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 연비강 239화
무료소설 신마 연비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마 연비강 239화
제239화. 진정한 후계자
깡! 스악!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해 등 뒤에서 파고드는 한기를 쳐 내고 가슴을 갈랐다.
그리고 그 순간 비강의 검은 눈동자가 커졌다.
“송 소저…….”
가슴이 갈라진 송은반은 차가운 돌바닥 위에 몸을 뉘였다.
비강이 놀란 눈으로 쓰러진 송은반을 지켜보고 있을 때 또다시 등 뒤에서 여러 줄기의 살기가 다가왔다.
비강은 몸을 낮게 깔아 회전하며 무인들 사이를 지나쳐갔다.
쉬쉬쉬쉬……
하얀빛무리가 비강의 신형을 따라 회전하며 무인들의 복부를 가르고 지나갔다.
끄으으으…… 으아아……!
털썩…… 풀썩…….
허리를 숙이고 고통스러워하던 무인들은 머리를 땅에 박으며 고꾸라졌다.
스걱, 스걱,
마지막으로 남은 두 무인의 목을 연달아 쳐 낸 비강은 쓰러진 송은반의 곁으로 다가갔다.
“송 소저…….”
그러나 이미 그녀는 숨이 끊어져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하아……
비강의 입에서 길고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여인만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이 여인은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저 멀리 전각의 낭하 앞으로 내놓은 여러 개의 의자가 보였다.
아마도 여기 무인들이 무공연마를 하다가 잠시 쉬려고 내어다 놓은 것 같았다.
비강은 그 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끄으으으…….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무인이 있었는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비강은 신음 소리를 흘리고 있는 무인의 곁을 지나치며 검을 내려쳤다.
신음 소리를 끊어 버리고 의자로 걸어간 비강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하루나 이틀 후면 이곳으로 시천세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아침 식사를 끝낸 제갈곤은 오진권과 의논할 일이 있어 맹주전을 찾아갔다.
비어 있는 맹주의 방을 확인한 그는 낭하를 지나 부맹주의 방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방도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었다.
맹주와 부맹주가 사용하는 연무장을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그 두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허어,
그제야 문득 이상함을 느낀 그는 무림맹을 돌며 분위기를 살폈다.
어제와는 다르게 무림맹은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삼사오오 무인들끼리 모여 수군거리고 있는데 저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들 중에 서너 명이 제갈곤을 발견하고는 급히 뛰어왔다.
“무슨 일인가?”
“군사 어르신. 사실은 새벽에 부맹주께서 조장과 부조장을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저희 백룡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주님과 대원들 일곱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런…….’
제갈곤은 단박에 맹주와 부맹주가 자신 몰래 다른 일을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무인들 앞에서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허허허……
“걱정할 것 없네. 이미 예전부터 계획을 하고 있던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것뿐일세.”
그렇게 좋은 말로 그들을 안심시킨 제갈곤은 다시 맹주의 방을 찾아갔다.
맹주가 밖으로 나갔다면 분명히 뭔가를 남겨 놓았을 것이다.
짐작대로 탁자 위에 놓인 서책사이에 봉서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급히 봉서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황곡에 대한 공격과 십만대산의 기습,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허허허…… 허허허……
허탈한 웃음을 짓던 제갈곤은 맹주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든 일이 맹주의 계획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정파가 강호 무림을 되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절대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나 몰래 일백오십 명이나 이끌고 나간 것은 칭찬을 해 줘야 하는 것인가.”
젊은이들은 혈기가 넘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하지만 맹주와 부맹주는 젊은 혈기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무공과 영리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군사께서 이 안에 계십니까?”
문밖에서 마안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제갈곤은 불안한 속내를 진정시켰다.
“들어오시오, 마안자.”
방안으로 들어온 마안자는 어두운 안색으로 맹주와 부맹주의 일을 입에 올렸다.
“맹주와 부맹주께서 새벽에 약 일백오십 명의 무인들을 이끌고…….”
“이미 알고 있소, 마안자.”
제갈곤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서신을 마안자에게 내밀었다.
마안자는 그것을 읽어 보고는 크게 놀랐다.
“절대로 안 됩니다, 군사. 맹주와 부맹주가 황곡을 공격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마안자와 같은 생각이외다. 하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소. 맹주와 부맹주도 뭔가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그리 결정한 것일 테니 부디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를 하늘에 빌어봅시다.”
제갈곤은 평소와는 달리 오진권과 남궁휘를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마안자는 아니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제가 발 빠른 자를 골라 맹주와 부맹주를 찾아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만하시오, 마안자. 누가 맹주와 부맹주의 고집을 꺾을 수 있겠소이까?”
제갈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안자는 곧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군사.”
“아니외다. 나도 마안자와 생각은 같소이다. 하나 이번만은 맹주와 부맹주를 지켜보고 싶소이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제갈곤은 이미 그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맹주와 부맹주가 황곡에서 전사한다면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모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시천세에게 무엇을 내주어야 맹주와 부맹주의 일에 대해 용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큰일이로고.’
***
태청산에 오른 시천세는 검붉게 변해 버린 돌바닥을 둘러보며 혀를 찼다.
쯧쯧……
시신은 보이지 않았으나 이리저리 깨지고 갈라진 돌바닥에 검붉게 엉켜 붙은 핏자국은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오셨소?”
시천세는 전각 앞에 서 있는 비강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아. 오랜만이구나.”
“점심 식사는 하셨소?”
“아직 식전이다.”
“갑시다. 밥이나 한 끼 대접해 드릴 테니.”
끌끌끌……
“마치 네놈이 이곳의 주인인 것 같구나.”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인 시천세는 비강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걸어갔다.
