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4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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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45화
제245화. 마교(4)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한 줄기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연기는 점점 더 짙어지고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패물과 은자가 든 상자들과 쌀가마니를 짊어진 신도들이 줄지어 장원을 빠져나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레들에 상자들과 쌀섬을 옮겨 실은 그들은 다시 장원 안쪽으로 달려들어갔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대주들의 재촉과 신도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담정천은 불이 붙은 장작 하나를 집어 전각 안으로 던졌다.
전각 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곧 벌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이제 약림의 기둥들 중 하나라던 정주 유가는 끝이 났다.
일월신교는 하남 염가를 멸절시키며 수많은 재물과 양곡을 얻었다.
‘우리 일월신교는 천하제일의 부자가 되었군.’
흐뭇한 기색으로 불타오르는 전각들을 바라보는 담정천의 귀로 담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 돌아간다.”
“존명!”
대주들이 명령을 받아 신도들을 호령했다.
“철수한다! 철수한다!”
신도들은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가고 담혁수도 그들과 섞여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담혁수는 수백 대가 넘는 수레들 중에 비어 있는 수레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으로 담정천이 밖으로 나와 수레에 몸을 싣자 수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 일월신교가 강호 무림의 주인이 된다면 너는 어느 지역을 맡고 싶으냐?”
흔들거리는 수레에 몸을 맡기고 있던 담정천은 담혁수의 내심을 슬쩍 떠보았다.
담혁수는 담정천의 말을 의아해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우리가 강호 무림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저들이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기 때문이지, 저들을 지배하려고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교주님께서는 우리가 약림을 떠날 때 성을 전부 불태우라 하셨습니다. 우리 일월신교가 강호에 자리 잡기를 원하셨다면 굳이 약림을 불태울 것까지는 없지 않았겠습니까.”
담정천은 얼른 자신의 말을 얼버무렸다.
“강호를 정복하고도 척박한 십만대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아까워서 그렇다.”
“저도 그 점이 아쉽기는 합니다.”
담혁수의 속내를 알게 된 담정천은 감추고 있던 야심이 꿈틀거렸다.
‘잘하면 내게도 기회가 올지 모르겠어. 혁수가 도와준다면 교주가 마음을 돌릴 수도 있으니까.’
“신도들의 불만이 대단할 거예요. 기름진 중원에 비해 십만대산은 척박한 곳이니까요.”
“알고 있소. 하나 이곳에 남게 된다면 다른 자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거요.”
강호 무림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비강은 일월신교가 십만대산으로 돌아가기를 고집했다.
“알아요. 하지만 각주들과 신도들의 생각은 다를 거예요.”
신녀 강무화는 흉터로 가득한 비강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댔다.
비강도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상처가 벌써 거의 다 아물었네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강호 무림에서는 이 사람을 신교의 마인, 또는 신교의 마왕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일월신교를 마교라 부르는 자들도 있었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소.”
그녀는 비강의 얼굴에서 손을 거두어들였다.
“당신은 저들에 의해 세상에 다시없을 마왕으로 불릴 거예요. 세상의 모든 악이 당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을 퍼뜨릴 거예요.”
“상관없소. 내가 세상에 다시없을 마왕으로 불리든, 세상에 다시없을 악귀로 불리든 조금도 개의치 않을 것이오.”
신녀는 비강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고독을 알아보았다.
어느 곳에도 속하려 하지 않고 무엇에도 미련이 없다.
그것이 비록 적이나 자신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는 당신이 무엇이든지 한 가닥이라도 미련을 남겼으면 좋겠어요.”
비강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일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성문을 나서는 비강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던 강무화는 문득 비강을 소리쳐 불렀다.
“그 여자라도 찾아 봐요!”
소림의 자오 대사가 도착하고 이틀 후, 사천 당가와 제갈세가, 전진이 무림맹으로 들어섰다.
세가와 무문의 제자들을 이끌고 있는 자들은 전부 오십대 초반의 젊은 장로들이었다.
그들을 맞이한 것은 성대한 환영인사가 아닌 천목자 제갈곤의 죽음이었다.
무문과 무가의 제자들은 일월신교와의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기가 떨어졌고, 장로들은 침통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자오 대사만은 달랐다.
방안에 앉아 침묵만 지키고 있는 장로들을 호령해 일으켰다.
“지금 무얼하고 있는 게요! 지금 당장 약림으로 출전할 것이 아니라면 황곡으로 가 맹주와 부맹주를 도와야 할 것이 아니오!”
시천세가 두려운 그들은 누구 하나 먼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목숨을 아까워 할 것이라면 지금 당장 돌아가시오!”
자오 대사의 불호령에 눈치를 살피던 장로들은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외를 떠돌아다닐 때는 본산과 본가를 되찾는 일이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것이라 맹세했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본산과 본가를 되찾고 시간이 흐르니 안락함에 젖어 들어 지난날의 맹세가 흐릿해졌다.
그때 문밖에서 황곡으로 떠났던 소림 무승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공이 황곡에서 맹주의 영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빠지게 황곡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자오 대사는 거친 성정에 걸맞게 문을 부술 듯 박차며 뛰어나갔다.
“어서 오너라! 그래, 황곡은 어찌 되었느냐?”
“이미 황곡은 무림맹의 손에 떨어졌고, 시천세는 연비강과 싸움을 벌여 양패동사하였다고 합니다.”
“무엇이라! 맹주가…… 맹주가 진정 그리 말했더냐?”
“예. 틀림이 없습니다.”
자오 대사는 기쁨과 환희에 눈을 감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이야기를 들은 장로들도 자오 대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천세가 죽었다면 두려워할 것이 무에 있단 말인가.
