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있었고, 걸치고 있는 옷 또한 화려한 붉은 비단옷이었다.
여자아이는 자신의 머리와 입고 있는 옷이 거북한지 자주 머리카락과 옷을 매만졌다.
“왜? 뭐가 이상해?”
담혁수가 돌아보며 묻자 여자아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처음 입어 보는 옷이라…….”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리는 여자아이가 귀여운 지 담혁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것도 엄마라고 여자아이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궁금해했다.
“멀리 갔다.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만 잊어.”
수레의 행렬을 구경하던 비강의 말에 여자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눈물을 보이자 비강은 얼굴에 노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 노기는 언제 드러냈냐는 듯 바로 사라졌다.
“그만 갑시다.”
비강이 먼저 몸을 일으키고 담혁수와 여자아이가 일어났다.
“이왕 이곳까지 온 김에 안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주님.”
“위치만 알아보기 위해 찾아온 거요.”
쩝……
담혁수는 그냥 떠나기가 아쉬운 지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비강은 미련 없이 황곡을 떠났다.
저 황곡에 이미 시천세가 와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육 년 안에 시천세를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와의 약속이었다.
시천세가 십만대산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한 먼저 그를 치지는 않을 것이다.
쾅! 쾅! 쾅!
누군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며 강호 세가의 새벽을 깨웠다.
“누구야!”
담장 안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나온 사내는 장창을 쥐고 있는 젊은 무인이었다.
젊은 무인은 문 앞에 서 있는 여인을 노려보며 눈을 부라렸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뭐길래 단잠에 자고 있는 세가를 깨우려 하는 것이냐?”
다른 무가라면 모르겠으나 이 세가는 방문한 손님에게 큰 소리를 쳐도 되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전부 손가락질을 해도 이곳은 변한 것이 없구나.”
여인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젊은 무인은 손에 들고 있던 창을 겨눴다.
“방금 뭐라 했느냐?”
그러나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약철빙이 약하림을 찾아왔다고 전하라.”
세가를 방문한 여인은 바로 예전 북림과 중천의 순찰단주로 있던 약철빙이었다.
새벽에 세가를 방문한 인물이 약철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젊은 무인은 황급히 창을 거뒀다.
그는 지금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방금 누구시라고…… 했습니까?”
그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가모의 여동생이 이른 새벽에 찾아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약철빙은 다시 한번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개보다 못한 가문의 약철빙이 개보다 못한 약하림을 찾아왔다고 전하라 하였다.”
막말을 쏟아 내는 약철빙으로 인해 악가의 가인은 더욱 당황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멀거니 서 있는데 문이 열리며 나이 든 가인이 밖으로 나왔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