식당으로 들어온 비강은 따뜻한 밥과 탕, 그리고 구운 오리 한 마리와 술을 내왔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전부 죽였느냐?”
시천세가 술잔을 받으며 물었다.
“그렇소.”
술잔에 술을 받은 시천세는 비강의 잔에도 술을 채워 주었다.
“시신은?”
“전부 태웠소. 뒤에 가보면 재가 남아 있을 거요.”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동시에 술잔을 비웠다.
“이제 어떻게 할 거요?”
비강이 구운 오리를 손으로 찢으며 물었다.
“네놈을 죽이고 다시 시작해야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내게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그럼 우선 나부터 죽여야 하겠구려.”
끌끌끌…….
“먼저 밥부터 먹고.”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대화였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흥겹다.
서로의 잔에 술이 채워지고 이번에는 시천세가 물었다.
“사부님을 뵈었느냐?”
“당신과 같이 있을 때가 마지막이었소.”
“그렇겠지.”
시천세는 비강의 이 대답을 유난히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번에도 동시에 술잔이 비워졌다.
“너는 아직 나보다 약해.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약해진 것 같구나. 너의 한계가 고작 그 정도인 것이지.”
“내가 아직 그분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보다는 조금 더 나을 거요.”
끌끌끌……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내가 확인해 주마. 물론 그 대가는 너의 죽음이겠지만.”
“그럽시다.”
이후로 두 사람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말이 없었다.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비강과 시천세는 십장의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가볍게 시작해 볼까?”
시천세의 입에서 죽음을 알리는 말이 흘러나오자마자 허리에 꽂혀 있던 검은 비강을 향해 날아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의 동시에 강기로 만들어 낸 거대한 주먹이 비강을 향해 날아갔다.
이에 맞선 비강의 검에서 하얀 악마들이 튀어나왔다.
하얀 악마들은 검과 주먹에 맞서고 시천세를 향해 날아갔다.
시천세는 자신의 몸을 집어삼킬 듯 날아오는 악마들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손을 펴 악마의 목줄을 움켜잡았다.
거대한 강기가 덧 씌워진 양손이 악마들의 목줄을 끊어 버렸다.
콰콰…… 쾅!
악마들이 손아귀에서 터져 나가고, 이어 되돌아온 검이 그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크으음……
시천세는 입으로 흘러나오려는 신음 소리를 간신히 집어삼켰다.
가볍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미 가벼움을 한참이나 넘어서고 있었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은 가벼운 경련을 일으켰고 입고 있는 무복도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다.
“제법이구나.”
흡사 검으로 이루어진 산을 지난 듯 갈기갈기 찢어진 비강의 무복은 시천세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촤르르르……,
순식간에 수십 명으로 늘어난 시천세와 맞서기위해 비강의 신형도 수십 명으로 늘어났다.
콰쾅! 쾅! 콰쾅! ……!
수십으로 늘어난 시천세와 비강은 지상과 하늘을 가득 메우며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수십의 검들이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강기의 파편들은 태청산 중턱을 온통 휘황한 빛으로 물들였다.
수십으로 늘어났던 시천세가 다시 하나로 모이자 수십으로 늘어났던 비강도 하나로 모였다.
비강은 이미 자신이 흘린 피로 인해 혈인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이다!”
반원을 그리던 시천세의 검이 비강을 향했다.
쏴아아……
검은 강기를 만들어 내고 강기는 곧 해일을 일으켰다.
거친 해일은 비강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단숨에 집어삼킬 것처럼 덮쳐갔다.
동시에 비강의 머리 위로 거대한 손바닥이 떨어져 내렸다.
시천세는 이 공격을 비강이 막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피할 곳도 없었고 막을 수도 없었다.
시천세의 눈에 검은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검은 선은 돌바닥에서부터 시작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는 손바닥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검은 선은 순식간에 더 짙어졌다.
콰콰콰…… 콰콰쾅!
하얀 해일과 거대한 손바닥이 갈라지며 터져 나갔다.
비강은 여전히 혈인의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으으으……
시천세는 자신도 모르게 턱을 덜덜 떨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연비강이 자신과 사부의 무공을 벌써 체득했단 말인가.
“아니야!”
들끓는 분노를 담은 노성이 입에서 터져 나오고 그의 검은 선을 그리고 있었다.
쩌저저적……! 쩌적! 콰쾅!
검은 선은 비강을 가르고 뒤에 서 있는 전각까지 반으로 쪼개놓았다.
죽었다.
결국 놈이 죽었다.
그러나 시천세의 확신은 나타나기 무섭게 사라졌다.
저것은 그놈이 아니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니 반으로 쪼개졌어야 할 비강이 서 있었다.
“무엇이었느냐?”
“귀보. 한번은 당신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확신은 없었지만.”
눈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비강의 대답이었다.
“훌륭, 했다.”
시천세는 비강 앞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그의 가슴에서 피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이제야 사부가 이곳 태청산을 입에 올린 이유를 깨달았다.
사부는 이미 이곳에서 자신과 연비강이 마지막 일전을 벌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어도 지금과 같은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멍청하게도…….’
비강은 무릎을 꿇고 있는 시천세 앞에 마주 앉았다.
“축하…… 한다. 천하제일인이…… 되었구나.”
시천세는 흐릿해져 가는 눈을 억지로 움직였다.
“당신 덕분이야.”
끌끌……
“그……렇지. 다…… 내 덕분이기는…… 하지.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검었던 시천세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해가고 얼굴에도 주름이 퍼져 나갔다.
“죽일 만큼 죽일 거야, 강호인들을.”
“그것 역시…… 훌륭…….”
시천세는 말을 끝맺지 못한 채 풀썩 앞으로 쓰러졌다.
비강은 앞으로 쓰러지는 그를 품에 안았다.
“잘 가시오.”