“이제 강호 무림에 서광이 비치고 있소이다.”
장로들 중에 두 명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기뻐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야…….”
“당장…… 당장, 황곡으로 갑시다.”
장로들이 앞다퉈 방을 나서려 하자 자오 대사가 그들을 막아섰다.
“맹주와 부맹주는 계책에 밝은 사람들이오. 분명 우리들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고 있을 것이오.”
자오 대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공이라는 무승이 말문을 열었다.
“맹주와 부맹주께서는 십만대산을 쳐 일월신교가 그곳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여 정파는 사련과의 싸움에 집중해 이번 기회를 빌려 사마의 무리들을 깨끗이 쓸어 없앨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또한 황곡에 산처럼 재물들이 쌓여 있으니 그것들을 전부 무림맹으로 옮겨 정파를 위해 사용하려 하였습니다.”
크하하하하하……
일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오는 대소를 토해 냈다.
“강호 무림에 영웅이 나왔도다! 그것도 두 명이나 나왔어!”
강호 무림은 맹주와 부맹주의 뛰어남을 칭송할 것이다.
아니, 칭송만으로는 모자랐다.
자손 대대로 이들을 기려 뒷날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잠시 안으로 들어갑시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라.”
자오 대사는 밖으로 나온 장로들을 다시 방안으로 이끌고 들어갔다.
장로들은 화급을 다투는 와중에 자오 대사가 여유를 부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사련과의 싸움에 앞서 정파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켜야 하오.”
자오 대사가 말문을 떼자 제갈 세가의 장로가 말을 받았다.
“이미 시천세와 연비강이 죽었는데 사기를 진작시키고 말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사. 그자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정파의 모든 무가와 무문들이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제갈 장로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제 정파의 앞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오 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우리는 이번 싸움에 의기를 내세워 명분을 찾아와야 하오. 사련을 치는 것은 명분이 충분하나 일월신교는 아니지 않소? 싸움을 먼저 시작한 쪽은 약림이고 일월신교가 그 싸움에 승리해 약림을 점령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소. 해서 나는 강호에 이런 소문을 퍼뜨렸으면 하오.”
“말씀을 해 보시오, 대사. 경청하겠소이다.”
자오는 음흉하기는 하지만 제법 그럴듯한 계책을 털어놓았다.
“약림의 림주, 약추완과 악가의 가모, 약하림은 연비강의 외조부와 어미라는 소문이 있소. 자신의 외조부의 어미를 죽였으니 어찌 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살아갈 수 있겠소? 소문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소. 놈은 패륜을 저지른 마인이고, 그 마인이 주인으로 있는 일월신교는 마교일 수밖에 없소. 그러하니 마교를 치는 것은 정파의 당연한 본분이 아니겠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장로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오.”
“옮은 말씀이오, 대사.”
자오는 장로들을 둘러보며 잠시 끊었던 말을 이었다.
“또한 황곡을 공격해 악도들을 무찌르고 그곳을 점령한 맹주와 부맹주를 강호의 영웅으로 추대했으면 하오. 시천세와 연비강을 죽여 없앤 장본인을 맹주와 부맹주로 하는 것이 좋겠소.”
장로들은 놀라 마지않았다.
그들은 양패동사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 역시 자오의 말이 옳았다.
이에 전진의 장로가 걱정을 담아 물었다.
전진에서 천하제일의 영웅이 나온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면 자칫 맹주와 부맹주에게 욕이 될 것이오.”
크하하하하……
“어느 누가 그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이오? 모든 것은 세월이 해결해 줄 것이오. 거짓된 일을 일백 번 입에 올리면 그것은 진실이 되는 법이라오.”
장로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자들을 풀어 무림맹의 이름으로 강호에 공표합시다. 그리고 황곡으로 재물들을 실으러 가야 하지 않겠소.”
자오의 입에서 재물이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장로들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그동안 강호 무림의 무가와 무문에서 바친 재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다른 무가나 무문들보다 하루라도 더 빨리 그곳에 도착한다면 자신들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이 꽤 많을 것이었다.
“빠, 빨리 움직입시다.”
장로들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고, 수많은 수레들은 황곡을 향해 출발했다.
제자들과 가인들은 그들의 영을 받아 강호 무림에 무림맹의 이름으로 모든 사실을 공표했다.
***
일월신교의 교주, 연비강은 외조부와 자신을 낳아준 친모를 살해한 패륜아이자 마인이며 마왕이다.
마왕이 교주로 있는 일월신교는 응당 마교라 불러야 할 것이다.
무림맹은 강호의 의기를 위해 간악한 마교를 강호에서 몰아낼 것이며 그동안 강호 무림을 유린했던 사련의 무리들을 쳐 없앨 것이니 의기를 갖추고 있는 자들은 모두 떨쳐 일어날 지어다.
이미 맹주 오진권과 부맹주 남궁휘는 그 깊이모를 고절한 무공으로 천하제일인으로 불리던 시천세와 마교의 교주 연비강을 쓰러뜨렸으며 황곡을 점령했다.
이제 무림맹이 강호에 고하노니 칼을 차고 있는 강호인들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사마의 무리들을 강호에서 몰아내야 할 것이다.
강호의 모든 전서구들이 분주하게 하늘을 날아다녔다.
천하제일인으로 불리던 시천제와 백리혈로 불리던 연비강의 죽음은 강호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시천세가 죽었으니 이제 정파가 강호의 주인이 될 것이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강호 정파가 일제히 떨쳐 일어났다.
이제 그들의 앞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호 정파의 칼날이 첫 번째로 향하는 곳은 바로 사련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힘을 감추고 있던 사련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